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80화 (380/502)

00380  2019  =========================================================================

#380

“저희 제작진 측에서 마이크와 앰프를 빌려드렸으니, 이에 대한 정산을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형식 삼촌의 말은 충분했다. 잔뜩 들떠있던 우리들 모두의 기분을 순식간에 가라앉게 만들기에.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정산이라니?”

“정산이라니요? 설마...”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나마 일행의 최고 연장자이자 실질적인 리더를 맡고 있는 주훈 삼촌과 막내이자 홍일점인 서린이 반박 아닌 반박을 해봤지만 이미 저런 말이 나온 순간부터 게임은 져있다는 것을 일행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듯 했으니까.

“오늘 매상의 지대한 역할을 한 게 마이크인 만큼 매상의 ‘일부분’을 저희 측에서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정에 빠졌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저희 쪽에서 먼저 마이크를 요구한 게 아니잖아요. 그 점을 고려되어야 하는 게 옳은 거 아닌가요?”

“물론 그 점을 고려해서 대여 비를 책정했으니 출연진들과 제작진들 모두 만족하실 겁니다.”

뒤늦게 마이크를 빌린 게 우리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니었음을 어필해보았지만 이는 전체적인 대세를 바꾸지 못할, 그저 겉 가지를 쳐내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말도 안돼요... 200만 루피아나...”

“하아... 레몬즙 짜느라 팔에 알 베긴 것 같은데... 200만 루피아가... 내 로브스터가... 왕 새우가...”

“이것 봐. 김PD. 200만 루피아면 매상의 일부분이 아니잖아? 대부분이지.”

기대가 적었던 대신, 결과가 훌륭했기에 더욱 들떴었다. 또한 그래서 이내 그 기쁨을 사그라들게 만든 형식 삼촌의 말이 우리들을 더욱 씁쓸하게, 허무하게 만들었다.

“진짜 그럴 거야, 아니 이러실 거에요?”

“저희 측에서 먼저 마이크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지혁씨와 식당이 이득을 본 것은 사실이잖아요? 마이크가 아니었다면 이런 매상은 달성하기 힘들었을 거고 이런 마이크 장비를 섬에서 구하는 것도 어려운 만큼 200만 루피아는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스태프 분들?”

“네, 네? 그...그게...”

“그렇다고 해도 저희 측에서 알아서 마이크를 가져다 줬는데 200만 루피아는 조금,”

“그, 렇, 죠?”

“과하다고... 네, 네? 아... 네, 적당한...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네... 적당하죠. 적당하고말고요.”

회사의 내부부조리가 어떻게 이뤄지는 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광경에 독기와 오기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나온다 이거지?

“으드득... 두고 봐요... 마이크 대여비가 1시간에 100만 루피아? 으드득...”

사적인 부분이 아닌, 일과 관련해서 어째서 새진 삼촌이 형식 삼촌을 지독하다고 표현하는지, 또한 민재 삼촌이 치를 떠는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동안 게스트로 참가했던 하루세끼 촬영 때는 짧았던 촬영 때문에, 고정이었던 아름다운 누나 때는 누나들의 방패 덕에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는 내가 형식 삼촌에게 골탕 아닌 골탕을 먹였었기에 형식 삼촌의 집요함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하아. 이제 보니 이거 완전 악마네. 악마.

물론 시청자들은 이렇게 집요하게 출연진들을 괴롭히는 형식 삼촌의 모습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테고 이것이 프로그램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점에서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다.

다만, 이가 갈렸을 뿐. 으드득.

*

“자, 자! 우리 이럴게 아니라 얼른 밥 먹으러 가자. 애들아.”

“네? 그치만... 저희 돈 없지 않아요?”

“무슨 소리? 55만 루피아나 있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로브스터나 왕새우 같은 음식은 못 먹겠지만 대부분 메뉴들은 비싸도 10만 루피아가 안 넘으니까, 얼른 가보자. 지혁이랑 성준이도 얼른 준비하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돈이, 200만 루피아를 강탈당하다시피 했더라도 아직 55만 루피아나 있다는 점이었다.

이 돈이면 충분했다. 비록 이곳에 와서 주변 식당들을 핸드폰으로 알아볼 때부터 노래를 불렀던 로브스터와 왕새우같이 초 고급 요리들은 먹지 못할 지라도 거의 대부분의 요리들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돈이 바로 55만 루피아였으니까.

“자! 오늘 수고했다. 성준이는 과일 주스랑 계산 담당하느라 수고했고 서린이는 서빙 혼자서 다 도맡느라고 수고했어. 지혁이도 재료 준비하고 공연하느라 수고했고.”

“삼촌도 고생하셨어요. 혼자 요리하느라 진짜 힘드셨을 텐데.”

“맞아요. 오늘 안에 있던 선풍기도 전기 때문에 코드 뽑으셨다면서요?”

