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84화 (384/502)

00384  2019  =========================================================================

#384

“우리 딸들 안본사이에 더 예뻐졌네?”

“에이, 아빠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들이어서 일까,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딸들을 안은 중년인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맺혀있었다.

“이번에는 며칠 동안 있으세요?”

“음... 글쎄 한 일주일 정도 있을 것 같은데, 왜? 우리 큰 딸이 아빠랑 같이 놀아주려고?”

물론 같은 딸이라 할지라도 딸답게 애교 많은 막내딸과는 달리, 큰 딸은 조금 차갑게 느껴질 정도의 말과 표정을 건넸지만 그는 아빠였다. 그런 차가운 외면과 달리 큰 딸의 내면은 그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또한 여리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빠 더 있다 가면 안 돼? 힝... 반년 만에 보는 건데...”

“아빠도 그러고 싶은데, 늦게 가면 너희들 엄마가 아빠 너무 보고 싶어서 힘들어 할 걸?”

“그럼 더 있어도 되겠네. 엄마는 아빠 없으면 휴가이니까.”

“에? 정말이야? 언니?”

“크흠... 우리 큰 딸이 농담도... 하하...”

어쨌든 오랜만에 본 딸들의 모습에 중년인의 얼굴은 봄답지 않은 후덥지근한 날씨를 잊어버린 듯 했다. 굳이 자신의 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의 딸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아이 돌 가수로서 각자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 아빠 한국에서 일은 언제쯤 끝나는데? 일주일동안 내내 일하는 거야?”

“왜? 우리 막내가 아빠랑 놀아주게?”

“그럼!”

그렇게 하나, 둘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차려지고 꽤나 오랜 기간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녀간의 대화는 비교적 끊임없이 이어졌다. 물론 그 대화라는 것이 막내딸과 그의 목소리를 주로 하고 있다지만, 큰 딸인 유지연 또한 알게 모르게 그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쩌나 오늘부터 금요일까지는 회사일 봐야 할 것 같은데? 아침 빼고 점심, 저녁은 다 거래처 사람들이랑 보내야 할 것 같고.”

“에? 그럼 이틀 밖에 시간 없는 거네? 일요일 출국이니까, 토요일, 일요일 이렇게?”

“그리고 토요일 날 점심에는 아빠 친구 놈 딸이 결혼을 한다네? 거기 가서 아빠 친구들도 좀 보고 해야 할 것 같아서... 아빠가 토요일 저녁때부터는 우리 딸들이랑 같이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나?”

“치, 뭐야. 그럼 하루도 같이 못 노는 거잖아. 아빠 일요일 점심 비행기라며!”

두 딸이 연예계에 모두 데뷔한 후부터 아내를 대동한 채 해외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본디 그는 그 이전부터 두 딸과 자신의 아내를 위해 중동과 싱가포르, LA 등지에서 홀로 생활해왔었다.

무역업에 종사한 만큼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그만큼 노력과 열정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사내의 가족은 같이 생활한 시간보다 떨어진 시간이 더욱 많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떨어져있는 시간이 보다 길다 해도 이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 애써 부정해왔지만 말이다.

“아빠, 일 계속해야 돼요?”

“응?”

아마 그래서였던 것 같다. 조용히 유재연과 아빠인 사내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유지연의 입에서 지금껏 흘러나온 적 없는 얘기가 나온 것은.

가족과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은 사내만큼이나 유재연, 유지연도 간절했다. 같이 있었던 짧은 시간동안 화목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집안의 유일한 남자로서 여느 아빠들과 달리,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사내였기에 더더욱.

“나랑 재연이도 이제 제법 자리 잡았고 아빠, 엄마 일 더 이상 안하셔도 돼요. 저희가 모실게요.”

“지연아?”

“이제 저희랑 같이 가족 여행도 다니고 저녁도 같이 먹고. 그래요. 아빠.”

자신이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전까지, 그가 기억하는 맏이는 막내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딸이었다. 애교도 많고 때론 어리광도 부리는.

그래서 그는 지금처럼 두껍고 차가운 마스크를 방패처럼 대고 있는 큰 딸을 볼 때면 미안했고 또 미안했다.

“우리 큰 딸. 어렸을 땐 아빠한테 응석도 부리고 애교도 참 잘 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컸을까나?”

“아빠!”

“동생도 잘 돌보고 엄마도 잘 도와주고. 아빠 때문에 우리 지연이가 많이 고생했지? 아빠가 너무 미안해.”

아빠가 없는 집에서 엄마를 도와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는 그리고 부모 모두가 해외로 떠났을 때 홀로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는 현실과 상황이 일종의 강박관념처럼 큰 딸을 덮쳤을 것이다. 그로인해 그의 큰 딸은 너무 어린 나이에 책임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테고 말이다.

“아빠, 엄마 아직 젊단다? 생각보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아빠.”

