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8 2019 =========================================================================
#388
“여러분들을 위해 제작진이 특별히 아이 돌 댄스곡들을 선별해놨는데요. 이 중 여러분들이 각각 10여개의 댄스곡에 맞는 안무를 10초 내외로 보여줄 수 있다! 그러면 특별히 저희 제작진 측이 여러분들이 원하는 선물을 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뭐든지요?”
“예, 뭐든지입니다.”
“대박.”
정영진의 말은 무척이나 파격적이었다. 그것도 제작진들 틈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유민재조차 열광적으로 호응할 만큼. 하지만 그런 유민재의 행동은 섣부른 감이 없지 않았다.
“애들아! 무조건 성공해야한다! 이번에 본전 좀,”
“다만, 그 선물을 사는 경비는 저희 제작진이 아닌, 포이보스 뮤직의 대표이신 유민재 씨의 카드로 계산될 것입니다! 어때요? 참 좋죠? 하하하하!”
“헐! 대박!”
“대박!”
이어진 정영진의 말에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어졌고 촬영장에 있는 한 사람만이 분통을 터트리며 너무나도 자연스레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등장했다.
“야! 너네 이러려고 나 여기 오라고 한 거야? 야!”
물론 애당초 판타스틱 포이보스 멤버들의 이번 아이돌 핫스타 출연에 힘을 북돋기 위해 이곳에 온 만큼, 유민재는 자신의 출연 또한 어느 정도는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흐를 줄은 꿈에도 몰랐는지라 그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고 입은 담당 PD와 두 MC들을 겨냥해 쉴 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 포이보스 뮤직 대표님께서 저희 제작진에게 특별히 판타스틱 포이보스 멤버들의 댄스 실력을 검증해달라고 하셨거든요? 승현 군 포이보스 뮤직에서 대표님 지시로 댄스 교습을 받고 있다는 데 사실인가요?”
“네, 네? 아... 저는 이 년 정도 전부터 받고 있었고요. 이수아랑 크리스는 사년? 그 정도 전부터 받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수아 누나는 저랑 똑같고요.”
“애들 댄스 실력 한번 점검해 달랬지! 누가 내 돈 가지고...”
“자! 그럼 판타스틱 포이보스 한정 코너! ‘뭐든지 사줄까! 누가? 대표님이!’ 코너를 지금부터 진행해 보겠습니다!”
“와! 삼촌, 아니 대표님 감사합니다!”
“대표님! 최고!”
“대표님! 저 노트북, 아니 일단 감사합니다!”
“야! 너희들! 하아...”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은 마지막 발악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되질 못한 듯 했다. 어느새 너무나도 자연스레 진행을 재개한 정영진, 데스콘 두 MC들과 더불어 심지어 판타스틱 포이보스 멤버들마저 이에 열화와도 같은 호응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래, 어디 한번 보자. 몇 년 동안 댄스 교습 받게 해줬으니, 당연히 통과하겠지? 통과만 못해봐. 아주 그냥! 응?”
그렇게 모든 이들의 너무나도 열광적인 호응에 유민재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떨구는 것으로 한때의 소란을 마무리되고 말았다. 이제는 아예 MC들이 서있는 자리에 전용 의자까지 마련해주는 제작진들의 용의주도함에 그저 털썩 그곳에 몸을 기대는 것이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것을 깨달았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판타스틱 포이보스 멤버들을 위해 제작진이 야심차게 준비한 코너가 막 시작하려던 찰나에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려온 것은.
“꺄아악!”
지금 이 순간이 촬영 중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는 간과할 수 없는 비명소리였는지라 촬영은 재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중단되었고 당연스럽게도 모두의 이목은 비명 소리의 진원지를 향하게 되었다.
*
“그럼 회사에는 직원들 빼고 아무도 없겠네?”
“뭐, 그렇지. 나도 대표님 촬영장에 데려다드리고 바로 너 마중하러 공항으로 간 거니까.”
도대체 아이 돌도 아닌 녀석들이 아이돌 핫스타에는 왜 출연한 건지 그리고 그걸 지켜만 보고 있는 것도 모자라, 직접 힘까지 실어주기 위해 녹화에 동참했다는 민재 삼촌이 뭘 잘 못 먹은 것은 아닌지, 좀처럼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럼 그쪽으로 가자. 형.”
“응?”
어찌됐건 상황 파악이 급선무였기에 촬영장으로 목적지를 바꿔버렸다.
“안 피곤하겠어? 너 방금 도착해서 시차도 있고,”
“시차는 무슨. 1시간 밖에 차이 안나.”
