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75화 (375/502)

00375  2019  =========================================================================

#375

“부엌이 좀 작아도 깔끔하네. 가스불도 세 군데나 있어서 요리할 때 걱정할 필요도 없겠고. 뭐, 에어컨이 없고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야한다는 게 조금 힘들 것 같긴 한데... 뭐 그건 다른 가게들도 마찬가지니까. 아참! 성준아!”

“네, 선배님.”

“바깥에 테이블들은 어때?”

“해변에 선 베드가 5개 정도 있고요 실내... 음... 실내라고 하긴 좀 그런데 어쨌든 음료 만들고 주문 받는 곳 앞에도 테이블이 4개 정도 있어요. 다들 상태도 괜찮고요.”

막상 제작진들로부터 안내받은 가게가 꽤나 마음에 들어 절로 기대가 되었다. 해변 바로 앞에 자리 잡은 가게 위치도 위치거니와, 주변 풍경 그리고 부엌과 기타 가게 인테리어까지 앞으로의 촬영이 잘 되리라는 것을 드러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서빙하게?”

“네?”

그런데 서빙 역할을 맡은 서린이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뒤부터가 문제였다. 괜히 핫 스타가 아니라는 듯 제법 노출도가 있는 복장으로 갈아입은 서린의 모습에 스태프들은 물론이고 같이 부대끼며 일을 하게 될 성준 녀석의 눈초리마저 꽤나 심상치 않았으니까. 뭐, 나야 부엌에서 종일 요리 보조역할만 해야 했는지라, 처음 봤을 때만 쾌재를 불렀을 뿐 그 후에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지만.

“크흠... 괜찮겠니? 네 이미지도 있고...”

“괜찮아요. 너무 덥기도 하고 이 정도는 괜찮다고 회사에서도 그랬구요.”

“그래? 그럼 뭐...”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훈 선배님.”

뭐, 생각을 조금 해보니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주훈 삼촌이야 어차피 주방에만 틀어박혀 있을 것이라 별 상관이 없겠지만, 다른 제작진이나 성준 녀석은 대놓고 서린을 마주하기가 조금은 창피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 자명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서린이 비키니를 입었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볼륨감이 절로 드러나는 꽉 끼인 탱크톱이나 팍 패인 옷만을 입은 것 또한 아니었다.

다만, 하의실종 패션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짧은 반바지로 인해 훤히 드러나는 날씬한 다리와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올 때면, 넉넉한 품의 상의가 하늘하늘 펄럭일 때면 절로 드러나는 탱크톱 상의가 묘하게 남 심을 울렸을 뿐.

“지혁아 여기 냉장고 위치 좀 옮기자. 여기보다는 저기 안쪽으로 두는 게 나을 것 같으니까.”

“네, 삼촌.”

어쨌든 다른 생각을 할 새 없이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식당을 운영해야 했기에, 서둘러 주훈 삼촌의 일거리를 거들게 되었다. 위치를 조정하고 전체적으로 청소를 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재료를 구할 수 있는 가게 또한 찾아봐야 됐고 최종적으로 가게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 또한 나눠봐야 했으니까.

*

제작진 측에서 꽤나 신경 써서 마련해준 티가 나는 숙소에서 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뭘 그렇게 분위기 잡고 있냐?”

“웬일이냐? 네가?”

“뭐, 내 방은 테라스가 없잖아. 그래서 왔지. 맥주는 빈손으로 오기엔 조금 아쉬워서?”

때마침 맥주를 들고 다가온 성준 녀석의 기가 막힌 센스에 감탄하며 다시금 밤하늘에 가득 피어있는 별에 시선을 두었다.

“기가 막히네.”

“맥주? 아니면 밤하늘이?”

“둘 다지. 인마.”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에 내가 휴양지에 와있다는 것이 더욱 실감났다. 목 넘김 좋은 맥주에 감탄도 했고 말이다.

“서린이 안 됐더라. 네가 좀 도와주지?”

그런데 녀석이 갑작스레 맥주를 들고 내 방을 찾아온 것이 단순히 테라스 때문만은 아닌 듯 했다.

“조심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해가 잘 안 됐다.

남자 갈아치우는 기계.

하루라도 섹스를 안 하면 못 배길 정도로 음란한 여자라는 소문.

가수들과 연기자들 사이에서 동물의 왕국을 만들고 있을 정도로 자유연애주의자라는 소문.

과거 일진 출신으로 담배와 섹스, 술 등을 이미 학창시절 때부터 섭렵해왔다는 소문.

연예계 진출 전에 텐 프로와 같은 술집에서 일했다는 소문.

