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94 2019 =========================================================================
#394
이번 개인 휴가에서 단 두 개뿐인 공식일정중 하나가 오늘이었기에 독일 총리 내외의 아침은 꽤나 분주해보였다.
지난 며칠 동안 말 그대로 휴가답게 정원을 산책하며 다과를 즐기던 유유자적한 모습과 본채 지하에 마련된 당구대와 볼링시설에서 경호원들과 같이 어우러져 여가를 보내던 모습들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안녕하세요. 그 성함이... 로스 린데만 씨였나요?”
“아! 제 이름 기억하고 계셨네요. 반가워요. 로스 린데만이에요.”
오늘 공식행사가 한국에서 머물고 있는 독일인 유학생들과의 오찬 만남이어서일까. 안면이 있는 이를 마주하게 돼 일견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잘 지내고 계시죠? 문화사절단에서 활약하고 계신 거 TV로 잘 보고 있어요. 어? 그러고 보니까, 한국말도 많이 느셨네요.”
“아무래도 방송을 하니까, 자연스럽게 늘더라고요. 한국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요.”
“다행이네요. 유학생활하면 많이 외로울 텐데. 그나저나 린데만 씨도 오늘 오찬 행사에 참석하시나 봐요?”
“아! 오늘 저는 총리님 통역사로 왔어요. 지금은 학생이 아니고 독일계 회사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물론 방송일도 하지만요.”
세월이 꽤나 빠르게 지남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당시에 학생이었던 사람이 이제는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다 하니 말이다.
“아! 지금 총리님 출발하시려나 봐요. 그럼 다음에 뵐 기회 있으면 꼭 다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이만.”
어쨌든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렇기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나이가 이제는 29살이라는 것도 그리고 이제는 청춘이라고 할 만한 어떤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모두다.
*
독일 총리 내외가 오찬 행사뿐만 아니라 저녁엔 독일인 유학생들의 생활을 직접 살펴보기까지 한다는 소식에 때 아닌 자유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독일 총리 내외가 집안에 있었을 때 마음 편히 안 쉰 것은, 자유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솔직히 손님이 집안에 있는 데 그들을 초대한 주인 입장에서 집을 장시간 떠날 수는 없었는지라, 조금 불편했던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꽤나 가벼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지혁씨 여기까진 어쩐 일로?”
며칠 전 일도 있고 새롭게 경비시설을 보안할 마음도 있었기에 관리사님의 사무실이 내 발걸음의 첫 번째 목적지가 된 것은 당연했다.
“입구 경비 시설도 그렇고 여기 관리사님이랑 직원들 경호해주실 분도 소개해드릴 겸 찾아와봤어요. 그런데 직원들이 꽤 많네요. 생각했던 것 보다.”
관리사님의 사무실은 내가 별자리 카페를 위해 매입한, 포이보스 뮤직의 바로 건너편 건물들 중 하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건물의 가장 꼭대기 층과 지하에 자리 잡은 구내식당만을 사용해서 딱히 건물 자체가 사옥이라고 할 것까진 없겠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부족함이 없게 나름 신경을 많이 썼었다.
그런데 처음 이곳으로 관리사님의 사무실을 옮겼을 때와는 뭔가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당장 직원들 숫자부터가 내 예상을 완전 벗어난 수였으니까.
“후원 사업업무부터 구 별자리, 탄생석 라이브 카페 건물 관리도 그렇고 꿈 아레나 관련 사무 업무도 이곳에서 보고 있는 만큼 직원들 숫자가 전보다 꽤 늘었습니다. 그리고 지혁씨 지시로 건물 청소해주시는 분들 휴게실을 마련했는데, 그 휴게실도 저희 층에 마련......”
열 명 남짓한 숫자였는데, 이제는 스무 명 가까이, 건물을 청소해주시는 분들까지 합치면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10층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점에 좀처럼 입을 열기 힘들었다.
물론 이 또한 관리사님이 주기적으로 내게 보내는 보고서 어딘가에 적혀있었을 테지만, 사실 미스터 촬영 준비할 때부터 그 보고서를 제대로 살펴 본적이 거의 없었다. 나름 변명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일단 관리사님의 일처리를 믿었고 내가 본다고 해서 알고 판단할 사안이 거의 없었으니까.
“꿈 아레나 사무 업무도 이곳에서 한다고요? 그... 저한테 배분되는 수익을 이곳에서 관리하는 게 아니라, 아예 꿈 아레나 전체 사무 업무도요?”
어쨌든 직원의 숫자가 2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점에는 높아진 내 지위와 명성 그리고 불어난 내 자산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듯 했다.
“지혁씨가 보유하신 지분도 지분이거니와, 기획사별 공식 스토어 업무를 제외한 꿈 아레나의 일반적 사무에 관해서는 JS, DH, 포이보스 측에서 저희 측에 일임했기 때문에... 물론 관련 직원들의 봉급과 비용 일체는 앞서 말씀드린 세 기획사와 균등히 분담하고 있습니다.”