그래서 그는 지금 이순간 자신이 이런 말을 꺼내는 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아빠가 거기서 쌓아온 것들이 있잖니. 지금 당장 정리하기에는 주변에 미칠 영향도 너무 크고... 딸. 후우... 아빠가 정말 미안해. 너희들 위한다고 해외로 나간다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게 변명이 되어버렸네.”

“아빠...”

“우리 딸이 엄마, 아빠 고생한다고 이런 말도 꺼내주고. 아빠는 눈물이 날 것 같네?”

“당연한 거에요. 그러니까... 진지하게 생각해봐주세요. 지금 당장 답하지 마시고요.”

물론 이제는 막내 딸 유재연도 성인이 된지 오래였고 또한 사회 경험도 어느 정도 겪었을 터라, 유지연이 무엇인가를 도맡아 책임질 일은 없겠지만 이와는 별개로 큰 딸의 제안 아닌 제안을 듣고도 이를 선뜻 응하지 못한 자신은, 아빠로서는 말 그대로 빵 점 아빠일 테니까.

*

분위기가 꽤나 가라앉아있어, 중년인도 그리고 지금 이 자리의 분위기 메이커였던 막내 딸 유재연도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그나저나 딸.”

그래서일까. 사내가 눈앞에 있는 큰 딸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에선 그저 조용히 밥만 먹는 게 당장은 편하겠지만, 반년 만에 본 딸들과의 식사자리를 이렇게 침묵 속에 마무리 짓는다면 후에 너무나도 후회될 것만 같았으니까.

“응?”

“우리 막내 딸 말고 큰 딸?”

중년인의 타깃은 막내딸이 아닌 큰 딸이었다. 일단 이 분위기의 대부분을 장악한 이가 큰 딸이기도 하거니와, 한국에 오기 전 그의 아내가 신신당부하며 물어보라 했던 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아빠한테 시집올 거라고 그랬던 거 혹시,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는 거야?”

“네?”

“아빠 친구들은 이제 딸, 아들들 시집, 장가보낸다고 그렇게 아빠한테 자랑하던데... 아빠는 너무 부럽더라. 심지어 아빠 고등학교 동창들 대부분은 이제 손자, 손녀들 사진을,”

“아빠!”

당연하게도 이는 유지연의 강력한 반발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요 몇 년간 한국에 와서 딸들을 볼 때면 으레 의무적으로 묻는 것이 바로 이 질문이었으니까.

“어느 놈이 우리 큰 딸 데려갈지 아빠는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니까, 딸? 조만간 좋은 소식 기대해도 되지? 물론! 아빠는 아무 놈한테도 우리 딸 못 줘! 적어도 강지혁 정도는,”

“아빠!”

“엄마도 엄청 성화다? 이번에 엄마가 왔으면 엄마가 먼저 이 얘기 했을 거야. 그나마 아빠가 해서 이 정도지, 엄마가 했으면... 알지? 이건 아빠가 말 안 해도?”

유지연의 나이가 서른을 넘자, 그보다 그의 아내가 더욱 성화였기에 그 또한 이를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유지연도 유지연이지만, 그에게 있어 일 순위는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였기도 하거니와, 그 또한 이제는 손자, 손녀를 보고 싶은 나이가 되어버렸으니까.

“허허! 우리 딸 오늘 들어서 아빠를 자주 부르네? 어? 혹시 우리 딸 지금 남자친구 있는 거야? 어떤 놈, 하아... 그, 그래. 우리 딸이 다 알아서 하겠지. 암 그렇고말고.”

하지만 그는 오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꺼내든 화제 전환 카드가 역효과를 일으켰다는 것을. 그리고 그 역효과는 의도치 않게 작은 딸에게도 먹혀버렸다는 것을.

*

[저랑 성준 오빠랑 먼저 가서 장보고서 가게로 갈게요.]

아침 일찍 가게로 나간 주훈 삼촌 그리고 장을 보러 방금 전 먼저 숙소를 나선 성준과 서린과 달리 나는 여전히 방 안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예, 예. 그렇게 해주세요.”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다만,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가 생각이상으로 길어져 일행에게 양해를 구했을 뿐.

[해당 부지를 직접 보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적지 않은 자금이 들어가는 만큼 직접 살펴보시는 게 아무래도...]

“괜찮아요. 제가 본다고 뭘 알겠어요. 관리사님이 알아서 잘 살피셨겠죠. 아! 혹시 되도록 서둘러 달라고 해서 그냥 대충 알아보신 건 아니죠?”

[물론 그건 아닙니다만...]

기부 사업이라고 하긴 조금 민망한, 그저 내가 후원하고 있는 애들에게 보다 좋은 환경을 그리고 더욱 큰 동기를 선사하기위해 일을 벌였었다. 물론 이는 다소 성급하다 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생각과 결정. 그 사이의 시간이 채 한 달 아니, 보름도 되지 않은 결정인데다가 쏟아부어야할 자금의 규모 그리고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거의 전무하다 봐도 무방했으니까.

“그럼 관리사님이 진행해주세요. 이런 쪽에선 저는 제 자신보다 관리사님을 더 믿거든요.”

