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9 2019 =========================================================================
#389
나의 출연이 프로그램에 가져다줄 효과가 상상되는 듯 제작진을 포함한 두 MC 선배들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그렇게 세트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한 순간, 노래 소리가 스튜디오 내부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를 듣게 된 내 입가에 미소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네가 어떻게 내게 이별을 고할 수 있어. 나를 두고 떠나는 너의 행동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이젠 네가 줘도 안 가져. 꺼져버려 난 네가 싫으니까. 넌 나의 전부였었지. 넌 나의 모든 것이었었지. 제발 내 두 눈에서 사라져. 제발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
제작진 측에서 나를 배려한 탓일까. 내가 최신 곡을 모른다고 생각해서인지, 무려 4년도 전에 발매되었던 곡이 첫 번째 댄스곡으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단순히 이 것만으로 제작진이 나를 배려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네가 필요해 너. 왜 네 마음대로 이별해. 네가 필요해 난. 왜 네 마음대로 떠나가.”
언제 10초가 지났는지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춤을 추는 게 재밌었다. 공개된 장소이든, 비공개된 장소이든 이렇게 춤을 추는 게 꽤나 오랜만이라는 점과 무엇보다 이곡은 내가 직접 작사, 작곡하고 춤 또한 메인 부분을 전담했던 마이식스 정규 1집 타이틀곡 ‘네가 필요해’였으니까.
오랜만에 춤을 춘 것이기도 하고 이곡 자체가 오래된 노래였지만 그래도 안무가 머릿속에 비교적 또렷이 기억났기에 당황하지 않고 첫 번째 단계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This is JS style.”
그런데 이내 들려온 두 번째 댄스곡의 멜로디에 순간이나마 갸우뚱하게 되었다. 머리보다 몸이 앞서 움직여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2번째 곡에서 바로 실패할 뻔했으니까.
“너희들 전부 잘 들어. 난 너네들과 달라. 오로지 나만의 길을 걸어 갈 거니까. 니들이 여자랑 희희낙락거릴 때, 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지. 니들이 클럽에서 춤출 때, 난 연습실 구석에서 밤새 춤을 췄지.
슬쩍 제작진들 사이에서 앉아있는 담당 PD를 바라보니, 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깨달을 수 있었다. 제작진들이 그리는 그림을.
“놀랄 필요 없어. 그저 듣기만 하면 돼. 매일 Fantastic! Come on! 난 미쳤어.”
내가 어째서 이 코너에 임하겠다고 했는지를 파악한 것일까.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는 듯한 진행에 나 또한 최선을 다해 코너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런 제작진과 나의 의도가 마냥 순조롭게 이어지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나 보다.
“잠깐 타임! 타임!”
갑작스레 무대로 난입한 민재 삼촌으로 인해 코너가 잠시 중단되었다. 하긴, 티가 나도 너무 났다.
“이거 이상하잖아! 이거 이럼 곤란해!”
이 모든 곡들이 전부 내 작사, 작곡한 곡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해당 곡의 안무 제작에 있어 내가 차지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이 나와 제작진의 의도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냈는지라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수가 없었다. 이 큰 그림의 목표가 된 민재 삼촌 같은 경우는 더더욱.
“지금 내 카드 가지고 뭘 하려고! 어허!”
어떻게 보면 민재 삼촌이 중간에 이렇게 훼방을 한 번 놔줘야 보다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것 같았는지, 제작진과 두 MC선배들은 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나의 연이은 성공에 기뻐하던 녀석들도 이를 말리지 않았고 말이다.
자식들 지금 나 춤추느라 힘들어서 헉헉 거리는 거 안 보이냐? 물이라도 가져다주지는 못할망정, 그저 선물에 빠져서는.
“지혁이가 작사, 작곡하거나 안무 제작에 참가한 노래는 금지! 금지! 아니다! 내가 나머지 3곡 정할거야!”
“삼촌 그건 좀...”
“이게! 너가 제일 나빠!”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노트북, 기타, 피아노, 녹음장비 등 녀석들이 원하는 선물들의 가격이 전부 장난이 아니었는지라 삼촌의 반발은 무척이나 격렬했다. 그래서 나는 물론이고 제작진 또한 나머지 3곡을 자신이 선별하겠다는 민재 삼촌의 요구 아닌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뭐, 이 선물들을 모두 개인 카드로 결제했다간 민재삼촌이 사모님한테서 어떤 대우를 받을지 두 눈에 선했는지라, 내가 조금 너무했나 싶은 생각조차 들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이내 이어진 코너와 더불어 들려온 멜로디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나를 잊었더라도 거리를 걷다보면 생각나겠죠. 카페에서 문득 생각나겠죠. 내 노래가 들릴 때면.”
민재 삼촌이 어떤 이유로 이 노래를 선별했는지 훤히 보여서 웃긴 것도 있지만, 나중에 내가 웃는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의 민재 삼촌 반응이 상상 돼 웃긴 것도 있었다.