“다른 투자자들은요? JJ E&M이랑 호텔 백제 측은...”
“두 투자자 측에서는 각자의 회사 내부에 꿈 아레나 전담 부서가 별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혁씨와 JS의 지분만으로도 과반이 넘기 때문에, 그쪽에서는 자사에 분배되는 통상적인 수익관리만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장 꿈 아레나만 보더라도 내가 가진 지분 50%가 우리 측 결정이 아레나 전체의 결정이 될 수 있을 영향력을 지니도록 만들었기에 단순히 이곳 사무실에서 꿈 아레나를 통해 얻게 될 수익뿐만 아니라 다른 기타 사항들도 전담하고 있는 듯 했다. 당연하게도 그게 직원들의 숫자 증가와 관리사님의 업무량을 증가시킨 듯 했고 말이다.
“그런데 직원이 늘어나서인지 공간이 조금 부족해 보이는데...”
“안 그래도 그 문제에 관해서 지혁씨에게 협조를 조금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간이 부족해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10명의 직원들을 위한 책상만이 놓였을 때는 꽤나 널찍한 사무공간이었을지 몰라도 그 배가 넘는 수가 함께하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가득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계약이 끝나는 대로 두 개 층을 사무실로 더 사용하도록 하세요.”
“예? 지혁씨 한 개 층 정도만 사무실로 더 사용하셔도,”
“지금 추진하고 있는 계획도 있고 또 앞으로 뭘 더 할지 모르는 데, 미리미리 준비해야죠. 괜찮으니까, 두 개 층 정도를 따로 빼서 사무실로 이용하세요. 뭐, 아무래도 되도록 지금 사용하고 있는 층이랑 붙어 있는 층이면 좋겠지요? 아니면 여기 건물보다 바로 옆 건물이 조금 더 넓은 건물이니까, 그쪽으로 이전하셔도 되고요.”
“지혁씨... 굳이 그렇게까지...”
“제 마음 편하려고 그래요. 그렇게 해주세요.”
며칠 전 사건으로 조금 더 예민해졌다. 내 사람들을 챙길 수 있을 만큼 챙기자는 게 본디 내 성향일진데 나로 인해 주변 사람이 피해를 입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는지라 그런 마음이 더욱 짙어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가 편하기 위해서 라는 말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고집을 웬만하면 잘 꺾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무실 확장은 내 뜻대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홀가분하게 사무실을 나서 포이보스 휴게실로 가려던 내 발걸음이 이내 이어진 관리사님의 말로 인해 묶이고 말았다.
“문제가 뭐죠? 오히려 저희 쪽보다 그쪽에서 더 좋은 제안 아니에요?”
기숙사 사업이 꽤나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어 마음을 놓고 있어서일까. 예상외의 결과 보고가 사뭇 깊숙이 가슴을 찔러왔다.
이해가 안 됐다. 아직 구체적인 설계도와 시공사를 선정하진 않았지만, 최고의 시설을 갖출 생각이었다. 굳이 돈과 수익을 생각하자면 이런 사업을 애당초 하지도 않았을 것이기에 기숙사비 또한 적정선을 유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의도들을 전달받은, 어떻게 보면 가장 반겨야 할 주변 대학 측에서 기숙사 사업 참여에 난색을 표한다는 점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았다.
더욱이 대학 측의 기숙사 사업 참여가 단순히 투자 금을 내라는 뜻이 아닌, 해당 입소 생에 대한 장학 혜택과 같이, 대학 입장에서도 전혀 손해 볼 일 없는 조건을 전제로 달았으니 오죽할까.
“그것이 아무래도 그쪽에서...”
“후우...”
역시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은 일에는 항상 상식 외의 것이 원인이 되나보다. 끼어들 일이 있고 안 끼어들 일이 있지, 영리적인 사업도 아니고 이런 일에 압력을 가한다는 사실이 분통했고 어이가 없었다.
“그럼 일단 그쪽은 제쳐두고... 주훈 삼촌이랑은 얘기해보셨어요?”
더 이상 이와 관련된 쪽으로 얘기를 풀어나가기 싫었다. 안 그래도 며칠 전일이 가슴에 쌓여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는데, 여기서 더한 스트레스를 받기 싫었기 때문이다.
“예, 지혁씨. 그쪽 방면에서는 확실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훈 씨 뿐만 아니라, 주훈 씨가 소개한 다른 분들도 무척 열정적이신지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그래도 다행인 것은 주훈 삼촌이 주기로 했던 도움이 꽤나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예술 계통 학생들에게 그리고 내가 후원하고 있는 고아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목적은 꼭 대학생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대학 측과 관련되어서는 잠시 일 진행 중단해주시고요. 주훈 삼촌이랑 관련된 일에 전념해주세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던 사무실 건도 최대한 빨리 진행해주시고요.”
