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98화 (398/502)

00398  2019  =========================================================================

#398

[그때 대학들과 지자체 측에서는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럼 혹시 다른 쪽에서는 연락이 왔나요? 아니면 저희 측을 제외하고는 직접적으로 학생들 지원서를 받아서 선발할 예정인가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2천 명 조금 넘는 정원은 이미 차 있는 상태에요. 뭐, 상반기내로는 관련된 공식발표가 있을 테니까, 그 발표 몇 주 전에 미리 상세 계획을 알려드릴게요.”

결과적으로 내 예상은 그리 오래지 않아 현실로 증명되었다. 그때 만남을 가진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오늘 이해영 고양시장으로부터 사업 동참 의사를 전달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에요. 아쉽게도 저도 오늘 스케줄이 있어서요. 네, 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실 이번에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직접 얼굴을 마주하며 관련 얘기를 나누려했었다. 단순히 전화상으로 관련된 얘기들을 나누기엔, 그 주제가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예상치 못한 스케줄로 인해 이해영 고양시장을 보는 것은 내가 아닌 관리사님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예상치 못한 무대에 서게 되었다.

“지혁씨 통화 다 끝나셨나요?”

“어, 어? 아! PD님 오셨네요. 제가 전화 받느라, 오신 줄 몰랐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한 달 보름 정도 만에 얼굴을 다시금 마주하게 됐는지라, 김태훈 PD를 보는 얼굴에 절로 미소가 맺혔다.

“저야, 항상 똑같죠. 그나저나, 제가 통화하는 데 방해된 건...”

“아니에요. 오신 줄도 모르고 통화하다가 용건 끝나서 끊은 건데요. 뭘.”

2019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는 속된 말로 대박이 났다. 5년 2개월 만에 20%를 돌파한, 20. 84%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도 대박이지만, 가요제 앨범의 판매량과 공연 DVD 판매에서도 호조를 보이는 등, 그만큼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았던 것이다.

따라서 나 또한 해당 가요제의 참가 가수로서 그와 관련된 기사들을 접할 때면 무척이나 뿌듯함을 느꼈었다. 처음으로 래퍼로서 무대를 장식했다는 점과 더불어 가요제의 준비기간이 무척이나 녹록치 않았는지라 그 성과가 더욱 크게 느껴졌으니까.

“지혁씨 이번에 뮤직코어에 출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만큼 저희 팀을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줘서 받은 기회이니만큼 꼭 참가해야죠. 게다가 제가 외국에 있는 것도 아닌데요. 뭘.”

어쨌든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에서 대중들의 가장 큰 호응을 받은 무대는 뮤직코어 생방송 무대에 설 수 있다는 특혜를 나 또한 받게 되었다. 솔직히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중들의 말마따나, 이번 가요제의 라인업은 역대 급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대단했고 실례로 그들의 무대는 하나같이 대단했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지혁씨.”

“에이, 뭐가 그렇게 자꾸 감사하다고 하세요. 저 일주일에 하루 촬영 빼고는 집에서 놀고 있는 사람인데요. 뭘. 이렇게 방송국 나들이 하게 해주셔서 도리어 제가 감사하다고 해야죠.”

아무튼 내게는 그 특혜라는 것이 그다지 특혜랄 것도 없는 것인지라 김태훈 PD님이 계속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는지라 화제를 돌릴 필요성을 느꼈다. 나 또한 오랜만에 음악방송 무대에 서게 됐다는 생각과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 당일 느꼈던 흥분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이곳에 온 것이었으니까.

“순한 삼촌은요?”

“그게...”

그런데 순한 삼촌도 참 일관성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를 준비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은 공연 당일 때의 흥분과 열기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라며 이렇게까지 해주니 말이다.

“여전하네요. 순한 삼촌은...”

“휴우... 사람이 변하기가 쉽지 않죠.”

괜히 기분 좋은 나들이를 방해받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이와 관련된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촬영 시작시간이 리허설 1시간 전이지, 리허설 시작 전까지만 온다면 딱히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저 잠시 나갔다올게요. 어차피 순한 삼촌 안와서 괜찮죠? 괜히 제가 기다린다고 하고 순한 삼촌 지각한 거 방송 찍었다간 인터넷에서...”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각한 순한 삼촌 덕에 하려고 마음먹었던 것들을 실제로 할 수 있겠다는 점에서 마냥 나쁘게만 볼 게 아니었으니까.

“저보다 선배 가수들도 있고 오늘 트렌디 애들도 무대 하는 걸로 알고 있어서요.”

“아!”

