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83화 (383/502)

00383  2019  =========================================================================

#383

고단한 하루였던 만큼 풍족했던 저녁식사 그래서 더욱 왁자지껄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어느덧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을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꽤나 과식한 경향이 없지 않았는지라 속이 덥수룩하기도 했거니와 마냥 잠을 청하기엔 하늘의 별과 달이 너무나도 아름다웠으니까.

“어?”

“오빠?”

그런데 그렇게 마당 벤치로 향하려던 나의 발걸음은 이내 멈춰지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엔 이미 선객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까.

“잠 안자고 여기서 뭐해?”

“오빠는요?”

“어? 아... 나는 잠이 잘 안와서. 먹은 게 소화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저도요.”

나처럼 이제 막 샤워를 끝내서일까. 서린의 피부와 머릿결이 꽤나 촉촉해 보였다. 아니 얘는 쓸데없는 데서 예쁘네. 나 원 참.

“그럼 오빠는 들어가 볼게. 내일도 장사하니까, 너무 늦게까지 있지 말고. 잘 자라.”

어쨌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다시금 방 쪽으로 되돌리려 했다. 굳이 선객이 있는 자리를 비집고 들어갈 생각도 없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내 방 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한결 나을 듯 했으니까.

“들어가시게요?”

“응?”

그런데 서린이 내보인 의외의 모습에 발걸음을 차마 뗄 수가 없었다.

“저 때문에 들어가시는 거에요?”

“아니, 그냥. 너도 개인 시간 필요할 것 같은데, 괜히 내가 방해하는 것 같아서.”

“아니에요.”

“어?”

벤치 옆자리를 가리키며 조금 비켜서는 서린의 행동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잠시나마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건물 자체가 출연진들만이 사용하는 숙소인지라 주변 시선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이렇게 단 둘이 벤치에 앉아있는 것은 충분히 주위의 오해를 살만한 행동임은 분명했다.

“그럼 잠깐만 앉았다, 갈게.”

하지만 나를 보는 서린의 눈빛이 꽤나 초롱초롱해서였을까.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벤치에 앉아 밤하늘의 달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혹시 내가 먼저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하나?

앉기는 앉았다만, 아무런 말도 주고받지 않은 채 서로 같은 곳만 바라보고 있었는지라 알게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성준 녀석이나 주훈 삼촌과 있을 때는 말도 곧잘 주고받았던 것 같지만, 지금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어색 그 자체였으니까.

그렇게 지금 내 두 눈에 담긴 밤하늘과 달빛이 그리고 별빛들이 아름답지 않았다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정도로 분위기는 적막했고 또한 고요했다.

하지만 이내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 또한 두 눈에 밤하늘만을 담을 순 없었다.

“노래 정말 좋았어요. 역시 월드 스타답다고나... 랄까? 앨범으로만 듣다가 실제로 들으니까,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요.”

언제부터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일까.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고개를 돌리자마자, 마주치게 된 서린의 눈동자에는 당황한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그런 눈동자 속에 담긴 나의 모습은 꽤나 당혹스러워하고 있을 테지만.

“많이 걱정 돼?”

“네?”

“아까 보니까, 핸드폰으로 기사 보고 있던 것 같던데. 아니야?”

그래도 꽤나 복잡해 보이는 서린의 눈동자와 때때로 보려고 하지 않아도 보게 된 그녀의 모습들이 드문, 드문 떠올랐는지라, 이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아요. 첫날은 식당 준비하느라 훌쩍, 둘째 날은 손님 하나 없이 그냥 기다리다 훌쩍. 그리고 어제랑 오늘은 손님들 맞이하느라 훌쩍.”

아직까지 떨쳐내지 못한 것일까.

하긴, 언론의 뭇매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밖에 없는, 일상처럼 언론과 대중들의 시선을 신경 써야만 하는 연예인일지라도 자신을 향한 화살에 고통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닐 테지.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런 고통이 무뎌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은 아닐 테니까.

어찌됐든 나와도 관계된 일로 인해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것 같아, 무슨 말이라도 건네주고 싶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테니까. 제작발표회도 예정됐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될 거야. 도착하고 나서 일주일 내로. 그리고 증거도 워낙 확실해서 오해고 뭐고 할 것 없이 깔끔하게 정리될,”

그런데 이내 들려오는 서린의 말은 그런 나의 예상을 꽤나 벗어나는 것이었다.

“한국 가는 것 때문에, 제작발표회 전까지의 일이 걱정돼서 그런 게 아니에요.”

“응?”

언론을 통해 이미 기정사실화 되어버린 나와 서린의 열애는 그녀에게 너무나도 가혹했다. 성희롱이라고 봐도 무방할 각종 댓글들과 온, 오프라인 상을 떠돌던 그녀에 관련된 과거 풍문들까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는 듯 했으니까.

