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97화 (397/502)

00397  2019  =========================================================================

#397

“네, 그럼 그때 뵙는 걸로 할게요. 네? 에이, 아니에요. 스케줄도 없고 널널해요. 그리고 저도 가수인데, 무대를 싫어하겠어요? 대기시간은 조금 그렇지만.”

김태훈 PD님과의 전화로 기쁜 소식을 듣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에서 나와 순한 삼촌 팀이 최고의 무대로 꼽혔다는 점과 더불어 이 덕에 뮤직코어 생방송 무대에 설 수 있게 됐다는 점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가수로서의 내 본능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물론 랩은 노래와 무척이나 달랐다. 물론 이 생각은 랩이 노래가 아니라는, 비하의 목적에서 떠올린 것이 아니다. 나 또한 랩 가사를 쓰고 이를 무대에서 소화했던 적이 있는, 명실상부 ‘래퍼’이니까.

고음을 내지르지도 가성과 진성, 두성을 오가는 테크닉을 쓸 필요도 없건만 랩은 노래만큼 힘들었고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어떻게 보면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의 대명사였던 록 음악보다 라임을 타고 물 흐르듯 흘러가는 랩이 보다 쉽게 관객들의 마음을 동화시키고 그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유도시켰다.

그래서 신기했다. 노래가 아닌 랩으로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그날의 기억이. 그리고 흥분되고 설렜다.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무대를 휘젓고 다녔던 그날의 랩이.

“형, 형!”

래퍼로서 생방송 무대에 선다는 생각이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 때의 기억을 너무나도 선명히 그리고 또렷이 떠올리게 만들었나보다. 승현 녀석이 코앞까지 다가와 나를 부를 때까지 이를 몰랐으니 말이다.

“대박!”

그나저나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들떠있는 거야? 아까까지는 조용히 있더니.

“뭔데 그러냐, 또.”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궁금하긴 했다. 녀석이 핸드폰을 내게 들이밀며 흥분해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일이 무엇인지, 인간이라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이번에 장난 아닌데? 열애설 터졌어. 열애설!”

“뭐?”

그런데 막상 듣게 된 녀석의 이런 호들갑의 이유가 생각보다 더 대단했는지라, 나 또한 넋 놓고 ‘기사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스패치 OFFICIAL : 충격! 서린의 진짜 연인은 바로, 바로 나? 저번 달 강지혁과 열애설이 터졌던 서린의 진짜 연인이 그룹 빅토리의 양성준으로 드러나! 서린의 숙소 주차장 차안에서의 뜨거운 데이트! 한강에서의 소탈한 맥주 데이트! 배우식당 촬영으로 인해 발생한 오보와 달리 이번에는...... 현재 두 사람의 소속사 측은 이렇다 할 공식발표를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며......]

“저번에 형이랑 서린 열애설 터졌잖아. 근데 이번에......”

설마 했던 일이 사실이 되었다는 점에서 양성준이 더 대단해보였다. 옆에서 승현 녀석이 뭐라, 뭐라 내게 말을 건넸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정도로.

“대박이다. 대박. 서린이랑. 성준형이 한턱 쏴야 하는 거 아니야? 이 정도면 동네 잔치해도 모자라겠구만... 어쩐지 요즘 연락을 안 받더라. 저번에 형이랑 같이 소주 먹을 때 성준 형 전화했을 때도 못 온다 했잖아. 바쁘다고. 그 형이 소주 먹는 데 빠지는 거 진짜 드문 데......”

실낱같은 기회를 어떻게 이렇게 잘 잡아채는 지. 신기하기도 하면서 부럽기도 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천하의 서린을 꼬셔냈다는 점도 점이지만, 나쁜 남자 스타일인 녀석이 자존심을 굽혀가면서 서린을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자 용기를 냈다는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을 테니까. 뭐, 녀석의 연애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더더욱.

“와... 대박 열애설들이 동시에 터지네. 오늘 무슨 날이야? 일 년에 한 번 터지기도 힘든 대박 열애설들이......”

그런데 기사를 보던 중 들려온 승현 녀석의 말에서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박 열애설이 아니라 열애설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열애설 말고 또 다른 열애설이 터졌던가? 그것도 톱스타급 열애설이?

흔치 않은 경우인지라, 나 또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하루에 동시 두 개의 톱스타급 열애설이 터진 경우는 드문 경우였고 이 경우 필시 어떤 다른 의도가 들어있을 가능성이 컸으니까.

하지만 다른 의도고 자시고 이내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겨를이 없었다.