비행기를 오래타서 조금 피곤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나를 둘러싼 복잡한 일과 더불어, 무슨 생각으로 애들을 아이돌 핫스타에 출연시켰는지 그 이유나 알고 쉬자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으니까.
“뭐, 꼭 방송에 나가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구경 가는 거야. 아이 돌 프로그램에 뭐 하러 나갔는지는 몰라도 구경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그렇긴 한데...”
“가는 길에 카페 들러서 커피랑 과자도 좀 사가자. 구경 가는 거긴 해도 빈손으로 가긴 조금 그러니까.”
아니, JJ E&M도 그렇고 전체적인 상황도 잘 아는 양반이 할 얘기도 많은 데 무슨 아이돌 핫스타야? 도대체가. 후우.
“꺄아악!”
그런데 막상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인 스튜디오 들어서자마자 발이 굳어버렸다. 나와 마주친 스태프에게 간단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려던 찰나에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이내 느껴지는 수십, 수백 쌍의 시선들은 그 정도로 강력했으니까.
뭐야? 이거. 제작진 측에 미리 양해 구했다며, 반응이 왜 이러는 건데?
*
“가, 강지혁?”
“대박!”
“구경하러 왔나봐.”
갑작스런 나의 등장에 기절할 것처럼 비명을 질러댄 막내 여자 스태프가 선배 스태프 몇 명에게 혼나는 것을 뒤로하고 촬영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나를 동물원 원숭이처럼 쳐다보는 주변 스태프들의 시선을 뚫고 민재 삼촌과 녀석들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방금 전 비명도 있고 지금 마주하게 된 이런 촬영장 분위기 때문에 녹화가 중단된 듯 했다.
“네가 여길 왜와! 지금 너 찍겠다고 기자들이 얼마나! 코룬 아니, 해외 갔다 왔으면 집에서 쉬고나 있을 것이지!”
“형, 어디 갔다 왔어? 미국?”
“근데 왜 이렇게 탔어?”
꽤나 오랜만에 본 녀석들이고 삼촌이기에 아까 석현 삼촌을 봤을 때처럼 반가움을 표현해도 좋으련만, 민재 삼촌의 뜻밖의 행동에 약간이나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이봐요. 나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거 그쪽 때문이거든요?
“촬영은 언제 끝나는데?”
“촬영?”
“촬영은 이제 마지막 코너 진행 중입니다. 지혁씨.”
이곳에서 얘기를 나눌 만한 주제도 아니거니와, 나 때문에 촬영이 방해된 듯 해 촬영 끝까지 오래 걸리지만 않는다면 잠시 차에 가 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담당 PD의 말은 나를 이곳에 어떻게든 묶어놓으려는 의도가 가득 담겨 있었다.
“매니저 형이 미리 PD님에게 양해구했다고 해서 왔는데, 저 때문에 촬영이 방해가 됐네요. 죄송합니다. PD님.”
“아! 아닙니다. 지혁 씨. 제가 조연출한테 지혁 씨 매니저 얘길 들었었는데, 깜빡하고 다른 스태프들한테 말을 못했네요. 촬영이 워낙 재밌게 진행 중이라.”
“아, 그렇군요. 그런데 마지막 코너 진행 중이라 하심은...?”
“구경하다가 포이보스 분들이랑 같이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촬영도 이제는 마지막 코너라 금방 끝날 것 같으니까요.”
“아! 그럼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다들 고생하신다고 하셔서 제가 약소하게마나 준비한 게 있는데요. 큰 건 아니고요. 커피랑 쿠키인데 이거 드시고 저희 포이보스 잘 부탁드립니다.”
어쨌든 제작발표회가 있기 전까지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는 게 최선일 테지만, 당장 민재 삼촌과 할 얘기가 있는지라, 차라리 스튜디오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촬영 또한 금방 끝난다고 하니 말이다.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혁 씨.”
“저기 서 PD, 잠깐 나 좀 봐.”
“에?”
“지혁이 때문에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아! 그럼 잠시만. 다들! 여기 지혁씨가 커피랑 쿠키 가져오셨으니까, 감사하다고 한마디씩 하고 먹도록 해! 저기 대기실로 가시죠.”
뭐, 그것만으로도 만족이 안 된 듯 민재 삼촌이 담당 PD와 함께 어디론가 따로 가는 것을 보니 내가 신경 쓸 부분은 다 끝난 것 같아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이거 진짜 맛있는 건데.”
“누가 맛있는 거 모르냐? 회사 앞 카페에서 산거니까...”