“악플이나 기사들... 그런 건 이미 질리도록 당해봐서요.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냥... 하루, 이틀 기분 나쁘다 말아요. 이젠.”

하지만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담금질이 괜한 것은 아니었는지, 서린의 얼굴은 담담했고 목소리 또한 무덤덤했다. 성준 녀석이 전해줬던, 첫날 서린이 자신의 방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그 소식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말?”

“그럼요. 이래봬도 오빠보다 연예계 생활 더 오래했다고요?

“그럼...?”

“이곳이 너무 좋아서, 아쉬워서 그러는 거에요.”

나보다 나이가 적다는 점, 화장기 없는 얼굴이 가져다주는 ‘동안 이미지’덕에 서린을 마냥 어리게만 봤나보다. 따지고 보면 서린은 나보다 가요계 데뷔도 빠를 뿐더러 내가 겪어보지 못한 아이 돌로서의 생활면에서 정점에 달해본 적 있는 나름의 베테랑일진데 말이다.

“데뷔하고 나서 이렇게 쉬어본 적 없었거든요. 앨범 활동하고 바로 행사 다니고 또 다른 멤버들 휴식기 가질 때 저는 드라마 찍고 CF찍고...”

그래도 제 아무리 베테랑이라 할지라도, 그녀 못지않게 여러 구설수에 휘말렸던 나조차도 온, 오프라인 상의 악의적인 댓글들을 마냥 무시 못 할 진데 그녀라고 다를 게 있나 싶어, 위로 섞인 말을 건네주고 싶었다.

“다행이네.”

“네?”

“막내이고 홍일점이라서 조금 불편하고 힘들 줄 알았는데,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다니까, 말이야.”

덤으로 화제도 돌리고 싶었고.

“일주일도 안 남았지만, 마지막까지 잘해보자. 일할 때는 조금 힘들겠지만, 저녁 시간대만큼은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도록 해볼 테니까 말이야.”

“고마워요. 오빠. 아! 그거 알아요?”

“응? 뭘?”

“여기가 너무 좋고 떠나는 게 너무 아쉽다는 거... 그거 오빠 때문인 것도 있어요.”

“어?”

“노래 직접 라이브로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솔직히 힘들었는데, 버틸 수 있겠, 아니 버티고 싶더라고요. 계속해서 노래 듣고 싶어서.”

“하하... 고맙네. 그렇게 생각해줘서.”

“그리고 지금처럼 친절하게 위로도 해주시고... 이렇게 조금은 친해진 것 같아서 좋아요. 정말 상상 못했던 일이거든요. 지금 저한테는.”

그런데 그때였다. 나를 쳐다보며 환하게 미소 짓는 서린의 얼굴에서 아까 전까지 볼 수 있었던 밤하늘이 보인 것은.

“Fly to the moon. 별들 사이에서 놀 수 있도록. 수많은 별들의 밤과 낮이 어떤지 알고 싶어요.”

두 눈동자 속에서 별빛이, 환한 얼굴에서는 달빛이 그리고 주변의 모든 것들이 서린의 얼굴을 밝게 만드는 어두운 도화지로 느껴진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무엇인가가 별똥별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Fly to the moon. 같이 있고 싶어요. 그대의 손을 잡고 환상적인 노래와 함께라면 더욱 좋겠지요.”

그리고 이는 서린이 갑작스럽게 노래를 흥얼거리는 나의 모습에 의아함과 놀람을 간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와 상관없이 나는 어느새 머릿속에 떠오른 무엇인가를 가사와 선율 그리고 감성으로 풀어 넣는데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Fill my heart with song, 내 마음을 노래로 채워주세요.”

그렇게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노래가 끝을 맺었을 때, 나의 손이 서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있다는 점에서 화들짝 놀랐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 서린도 그렇고 밤하늘도 그리고 방금 전에 내가 부른 선율도 가사도 모두.

*

[쾅!]

“개같은 년이...”

주제도, 분수도 모르고 날뛰던 년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해야 할까. 예상치 못하게 한방을 거하게 얻어맞은 중년인의 얼굴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강지혁이 출연한 미스터 지! 드디어 한국에서도 개봉하다! 전 세계적으로 4억 3천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거둔 미스터 지의 한국 배급 라이선스를 JJ E&M이 단독 계약하는 데 성공함에 따라 오는 5월 1일 극장에서 한국 관객들을......]