“이거 봐봐. 형. 이것도 대박이지?”

이내 또 다른 기사들을 보여주는 승현 녀석으로 인해 말문이 턱하니 막혀버렸다. 공교롭게도 정승현이 내게 건넨 두 개의 열애설 모두 나와 관련 있는 이들의 것이었으니까.

*

[매일연예지 단독보도! 드라마 천손에서 강지혁의 상대역으로 출연하여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배우 유지연이 최근 출연중인 드라마 햇빛, 달빛의 또 다른 주연 홍성빈과 단둘이 강남 V레스토랑에서...... 두 사람 측의 공식발표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한편 홍성빈과 유지연이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 햇빛, 달빛은 시청률 30%를 돌파하며...... 홍성빈은 탄탄한 연기력과 완벽한 비주얼로 차세대 한류스타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다잡는데 성공했으며 드라마가 종영되지 않았음에도 10여 편의 광고계약을 따내는 등......]

또 다른 열애설의 주인공들을 기사로 접한 강지혁의 태도는 평범했다.

“별 거 아니네.”

“형 이거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네. 와... 나한테 살짝 귀띔이라도 해주지...”

마치 해당 열애설을 알고 있었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자신에게 핸드폰을 돌려준 강지혁의 행동에 정승현이 이를 의심할 정도로.

“알긴 뭘 알아.”

“진짜?”

“내가 어떻게 아냐? 드라마 찍고 연락 안한지가 언젠데.”

“크흠... 뭐, 형도 모르고 있었구나. 하긴 사귄지 얼마 안 되어 보이니까. 난 또 형이랑 유지연이랑 같이 드라마도 찍고 그래서 친분 있는 줄 알았지. 그나저나 성준 형 좋겠네. 서린이라니. 하아... 소개팅 해달라고 졸라야겠다. 크크크.”

어쨌든 강지혁은 그런 정승현을 보며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금 TV로 시선을 돌렸다. 별로 관심이 없다는 듯, 이내 흥미를 잃어버린 듯한 그의 모습에 정승현 또한 이내 마찬가지로 TV에 시선을 두기 시작했고 말이다.

그런데 휴게실에 권수아, 이수아 두 명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정승현은 순식간에 좀 전의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되돌아갈 준비를 서둘렀다. 마치 자신이 그 기사를 쓴 마냥 서둘러 스마트 폰으로 그 기사를 찾기 시작했으니까.

“야! 권수아! 너 이거 봤어?”

“뭐?”

“열애설 터졌잖아! 열애설!”

“진짜? 누구, 누구?”

“수아 누나도 빨리 와봐. 이거 대박이야. 대박!”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두 사람에게 달려드는 정승현의 행동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그다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강지혁의 놀람 정도가 그의 생각보다 명백히 기대 이하였기 때문에 눈은 TV를 보고 있을지언정 입은 계속해서 건질, 건질 거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두 열애설은 그만큼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놀라운 기사였다. 이러한 기사를 대수롭지 않게 넘긴 강지혁이 이상한 것이지 이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던 것이다.

“홍성빈이잖아? 와... 대박! 요즘 대세잖아. 대세! 모델 출신이어서 몸도 좋고 이번 드라마로 CF도 10편 넘게 찍고! 이번에 드라마도 아시아 어디라더라? 열 몇 개 나라에 진출했다던데...”

“잘 어울리긴 잘 어울리네. 홍성빈이 연하지?”

“국민 연하남이잖아! 와... 연상연하커플이네!”

“연상의 테크닉과 연하의 체력이 합쳐지면,”

“야! 이 저질! 더러우니까, 저리 꺼져!”

“이게 오빠한테 자꾸!”

그렇게 정승현의 관련 기사 브리핑은 좀처럼 끝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그리고 이내 보게 된 기사들 덕에 권수아와 이수아 또한 덩달아 들뜨게 되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행동 또한 이내 들려온 강지혁의 말에 중단되고 말았다.

“녹음이나 하러 가자.”

“응?”

“누나랑 권수아도.”

“응?”

“어?”

갑작스럽게 녹음을 하자는 강지혁의 말에 이수아와 권수아 그리고 정승현 모두 의아한 듯 그를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그들의 메인 스케줄이 녹음 일정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를 전담해주기로 한 사람은 강지혁이 아닌 유민재였기 때문이다.

“오늘 민재 삼촌 갑자기 일 생겨서 내가 디렉팅 하기로 했어. 승현이 정규 앨범 타이틀곡이랑 듀엣 곡 둘 다.”