어쨌든 포이보스 휴게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그나마 가벼울 수 있었던 것은 주훈 삼촌과 관련된 소식 때문이었다. 그것마저도 아니었다면 또다시 울화가 치밀어 올라 바깥 외출을 접어야만 했을 테니까. 후우. 진정하자. 진정.
*
[한국의 기숙사 시설은 무척이나 색다르더군요. 그리고 등록금과 장학제도, 주변 주거시설도요.]
저녁에 자후어 교수와 같이 간단히 당구를 쳤다. 그런데 부인인 마이켈 총리가 예정에도 없었던 추가 일정에 꽤나 지쳤는지 일찍 잠자리에 든 반면 그는 의외로 멀쩡해보였다. 뭐, 잠을 자지 않고 당구나 한 게임 하자는 제안을 건넸을 때부터 짐작은 했었지만.
[그 많은 등록금을 부담하다니. 우리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한국 학생들까지 불쌍할 지경이었습니다. 기숙사 시설이 별로라 생각했건만, 주변 주거시설에서 자취 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나니 그 생각이 절로 바뀌더군요. 그나마 기숙사는 나은 편이라고......]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오늘 내가 관리사님과 나눴던 얘기와 직접적은 아니어도 꽤나 연관된 부분이 있었는지라 절로 이를 귀담아 듣게 되었다.
아마 그래서였던 것 같다. 그 덕분에 나 또한 자연스레 이와 관련된 내 얘기를 털어놓은 게 말이다.
[이럴 수가? 미스터 강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군요. 그런 사업을 하려고 하다니?]
[대단하다니요.]
[아닙니다. 오히려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그런 생각을 먹기 정말 힘든 게 인간입니다. 그런 점에서 미스터 강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계시군요.]
[네? 아... 그렇게 까진 아닌데요...]
[혹시 그 계획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예?]
상세한 설명이 아닌, 내가 기숙사를 세울 예정이라는 것과 그 목적에 대해서만 그저 간단히 말해줬었다. 그런데 그 반응이 의외로 너무나도 뜨거웠다. 간단한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자후어 교수가 제법 상세히 기숙사 건립 계획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미스터 강의 계획을 들어보니, 그 기숙사생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눠지겠군요. 미스터 강이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대학생들, 연극, 음악 관련 대학생들 그리고 연극, 음악과 관련해 꿈을 키워나가고 있는 비대학생들 이렇게 말이죠. 거기다 입소는 하지 않아도 주변 고아 학생들을 위한 시설까지 합치면... 총 혜택 자는 네 부류가 되겠군요?]
그런데 그저 깊은 뜻 없이, 그저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끌어낸 자후어 교수의 말에 나 또한 맞장구를 치기 위해 간단히 흘려보낸 말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도출해낸 듯 했다.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외국어 실력은 필수라고 들었습니다. 물론 중국어, 일본어, 영어가 한국 대학생들의 주된 관심사라고 들었습니다만...]
[아니요. 굳이 그런 건 상관없긴 한데...]
[아!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혹시 별도의 투자 금을 유치하실 필요가 있으십니까?]
[아니요. 투자금은 이미 확보되었고 되도록 제 선에서 끝낼 생각인데요. 그런데 그건 왜...?]
[그렇다면 얘기가 더욱 쉬워지는 군요. 이런 종류의 사업이라면 각국 대사관 측에서 냅다 반길 겁니다. 본국에 있는 이들보다는 아무래도 이곳 현지에 있는 대사관 측에서 자국 출신 유학생들의 생활 현황을 잘 파악하고 있을 테니까요. 들어보니, 지혁씨가 수익보다는 학생들의 주거 환경에 신경을 쓰고 계신 것 같으니, 당연히 시설은 최고 수준일 거고......]
도움을 주겠다는 주훈 삼촌의 적극적인 행동 덕에 어느 정도 가시긴 했지만, 주변 대학 측의 냉대 아닌 냉대와 그런 결과를 만든 누군가의 압박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했었는데, 방금 전 자후어 교수의 말이 이를 깡그리 잊게 만들어버렸다.
[저 또한 오늘 본국 출신 유학생들의 생활을 보면서 느낀 게 많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그 사업에 조금 발을 담그고 싶은데, 관심이 있으십니까? 별도의 투자 금이 필요 없으시다고 했지만, 저 또한 대학의 교수로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굳이 내가 저자세를 취할 필요가 없었는데, 따지고 보면 내가 대학 측의 냉대에 마음이 상할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생각지도 못한 때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에게서 뜻밖의 소득을 얻을 수 있어 귀가 번뜩 뜨이는 것 같았다. 당장 내일 관리사님에게 전할 얘기 내용이 내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것 같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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