흔히들 대중은 한국을 대기업 공화국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이는 어느 정도는 이치와 현실에 맞는 말이었다. 한국을 주무르다시피 하는 정치인들이 언론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가운데, 정작 그러한 언론은 대기업들로부터 얻는 막대한 광고 수익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마냥 갑의 위치에서만 존재할 수는 없었다. 그들 또한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이의 행보에서만큼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JJ E&M 사장이자 JJ그룹의 오너일가에서 꽤나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미진 JJ E&M 사장이 6월말 퇴임할 것으로 알려져! 이미진 사장의 갑작스런 퇴임 발표에 재계는 그 숨은 의도를 간파하려...... 한편 이미진 JJ E&M 사장은 오너일가로서 현 회장의 막내 여동생이자, 개인 주주로서는 2번째로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이며 하버드 대학 경영학 학사, 석사 과정을 마친 우수한 재원이자 JJ E&M 미국지사의 성공적인 사업 론칭을 이끌어낸 경영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미진 JJ E&M 사장의 갑작스런 퇴임 기사는 생각 이상의 화제를 불러 모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뭔가 있는 거 아님? 다른 바지사장도 아니고 오너 일가 그것도 지분도 완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갑자기 퇴임?

-이상한 건 맞는 것 같음. 미국 지사에서 한국 왔을 때, JJ E&M 비전 발표하면서 완전 오래 해먹겠다는 식으로 말했었는데, 갑자기 퇴임한다는 게 말이 안됨.

-뭔가 구린 냄새가 솔솔 나네. 쩝.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JJ 그룹 내년에 공채 뽑을 때, JJ E&M 때문에 공채 선발 인원 조금 더 줄어드는 거 아님? 아씨, 그러면 안 되는데?

-미친 목돈 죄다 JJ E&M에 투자했는데, 설마 좆 되는 거임? 아 씨. 좆같네?

그냥 사장도 아니다. 무려 JJ그룹의 오너일가로서 현 회장의 막내 여동생이자,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난 창업주에게서 2번째로 많은 지분을 증여받은 대주주이다. 그런데 갑자기 JJ E&M의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점, 그것도 이렇다 할 징조도 보이지 않은 채 쫓기듯 미국으로 떠난다는 점 들 때문에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저마다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씨발 개 같은 년이 감히 주제도 모르고 설쳐? 으아아악!”

물론 이러한 사람들의 상상은 분노를 참지 못한 채 아직까지 씩씩 거리고 있는 중년인에게 그다지 큰 의미가 되지 못했다.

대중들을 개돼지만도 못하다 생각하는 중년인의 성정 상, 이는 곧 사라져버릴 신기루와 같은 현상일 뿐이었으니까. 더욱이 수십 년 전부터 굳건히 쌓아올린 카르텔을 바탕으로 지금껏 무소불위의 권력과 재력을 누렸던 그였으니 오죽할까.

-미스터 지 개봉? 지렸다.

-DVD 샀는데, 하아... 뭐, 그래도 극장에서 보면 후덜덜 하겠네. 기대된다.

-극장가서 무조건 봐야지. 케이블 TV로 결제해서 봤는데, 극장가서도 꼭 봐야 겠음. 이건 극장용임. 무조건.

하지만 뜻밖의 반격에 사내의 세상 무서울 줄 모르고 쏟아 올랐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는 순간, 사내의 남아있던 이성은 순식간에 날라 가버렸다.

“당장 기재부에 연락해.”

“예?”

재벌들을 같잖지 않게 여겼던, 그저 돈 좀 있다고 뻐길 줄만 아는, 그런 놈들이라 생각했던 그에게 갑작스럽게 맞게 된 꽤나 큰 펀치는 대중들의 넓은 관심보다 그 자신을 더욱 불타오르게 만들었으니까.

“이 새끼가 요즘 들어 귀가 막혔나! 이 새끼야! 어디 한번 내가 귀 뚫어,”

“죄,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연락 하겠습니다.”

“이런 씨발. 어딜 가나 개돼지 새끼들이... 하아...”

그렇게 오늘도 중년인은 눈앞에 있는 사내에게 자신의 모든 화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런 중년인의 폭언과 난폭한 행동에도 젊은 사내는 그저 묵묵히 이를 감내해야만 했고 말이다.

============================ 작품 후기 ============================

예약 아이템 사용분입니다.

st0304님 후원쿠폰 15 장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Te4Rs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이네요.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이제 6월입니다. 작년 11월 쯤 연재를 시작했는데, 벌써 반년 이상 이 작품을 쓰고 있네요.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이버 연재 반응을 보니, 조아라 독자님들은 성인 군자셨군요...ㅠ

저는 요즘 차기작 생각을 슬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작가란 직업이 지금 작품의 끝을 생각할 때면, 차기작을 생각하게 되나봐요.

차기작은 아무래도 차원전승자가 될 것 같습니다. 기존 연재분이 이계와 현세상을 오가는 설정인데요. 아무래도 이 설정을 나름 수정하여 기존에 지적받았던 부분을 보다 신경 써 다시 연재할 생각입니다. 작품의 뿌리가 되는 설정이 바뀐 만큼 새로 연재될 차원전승자는 기존 연재분과 상당부분 바뀔 수도 있겠네요.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어쨌든 저는 요즘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날 더운데 몸 건강 챙기시고 6월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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