그러나 이내 그들의 의아함은 쉽게 풀릴 수 있었다. 그들의 오늘 작업을 맡아주기로 했던 유민재가 동창 부친의 장례식에 가야했기에, 지혁이 작업을 대신한다는 점은 그다지 이상할 게 아닌 상황이었으니까.

*

“그만.”

“그만.”

“그만.”

벌써 수십, 아니 수백차례 들려온 똑같은 단어, 똑같은 목소리에 작업실과 부스 안 모두 적막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그 목소리가 향하는 대상인 정승현부터, 정승현의 다른 수록 곡 피쳐링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권수아, 이수아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자 오늘 디렉팅을 맡고 있는 강지혁까지 전부 이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었으니까.

“언니... 오늘 지혁 오빠 무슨 일 있어?”

그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그 질책 섞인 지적이 자신을 향하는 게 아님을 모르지 않지만 권수아는 자연스레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그녀와 붙어 앉아 있던 이수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응? 글쎄... 지혁이 원래 녹음할 때 엄청 까다롭잖아. 지적도 장난 아니고.”

“아니, 그건 나도 아는데... 오늘은...”

“흠...”

“분명 아까 아침 먹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기분 좋아보였는데, 아니 평소랑 똑같았는데...”

물론 강지혁의 녹음 디렉팅은 까다롭기로 소문나다 못해 유명했다. 그 결과물이 대단해서 문제지, 그 과정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을 이미 한 번 이상씩 강지혁의 녹음 디렉팅을 받아봤던 그녀들은 결코 모를 래야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정신 안 차려? 정규 앨범인데, 팬들 실망시킬 거야?”

“미, 미안. 다시 할께. 형.”

보다 날카로웠다. 그리고 집요했다.

“끝 부분에서 호흡이 딸려. 그래서 목소리가 쳐지고. 이 부분에서 터트리고 애드리브 할 생각 아니었어?”

“어, 어? 어... 맞아.”

정승현과 견원지간을 형성하고 있는 권수아조차 부스 안에 있는 정승현이 불쌍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강지혁의 디렉팅은 촌철살인이 무엇인지 여실이 드러냈던 것이다.

“아무리 첫 녹음이어도 그렇지. 이렇게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어떡해? 이거 타이틀 곡 아니었어?”

“맞아. 타이틀 곡...”

“작사, 작곡도 민재 삼촌이랑 너가 했고... 특히 방금 말한 클라이막스 부분은 전적으로 네가 다 작곡한 거 아니야? 편곡 방향도 그 쪽으로 네가 했고.”

“맞아...”

“지금 딱 말해. 디렉팅 대충해줘? 그냥 설렁설렁해줘? 그럼 그렇게 해줄게. 네가 작사, 작곡한 곡이고 네 정규앨범이니까.”

물론 그 모든 지적들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모든 내용이 정확하다는 게, 그래서 지적들이 끊임없다는 게 더욱 큰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였을 뿐.

어쨌든 한 파트에서 벌써 두 시간 가까이 녹음 진행이 안 되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지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오늘 녹음은 물 건너갔다는 점을 인식한 권수아, 이수아 또한 계속해서 지적을 받는 정승현을 보다보니, 절로 머리가 아파왔으니까. 뭐, 그 당사자인 정승현은 말해 입 아플 정도였고.

“오빠? 우리 잠깐 쉬다 하자. 응? 밥은 먹고 해야지. 밥 먹고 하면 잘 할 거야. 쟤가 아무리 바보여도 오빠가 그 정도로 말했으면 알아들었을 걸? 지 앨범인데, 양심 있으면 제대로 하겠지.”

아무래도 평소보다 조금 날카로운 듯한 지혁의 기분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기가 죽어있는 정승현을 북돋아줄 필요성을 느꼈는지, 일행 중 가장 막내 권수아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심심하면 정승현과 티격태격하며 휴게실을 시끄럽게 만드는 권수아가 정승현을 위해 나설 정도로 녹음실 분위기는 치명적이었으니까.

“그, 그래. 승현아. 우리 밥 먹고 하자. 그래! 오, 오늘은 언니가 쏠게! 가자!”

그렇게 옆에 있던 이수아 또한 권수아를 도와 강지혁의 등을 떠미는 것으로 그들은 날카롭고 싸늘했던 분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졸지에 녹음실 밖으로 떠밀린 강지혁의 표정은 그런 그들의 살 것 같다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두웠지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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