“그럼 저 잠시 나갔다 올게요.”

그나저나, 이 녀석은 내가 음악방송에 나온다는 거 모르는 건가? 오빠가 대기실에 있으면 딱 하고 와서 인사를 해야지. 나 원 참.

*

“지혁씨 사인 좀 부탁해. 하하! 이번에 미스터 지 개봉한다지? 그거 내가 꼭 보러갈게. 하하!”

“사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 어머 강지혁이야! 대박!”

“강지혁 나온다는 거 진짜였나봐! 대박이다!”

뮤직코어 PD를 비롯해 각종 스태프들에게 사인을 해주며 겨우 TRENDY 대기실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내 리허설 차례가 가장 첫 번째 순서라는 것을 아니, 다른 가수들에 비해 ‘상당한 차이’가 있는 이른 시간이라는 것을.

[오늘 순한씨가 오전 9시부터 스케줄이 있어서요. 그래서 무대 순서를 조금 조정하게 됐습니다. 지혁씨. 엄청 이른 시간인데 괜찮으신가요?]

그때 그 말이 이런 뜻이었을 줄이야.

나야 언제 자든 오전 6시가 되면 눈이 떠지던 사람인지라 리허설이든 본 무대든 그 이후시간이면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그동안 음악방송 때 리허설 시간보다 꽤나 이른 시간임에도 그러려니 했고 말이다.

“아직 애들 오려면 1시간 정도 기다려야 되는데... 이거 어떡하나. 아! 제가 지금 지수한테 전화해서,”

“아니에요. 괜히 저 때문에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래도... 이렇게 직접 찾아오셨는데...”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애들 무대의상과 메이크업 장비들을 옮기던 매니저가 그런 나를 보고 다급히 지수에게 전화를 하려는 것을 애써 말린 채, 가져온 음료수들을 내려놓고 대기실에서 나오려 했다. 때마침 들어온 누군가가 아니었다면.

*

생각해보면 가수인 주제에 음악생방송은 그다지 많이 하지 않은 것 같다. 앨범 활동 때마다 길어봤자 2주 정도만을 음악생방송에 투자했고 되도록 콘서트 활동을 통해 팬들을 찾아갔으니까.

그래서인지 오후 리허설 시간대, 무대 마지막 순서 등 제작진의 배려가 상당했음을 이번에 새삼 느끼게 되었다.

대부분의 가수들은 음악생방송 한번 할라치면 새벽 3시에 일어나야했다. 일단 숍에 가서 머리부터 손보아야 했으며 기본적인 메이크업 및 의상 코디를 맞춰봐야 했고 또한 오후 본 무대 전까지 두 세 번의 리허설을 거쳐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 앞서 말했듯이 대다수의 가수들과 달리 데뷔활동 때 그 짧은 일, 이주가 그와 같은 경험의 전부였고 그 경험들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은 먼 옛날의 일이 되었는지라, 오늘 이곳에 도착한 후의 약간은 이상했던 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던 것 같다.

뭐, 이런 말 하긴 조금 쑥스럽지만, 어쩐지 다른 후배 가수들이 예전과 달리 내게 인사를 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아하긴 했었다.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며,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내게 찾아와 인사를 건네고 사인을 부탁하는 행동에 대한 석현 형의 예전 말마따나 나는 또래 가수들에 비해서 무척이나 높은 위치에 자리 잡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럼 지수 오면 왔다 갔다고 말이라도 전해주세요. 다른 멤버들한테도요.”

“네, 알겠습니다. 지혁씨. 그리고 음료수 감사합니다.”

“뭘요. 그럼.”

어쨌든 주인 없는 대기실에 오래 앉아있을 생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었는지라 음료수를 건네고 대기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뭐, 지금쯤이면 순한 삼촌이 와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복도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진 것은. 그리고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 목소리의 주인공‘들’과 눈이 마주친 것은.

“언니, 오늘 끝나고 뭐해? 나 오늘 이거 방송 끝나고...... 리허설 세 시간 뒤에 있고 저녁에 본 무대니까, 여기서 놀다가 점심 같이 먹자. 응, 응? 어차피 언니 오늘 스케줄 없잖아. 응?”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눈이 마주친 순간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는 상대 쪽 또한 마찬가지인 듯 했다.

“여긴 어떻게...?”

헤어 스타일링이 벌써 끝난 것일까. 아니면 숙소 생활을 끝내서 이제는 음악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따로 이동하게 된 것일까.

수많은 의문이 일시에 떠올랐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대기실 안에 있는 나를 보며 놀란 듯한 유지연의 말 또한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혼자가 아니라는 게 중요했을 뿐.

