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93 2019 =========================================================================
#393
[젓가락으로 하나, 하나 집어서 가운데 밀전병에 싸서 드시면 돼요. 젓가락으로, 아! 혹시 젓가락질이... 어?]
[남편도 그렇고 저도 중국음식을 자주 먹어서요. 젓가락질은 제법 능숙하답니다?]
누각에서 맞게 된 첫 번째 저녁식사는 비교적 순조롭게 흘러갔다. 구절판, 갈비찜, 잡채, 닭볶음탕 등 나름 한국의 맛을 느낄 수 있게 준비한 음식들이 두 명 손님들의 입맛에도 제법 맞는 듯 했으니까.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이네요. 많이 드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의 여운이 완벽히 가신 것은 아니었다. 차마 손님들을 앞에 두고 인상을 찌푸릴 수 없었는지라 표정관리를 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대놓고 내 주변 사람을 건든 ‘누군가’의 행동은 쉽게 잊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동양식 정자는 정말 아름답네요. 이 정자 자체만으로도 그리고 이곳에서 볼 수 있는 풍경도.]
[불어오는 바람도 그리고 보이는 전경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 같군요. 동양식 정원을 여럿 가봤지만, 이 곳은 동양 정원만의 여유로움, 평안,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물씬 풍겨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맞은편에 앉은 두 사람의 말마따나, 지금 저녁식사가 차려진 이곳 누각이 간직한 정취에 힘입어 잠시나마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불미스러웠던 일과 더불어 다소 부담스러운 손님들이 맞은편에 앉아있었지만, 맛있는 음식 그리고 누각에서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못과 정원, 한강의 야경은 쉬이 지나칠 수 없는 감흥을 보는 이로 하여금 간직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완전히 얼굴에서 지우는 게 생각 외로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네?]
[경호팀으로부터 아까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살짝 들었습니다만... 혹시 저희로 인해 비롯된 일인가요?]
물론 내 얼굴 표정만으로 저들이 몇 시간 전의 일을 언급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보면 저들 또한 쉰 명이나 되는 경비 인력을 고용했고 이들은 비록 내 저택에 머무르고 있을지언정 관련 보고는 그들에게 할 것이기에, 몇 시간 전의 사건에 대해 모르는 게 도리어 이상한 수준일 테니까.
[그게...]
초대 아닌 초대를 한 손님이지만, 그래도 손님이었다. 그것도 꽤나 귀한 손님.
[사실...]
그래서 손님들한테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이 옳을까 싶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말하고 싶은 내용이었기에 잠시 망설였을 뿐, 결국 몇 시간 전의 얘기를 꺼내게 되었다.
[그렇군요. 저희가 본의 아니게...]
[아니에요. 조금 간략하게 말씀드린 거지만, 사실 두 분 때문이라고 하기보단 그 전부터 압박은 꽤나 많이 받아왔으니까요.]
[흠...]
몇 시간 전의 얘기뿐만 아니라, 그동안 말도 안 되는 압박들을 여럿 받았다는 사실까지도 지금 이 자리를 빌어 간략히 털어놓자, 자리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아버렸다.
[어차피 남은 몇 년 동안은 해외에서 지내는 일이 태반일 거라서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두 분 때문에 이런 게 아니라, 원래부터 이런 ‘대우’를 받고 있어서요.]
뭐, 주변 전경이 이내 분위기를 다시금 끌어올리긴 했지만,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게 앞 두 사람에게는 마치 책임추궁으로 느껴지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 앞서 사정을 토로한 걸 조금이나마 후회했다.
기껏 휴가 보내러 온 사람들에게 뭐 하는 짓인지. 후우.
*
“관리사님 괜찮으세요?”
[걱정해주실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까지 염려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짐짓 괜찮아 보이려는 듯 웃음을 터트리는 관리사님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지만 그래도 죄송한 마음이 풀어지진 못했다. 가수가 된 이래 내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이 나로 인해 입게 될 부정적인 영향들 모두였으니까.
그래서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는 관리사님의 만류에도, 평소 어느 정도 생각만 하고 있던 것들을 바로 시행하려 했다.
“제 경호팀에서 사람이 붙을 거에요. 어차피 미국에서는 따로 경호하는 인력이 있어서요. 제가 한국에 없을 땐, 저택 경호랑 주변 사람들 경호하는 데 인력을 나눌 생각이에요.”
