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70 2019 =========================================================================
#370
“지혁아!”
“삼촌 진짜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그럼, 그럼.”
너무나도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게 된 주훈 삼촌의 모습에 나 또한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미스터 지 LA 시사회 때 주훈 삼촌을 살짝 흘려가듯 마주하긴 했었다. 하지만 주연 배우로서 신경 써야 될 부분이 워낙에 많았는지라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헤어져야만 했었는데, 이렇게 얼굴을 하니 당연히 반가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삼촌도 이 프로그램 하시는 거에요?”
“뭐, 그렇게 됐네. 알잖아? 저 사람 술수에 빠지면 쉽게는 못 빠져나오는 거.”
“주훈 형?”
“왜? 틀린 말 했어?”
하루세끼 산아도 편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함께했던 시간들이 모두 좋았던 추억들뿐인지라 이번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상승했다. 주훈 삼촌과 같이 하루세끼 산아도 편에서 함께했던 현중 삼촌이 이번 프로그램에는 같이 하지 못할 거라는 점은 조금 아쉬움으로 다가왔지만.
뭐, 그래도 다른 출연진에 대한 기대감이 없지는 않았다.
“너 뭐냐?”
“뭐긴, 눈 뒀다 뭐하냐?”
그런데 그 기대감이란 게 식상함으로 물들여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가수 겸 연기자 양성준입니다.”
“어, 어? 어, 그래. TV에서 잘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안 그래도 일, 이주일 전에 유빈 녀석과 같이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는지라, 그다지 반갑지도 않았다. 이런 식상한 출연진이라니, 난 도대체 뭘 기대한 건지. 후우.
“저번에 만났을 때 여기 출연한단 말 없었잖아?”
“제안 받은 지 얼마 안 됐거든? 그러는 넌?”
“나야, 뭐. 몇 백 억짜리 영화에 출연한다는 놈 앞에서 감탄하기 바빠서리.”
“뭐? 어휴... 이게.”
이 녀석과 식당을 운영하라니, 답이 안 나왔다. 답이.
물론 주훈 삼촌의 요리 실력이야 정평이 나있는 만큼 주방은 걱정이 없을 테지만, 요리 보조 역할을 내가 맡을 예정인 만큼 녀석이 담당해야할 역할이야 뻔했고 이 때문에 도무지 믿음이 생기질 않았으니까.
“일단 지혁이는 해외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주훈 형 도와서 보조로 일하는 게 맞겠지? 그리고 성준이는 서빙이랑 오더 받는 것 중에서,”
그런데 그런 미덥지 못한 성준 녀석을 보던 내 눈동자는 이내 등장한 마지막 출연자로 인해 쉴 새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
“여기는 이번에 우리 프로그램 홍일점 서린 씨. 다들 얼굴은 당연히 알지?”
얼굴을 알다 뿐인가, 몸매까지도 꿰뚫고, 아니 이게 아니지.
성준 녀석의 등장으로 인해 출연진에 대한 기대감 따위, 식상함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그런데 그런 나의 판단은 조금은 섣부른 판단이었나 보다.
“안녕하세요. PD님.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늦었죠...”
“아니에요. 오늘 스케줄 있었던 거 이미 서린 씨 회사 통해서 전달받았어요. 자! 그렇게 있지 말고 여기로 와요. 여기 출연자들 다 모여 있으니까.”
그만큼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영화 공식을 그대로 답습한 듯 지금 등장한 이의 자태는 그만큼 눈부셨으니까.
“앗! 뭐야? 너.”
“아니, 꿈인가 싶어서.”
“그럼 네 허벅지를 꼬집지, 왜 내 허벅지를 꼬집어? 이게 진짜.”
성준 녀석 또한 나와 다르지 않는 듯 했다.
“안녕하세요. ANGELS로 활동하고 있는 가수 겸 배우 서린 입니다!”
서린.
연기자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걸 그룹 ANGELS 소속 멤버이다. 그것도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모든 부분에서 남성들을 홀릴 수 있는 매력을 지닌, 그런 멤버 말이다.