차마 입에 담기 힘든 것들을 제외한 소문들이 이 정도라며 내게 주의를 주던 녀석이 도리어 서린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어떠냐며 나를 떠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게...”

녀석 또한 그런 내 의아함에 멋쩍은 듯 머리를 긁으며 나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녀석의 목소리는 다행히 나의 그런 의아함을 해소시킬 만한 명쾌함을 담고 있었다.

“그게... 울고 있더라고.”

“뭐?”

“내 옆방이잖아. 그런데 창문을 여니까, 우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리더라고.”

서린이 혼자 울고 있다는 성준 녀석의 말에 나 또한 놀라기는 했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 하루 웃음을 내보이며 쾌활하게 다녔던 서린이지만 그 모든 게 괜찮은 척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말대로 이 바닥에서 도는 소문들 중에 100% 진실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없는 것 같네. 아직 시기상조일 수는 있겠지만.”

“자식이 신빙성 있다고 할 땐 언제고?”

“뭐, 그거야... 워낙 파다한 소문이었으니까.”

솔직히 괜찮은 게 말이 안 됐다. 남자라면 혹시 모를까, 여자인 입장에서 그런 댓글들의, 성희롱이라 봐도 전혀 무리 없는 악플들을 감내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원래 그렇게 감성적인 인간이었냐? 아닌 걸로 아는데? 나는.”

“뭐래, 나 완전 감성적인 인간이거든?”

“그런 놈이... 아니다.”

감성적은 무슨 얼어 죽을. 그런 놈이 자기 좋다는 여자 몇 번 자고 바로 냉혈한으로 변해서 연락이고 뭐고 다 끊냐? 뭐, 그게 나 때문이어서 더 말해봤자 내 욕하는 것 같아 조금 그렇긴 하지만. 쩝.

“그래도 의외네. 내가 이런 말 꺼내기 전에 너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뭐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냥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어. 그리고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고.”

어쨌든 녀석이 건네준 정보를 안 들었다면 모를까, 서린이 방에서 혼자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괜스레 신경이 쓰이게 됐다. 설마하니, 그 나이에 혼자 타지에 왔다고 울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고 그 이유를 굳이 추측하지 않더라도 너무나도 훤히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취했던 태도를 바꿀 생각은 없었다.

“나한테 손해 볼 일도 없고 다른 당사자도 괜찮다는 데 내가 굳이 나서야 할 이유는 없잖아. 오히려 본래 계획이 더 좋은 결과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나를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가십성 루머가 기사로 개제되는 이유, 아니 나를 포함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끊임없이 루머와 가십에 둘러싸이는 이유가 바로 오늘의 대처를 통해서 드러났으니까.

“가진 게 많아지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든,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일이든 아니면 내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일이든 모두 말이야.”

“그럼 아니야?”

“아니 맞아. 다 할 수 있어. 자기 능력만 되면.”

“그런데?”

“별 것 아닌 일로 자꾸 잡음이 생기는 게 싫은 거야. 신경 쓰게 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이기도 하고.”

나와 관련되어 기사라도 한번 나면 단번에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그 관계된 일이 부정적인 일이든 긍정적인 일이든 상관없이.

“뭐, 내 자랑 같아서 조금 그렇지만... 마음먹으면 기사를 바로 내리라고 할 만한 영향력을 가질 수도 있고 또 굳이 그럴 노력 없이 그냥 민재 삼촌한테 말해서 반박기사 내달라고 할 수도 있어. 그럼 단번에 사태는 정리될 거고. 그런데 그러지 않은 이유? 간단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신경 쓰기 싫어. 나한테 손해도 없고 가만있어도 해결될 일, 내가 왜 나서? 그리고 이건 계륵이야. 계륵.”

“계륵?”

“내가 나서든, 안 나서든 의미가 없어. 지금 내가 나선다고 쳐. 그럼 뭐가 달라지는데?”

“서린이한테 가해지고 있는,”

“그래 악플들은 사라지겠지. 그런데 내가 지금 안 나섰다고 그 악플들이 생긴 걸까?”

“뭐?”

“어차피 악플들은 어느 기사든 있어. 너도 말했잖아. 서린이 이미지 안 좋다고. 그럼 이미 악플은 예견 된 거야. 뭐가 됐든 꼬투리 잡는 정신병자들은 항상 있으니까.”

“흠...”

단적으로 내가 출연했던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방영되기도 전에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는 점 그리고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는 명탐정 K같은 경우 벌써부터 광고가 역대 최고가로 완판 되었다는 점에서 이 같은 효과가 무척이나 큼을 쉽게 알 수 있는지라 오히려 이를 이용해 서린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려는 ANC의 대응은 어떻게 보면 탁월했다.