그래도 내가 지닌 것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무리 없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는 뿌듯함이 꽤나 컸는지라 이 같은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네, 그럼 부지매입에 관련된 절차를 밟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혁씨...]

돈을 버는 것에서 얻을 수 있는 정신적인 만족감과 긍정적인 기운들보다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가 주는 충만함과 기쁨이 더욱 큼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논란이요?”

그런데 어째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나했다.

이만 전화를 끊고 나 또한 서둘러 가게 오픈 준비에 나서려던 때 들려온 말로 인해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한숨 또한 자연스레 흘러나왔고 말이다.

“하아... 겪으면 겪을수록 질리네요. 거기 이미 성북구청 소유 부지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까 듣기로는 그렇게 들었던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2006년에 성북구청 측에서 청소년시설 건립을 목적으로 서울시로부터 특별교부금을 받아 매입하였습니다. 최근에 한국 장학 재단 측과 부지 매입 및 활용에 관해서 얘기를 주고받긴 했었지만, 작년 10월을 끝으로 협상은 결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바퀴벌레처럼 달라붙는 루머들인지라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스타가 된 순간부터, 대중들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어버렸고 그때부터 이 같은 루머와 가십성 기사들을 피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결과를 마냥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경지는 아니었으니까.

“상관없으니까, 진행해주세요.”

더욱이 얼마 전 서린과의 열애설이 대한민국을 진동시키고 있는 와중에 이런 일이 또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으니 오죽할까.

“매입하고 나자마자 바로 다음단계로 진행할 수 있게끔 준비해주세요.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이랑은 상관없이요. 일에 차질이 생기지만 않으면 돼요.”

[예, 알겠습니다. 귀국하셨을 때쯤에는 부지 매입 계약이 완료되도록 신경 쓰겠습니다.]

“그리고 관련 기사가 거기서 한발이라도 더 나아간다. 그러면 저희 측도 본격적으로 대응해주세요. 뭔가 믿을 게 있으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사를 터트린 거겠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에는 파장이 꽤 클 테니까요.”

어쨌든 선을 넘지 않길 바랐다. 어차피 부지 매입, 땅 투기와 같은 악의적인 기사들은 해당부지의 건설업체 공고를 올릴 때면 자연스레 사라질 것들이지만, 그 중에는 종종 선을 넘는 기사들이 있었으니까.

*

[아! 제가 깜빡할 뻔 했군요. 한남동 저택의 본채 내부 인테리어 작업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현장 소장 측에서 전해왔습니다. 담장 외부 가로수 작업 또한 완비되었는지라, 언제든 입주가 가능하다는......]

“오빠?”

“어, 어?”

“뭐해요. 멍하니. 너무 더워서 그래요?”

한국으로 돌아가면 꽤나 바빠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멍을 때렸나보다. 서린이 이렇게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줄, 목소리가 들려와서야 알게 됐으니까.

“아니, 벌려놓은 일들이 많아서. 별거 아니야. 그래, 준비는 다 끝났어?”

“네, 테이블 정리 다 끝났어요. 부엌은요?”

“여기도 재료 준비랑 다 끝났어.”

그런데 단순히 그것치고는 뭔가 이상했다. 아니 이상하다기 보단 눈을 떼기 힘들었다.

“서린아, 너 옷이...”

“헤헤... 어때요?”

“그게...”

이래서 서린, 서린 하는 것일까.

하얀 원피스에 만두처럼 올린 머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길고 얇은 다리와 환상적인 볼륨감.

나 또한 남자로서 이를 그대로 넘기기가 꽤나 힘들었다.

“오늘 다 같이 가게 문 일찍 닫고 놀러가기로 했잖아요. 그래서 좀 꾸며봤는데, 괜찮아요?”

“예쁘네. 잘 어울려.”

“다행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기간 동안 서린을 지켜보니, 가히 성준 녀석이 욕심을 낼만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것도 보면 볼수록.

“그럼 팻말 OPEN으로 바꿔놓을게요.”

그래서 서린을 둘러싼 소문들이 어째서 그렇게 저속하고 악의적인지 이해가 안됐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남자들의 눈을 절로 사로잡을 만한 여자일진데, 그와는 어울리지 않게 그녀를 둘러싼 소문들은 절로 눈살을 찌푸릴만한 것들 투성이었으니까.

하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런저런 소문들로 인해 상처도 알게 모르게 많이 받았을 텐데 성준 녀석이 이를 잘 케어해주길 바랐다. 뭐, 나쁜 남자 타입이기는 해도 성준 녀석처럼 쾌활하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도맡아 하는 녀석이라면 그녀가 보다 웃는 날이 더 많게끔 해줄 수 있을 테니까.

양성준 이 복 받은 녀석.

============================ 작품 후기 ============================

예약 아이템 연재분입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열심히 하겠습니다.

P.S 내일 오전까지 다음주 화요일 연재분까지 원고를 보내야해서 정신이 없네요. 네이버는 참...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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