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7 2019 =========================================================================
#387
“좋았냐?”
“뭐?”
“하아. 야심한 새벽에 남녀가 어? 같이 아주, 어?”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녀석에게 부러움을 가득 담아 시비를 걸었다. 뭐, 서로 나눴을 대화를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 당시의 분위기 자체로 보건대 꽤나 긍정적인 결과가 추론되었으니까.
“그건 또 어떻게 알았냐?”
“인마, 형님이 척하면 척하고 아는 거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신경 끄셔.”
그런데 그 반응이라는 게 딱히 뭐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라, 조금은 애매했다.
“성준 오빠, 곧 도착한데요. 한국에.”
“그래. 나도 방송 들었어. 얼른 자리에 앉아. 곧 좌석 벨트 매라고 방송 나올 거니까.”
“네!”
잘 됐다는 건지, 안 됐다는 건지 정확히 예상이 되질 않았다. 잘 안됐다고 보기엔 둘 사이가 어색해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잘 됐다고 보기엔 녀석의 반응이 너무 미진했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내가 뭐하고 있는 건지.
내 연애사도 한치 앞이 안 보일 진데, 남 연애 사에 신경이나 쓰고 있으니 한심해 죽겠다. 정말.
*
“지혁아, 제작발표회 일정 준비되면 바로 소속사 통해서 연락 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알았어. 삼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작별 인사를 건네게 됐다. 함께한 시간이 적지 않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뒤풀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를 잠시 미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혁이랑 성준이 그리고 서린이까지 다들 수고했다.”
“삼촌도 수고하셨어요.”
“삼촌이 제일 고생하셨죠.”
“제가 뭘요. 저는 서빙밖에 안했는걸요?”
“어쨌든 뒤풀이는 제작발표회 때 하는 걸로 하고 그럼 삼촌은 먼저 가볼게. 딸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어쨌든 프로그램 촬영을 숨기기 위해 열애설에 대한 대응도 하지 않은 만큼 괜히 함께 있는 장면을 들켰다가 이를 수포로 만들 수는 없었기에 아쉬움을 애써 감추며 공항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오랜만이네.”
“10일인데 이번에는 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더라. 워낙 언론에서 너 가지고 떠들어대서 그런가?”
“크흠... 꼬추들끼리 껴안고 있기 남부끄럽네. 이만 떨어지자.”
“크흠...”
나도 참. 겨우 10일 못 본 것뿐인데 무슨 호들갑을 이렇게 떨어대는 것인지 모르겠다. 영화 찍는 다고 몇 개월을 외국에서 지낸 뒤 비로소 얼굴을 마주했을 때와 마찬가지의 반가움까지 느껴졌으니 말이다.
“언론에서 뭐라고 그렇게 떠들어댔는데?”
“뭐, 너 열애설 터지고 뭐냐 그... 독일 총리인가? 그 사람이 너 초청받고 한국 온다고 난리 났었지.”
“아, 그래? 독일 총리 얘기도 나왔나보네.”
그래도 10일 동안 해외에 있었던 것 치고 뭔가 일이 많이 터진 것은 사실이었는지라, 그런 기분이 영 근거 없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도 대표님한테 독일 총리 기사 그거 사실이라고 들어서 망정이지, 처음엔 이번 열애설처럼 찌라시인줄 알았다니까? 아! 그리고 미스터 지 영화 한국에서도 5월 1일인가? 그때 개봉한다고 시끌벅적 이야.”
열애설과 마이켈 총리 방한 건이야 그렇다 쳐도 미스터 지의 한국 개봉 소식은 나로서도 지금 이 순간 이전에는 전혀 감도 잡지 못한 건 이었으니까.
“아무튼 나는 너 덕에 LA가서 그때 봤었잖아. 그런데 다른 일반 사람들은 극장에서 본 사람이 적어서 이번에 예매 율도 장난 아니래. DVD랑 유료결제로 본 사람들도 극장가서 볼 거라나 뭐라나. 그런데 이번에 한국 개봉될 때는 영화에서 편집됐던 제주도 신이랑 서울 신 같은 거 조금 덧붙여서 나온다는 데 그거 사실이야?”
“나도 잘 몰라.”
“어?”
“나 방금 귀국했어. 형. 한국에서 개봉한다는 것도 방금 형한테서 들었고.”
“아...”
내 영화가 한국에서 정식으로 개봉한다는 소식에 기쁘긴 기뻤다. DVD나 케이블 TV 유료결제 등을 통한 합법적인 구매, 기타 온라인상을 이용한 불법적인 구매 등을 통해서 이미 한국 사람들 또한 어느 정도는 미스터 지를 접했음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과 이것은 전혀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왔으니까.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쨌든 JJ E&M에서 독점으로 배급 계약했다나봐. 그래서......”