뒤 끝없는 방법으로 국제적인 인지도를 한 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고 이는 연예계에서 밥 벌어먹고 살 서린에게 앞으로 큰 힘이 될 테니까.

“네 말이 이해는 되는데 꽤 삭막하네. 이 바닥이 다 그런 거 모르지는 않았지만.”

“내 위치가 높아질수록, 가진 게 많아질수록 내 자신만을 바라봐주는 사람이 사라져. 그래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도 어렵고 또 나 자신도 사람을 피하게 되고.”

“하긴... 나도 요즘에 그러는데 너는 얼마나 그러겠냐. 쩝... 내가 괜한 얘기 했네...”

“그냥 새로운 사람을 대할 때 가벼워지는 거야. 어쩔 수 없이. 뭐, 겉으로 그걸 티낸다는 건 아니야. 그저 어느 정도의 선을 둔다는 거지.”

사람을 대할 때 진심을 다해 대한다. 군대를 막 다녀왔을 때의 나였다면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하지만 사람은 세월 앞에서 변할 수밖에 없는지라, 나 또한 세월에 변해버린 내 자신의 위치, 재력, 명성 그리고 이로 인해 바뀌어버린 주변 환경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어만 갔다.

“누군가를 위해서 모든 걸 걸고 아니, 꽤나 중2병처럼 행동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후우, 그런 거 못할 짓이더라고. 효과 유무와 상관없이 괜히 구설수만 오르고. 뭐, 결과가 좋았다면... 또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아 모르겠다.”

너무나도 자연스레.

“나한테 웬만큼 손해가 있지 않은 이상 그냥 무시하는 게 최선이야. 그 같잖은 힙찔이들이나 일주일에 몇 개씩 튀어나오는 가십성 루머기사들처럼. 그래 툭 까놓고 그때 내가 힙찔이들 도발 아닌 도발에 넘어갔으면? 그럼 그 놈들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뭐, 사과하고 그랬겠지...”

“아니, 그 놈들 보나마나 꽤 잘나가게 됐을 거야. 음악적인 걸 떠나서 일단 내가 신경 쓴다는 걸 영양분 삼아 인지도도 쌓고 내 안티들도 그 놈들 띄우느라 분주히 움직였을 테니까.”

이야기가 생각 외로 길어졌고 또 깊어졌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뭐, 내가 중2병 걸린 사춘기도 아니잖아? 생각 없이 그냥 나 건든다 싶으면 무조건 들이박는. 돈이나 영향력 그런 능력들 가지고 하찮은 일에 하나, 둘 일일이 쓰는 거 그런 건 주목받고 싶은 생각 없는 놈들이나 그렇게 생각하는 거고.”

“흠...”

“이런 거 가지고 호구 같다 그러면 할 말은 없지. 당장 눈앞 일만 생각하는, 가진 게 많은 사람들 입장에서 서보지 못한 사람들의 한심한 생각일 테니까.”

후우. 이국의 정취라는 건 사람을 감성적으로 또한 말 많은 주정뱅이로 만드나 보다.

“뭐, 나도 참는데 한계라는 게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맥주나 한 캔 더 가져와. 인마. 네 색시 걱정만 하지 말고.”

“새, 색시라니, 이 자식이!”

에라, 모르겠다. 촬영이고 뭐고 맥주나 한 캔 더 마셔야겠네. 쩝.

*

“이거 망한... 아니 계속 촬영해도 되는 거에요? 삼촌?”

“어, 어? 흠...”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것이 독이 된 것 같다. 누가 봐도 장사가 잘 될 것 같은 가게 모습에 재료들을 왕창 사놨는데 손님이라고는 날 파리들 뿐이었으니까.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데? 여기 아무래도 번화가랑은 거리가 먼가봐.”

어느 정도 촬영에 개입 할 거라 생각했던 제작진들이 고정 카메라를 여럿 설치해놓고선 아예 가게에서 벗어나 있었는지라 이 모든 상황을 오롯이 우리들이 감내해야 했기에 더욱 지금의 고요함을 참기가 힘들었다.

“어쩐지 가게도 꽤 넓고 선 베드 자리도 좋더라니...”

“후우... 지나가는 사람들이라도 있어야 뭘 해볼 텐데.”

물론 손님이 없고 경치 좋은 이곳에서 일도 안하고 있으면 왠지 정말로 휴양을 온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겠지만, 프로그램을 생각하니 마음이 절로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럴 수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보자. 점심 때 되려면 아직 한 두 시간 정도 남았으니까.”

“네, 선배님.”

손님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괜찮으련만, 그마저도 꿈같은 얘기였는지라 그렇게 우리들은 후덥지근한 날씨에 지쳐가고 있었다. 언제 올지 모를 손님들을 기다리며.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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