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71화 (371/502)

00371  2019  =========================================================================

#371

말이 6시간이지, 실질적으로 준비할 시간은 그 시간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아무도 없어요. 그냥 들어오시면 돼요.”

다만 집 안에 낯선 이를 그것도 촬영 팀까지 들여야 한다는 점까진 예측하지 못했지만.

“주훈 삼촌이랑 전화해서 필요한 물품들 좀 적어주세요. 거기 종이랑 펜 있으니까요.”

“네? 네.”

주훈 삼촌은 집이 경기도고 성준이는 숙소가 강북 쪽인지라 상대적으로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반면 아직까지도 같은 그룹 멤버들과 회사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산다는 서린과 홀로 사는 나는 사는 곳이 강남인지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저는 짐 좀 싸고 있을 게요.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따로 불러요.”

더욱이 서린 같은 경우, 그녀 자신만 몰랐을 뿐 여자라는 점을 고려해서인지 제작진 측이 미리 그녀의 회사 측에 출국 날짜를 알려주어 관련된 준비를 다 끝내놓은 상태라고 하니 오죽할까.

[거기에 한식당도 없고 한국 마트도 없다니까, 양념장 같은 것만 일단 챙겨야 돼.]

“네? 네. 그럼 어떤 양념장을...?”

어쨌든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는지, 짐을 싸는 와중에 들려오는 서린과 주훈 삼촌의 통화내용을 들어보니, 그나마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듯 해 마음이 조급해지지는 않았다.

뭐, 이러다가 실수한번 하게 되면 그때부터 아차 싶어 다급해지겠지만.

“간장은 국 간장, 진간장이랑... 된장, 고추장이요? 네, 네. 그리고 김치랑...... 네, 네. 그럼 그거 사놓고 공항에서 봬요.”

“통화 다 끝났어요?”

“네? 네...”

“그럼 일단 장 보러 가죠. 문 닫기 전에.”

짐이라고 해봤자 옷가지들과 스킨, 로션, 선크림 정도가 전부였는지라 다시금 집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오래지 않아서였다.

[아직 프로그램 기획 발표가 안 나서 보안 때문에... VJ가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쫒아 다니면서 찍을 테니까. 되도록 촬영 중이라는 티가 나면 안 돼. 알겠지? 뭐... 조금 불편해도 방송 첫 화랑 예고편에 꼭 필요한 장면이니까, 너무 그런 표정 짓지는 말고. 응?]

그런데 아직 제작발표회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지금 이 순간 불편함을 초래했다.

“미안해요. 많이 불편하죠?”

사전 제작 프로그램이고 아시아 지역 수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만큼, 편성 일자가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 때문에 제작 발표회는커녕, 프로그램 제작 기획 사실 조차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는지라 대놓고 촬영 팀이 우리들을 찍고 돌아다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와 스태프들을 방패삼아 인파들을 헤집고 다니려 했던 당초 계획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조금만 참아요. 안 그러면 주변 사람들한테 들키니까요.”

“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장류 코너에서 살 것만 빨리 사면 5분도 안 걸릴 거에요. 바로 엘리베이터타면 되니까.”

이럴 거면 컨시어지 서비스를 이용할 걸 그랬다. 바로 장을 보고 공항으로 가려했기에 직접 나선 것이고 스태프들을 방패삼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컨시어지 서비스를 외면했던 것인데 지금 상황을 보자니 이는 그다지 좋지 못한 선택이 된 듯 하니까.

“차에 먼저 가 있어요. 이거 들고. 계산하고 갈게요.”

“네?”

“제작진 차 알죠? 거기에 가 있어요.”

다행히도 살게 어차피 장류가 전부였는지라, 1층 식품 코너에서 모든 것을 구할 수 있어 예상대로 장을 보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고작해야 5분도 안 되는 이 영상가지고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쨌든 들키지 않고 장을 봤으니 다행이면 다행인지라 그녀를 먼저 보낸 뒤 계산대 줄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모두 다 해서 124000원입니다. 결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레지던스 카드로 할게요.”

“아! 여기 거주민이시나,”

“서둘러 주실래요? 제가 지금 조금 바빠서...”

“네? 아!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거 나중에 비용처리는 해줄지 모르겠다. 당연히 내가 결제한 것인 만큼 보전 받아야하는 게 마땅하지만, 그러기엔 비용자체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 달라고 하기도 애매했으니까.

후우. 에라 모르겠다.

*

“재료들은 다 잘 사왔네.”

“아, 그래요? 다행이네요.”