“고생 많으셨어요. 선배님.”

그래서 무척이나 아름다운 일몰광경을 배경삼아 좀 전의 마이크 사건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릴 수 있었다.

“그래, 그래. 다 같이 고생했지. 모두 다. 자!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짠할까? 원래 어제 했어야 했고 또 로브스터나 왕새우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 정도만 해도 꽤 훌륭하니까, 너무 섭섭해 하지 말고.”

“섭섭하다니요. 진수성찬인데요. 뭘.”

“맞아요.”

“이거 진짜 맛있는 데요? 돼지 립 바비큐?”

테이블을 가득 메운 맛있는 음식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돋우는 와인은 ‘이런 게 바로 휴양이고 휴식이지.’를 여실히 드러내듯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짠! 내일은 더 대박을 노리며!”

“대박을 노리며!”

“노리며!”

“노리며!”

그렇게 다 같이 와인을 머금으며 바다와 해변 그리고 하늘을 물들이는 수많은 색들의 향연을 두 눈에 담았다. 수많은 감정들을 떠오르게 만드는 그런 풍경에 일행 또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사색에 잠겼다.

10여분 가량의 시간이 지났을까. 우리들을 멀리서 찍고 있는 카메라들의 존재와 테이블에 설치된 고정카메라를 통해 사색에서 벗어나자마자 문득 옆자리에 앉아있던 서린이 눈에 들어왔다.

어째서 서린이 젊은 남자들을 열광케 하는지 여실히 드러내는, 마치 CF의 한 장면,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서린의 모습에 감탄을 숨길 수 없었다. 이래서 서린, 서린 하는 걸까?

“많이 아쉽지? 기대가 많았을 텐데.”

“네?”

나의 물음이 갑작스러워서 일까. 아니면 먼저 말을 걸지 않던 내가 먼저 말을 걸어서 놀란 것일까. 꽤나 놀란 듯 안 그래도 큰 두 눈이 더욱 커져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게... 울고 있더라고.]

[뭐?]

[내 옆방이잖아. 그런데 창문을 여니까, 우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리더라고.]

이곳에서의 첫날밤. 성준 녀석과의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마 냉혈한도 절로 감성적인 사람이 되게 만드는, 강력한 마법과도 같은 주변 풍경이 나를 이렇게 만든 듯 했다.

“로브스터나 왕새우 많이 기대했잖아. 먹는 거 좋아하는데 한국에서는 관리 때문에 많이 못 먹어서 이번에 잔뜩 먹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니에요. 오빠. 이것들도 엄청 맛있는 데요. 뭘. 이제 보니 괜히 울상이었던 것 같아요. 200만 루피아 뺏겼어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 잔뜩 먹을 수 있는데요.”

“그래도 아까 엄청 실망한 것 같던데...”

“아니, 음... 솔직히 많이 기대했는데, 그래도 지금은 다 잊었어요. 지금 먹는 것도 엄청 맛있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로브스터랑 왕새우도 먹으면 되니까요.”

막내이자 일행의 유일한 홍일점인 그녀의 모습에 아까 전 마이크 사건 때 잔뜩 실망하며 풀이 죽어있던 모습이 오버랩 되며 떠올랐는지라 조금은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내일은 꼭 로브스터랑 왕새우 둘 다 배터지게 먹자. 꼭.”

“정말요?”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

그래서 서린을 포함한 모두에게 선언하다시피 속내를 털어놓았다.

“방법은 있지.”

“진짜?”

“판을 더 키워야지.”

“판을?”

“공짜로 쓰는 것도 아니고 1시간 동안, 그것도 100만 루피아나 주고 마이크랑 앰프 빌리는 건데 본전은 뽑아야지 않겠어? 그리고.”

“그리고?”

“우리들 가운데 가수가 나 혼자인건 아니잖아?”

기필코 로브스터와 왕새우를 먹고 말 것이라고, 놀고먹는 촬영을 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형식 삼촌의 탈을 쓰고 강림한 악마의 혼을 반드시 빼놓고 말거라고.

*

환상적인 일몰 풍경과 더불어 와인 그리고 맛있는 음식까지 함께하니 이곳이 왜 유명한 휴양지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당장 나조차도 다시 이곳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으니 오죽할까.

그래서인지 와인과 맥주를 예상보다 더 마셨던 것 같다. 물론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신 것도 아니고 내 스스로가 주량이 꽤 됐기에 그 기준에서 보자면 적당한 양이었는지라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지만 그래도 술은 술이었으니까.

어쨌든 숙소에 돌아와서 씻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알게 모르게 더위와 식당일 그리고 공연 때문에 쌓인 피로감이 참을 수 없는 노곤함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아래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쾌감은 분명 잠이 들었을 내게서는 느껴질 수 없는 그런 흥분 감을 내게 선사했으니까.

