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79화 (379/502)

00379  2019  =========================================================================

#379

시원한 물줄기가 머리카락을 타고 그녀의 나신으로 흘러내렸다.

[싸르르]

군살하나 보이지 않는 나신. 물줄기와 함께 쓸려 내려가는 거품에 그녀의 은밀한 곳곳이 드러나기 시작했는지라 이는 무척이나 매혹적인 광경이 되기에 충분했다. 다만, 이런 광경이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그녀 개인의 공간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뭇 남성들의 아쉬움을 지극히 자극할 테지만.

“언니! 언니 어디 있어?”

그렇게 한창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거품을 쓸어내리며 상념에 빠져있던 그녀는 이내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감겼던 두 눈을 떠야만 했다.

“어? 화장실 잠겨 있네? 언니 화장실에 있어?”

그녀의 둘도 없는 동생.

최정상급 걸 그룹으로서 이제는 연기자로서의 계단을 밟아가려던 터라 그녀의 동생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를 찾아오고 있었다. 물론 이전부터 자매의 우애가 돈독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크고 작은 일 때문에 데면데면했던 적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는 무척이나 진일보한 자매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언니, 샤워 중이야. 거실에서 기다릴래?”

“응! 언니! 아참! 언니 밥 먹었어? 나 초밥 사왔는데!”

“아직 안 먹었어.”

“잘 됐다. 그럼 미리 준비해놓고 있을 테니까, 금방 나와!”

무척이나 보기 좋은 광경임이 틀림없었다. 그녀의 아빠와 엄마가 보았다면 절로 흐뭇하다는 듯 미소를 내보였을 정도로.

하지만 요즘 들어 아니 꽤나 오래전부터 동생을 보는 그녀의 얼굴은 왠지 모를 슬픔을 담고 있었다. 웃음이 떠나가지 않는 자매로서 동생의 투정 아닌 투정을 받아주며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그녀의 그런 웃음에는 무엇인가가 걸려있었다. 꽤나 깊숙이.

*

“선 베드 2개는 영국사람, 나머지 선 베드 3개는 미국사람 일행이 다 채웠고 테이블은 일본 사람들 2명만 있어. 나머지 테이블 3개는 다 비었고.”

“총 7명?”

“어. 7명.”

시식회와 음악 마케팅이 효과를 일으켰는지, 공연시간이 다가오자 어느새 7명의 손님을 맞이하게 됐다. 물론 이 7명이라는 숫자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선 베드 5개, 테이블 4개의 식당이 아직까지 한산해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전부 과일 주스 하나씩 시켰고 김치전, 해물파전에 불고기 버거까지 완전 많이 시켰어! 야! 우리 오늘 저녁 완전 맛있는 거 먹자!”

“그래, 그래. 저기 해변 끝 쪽이 그렇게나 일몰이 아름답다고 하더라. 오늘은 다 같이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그래보자. 삼촌이 오늘 온 손님들 또 오게끔 아주 맛있게 음식 만들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산과 과일 음료 담당인 성준과 요리를 맡고 있는 주훈 삼촌의 얼굴은 밝았다. 공연을 볼 생각에서인지 각종 음료들과 메인 음식들을 꽤나 풍성하게 시킨 손님들 덕에 장사의 맛을 깨달은 듯했기 때문이다.

“삼촌 죄송해요. 주문 많이 밀려서 제가 도와드려야 하는데...”

“지혁아, 삼촌 걱정하지 말고 잘하고 와. 어차피 재료 준비도 다 해놔서 이제는 만들기만 하면 되니까, 삼촌 하나도 안 힘들어.”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음식 만드는 모든 일을 주훈 삼촌에게 떠맡겨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내 삼촌이 괜찮다는 듯 잘하고 오라며 등을 두드려준 덕에 꽤나 산뜻하게 주방을 나설 수 있었다.

물론 그런 내 얼굴은 서린의 화장품을 빌어 완성된 우스꽝스런 메이크업이 땀과 함께 덕지덕지 묻어있었지만.

“Ladies & Gentleman. Welcome to our restaurant! I'm a mr. joker, and work here as a assistant cook & clown singer. (신사숙녀 여러분. 저희 식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보조 요리사이자, 광대 가수인 조커입니다.)”

[호우!]

[휘이이익!]

마이크도 없고 기타도 없는 상태에서 의지할 것이라고는 내 목소리와 핸드폰 반주뿐이었지만, 자신 있었다. 어느새 선 베드에 자리를 잡고 있던 관객들도 내부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고 내 목소리는 이들 모두에게 닿지 못할 정도로 미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희 식당을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먼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음식은 입맛에 맞으시나요?]