“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너 자꾸 오빠한테!”
내게 우르르 몰려왔던 녀석들은 어느새 쿠키와 커피에 정신이 팔린 듯 나는 안중에도 없었는지라, 자리를 옮기는 데 걸리적거리는 건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가수 강지혁입니다.”
“아, 아! 그래요. 크흠...”
“정영진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가수 강지혁입니다.”
“형, 대박. 나한테 선배님이래. 대박. 강지혁이 나보고 선배님이래.”
“여기 커피랑 쿠키입니다. 이거 드시고 저희 포이보스 멤버들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 삼촌도요.”
한쪽 구석에서 나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선배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먼저 건넸다. 아무래도 내가 지닌 사회적인 명성이나 인지도 때문인지, 내가 이렇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면 좀처럼 접점을 만들 수가 없었는지라, 이럴 때면 내가 다른 후배 연예인들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먼저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뭐, 그런 걸 떠나서 후배가 선배에게 먼저 가 인사를 건네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지만.
“잘... 머, 먹을게.”
“대박. 월드스타가 줬어. 빨리 사진 찍자. 형.”
“그, 그래도 되지...요?”
“네? 아... 근데 그걸 찍어서 뭐하...”
“된데! 빨리 찍자. 대박. 오늘 SNS 대박 나겠다.”
“아! 선배님 그... SNS에 올리는 건...”
“아... 미안...”
“아니에요. 일주일 쯤 뒤에만 올려주시면 되요. 제가 지금 언론에 노출되면 안 될 사정이 있어서요.”
“정말? 오케이! 일주일 뒷면 올려도 되는 거지?”
“네, 그럼요. 뭐... 그냥 단순히 커피랑 쿠키인데, 안될 게 뭐있나요.
어쨌든 데스콘 선배야 예전에도 한두 번 봤던 것 같은데, 워낙 오래전 일인지라 처음 본 정영진 선배와 반응이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았다.
“대박! 나 미스터 지 DVD로 봤다니까? 석준 형이랑 지운이가 워낙 자랑을 해서 부아가 돋아서......”
“진짜, 액션 죽이더라. 난 그 볼펜 가지고 슉슉하는 게. 이야! 이번에 한국에서 개봉하면 꼭 가서 볼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두 선배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그러한 어색함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미스터 지를 한국에서 직접 DVD까지 구매해 봤다는 두 선배의 말에 나 또한 반가움과 감사한 마음까지 들어 보다 대화에 집중할 수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아마 그래서였던 것 같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지 예측을 하지 못했으니까.
“아! 아쉽네요.”
“아니 뭐가 아쉬워. 죄다 댄스곡 10개중에 5개를 못 넘는구만! 야! 너희들 내가 너희들 안무 교습비로만 얼마를 썼는데!”
“유민재 대표님은 자기 카드 쓰는 거 가지고 엄청 화내시더니, 이제는 댄스 성공 못했다고 엄청 화내,”
“아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몇 년을 안무......”
PD가 말한 마지막 코너라는 게 지켜보는 이들 모두를 웃음 짓게 만들 정도로, 소위 말해 대박을 터트린 것 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원하는 물품을 가지지 못한 녀석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코너인 만큼 지혁씨도 한번 같이 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네? 제가요?”
그래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몰라도 옆에 있던 PD의 제안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지혁씨가 10곡 아니, 5곡만 성공하시면 저희가 오늘 출연한 판타스틱 포이보스 멤버 분들 모두가 성공한 것으로 해드리겠습니다. 물론 지혁씨도 원하는 물품을 포이보스 대표님 카드로 구매하실 수 있겠고요.”
물론 예상 밖이었으나, 그저 심심풀이로 나설 만은 했는지라 그다지 당황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방송이야 2주 쯤 뒤에 방영될 것이고 그때쯤이면 배우식당 제작발표회는 끝난 지 오래일 테니까.
“오빠...”
“형?”
“파이팅! 형만 믿는다! 나 노트북 가지고 싶어!”
“지혁아... 누나 기타...”
“야! 강지혁 너가 왜 갑자기!”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그깟 선물 때문이 아니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내 돈 주고 사면되는 나였으니까.
다만, 내가 성공하게 되면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릴 누군가의 얼굴이 상상되어 꼭 성공하고 싶었다.
해외 촬영을 할 거면 최소 하루 전날 알려줬으면 좋잖아! 그럼 열애설도 애초에 안 났을 거고!
그렇게 10일 전의 분노를 가득 담아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이내 흘러나온 노래가 어떤 노래일지와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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