“나도 오늘 출연하거든. 오랜만이네. 유재연.”

“어, 어? 응...”

눈에 띄게 굳어버린 얼굴의 유지연이 유재연의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그녀의 차갑되 결코 차갑게 느껴지지 않은 시선이 너무 강렬해 직접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 유지연.”

“어.”

저번 만남을 끝으로 나와의 관계를 더 이상 지속하고 싶지 않아하던 유지연을 놓아줬었다. 애당초 연인이 아닌 그저 서로의 욕구를 위해 유지했던 관계인만큼, 일방이 원하지 않는 관계는 지속될 수가 없는 게 당연했으니까.

물론 미련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내 마음을 마음대로 터놓을 수 있는 상대, 본능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미모 그리고 나만이 알고 있는 그녀의 내밀한 모습들까지. 어느 것 하나 아쉽지 않은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나간 사랑의 아픔이 세월이라는 약으로 치유되면 될수록 그녀의 가장 큰 효용가치라고 여겼던, ‘내 마음을 마음대로 터놓을 수 있는 상대’라는 게 점점 크게 와 닿지 않았었다. 그걸 그녀 또한 알아챈 듯 했고 말이다.

그래서 그녀가 관계의 끝을 원했을 때 나 또한 어느 정도의 과도기는 있었으나, 나름 흔쾌히 이에 동의했었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 오랜만에 본 유지연의 모습에 무척이나 반가웠다. 여전히 아름답고 차가웠지만, 짤막한 단어로 내 인사에 대꾸하는 그녀지만, 그것이 오히려 어떠한 갈증을 시원하게 없애주는 감로수처럼 느껴질 정도로.

“여전하네. 차가운 건.”

자매라서 닮아가는 것인지, 유재연도 유지연도 아무런 말을 잇지 않았는지라, 평소의 나였다면 아니 방금 전의 나였다면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후의 나였다면 자연스레 대기실을 벗어났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내가 이곳에 있길 원하지 않는 듯 한데, 굳이 사서 눈치를 보며 이곳에 있길 원할 정도로 나란 사람은 낯 두꺼운 이가 아니었으니까.

“너만 먼저 왔나보네. 다른 멤버들은 같이 안 온 걸 보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가 놀랄 정도의 행동을 그것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어? 어...”

“앉아.”

“응?”

“너 대기실인데 왜 그렇게 서있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유재연에게 앉길 권유한 뒤 나 또한 자연스레 의자들 중 하나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자란 녀석들 촬영 때문에 왔어. 간만에 왔는데, TRENDY도 오늘 방송 있다길래, 찾아온 거고.”

“그렇구나...”

“애들은 언제쯤 올 것 같은데?”

“리허설이 세 시간 뒤니까, 한 시간 쯤 뒤에는 올 거야.”

억지로 대화를 잇긴 했지만, 여전히 대기실의 분위기는 싸늘했고 적막했다. ‘알아서 자리를 피해준 매니저라도 있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지연은 핸드폰을 보며 입을 닫고 있었고 그나마 유재연이 마지못해 내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으니까.

하지만 그마저도 이내 건넨 나의 질문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멤버들끼리 점심 같이 먹나?”

“어?”

내 질문이 의외여서일까, 아니면 그 질문이 무슨 의도를 갖고 있는지 알아서일까. 유재연은 물론이고 스마트 폰을 보고 있던 유지연이 소파에 앉은 뒤 처음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리허설 오전 11시고 본방송 무대 오후 5시면 그 사이에 점심 먹을 거 아니야. 계속해서 여기 대기해야하니까.”

하지만 이와는 상관없이 나는 오로지 내가 물은 질문의 대답을 원했다.

“같이 먹을 때도 있고 따로 먹을 때도 있고... 대부분은 같이 먹어.”

“잘 됐네. 오늘 순한 삼촌 스케줄 때문에 나 혼자 밥 먹어야하나 싶었는데. 같이 먹자. 내가 살 테니까.”

“어, 어?”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와 시선을 더욱 갈구했다.

“거기 입 꾹 닫고 여기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까지 포함해서. 어때?”

“나랑 재연인 따로,”

“내가 뭐 같이 밥 먹으면 불편할 정도로, 그런 ‘의미 있는’ 사람이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런 내 말에 유재연과 유지연 두 자매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지만 상관없었다. 애당초 이 대기실을 벗어나려던 행동을 그만두고 이 의자에 앉은 순간부터, 내가 원하던 결론은 이것이었으니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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