“얼른 짐 부치자.”

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주훈 삼촌과 성준 녀석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시간 오전 1시, 지금 시각 10시.

출발 시간까지 3시간가량 남았는지라 자칫 여유가 있다 여길 수도 있겠지만, 마냥 면세점을 돌아다니거나 미리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거대한 인천국제 공항일지라도 조금은 한산한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그런 모든 것을 감안하고 있다할지라도 보안 때문에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김치전, 파전 그리고 거기도 해물이 있을 거니까 해물전도 해보는 걸로 하고 전만 하면 조금 그러니까, 무게감 있게 불고기 요리도 해보고. 오케이?”

“하하... 뭐 저야 그냥 보조이니까, 그렇게 하신다면 하는 거죠.”

그래서 일단 짐을 부쳐놓고 제작진 측에서 따로 마련한 차 안에서 앞으로의 일들을 논의하게 됐다. 아무래도 한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이번 프로그램의 메인 콘텐츠인 만큼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 그리고 이미 이곳에서 준비한 재료들을 예상하여 메뉴를 결정하는 것이 최우선 사항이었으니까.

“다녀오세요.”

“그래, 그래. 금방 다녀올게.”

역시 주훈 삼촌이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앞이 깜깜했는데, 순식간에 메뉴를 결정하고 따님과 통화를 한다고 차에서 잠깐 벗어난 주훈 삼촌을 보고 있자니 대단하다고 밖에 생각이 안 들었다.

뭐, 그래서 나 또한 한결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한편에 주차되어 있는 내 차에 들어가 잠깐의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제작진 측이 제공한 차에는 고정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마음 편히 무엇인가를 하기란 불가능과 같았기 때문이다.

“차 좋네.”

“뭔데?”

그런데 그 잠깐의 휴식은 갑작스럽게 조수석에 탑승한 녀석으로 인해 본래 의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휴, 저 녀석이.

“무슨 짐이 저렇게 많아?”

“열흘이나 가는데 저 정도는 가져가야지.”

여자인 서린은 그렇다 쳐도 남자인 주제에 자기 몸뚱어리만한 캐리어를 들고 나타난 성준 녀석의 등장에 감았던 두 눈을 뜨는 수밖에 없었다.

꽤나 설레는 모양인지, 얼굴 표정부터 목소리 톤 그리고 행동, 하나하나에 들뜬 기색이 역력한 녀석이었기에, 그런 녀석으로부터 휴식을 쟁취할 자신이 없었으니 말이다.

“검색해봤어?”

“뭐? 뭘, 검색해?”

“우리 가는 데 말이야. 코룬 섬인가? 거기.”

“아...”

“거기 아예 안 나오던데? 한국 사람들이 모르는 데인 건 확실한 것 같아. 크크”

“뭔데? 그 웃음은?”

공항에 가장 늦게 도착한 주제에 벌써부터 우리가 갈 코룬 섬에 대해서 검색해 본 듯한 녀석의 말에 고개가 자연스레 흔들려졌다.

그거 할 시간에 자기가 할 일이나 검색해보지 그랬냐? 이 자식아?

“보니까, 거기는 현지인들보다 관광객들이 많다더라...”

“근데?”

“엄청 더워서 그냥 다 벗고 다닌다던데? 비키니가 일! 상! 복!”

속된 말로 누가 보면 아주 발정 난 것처럼, 음흉한 얼굴표정으로 비키니를 연호하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말문이 턱하니 막혔다. 물론 나 또한 남자로서 혹한 면도 없지는 않았지만, 녀석처럼 저렇게 대놓고 비키니를 연호하며 이에 대한 기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자신이 내게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 그 얘기하려고 여기 왔냐? 여기 카메라 없어서?”

“뭐, 그런 것도 있고. 아무튼 기대되지 않냐?”

“뭐가? 또?”

그런데 녀석이 기대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비키니뿐만이 아닌 듯 했다. 아니 앞선 비키니 타령은 그저 사이드 디시에 불과한 듯 했다.

“서린도 입지 않을까?”

“뭐?”

“아니, 엄청 덥데. 거기.”

[탁!]

“앗! 야! 왜 때려! 이게 영화 찍으면서 배운 거 나한테 써먹네!”

“에라!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과일 음료 어떻게 만들지나 생각해. 이것아. 너가 과일음료 담당해야 되는 거 알지?”

“혼자 고상한 척 하기는. 너도 기대하고 있잖아?”