“어, 어떻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춤을 추는 내 모습에 민재 삼촌은 말문이 막혀버린 듯 했다.
“나를 잊었더라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아도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도 생각날 거 에요. 내 노래가 들릴 때면. 나를 잊었더라도 이제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아도 Good Bye”
삼촌의 생각은 아마 이랬을 것이다. 내가 영화 촬영 때문에 국내 사정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을 때의 노래를 틀면, 내가 자연스레 실패할 것이라고.
“지혁이 네가 어떻게! 너 이때! 여, 영화 촬영... 그, 그럼 이것도?”
삼촌 몰래 프로젝트 데뷔 시즌 2에 참가한 것이 지금에 와 변수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신기하기도 했다. 단순히 프로젝트 데뷔 측에서 내게 직접 연락을 취해왔다는 점을 발판 삼아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삼촌이 걱정할까봐 그리고 약간의 재미를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 같은 사실을 숨겼던 것뿐인데 상황이 지금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Bad Man, Bad Man. 알고 있어 너는 Bad Man. 네 눈빛이 나를 사로잡아. 알고 있어 그리 착한 눈빛은 아니야. 위험하지만 흔들려볼까. Bad Man, Bad Man. 알고 있어 너는 Bad Man.”
어쨌든 ‘나를 잊었더라도, 내 노래가 들릴 때면’의 파트가 지나가자마자 들려온 또 다른 내 작사, 작곡 노래 ‘Bad Man’에 이제는 웃음마저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비록 앞선 곡과 달리 안무를 내가 만들지는 않았지만, 멤버들이 직접 안무를 만들었단 말에 뿌듯한 마음으로 수십 번 넘게 이를 봤던 지라 하이라이트 안무 정도는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나 지금 널 보고 있는 거야. 네가 친 그물에 걸려들고 있는 거야. 위험한 줄 알면서 네게 잡히고 있는 거야. 조금 더, 조금 더 다가와. Bad Man, Bad Man. 알고 있어 너는 Bad Man.”
어쨌든 이런 내 모습에 민재 삼촌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당초 10초로 예정되었던 곡당 타임이 다소 길어지긴 했지만 이미 이는 상관없었다.
“자꾸만 자꾸만 가식적으로 말하지 마. 사랑하지도 않는데 자꾸만 자꾸만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 남자들은 다 똑같아. 그저 좋아하면 다 넘어오는 줄 알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야. 너는 정말 특별해. 자꾸만 자꾸만 거짓말 하지 마. 정말로 내가 좋으면 정말로 내가 특별하면 자꾸만 자꾸만 자꾸만 자꾸만 말해줘.”
결과적으로 마지막 곡까지 내가 모를 수가 없는, 프리티 스타의 ‘자꾸만 자꾸만’이었기에 민재 삼촌의 반발 후 아무도 성공을 예상치 않았던 코너는 뜻밖의 성공을 맞이하게 됐다.
“마, 말도 안 돼! 지혁이 너... 너! 미스터 지 촬영 중이라... 너 촬영 안하고 TV만 보고... 아니, 이건 아닌데...”
나의 성공에 정신 줄을 놓아버린 듯 한 민재 삼촌의 반응 그리고
“와! 대박! 얼른 가서 노트북 사야지!”
“지혁아 고마워! 누나 기타 필요했었는데!”
“기타가 저번에 봤던 게 얼마였더라... 그것보다 한단계 더 좋은 거 사볼까? 아니지, 이번에 삼촌이 사준다고 했으니까, 조금 더 비싼 걸로......”
“이번에 녹음실 따로 마련하려고 했는데, 지혁이 형덕에 녹음장비 쉽게 구했네! 형 땡큐!”
나의 성공으로 원하는 물품을 ‘다른 사람의 카드’로 살 수 있게 된 녀석들,
“자! 오늘 특별 출연해주신 강지혁씨가! 저희 제작진이 야심차게 만든 특별 코너 ‘뭐든지 사줄까! 누가? 대표님이!’에 성공하게 됨으로써 오늘 출연해주신 판타스틱 포이보스 분들은 원하는 선물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갓지혁! 갓지혁!”
내가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도 모자라, 나름의 콘텐츠까지 촬영하게 된 것이 무척이나 좋은지, 오두방정을 떨며 다시금 진행을 시작하는 두 MC들까지.
“마, 말도 안 돼... 너 강지혁!”
스튜디오 내에 있는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었던 그날의 촬영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
“쟤는 왜 저러고 있는데?”
녹화가 끝나고 선물 받을 생각에 들떠있는 애들을 집에 먼저 돌려보냈다. 그리고 할 얘기도 있고 오랜만에 한국에 온 만큼 저녁이나 같이 먹고 들어가자는 생각에 재성 삼촌을 불렀다.
“어? 그게... 나도 몰라. 갑자기 저렇게...”
그런데 미스터 지와 관련해 얘기를 나눠야할 또 다른 사람이 조금은 상태가 이상해 내 의도가 약간은 꼬여버렸다.