조금은 안일한 생각에,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선택이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해야 내가 비교적 마음을 놓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강제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직원들도 있고 지혁씨와 관련해 구설수가 생기는 게 싫어 제가 자의 아닌 자의로 그들의 요구를 들어줬......]
[그래도 이번 일로 인해 반격할 만한 카드는 하나 얻은 셈이니, 그렇게 안 좋게만 생각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청와대 경호실장 그 사람이 다시 직접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일은 없을 테고 만약 나선다면 도리어 우리에게 명분을......]
그렇게 오늘 있었던 일의 상세한 설명을 듣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사실 오늘 지혁씨 저택에 간 것은 그 사람들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예?”
[지혁씨에게 따로 보고드릴 일이 있지 않습니까?]
“아!”
조금은 무거운 주제로 얘기를 나누다보니, 다른 화제의 말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자, 그 내용은 별개로 치더라도 마음이 꽤나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 그 내용마저 꽤나 반가운 소식이었는지라, 그 효과는 더욱 빛을 발했고 말이다.
[직접 얼굴보고 보고 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 방문한 거였습니다. 막 계약이 끝나고 바로 발걸음을 옮긴 거라 미리 말씀 못 드렸습니다. 죄송합,]
“죄송하다니요. 그런 일로는 죄송해하지 마세요.”
한 달 전쯤에 부탁을 드렸었는데, 벌써 일이 상당부분 진행됐다는 점에 다시 한 번 관리사님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부지 매입 완료됐고 이제 건설사만 선정하면 되는 거네요. 정말 수고하셨어요. 제가 너무 즉흥적이라 매번 관리사님이 고생하시네요.”
물론 자금 제한 같은 게 없어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갑작스런 나의 요청에 이다지도 깔끔하게 일처리를 해줬던 적이 이번 한번 뿐이 아니었는지라, 마음이 꽤나 뿌듯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혁 씨가 소개해주신 차주훈씨의 도움으로...... 또한 그것과는 별개로 근처 대학들에게 관련 공사 계획과 의도를 전달했습니다.]
뭐, 그래서 조금씩 두려움의 새싹이 다시금 느껴지긴 했다. 이런 사람들이 나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에.
*
“그래서?”
“저택 내부까지 들어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강지혁을 데려오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듯 합니다.”
긍정적인 보고가 아니었기에 보고를 하던 사내의 얼굴엔 두려움이 한 가득 맺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내의 두려움이 헛된 설레발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중년인의 얼굴에는 행동으로 이어질 만큼의 분노가 자리 잡고 있지 않았다.
이는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사내가 지금껏 ‘직접’ 경험했던 중년인은 지금 상황에서 결코 가만히 있을 이가 아니었으니까.
“멍청한 년. 꼬투리 잡을 건수만 넘겨줬네.”
“에, 예?”
“하여튼 무식한 새끼들. 지금이 어느 시댄데 그딴 식으로. 하아...”
사내의 얼굴엔 분노보다는 한심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결코 젊은 사내가 아니었다.
그러나 사내는 마냥 안심할 수가 없었다. 방금 전 중년인의 입에서 나온 멍청한 년, 무식한 새끼들이 의미하는 이가 누구인지 모르지 않았고 또한 감히 자신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들을 입에 담는 중년인의 위세가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응은?”
“그것이... 오늘 취임 후 처음 있을 예정이었던 장관급 회의에 불참하시고 자택에서 나오지 않으신다고....”
“후우. 또 말들이 많겠구만. 그래서 언론들은?”
“일단 비서실상에게 일러두었습니다.”
“언론 새끼들 관리 잘 하라고 말해둬. 이 새끼들은 정치하는 새끼들보다 더러우면 더 더러웠지 절대 깨끗한 놈들은 아니니까. 틈 보이면 바로 물어뜯을 수도 있으니까, 적당히 당근도 주라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래도 보고를 담당하고 있는 사내로서는 평상시 보고 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중년인이 가지고 있는 감정들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 어느 정도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으며 적어도 오늘은 중년인의 재떨이를 마냥 주시하고 있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강지혁에 대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조사해.”
“조사라고 하심은...”
“돈은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으니까. 여자는 누굴 만났는지, 가진 건 얼마나 되는 지 인맥관계가 어떻게 되는 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시간 순으로 쭉.”
“기한은...”