[휘이익!]

[물론이죠!]

자,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첫 번째 곡은 Uptown Funky Music입니다. 맛있게 식사하시면서 들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마이크도 없이 그저 근처에 있는 테이블에 살짝 기대며 모두를 향해 내 목소리를 건네기 시작했다. 날씨가 더워 기진맥진해졌지만 내가 등장한 이래 수많은 이들의 박수 소리와 함성 소리는 충분한 활력을 선사했고 이에 나의 목소리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지난날, 아주 오래전 했었던 길거리 공연 때를 떠올리며.

*

마이크를 들고 안 들고의 차이가 꽤나 크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나도 가수는 가수인가 보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한 손에 든 것뿐인데 어색하기 그지없던 손이 자연스레 움직이며 마음에 일종의 안정감을 안겨다주었기 때문이다.

“아, 아. Can you hear me?”

물론 저 멀리서 복잡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형식 삼촌을 보자니 더욱 기분이 좋아진 탓도 있겠지만.

첫 곡을 신나게 부르고 덩달아 호응이 뜨거운 관객들의 모습에 힘입어 다시 다음 노래를 부르려던 찰나에 형식 삼촌이 등장했다. 그것도 꽤나 복잡한 얼굴로.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마이크 장비와 함께 보다 즐겁게 다음 곡을 준비하는 상황 말이다.

“I can't speak english. ごめんなさい。(영어를 못합니다. 죄송해요.)”

[제 목소리 잘 들리시나요? 레이디?]

[어, 어? 일본어...]

어쨌든 한껏 신이 나는 노래인 Uptown Funky Music으로 식당 안 분위기는 무척이나 좋았고 나 또한 팬 서비스를 한껏 발휘했다. 물론 우스꽝스러운 광대얼굴에 저들은 내가 가수 강지혁 인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자신이 강지혁이 아닌 것은 아닐 테니까.

[어떤 고마우신 분의 도움으로 마이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너무 좋네요. 그럼 이 기세를 몰아서 다음 곡을 불러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여기 일본 손님들을 위한 일본 노래를 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제목은 ‘지금 만나고 싶어’입니다.]

[와...]

[지금 만나고 싶어? 우와...]

그나저나 슬슬 사람들이 하나, 둘 입구 부근에서 가게 안을 지켜보기 시작하고 심지어 멀리서 해수욕을 하며 촬영을 하러 온 건지 휴양을 하러 온 건지 모를 행동을 하던 제작진들도 가게 안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본격적인 라이브 카페가 된 듯 했다.

더욱이 스태프들 같은 경우 우리들 식당에서 점심을 때울 생각인지 연신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니 오죽할까.

[처음 만난 날 아직도 기억하나요. 지나가는 날의 추억을 나는 아직 잊지 않고 있어요. 당신과 함께했던 모든 것을 잊지 않고 싶어서......]

혼자서 모든 일을 하고 있는 주훈 삼촌이 걱정됐지만 그래도 멀리서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형식 삼촌이 보이자마자 기분의 뛸 듯이 좋아져버렸다.

어이, 거기 PD아저씨. 할인 안 해주니까, 정가로 돈 내고 드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풋.

*

정오 타임에 이어 진행된 오후 3시 타임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가게에 CLOSE 팻말을 걸게 되었다.

손님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 7명의 손님들을 시작으로 많지는 않더라도 심심치 않게 손님들이 한 명, 두 명씩 모습을 드러냈고 이는 오후 3시 공연 타임 때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20명에 가까운 스태프들이 점심을 이곳 식당에서 때웠으니 오죽할까. 그저 흐뭇하고 또 흐뭇할 뿐.

[다음에 또 오세요!]

어쨌든 공연이 끝나자마자 CLOSE 팻말을 건 것은 손님이 없어서가 아닌, 재료가 모두 떨어졌기 때문이다. 뭐, 이것도 스태프들이 워낙에 잘 팔아줘서 그런지. 후훗.

“삼촌 많이 힘드셨죠?”

“고생은 무슨. 지혁이 네가 공연하느라 고생했지. 과일 주스 만든 성준이랑 서빙한 서린도 고생 많았고.”