[너, 너! 강지혁! 너가 삼촌한테 이럴 수 있어? 그리고 그 노래들 다 너 외국에서......]
분명히 녹화가 끝나고 포이보스 휴게실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민재 삼촌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초상집과도 같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내게 어떻게 자신이 튼 노래들을 다 알고 있었는지 꼬치꼬치 물어봤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분위기가 이내 사약을 먹는 것처럼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순간 확 바뀌어 버렸다.
[아니, 그러니까... 응 여보... 응... 아니, 그게 아니라... 어쩔 수가 없었어. 어, 어. 어? 장모님이 편찮으셔서 당분간 친정에 가 있는 다고? 어? 그, 그래. 가서 편히 쉬다와. 그럼! 당연하지. 장모님 몸 괜찮아 질 때까지 여보가 잘 보살펴 드려. 그래, 그래. 오래도록 아니, 그... 괜찮다고 하실 때까지. 응, 응.]
그리고 그 결과 민재 삼촌은 지금처럼 세상 편한 얼굴로 소파에 드러누워 TV를 보기 시작했고 말이다.
[그래, 오늘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할까? 그래, 그래. 오늘 집에 안 들어가도 된다니까? 아, 그렇대도! 그래, 내가 한 턱 쏠 테니까. 항상 가던데, 거기로, 어 거기서 오랜만에 달리자. 아 글쎄, 집에 안 가도 된다니까? 이게 진짜, 사람을 뭐로 보고! 한 일주일은......]
어쨌든 이해할 수 없는 감정변화를 내보인 민재 삼촌의 모습을 뒤로 한 채, 재성 삼촌과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 했다. 일이 이렇게 되다보니, JJ E&M과 관련된 얘기는 재성 삼촌 또한 알고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 뒤늦게 떠올랐고 따라서 굳이 아이돌 핫스타 녹화 장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그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었으니까.
“슬슬 우리도 가자.”
“응? 어딜.”
“어디긴 어디야. 우리 집이지.”
그런데 내가 먼저 밥 먹으러 가자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재성 삼촌이 갑작스레 집에 가자는 말을 내게 건넸다.
“밥 먹고 가야지. 집 갈 거면 어차피 목적지는 같은데, 뭐 하러 삼촌 여기까지 불렀겠어? 할 얘기도 있고 그러니까, 밥 먹고 가자. 어차피 지금 가면 또 밥 차려야 해서 작은 엄마 고생,”
“네 작은 엄마가 밥 차려놨다고 얼른 오란다. 어제, 오늘 하루 종일 네 짐 정리하더니, 톡 온 거 보니까, 그것도 거의 끝났다보더라.”
“에?”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어서일까. 나도 모르게 삼촌의 말에 반문하고 말았다.
“애들도 다 거기 있고.”
본디 귀국하고 나서 이삿짐센터를 따로 불러 새집으로 짐을 옮겨놓으려고 했다. 다소 귀찮은 일이지만, 어쨌든 언젠가는 해야 될 일인 만큼 제작발표회와 마이켈 총리일 때문에 바빠지기 전에 해치워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짐 옮기는 걸, 작은 엄마가 다 해놨다고 하니 말문이 턱하니 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 많은 짐들을 다?”
“이삿짐센터 불러서 옮겼지. 내부에 정리한 건 네 작은 엄마가 했고.”
“아니, 그러니까. 그걸 다 정리했다고? 작은 엄마가?”
“그래. 네 작은 엄마가 어제, 오늘 다 정리해놨다더라.”
그동안 내가 개인적으로 수집한 앨범들 그리고 팬들로부터 받은 선물들까지 합치면 웬만한 대가족 이삿짐보다 많았다. 그런데 그 많은 것들을 작은 엄마가 내부에 일일이 정리까지 했다니, 걱정부터 앞섰다.
안 그래도 동생들이 많아 하루, 하루 고될 작은 엄마가 나까지 신경 쓰느라 괜스레 이사한답시고 일만 늘려드린 것 같았으니까.
아니 그나저나 이 양반은 그걸 안 말리고 뭐 한 거야?
“삼촌은?”
“응?”
“그거 하는 동안 삼촌은 뭐했는데?”
“나야, 회사에 출근했지. 퇴근했고.”
어휴. 내가 못산다. 못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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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놔해 제작진이 매너가 없네/ 다른 톱스타만 나가도 사전에 양해 구하고 조심스레 접근을 할텐데 방금 해외에서 온 월드스타 한테 가볍게 방송을 시키네 (2017.06.06 01:13)삭제
-주인공이 해외 스케줄이 있었다는 것과 방금 귀국했던 사실은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요. 주의하겠습니다. 좀더 이해하실 수 있게 글 쓸때 주의하겠습니다.
글레이시아 당일 입국한사람보고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춤춰달라고 제안을 하는건 진짜 생각이 없어보이는 행동 아닌가요? (2017.06.06 00:35)삭제
-주인공이 해외 스케줄이 있었다는 것과 방금 귀국했던 사실은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요.
좀더 이해하실 수 있게 글 쓸때 주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