미스터 지가 어째서 한국에서만 개봉되지 않았는지를 모르지 않았고 따라서 이번 5월에 미스터 지가 한국에서 개봉되게끔 만든 배급사가 JJ E&M이라는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삼촌은 회사에?”
한국에 오자마자 머리가 아파졌다. 모든 복잡함이 나를 둘러싸고 일어난 것 같아, 내 자신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일단 민재 삼촌에게 미스터 지와 관련해 얘기를 나누려 했다.
“아니, 오늘 대표님 스케줄 있어서 안 계실거야.”
“스케줄? 오늘 도화지 녹화 날 아니잖아. 아니야?”
그런데 당연히 포이보스 뮤직 휴게실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민재 삼촌이 방송 스케줄 때문에 자리에 없다는 소리를 들어 조금은 의아하게 되었다.
방송 활동이라고 해봤자, MC로서 10년 가까이 활약하고 있는 도화지 뿐. 그것도 오늘은 도화지의 녹화 날이 아님을 모르지 않았기에 석현 형에게 다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돌 핫스타 알지?”
“뭐? 아이돌 핫스타? 데스콘 나오는 그거?”
“응, 이번에 너 빼고 다른 애들이 아이돌 핫스타 섭외됐는데, 대표님이 힘 실어주려고 같이 출연한다고 하셨나봐. 그래서 지금 다들 녹화 중.”
아이돌 핫스타라니.
들려온 답변이라는 것이, 민재 삼촌의 오늘 스케줄이라는 것이 전혀 예상치 못한 프로그램 촬영이었는지라 석현 형의 말을 듣고도 내가 제대로 들은 건지 의심하게 되었다.
아니, JJ E&M도 그렇고 전체적인 상황도 잘 아는 양반이 할 얘기도 많은 데 무슨 아이돌 핫스타야? 거기다 아이 돌도 아닌 애들 데리고 거길 왜? 하아. 이거 내가 이상한 거야? 나 원 참.
*
“자! 오늘은 정말 특이한 분들이 아이돌 핫스타 촬영장을 찾아주셨는데요!”
지병을 극복하고 다시금 방송계로 복귀한 정영진의 효과로 인해 아이돌 핫스타는 기존 아이돌 관련 프로그램 1위의 명성을 확고히 지켜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그동안 다른 방송사들 또한 아이돌 핫스타의 성공을 눈여겨본 탓인지, 각종 아이돌 관련 프로그램들을 론칭시켰었다. 다만, 정영진과 데스콘 만한 케미를 뽐내는 MC조합이 드물다는 점 그리고 지난 10년 가까이 쌓아온 아이돌 핫스타 제작진들의 관련 경험이 무척이나 대단하다는 점 때문에 시청자들로부터 그다지 큰 관심을 못 받았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뮤지션들이 뭉쳤다. 포이보스 뮤직의 프로젝트 그룹 판타스틱 포이보스를 모십니다!”
어쨌든 오늘도 변함없이 활기찬 목소리로 아이돌 핫스타의 시작을 알리는 정영진의 목소리에 오늘 방송의 주인공들이 하나, 둘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주인공들의 얼굴이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활기찬 목소리로 분위기를 띄운 정영진과 이에 감초 같은 조미료를 더하는 데스콘의 진행에도 전혀 기쁘지 않다는 듯, 오히려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가리기 까지 했다.
“판타스틱 포이보스!”
“판! 타! 스! 틱! 포! 이! 보! 스!”
뭐, 그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오늘의 주인공들인 판타스틱 포이보스는 기존에 대중들에게 이수아. 권수아. 정승현, 크리스 김으로 잘 알려져 있는, 프로젝트 그룹명과 꽤나 어울리지 않는 이들 뿐이었고 이를 그들 자신 또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일단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자기소개부터......”
하지만 그런 그들의 부끄러움은 안중에도 없는 듯, 정영진은 그 자신 특유의 진행으로 판타스틱 포이보스에게 자꾸만 공을 던지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출연진들은 점점 부끄러움이라는 감정 대신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포이보스 뮤지션들은 다들 음반 깡패라고 하던데,”
“아 진짜? 얼마나 팔았는데? 어? 얼마나?”
물론 지금처럼 자기소개가 끝나자마자 음반 판매량을 뜬금없이 토크의 주제를 옮겨버리는 데스콘과 정영진의 찰떡같은 조합은 촬영장의 분위기를 북돋기에 충분한 행동들이었다. 당장 시청자 입장에서 촬영 장면을 보고 있던 제작진들과 심지어 유민재 또한 이를 보며 웃음을 참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 빨리 좀 말해봐. 나 지금 숨 막혀 죽는 꼴 보려고 그래?”
