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95 2019 =========================================================================
#395
기숙사 사업과 관련된 자후어 교수와의 대화는 그날을 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나와 총리내외는 경복궁, 한류월드 그리고 광장 시장 등 관광지들을 둘러보기 바빴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날의 대화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것은 아니었다. 개인 휴가의 마지막 날 저녁. 한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맞이하기까지 쉬는 틈틈이 관리사님과 이와 관련된 얘기를 나눴으니까.
[사실 이번 개인 휴가 지를 한국으로 정한 데는 미스터 강의 초대 말고 다른 이유가 있었어요.]
[아... 그렇군요.]
[설마하니 미스터 강이 한국에서 이런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저희 때문에 피해를 드리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
마지막 저녁 만찬은 한국에서의 첫 만찬과는 사뭇 다르면서도 유사한 분위기를 띠었다. 총리 내외에 대한 부담감은 첫 만찬과 비교해 거의 없다 봐도 무방했다. 여러 관광지들을 둘러보면서 느꼈던 총리내외의 소탈함과 더불어 거의 매일 밤마다 지하층에 마련된 볼링, 당구 시설에서 서로의 경호팀과 팀을 먹어 게임했던 시간들이 부담감이란 존재들을 없애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은 첫 만찬과 유사한,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를 가졌다. 누각이 아닌 본채의 옥상에서 누각마저도 풍경으로 포함시켰기에 주변 광경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총리 내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뜻밖에도 진솔했고 쉽게 흘러나올만한 것들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남편도 그렇고 저도 지혁 씨의 팬이기 때문에 이번 한국행이 무척이나 즐거웠고 또 영광이었어요. 하지만 개인 휴가 일정마저도 마냥 개인의 기호만을 고려할 수 없는 게 정치인이고 또한 총리의 자리인지라...]
[한국에서의 시간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정도로 환상적이었습니다. 저택의 정취도 정취거니와, 막상 둘러본 곳은 많지 않지만, 둘러본 곳마다 무척이나 인상 깊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
개인 휴가를 한국에서 보낸 것이 단순히, 나의 초대 때문이 아님을 털어놓은 총리 내외에게 굳이 관련된 사안을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구체적인 이유를 알아내는 것보다,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털어놔준 총리 내외의 모습이 더욱 와 닿았을 뿐더러, 그 정치적인 이유라는 게 예상하지 못할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희가 미스터 강의 사업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게 아내와 저의 생각입니다. 노블레스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미스터 강의 뜻을 저희 부부 또한 사회적으로 사적으로나 충분히 따를 만한 위치에 있는 만큼......]
더욱이 기숙사 사업과 관련해 도움까지 얻을 수 있었으니 오죽할까.
[현재 한국에서 유학생신분으로 거주하고 있는 본국의 학생들이 대략 300명가량 되더군요. 미스터 강의 사업에 조금이나마 동참함으로써 저희들 또한 얻어가는 게 많은 만큼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론 그 도움이 또 다른 부담감으로 다가오긴 했다.
[저와 남편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장학 재단을 통해 재원은 충당할 것이고 학생 선발에 관련된 정보 제공은 대사관 대사가 전담하게 될 것이니,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시면 대사관 측에 연락을 하시면 될 거에요.]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할지...]
[감사 인사라니요. 도리어 저희가 감사드려야지요. 주변 대학들에서 미스터 강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미스터 강의 기획은 각국 대사관들 입장에서도 그리고 저희 측 입장에서도 무척이나 달콤한 사업이니까요.]
[아...]
[미스터 강이 별도의 투자 금을 받지 않으신다고 하니, 저희가 생각한 게... 저희 부부 내외가 소정의 장학금을 본국, 타국 기숙사생 구분하지 않고 기부할 생각입니다. 물론 선정 기준은 미스터 강에게 맡길 생각이고요.]
[아! 그렇게까지는 안 해주셔도 되는데...]
그래서 기숙사 건립 투자 금에 한 몫 거들겠다는 총리내외의 도움을 애써 거절한 채, 소정의 장학금 지급과 관련된 도움만을 받으려 했다.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이야, 한남동 저택과 관련된 소비 이후 이렇다 할 소비를 하지 않았기에 충분했고 한남동 저택 부지 또한 예상치 않게 너무나도 싼 가격에 매입할 수 있었기에 기숙사 투자 금을 늘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내 의도와는 다르게 총리 내외의 도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기숙사생들 가운데 본국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뽑아 장학생으로 제가 몸담고 있는 베를린 훔볼트대의 청강생으로 받아들일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비록 학교 간 협약에 의한 교류 학생 신분은 힘들겠지만, 본국에서는 청강생 또한 일반 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신들로 인해 내가 불미스러운 일을 겪게 되었다고 생각해서인지, 총리 내외는 미안함을 결코 그대로 넘어갈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소정의 장학금을 기부하겠다는 제안과 더불어 언어교류와 관련해 선별된 기숙사생들에게 자신이 교수로 재직 중인 베를린 훔볼트대의 청강생 신분혜택을 주겠다는 말까지 더했으니 오죽할까.