녀석의 입에서 서린이라는 이름이 흘러나오자, 본능적으로 그와 관련된 이미지를 상상하긴 했다. 나 또한 남자이고 서린은 그만큼 젊은 한국 남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는 여배우이자 아이 돌이었으니까.

“무슨 비키니야. 그럴 가능성 제로니까 꿈 깨라.”

“비키니는 아니더라도 기대 된다. 거기 엄청 더우니까.”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주된 콘텐츠가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전무하다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없었기에 이에 대한 걱정이 지금 내 마음속에서는 가장 우선이었는지라 남자의 본능을 일깨우는 녀석의 말을 그저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사심 있는 너나 기대 많이 하시고요. 적당히 헤헤 거리고 와라. 나 먼저 간다.”

“야! 사심은 무슨.”

“사심 아니면 뭔데? 그 헤픈 웃음은.”

그런데 나의 휴식을 방해한 녀석을 피해 다시금 제작진 차로 이동하려던 내 발목이 잡혀버리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성준 녀석의 말로 인해.

“너 소문 몰라?”

“뭐?”

“이게이게, 기껏 홀리지 말라고 도와줬더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

꽤나 노골적이어서 제작진은 몰라도 나뿐만 아니라 주훈 삼촌까지 성준 녀석의 서린에 대한 사심을 대부분 눈치 채고 있는 듯 했는데 막상 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그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뒤엎는 것인지라 다시금 자리에 앉는 수밖에 없었다.

“소문 안 좋잖아.”

“넌 도대체 그놈의 소문들은 어디서 다 듣고 다니는 거냐? 할 일 없냐?”

도대체 이런 소문은 어디서 듣고 다니는 지.

예전 Are You Marry Me 제주도 촬영 때,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이에 대한 소문을 꿰뚫고 있었던 성준 녀석을 기억하기에 조금은 의심하게 됐다. 이 녀석, 가수가 된 게 노래 때문이 아니라 이런 소문들을 알아내기 위한 게 아닌지가 말이다.

“네가 한국에서 활동 잘 안하고 이 바닥 굴러가는 소문들을 모르니까 그래. 이거 파다한 소문이야. 그것도 신빙성 꽤 높은.”

그 정도로 녀석의 얼굴은 진지했지만 또한 흥미진진한 얘기를 풀어놓는 아이와 같았고 나 또한 절로 그 얘기를 듣는 아이와 같았다.

“생긴 거 봐라. 남자가 안 꼬이겠냐?”

“단순히 남자 꼬인다고 구리다고 하는 건 조금 그렇지 않냐?

“네가 아무리 소문에 무지해도 기본적인 건 알거 아니야. 이 바닥 짐승월드라는 거.”

“그거야, 뭐...”

“괜히 걔한테 홀림 당하지 말고 조심해. 그냥 눈요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딱 선 그으란 말이야. 알겠지?”

“그래서 그 소문이라는 게 뭔데?”

녀석이 하는 말에 꽤나 몰입될 수밖에 없었던 게, 내 자신이 연예인이지만 한국에서의 활동과 인맥이 빈약해 상대적으로 국내 소식에 무지하다는 점과 더불어 그러함에도 연예계가 겉으로 드러난 것들과 달리, 꽤나 개 족보라는 점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 할리우드, 할리우드 하지만 한국도 깊게 들여다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다지 다르지 않음은 연습생 5, 6년차만 되어도 짐작할 수 있으니까.

“지혁씨! 성준씨! 지금 들어가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순간 성준 녀석과 나를 찾는 스태프가 차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그 소문이라는 것을 듣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서린이라는 사람이 불쌍해졌다.

그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런 일로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오가는 것은 여자 입장에서는 꽤나 아플만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성준 녀석의 말마따나 이미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소문들은 사실 여부가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퍼져있는 듯 했으니까.

그렇게 왠지 모르게 씁쓸해진 마음을 애써 숨긴 채 이동하기 시작했다. 철통같이 촬영 계획을 숨기려는 제작진 측의 의도에 발맞춰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제작진 측의 의도는 나를 비롯한 출연진들 그리고 제작진 본인들의 바람과는 다른 뜻밖의 암초를 만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암초에 의해 프로그램 기획 및 촬영을 숨기려던 제작진 측의 의도는 단번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스패치 OFFICIAL. 월드스타의 연애란? 마치 신혼부부를 연상케 하는 잠실 타워 쇼핑몰에서의 데이트 그리고 잠실 타워 펜트 하우스에 위치한 본인의 집에서 이루어진 둘만의 시간? 월드스타의 마음을 뺐어간......]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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