“그게...”
“아! 몰라! 형 빨리 인터넷으로 찾아봐. 니네들 안 가르쳐 준다 이거지? 요즘 인터넷을 검색하면 다 나와! 흥!”
이런 정영진과 데스콘의 콩트 아닌 콩트는 물론 조금은 무례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예능에서 만큼은 이 같은 멘트들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인위적이지 않게 드러내주는 역할을 했고 출연진들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역할까지 했는지라, 유민재 또한 그저 말없이 웃을 뿐 이에 적극적으로 항의를 하지 않았다.
“와... 정승현 최근 정규 2집 앨범이 50만장 넘게? 그리고 권수아는 작년 앨범 판매량만 해도 80만장?”
“뭐? 50만장? 80만장? 뭐야, 애들 아이돌이야 뭐야?”
“그리고 크리스랑 이수아도... 30만장? 35만장?”
더욱이 정영진과 데스콘의 멘트들이 조금은 당혹스러울 만한 진행과 질문이지만 이런 장면이 제작진들이 원하는 장면일 테고 지금 제작진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이는 시청자들에게도 적당한 웃음 포인트로 다가갈 공산까지 컸으니 오죽할까.
그저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판타스틱 포이보스’ 멤버들의 모습에 웃음을 참을 수밖에.
덕분에 녹화 세트장은 촬영 처음의 부끄러움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에이, 그건 아닌데요?”
“와... 형! 얘 좀 봐봐! 이제 나한테 막 대든다?”
“네? 아니, 그게 아니라... actually...”
“와... 얘 좀 봐! 말문 막히니까, 영어 쓰잖아!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정영진과 콩트 같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 크리스를 필두로,
“아! 쫌!”
“야!”
“어? 쟤들 또 싸운다. 형, 쟤네 진짜 사이 엄청 안 좋나봐.”
“그러게. 쉬는 시간에도 싸우더니...”
“아니거든요!”
“봐봐! 쟤 이제 나한테까지 화낸다!”
평소처럼 사소한 것에 티격태격하며 여느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정승현과 권수아. 그리고
“맛있게 먹을 거야. 냠냠 쩝쩝...”
“와... 목소리 완전 녹아내릴 것 같아. 솜사탕. 그래, 솜사탕.”
“이수아 공연 한다고 할 때마다 바로 매진이잖아.”
특유의 목소리를 매력으로 내세워 가장 먼저 자신의 노래 실력을 뽐낸 이수아까지.
정영진, 데스콘의 막강 MC 조합이 판타스틱 포이보스 멤버들의 긴장감을 사그라들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평소 포이보스 휴게실에서의 모습까지 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따라서 녹화가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은 당연한 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음반깡패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듯, 이수아를 시작으로 각자 자신의 히트 곡들을 불러대는 판타스틱 포이보스 멤버들에 오두방정 두 MC들 조차 말문이 턱하니 막혀버리고 말았다는 점은 함정이지만.
“와... 형 쟤네들 장난 아닌데?”
“우리 음반 낼 때 피쳐링 해달라고 할까? 먹을 걸로 슬슬 꼬셔서?”
“그럴까?”
어쨌든 감초 역할을 제대로 하는 데스콘과 정영진의 막강 조합에 힘입어 녹화는 어느덧 중반부를 넘어서고 있었다.
“자! 다시 녹화 재개하겠습니다!”
그런데 잠시나마 가진 휴식시간이 끝나고 다시금 녹화가 재개되었을 그때였다. 정영진의 입에서 갑작스런 말이 튀어나온 것은 말이다.
“자! 그래도 오늘은 판타스틱! 포이보스! 멤버. 그러니까, 아이 돌 그룹으로 이 자리에 온 만큼 저희가 특별 코너를 준비했는데요.”
“네? 특별 코너요?”
“특별 코너? 뭐지?”
물론 말이 판타스틱 포이보스지, 실제로는 아이 돌 그룹이 아니기에 아이 돌 핫스타가 자랑하는 콘텐츠인 무작위 댄스를 이번 촬영에서는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에 상응하는 코너를 제작진 측에서 마련한 것이었다. 다만 그 새로운 코너라는 게 지켜보고 있던 유민재도 모르고 있었던 콘텐츠라는 게 함정이었지만.
“헐! 대박!”
“대박!”
이내 이어진 정영진의 코너 설명에 출연진들의 얼굴엔 감탄과 놀람이 가득했다. 아니 모두가 즐거워했다. 세트장에 우두커니 서있던 어느 한 사람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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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몬드님 후원쿠폰 50 장 감사합니다.
cacao99님 후원쿠폰 6 장 감사합니다.
예약아이템 연재분입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