일이 이렇게까지 되다보니, 나의 타고난 본성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타고났다. 타고났어. 일을 이렇게 크게 벌리는 것에.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그다지 꺼리지가 않았다. 이런 게 내 자신의 꽤나 자연스러운 모습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기획한 일이 잘 풀려나간다는 성취감에 또다시 일을 더욱 크게 벌리고 싶은 마음이 가슴 속을 타고 흘러들었으니까.
*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 흘려가는 발언 한번, 한번이 화제가 되고 온라인을 진동시키는 것이 강지혁이 지닌 위치였다. 그래서인지 강지혁이 국내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요즘, 온라인 포털 사이트는 강지혁의 일거수일투족에 관한 기사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물론 그런 기사들 모두가 긍정적인 내용 또는 강지혁이 지닌 인지도와 명성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내용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강지혁에 대해 표출하는 관심사는 긍정적인 기사와 부정적인 기사를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와 가수로서 월드스타의 반열에 오른 K모씨. 한남동과 LA에 2만평이 넘는 대저택을 지은 것도 모자라, 또다시 땅 투기를? 6천 평이 넘는 역세권 부지를 매입한 것이 드러나 부동산 투기에......]
그런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기사들 가운데, 강지혁과 부동산 투기에 관련된 기사는 최근 들어 가장 강력한 이슈들 중 하나였다.
서린과의 열애설이 오해로 밝혀졌고 독일 총리 내외가 다시금 본국으로 돌아가자, 강력한 이슈들로 인해 묻혀 있던 투기 관련 기사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질투, 시기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으니까.
-있는 놈이 더하다더니.... 한남동이랑 LA 비버리힐스에 2만평 넘는 집 가지고 있음 됐지. 거기서 또 땅을 사네. 저작권도 1년에 100억 넘게 벌면서 저러고 싶을까?
-강지혁 빌딩도 엄청 가지고 있을 걸? 예전에 라이브 카페 한답시고 사놓은 거 아직 안 팔았을 듯. 어쨌든 강지혁도 돈에 아주 환장하네. 환장해.
-진짜 자수성가로는 대박이다. 대박. 그런데 돈을 써도 왜 저런 데다 써서 욕을 먹냐? 진짜 있는 놈이 더하네. 누구는 10년 벌어도 전세 신세 못 벗어나는데.
-아직 뭐 때문에 샀는지도 안 나왔는데, 벌써부터 열폭종자들 등장이네. 이러다가 또 털리지. 털려. 너네 같은 새끼들 때문에 탄생석이랑 별자리 라이브 카페 문 닫았잖아. 씹새들아. 하여튼 이 새끼들은 사회의 암이라니까. 암.
-아니, 자기가 떳떳하게 번 돈, 자기 마음대로 쓰겠다는 데 무슨 딴지가 저렇게 많음? 하여튼 열등감만 아주 넘쳐서는... 강지혁이 탈세를 했냐, 아니면 마약 팔아서 돈 벌었냐? 어처구니가 없네. 진짜. 조선놈들 종특이다. 종특.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거.
강지혁이 지닌 부동산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떠나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꿈꾸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를 부러워했고 이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따라서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강지혁에 대해 시기, 시샘, 열등감, 질투 등을 쏟아내던 이들 뿐만 아니라, 강지혁을 옹호하던 이들조차 해당 보도가 뿜어내는 충격파에 자유로울 수 없었으니까.
[대지면적 21,060㎡, 6370평의 거대 부지에 기숙사가? 강지혁이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부동산 투기 등 각종 악의적인 논란에 휩싸였던 거대부지가 기숙사 신축을 위한 부지라는 것이 사업시공건설사 모집 공고로 인해 알려져! 4호선 길음역에서 도보로 10분 이내, 혜화, 안암, 회기 근처의 대학들과 충무로 근처 D대 등 10여개가 넘는 대학들과의 접근성이 좋은 곳에 기숙사가 세워진다는 소식에 온, 오프라인 상의 뜨거운 감자가 되어.....]