그렇게 마지막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떠나자 비로소 모든 일행이 테이블에 모여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오늘 하루 어느 누구 하나 바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었는지라 모두의 얼굴은 꽤나 초췌해져있었다. 특히나 쉴 새 없이 음료를 만들었던 성준 녀석과 모든 음식들을 담당했던 주훈 삼촌은 더욱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고생들이 이어진 성준 녀석의 말에 씻겨 내려가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과일 주스가 총 15개, 맥주가 15개 그리고 생수가 10개 나갔고... 어디보자... 불고기버거 12개, 해물파전 15개, 김치전 15개가 팔렸으니까...”

녀석의 손에 가득 차 있는 영수증들과 더불어 지폐다발들이 어제만 해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런 풍경들과 기분들을 우리들에게 선사했으니까.

“우와... 많이 팔렸다...”

솔직히 오늘 순수 관광객 손님은 14명 남짓한 숫자여서 그들만이 식당을 이용했다면 이 정도로 많은 메뉴를 판매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어제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재료들을 다 사용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 스태프 분들이 도와주셔서 그런 거지. 그렇죠? 김, 형, 식 PD님?”

“그, 그렇네요. 하하... 흠...”

그래서 더 통쾌했다. 형식 삼촌의 떨떠름해 하는 모습부터, 스태프들을 향해 눈치를 주는 모습까지 전부.

“대, 대박!”

“결과 나왔어? 얼마나 벌었니? 오늘?”

“얼마 나왔어요? 성준 오빠?”

그렇게 한참 그런 형식 삼촌을 보며 기분 좋아하다보니, 어느새 성준 녀석이 오늘 정산을 끝냈나보다. 대박이라는 말을 내뱉은 걸 보니 말이다.

“그, 그게...”

“얼만데 그래? 뭘, 그렇게 뜸을 들여?”

그런데 잔뜩 들뜬 얼굴로 말을 잇지 못하는 녀석 때문에 나를 포함한 나머지 일행의 얼굴이 답답함을 드러냈는지라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아니, 저 녀석 지금 무슨 예능 프로 찍는 줄 아나, 뜸을 왜 이렇게 들이는 거야? 어? 아! 지금 예능 프로그램 찍고 있는 중이었지?

“야! 이리 가져와봐! 답답해 죽겠네!”

어쨌든 너무나 뜸을 들이는 녀석의 태도가 답답해 계산한 종이를 뺏다시피 가져와 눈앞에 두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지혁아 얼만데 그래?”

“오빠...?”

나 또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이게 말이 돼?

“252만...”

“어?”

“252만 루피아에요. 오늘 매상. 팁까지 합치면 255만 루피아고요!”

“뭐? 뭐라고? 지혁아?”

“진짜요?”

힘들게 입을 연 나의 말에 대한 나머지 일행들의 대답 또한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두들 입을 쩍 벌리며 놀라움을 드러냈으니 말이다.

어제 저녁 개인 사비를 이곳에서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기 전에 일행들이 다 같이 핸드폰으로 이곳 섬에 자리 잡은 식당들의 메뉴판을 살펴봤었다. 가게 메뉴 가격을 결정하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본 목적은 일행들과 다 같이 저녁에는 맛있는 것을 사먹자고 얘기를 나눈 후였기 때문에 뭐가 맛있는 지, 뭐가 유명한 지를 살펴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들은 이곳의 물가에 대해서라면 꽤나 빠삭하게 알 수밖에 없었다.

로브스터 요리가 1 킬로그램에 60만 루피아, 왕 새우 요리가 1 킬로그램에 23만 루피아. 가장 비싸다고 할 요리들이 이 정도라는 점 그리고 나머지 생선 요리나 고기 요리들도 비싸봤자 10만 루피아를 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말이다.

“선배님! 저희 로브스터 먹어요! 로브스터! 킬로그램 당 60만 루피아였으니까... 거기에 100만 루피아 정도 쓰고 나머지가......”

“우와... 그럼 우리 오늘 저녁은 안 만들어먹고 밖에서 먹을 수 있는 거에요? 해 지는 거 보면서?”

“그래, 그래. 그렇게 하자. 서린이랑 성준이 말대로 오늘은 너무 힘들었으니까, 맛있는 걸로 외식하자. 외식!

그래서 지금 들려온 255만 루피아는 너무나도 대단한 매상임이 틀림없었다. 적어도 우리가 오늘 저녁에 원하는 음식들을 모두 쓸어 담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그런 우리들을 유일하게 못마땅하게 보던 이가 이런 상황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저기 잠시만요?”

갑작스럽게 우리들의 기쁨에 파고드는 목소리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왠지 모를 불길함도 느껴졌고 말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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