“기한은 얼마나 걸려도 상관없으니까. 어떻게든 알아와. 네 목숨이 달렸다 생각하고.”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그날의 보고를 끝마치고 중년인의 집무실에서 빠져나오는 사내의 얼굴에는 착잡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자신 덕에 요즘 웃음꽃이 항상 피어있다는 부모님을 생각해 버티고 버텨왔지만 점점 이마저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으니까.
*
[배우식당에 이은 강지혁의 또 다른 고정 프로그램 명탐정 K! 미스터 지 후속편 촬영으로 인해 5월 말에서 6월 초에 출국할 예정인 강지혁이 팬들을 위해...... 한편 강지혁은 현재 자신이 직접 초대한 독일 총리 내외와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 이거 개 꿀잼인 것 같던데? 프로그램 설명 보니까?
-대박이다. 배우식당도 엄청 재밌을 것 같던데, 명탐정 K도 ㅎㄷㄷ
-헐, 여기 나인테일 김여정도 출연하는데?
-빼액! 나인 테일 김여정 아님. 프리티 스타 김여정임. 어디서 듣보잡 나인 테일을 여정이 앞에 붙여?
-시크릿 심사위원이 강지혁이라고 다들 그러던데, 김여정이랑 같이 촬영? 촬영 분위기 궁금하다.
[강지혁은 시크릿 심사위원이 맞는 것인가. 이렇다 할 공식 발표 없이 묵묵부답으로 대응하고 있는 강지혁과 강지혁의 소속사 측의...... 강지혁은 한 해 저작권료로만 100억 원이 넘는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드문드문 참석하고 있는 해외 협찬관련 행사와 화보 활동으로만 천 억 원이 넘는 수익을 거둬들이고,,,,,,]
-솔직히 마카롱에서 게임 끝났음. 강지혁이 음식평론회에서 마카롱 얘기를 하면 안 됐음. 근데 그걸 캐치한 사람도 대단하네. ㅎㄷㄷ
-프로젝트 데뷔 시즌 2에서 GIRLISH POP 팀이 시크릿 심사위원한테 마카롱 선물 받았을 때, 항공 특송으로 직접 배송됐다는 점만 봐도 그때 강지혁이 미스터 지 파리 로케 날이랑 겹침. 거기다 프리티 스타 숙소 한 때 엄청 유명하지 않았음? 잠실 타워에 있다는 거. 그런데 강지혁이 시크릿 심사위원이라고 하니까, 뭔가 퍼즐이 맞춰지지 않음?
-그리고 아이돌 핫스타에서 프리티 스타 노래 전부 춤춘 거 보면 빼박임. 프리티 스타 활동 때 강지혁 미스터 지 활동 때문에 국내에 신경 아예 못 쓸 때인데, 춤을 잘 춰도 너무 잘 췄음. 마치 자기가 직접 만든 것처럼.
-근데 강지혁도 대단하긴 대단하네. 그걸 끝까지 숨기네. 밝혀지면 자기 명성도 높아지고 그럴 텐데. ㅎㄷㄷ
-미친 강지혁이 프리티 스타로 높아질 명성이 뭐 있음? 프리티 스타랑 프로젝트 데뷔 측이 좋으면 좋았지ㅋㅋㅋㅋㅋㅋㅋ
[5월 방한 예정인 테일러 노우웰! 스캔들 터지다? 현재 월드 투어 중인 테일러 노우웰의 열애설이 터져 할리우드 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테일러 노우웰의 열애설 상대는 배우로서 현재 할리우드의 새로운 신예배우로 떠오르고 있는 제임스 게이츠이며 아직 두 사람 측은 공식 발표를 하지 않고......]
-헐... 지렸다. 이거 레알임? 우리 애호박은 어쩌고?
-아직 사실관계 확인은 안됐음. 그냥 저 제임스 게이츠? 저 배우가 평소에 테일러 노우웰 팬이라고 대놓고 떠들긴 했음. 찍힌 사진도 그냥 둘이 밥 먹는 사진인데, 뭐, 할리우드에서는 밥 먹는 거 가지고 사귄다고 단정 짓기엔...
-하긴 애호박도 계속 먹으면 질리지. 애호박도 먹어주고 소시지도 먹고 편식하면 안 됨.
-다들 뭐래. 강지혁이랑 사귀었던 것도 아닌데 ㅋㅋㅋㅋ오지랖은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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