[...... 사업시공건설사 모집 공고에 따르면 최대 3000억에 달하는 투자 금은 전부 강지혁 본인이 출자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으며 3, 4천명 규모의 최신식 기숙사를 설립하여...... 강지혁이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고아, 소년, 소녀가장 학생들과 음악, 연기관련 전공 대학생, 가수, 배우 지망생들이 입소 대상이 될 것으로 추측되며...... 한편 강지혁의 국내 활동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 포이보스 측은 현재 이렇다 할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있으며......]
강지혁이 매입했다던 부지가 당초 학생들의 기숙사 부지로 이용될 예정이었다는 사실이 강지혁을 비난하던 이들의 주된 이유들 중 하나였다.
물론 그 계획은 이미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지 오래라는 점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사실은 강지혁이 부당한 행동을 했다는 점 뿐, 그 행동이 정당하다거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합법적 행동이었다는 점은 관심 외 사항이었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대학가들과 밀접한 위치, 지하철역과 가까운 역세권에 자리 잡은 부지.
시세차익 또는 상업적으로 이용해도 전혀 손색없을 정도로 좋은 부지였기에 사람들은 이 부지가 기숙사 건립을 위해 사용될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와... 지렸다. 역시 강지혁. 저런 땅에다가 기숙사를 짓는 다고? 오졌다리~
-하여튼 열폭종자 새끼들 때문에... 이번에 강지혁이 야마 돌아서 기숙사 안 짓겠다고 했음 어쩔 뻔했음? 또 그땐 아무도 책임 안지겠지. 그저 키보드만 두드리면 지가 무슨 지식인이라도 된 마냥. 어휴... 진짜 내 주변에 저런 새끼들 있을 까봐, 겁난다. 겁나.
-위치 보니까. 우리 학교랑 가까운데, 우리 학교랑 무슨 얘기 오가고 있으려나? 와... 선발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들어가고 싶다... 군대 막 갔다 오면 딱 완공될 것 같은데... 아! 그런데 저거 예술 계통 애들만 들어갈 수 있는거임?
-그건 잘 모르지. 저거 건설사 공고 때문에 밝혀진 거고 포이보스에서는 아직 공식발표 안함. 근데 강지혁이 아무래도 고아나 예술 계통 관심 많아서 그쪽 이지 않을까?
-민자 기숙사들처럼 한 달에 50만원 넘게 내는 거 아님? 뭐, 그 정도만 해도 학교 근처 쓰레기 방들보단 훨 낫겠지만... 그래도 대박이긴 하네. 자기 돈 써서 기숙사 만든다니까. 노블리스 오블리쥬? 뭐 그런 건가?
-애당초 강지혁이 한 해 기부하는 돈이 얼만데, 그딴 말들 지껄였으니... 어휴... 조선놈들 종특은 진짜... 근데 위치 개쩐다. 걸어서 10~20분 내외로 대학교만 10군데임 ㅋㅋㅋㅋㅋㅋ 개꿀이다. 개꿀.
-인정. 강지혁 한 해 수십억씩 기부하는데 꼭 열등감 폭발하는 새끼가 있음. 그런 새끼들은 일 년에 천원도 기부 안할 새끼들임.
그렇게 강지혁은 또다시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요 몇 달 새 각 지상파 방송사들이 대학생 등록금, 주거 실태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들을 연달아 제작, 방영함에 따라 이 같은 강지혁의 행보는 대학 입학을 앞둔 10대, 대학생 20대 그리고 이들을 자녀로 둔 4, 50대 부모세대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의 관심을 한숨에 잡아끈 당사자는 정작 이 같은 반응을 알지 못한 채 단잠에 빠져있었음을.
*
“학생이 김주나?”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외제 차에서 내린 사내가 자신을 부르자,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의 눈이 놀란 듯 둥그렇게 커졌다. 하지만 그런 놀람도 잠시, 이내 그 사내가 오늘 만나기로 했던 이 임을 깨닫자 그녀 또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듯 자연스레 사내의 차에 올라탔다.
“여기서 얘기하지. 학생도 바쁠 테고 나도 마찬가지니까 말이야.”
“예? 아, 예...”
두 사람이 탄 차는 10분도 되지 않아 인근에 위치한 한강 공원 주차장에 들어섰다.
“그러니까, JS에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연습생 한 거 맞지? 연습생 계약서 볼 수 있을까? 챙겨 왔지?”
그렇게 김주나 그녀가 사기라고 의심한 ‘이상한’ 아르바이트는 주차를 끝내자마자 질문을 건네는 사내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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