[할짝]

[츄르릅]

누군가의 손이 나의 하체사이를 오가고 이내 그 중심을 입으로 머금는다는 점에서 정신이 몽롱해졌다. 하늘을 거니는 것처럼 부드러운 무엇인가가 교묘하게 나의 것을 휘감고 또한 능숙하게 자극한다는 점에서 두 눈이 떠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내 아래에서 연신 고개를 움직이고 있던 이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버렸다.

“서, 서린아...? 윽!”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 것인지, 서린이 어째서 내 방에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야릇한 복장과 얼굴로 차마 말할 수 없는 행위와 모습이 내 두 눈에 담겨 자연스레 몸을 빼려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가 나를 짓누르듯 강렬한 쾌감이 이성보다는 본능에 따라 행동하도록 나를 강력히 조종했기 때문이다.

“으윽...”

자연스레 손이 부드럽고 탱글탱글한 곳을 주무르기 시작하고 상황에 순응해버렸다.

“자, 잠깐! 잠깐만! 윽!”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축적된 흥분감과 이내 헤일처럼 덮쳐오는 거대한 쾌감.

물컹함과 한없이 부드러운 감촉을 선사했던 무엇인가를 어루만지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 정도로 그때 느낄 수 있었던 감정들은 뜨거웠고 또한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또 다른 것들을 불러들였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감정들을 그리고 현실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닫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아...”

속옷을 축축하다 못해 아예 물에 적셔놓은 것 같은 걸레로 만든 것에 그치지 않았다. 침대시트와 이불에까지 흔적을 남긴 무엇인가로부터 찝찝함을 느끼기도 전에 당혹감과 좌절감, 처참함, 죄책감 그리고 허무함이 폭풍처럼 나를 덮쳤고 이는 익숙했지만 결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의미했으니까.

“하아... 이런 미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고 감성이 모조리 사라져 버린 지금 이 순간 나의 심장은 차갑게 식어버렸고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냉철했다.

그렇다고 해서 처참함을 필두로 한 감정들까지는 떨쳐내지 못했지만.

몽정이라니. 몽정이라니! 나이 서른을 코앞에 두고 몽정이라니!

하아. 세상은 썩었어.

*

[테일러 노우웰 아시아 투어 콘서트 개최지로 꿈 아레나가 선정되었다. 테일러 노우웰은 5월 초 꿈 아레나에서 일주일 동안 무려 4차례의 공연을 펼칠 예정이며 관련 예매가 발매 10분 만에 모두 매진되어 세계 최고 여가수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한편 40만 명에 달하는 관련 예매 자들의 대략 50%가 일본, 중국, 대만, 중동, 호주 국적의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꿈 아레나가 명실상부 한류 월드 테마파크의 랜드 마크로서 해당 테마파크의 코어 콘텐츠를 생성해내는 데에 성공했다는, 자리를 잡았다는...... 메탈리스트, 핫 플레이 등을 포함한 해외 스타들과 아미가, 트렌디, 마이식스 등 국내 톱 가수들의 공연에서 지역 경제의 폭발적인 부양을 경험한 고양시는 이런 긍정적인 호재들과 이번 테일러 노우웰의 공연을 계기로 꿈 아레나와 한류월드 사업에 정책적 편의와 시 차원에서의 지원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꿈 아레나의 거듭되는 호재에 한류월드 내의 다른 사업장들도 연이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호텔 백제의 한옥 게스트 하우스와 특급 호텔은 폭발적인 관광객 수요로 인해 연일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있으며 한류월드에 본사와 그 인근에 직원 전용 임대 아파트를 둔 JJ E&M은 한류월드와 연계된 사업발주로 자사 브랜드 이미지 향상과 사업 연계성을 높이는 데 성공하여......]

4천억에 달하는 투자금은 무척이나 큰 금액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는 국가 전체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다지 큰 금액이라 볼 수 없다. 단순히 한해 문화진흥을 목적으로 국가가 지원하는 금액만 봐도 수조원에 달하는 게 현실이니까.

하지만 그 4천억이 이뤄낸 성과는 국가에서 수조원의 금액을 들여 육성, 지원하는 사업보다 월등했다.

일개 개인이 4천억에 달하는 사업을 주도했고 이는 국내에서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호텔과 문화사업 기업의 보다 큰 투자를 이끌어 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 한류월드를 명실상부 한류 콘텐츠 산업의 중심지이자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만들었고 이에 따른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데 성공했으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능케 만든 시금석이자 시발점이 된 개인, 문화대통령이라 불려도 손색없을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강지혁을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쾅]

바로 눈앞의 중년인처럼.

============================ 작품 후기 ============================

예약 아이템 연재분입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감사합니다.

이번화부터 네이버 동시연재 분입니다. 네이버에서도 읽으실수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