“반가워요. 이번에 프로그램 같이 하게 된 차주훈이에요. TV에서 자주 봤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주훈 삼촌이 서린과 악수를 하며 직접적으로 인사를 나누자, 나 또한 남자로서 어쩔 수 없는 본능을 잠시 제쳐준 뒤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나이는 아마 나보다 한, 두 살 어렸던 걸로 기억한다. 굳이 서린을 보기위해 TV를 틀거나, 그녀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볼 정도까진 아니었는지라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거라곤 간혹 인터넷을 통해 보게 된 그녀의 몸매나 얼굴 이미지 사진 같은 것뿐이었으니까.
“반갑습니다. 선배님. 강지혁입니다.”
어쨌든 내가 나이가 많든, 한, 두 살 더 많든 그건 지금 상황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내가 그녀보다 데뷔가 늦다는 것이고 지금 그녀와 나는, 시상식 등에서 스쳐가듯 마주한 것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초면이라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네, 네? 아... 안녕하세요. 서린입니다! 그... 팬이에요!”
“네? 아, 감사합니다.”
보드라운 손 감촉과 함께 매혹적인 겉모습을 닮은 향기까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녀가 왜 남자들의 신앙이 되었는지, 여자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사심이 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갈 곳은 인도네시아에 있는 코룬 섬인데요.”
“코룬?”
그렇게 출연진들은 물론이고 제작진들까지 들썩이게 만든 서린의 등장과 함께 이어진 인사가 끝나자, 본격적으로 프로그램과 관련된 얘기를 듣게 되었다.
“발리랑 근접한 섬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가지도 않고 잘 알려지지도 않은 곳이에요. 주로 해외 여행객들이 찾는 곳인데, 아무튼 그곳에서 한식당을 여는 게 이번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이에요.”
아무래도 ‘해외에서 한식당을 연다.’, ‘출연진은 4명이다.’, ‘촬영은 10일 동안 하게 된다.’와 같은 단편적인 정보만을 가진 상태였고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세부적이 내용을 소개받기로 한 만큼 형식 삼촌의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뭐, 내 옆자리에 있는 녀석은 그것보다 다른 것에 정신이 팔린 듯 했지만.
이 자식아 그만 좀 봐라. 그만 좀. 볼 거면 슬쩍, 슬쩍 보던가, 그렇게 대놓고 보면 나라도 민망하겠다. 어휴.
“다들 모였으니까, 아까 했던 얘기 조금 반복하자면 주방은 주훈 형이랑 지혁이가 그리고 서빙이랑 주문 받는 건 서린 씨랑 성준이가 담당하게 될 거에요.”
“서린이는 어떤 게 나을 것 같아? 서빙? 주문 받는 거?”
“네, 네? 아... 저는 아무래도 서빙 하는 게 그나마 나을 것 같아요.”
얼씨구? 만난 지 몇 분이나 됐다고 벌써 말을 놨어?
특유의 그 잘난 붙임성은 어디가질 않았는지,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서린에게 말을 걸며 대화를 이끌어가는 성준 녀석을 보고 있자니, 절로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럼 일단 서린이는 서빙하고 내가 주문 받을 게. 뭐, 바꾸고 싶으면 현지 가서 바꿔보고.”
“네!”
뭐, 그래도 기분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래, 청춘이다. 청춘. 자식.
“야, 진짜 다른 나라 가면 너 무조건 알아봐?”
“그걸 꼭 내가 답해줘야 알겠냐?”
그런데 그런 녀석이 나의 시선을 느껴서일까.
녀석이 되도 않는 질문을 내게 건넸는지라 나도 모르게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내 성준 녀석과 크게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형식 삼촌부터 주훈 삼촌 그리고 서린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어 당황했고 말이다.
“서양 쪽은 신경 써서 안경이나 모자로 포인트만 줘도 잘 못 알아보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가 서양인들 구분 잘 못하듯, 그쪽도 동양인들 잘 구분 못하거든요. 뭐, 대도시 쪽 가면 그것도 별로 소용없겠지만... 그리고 아시아 쪽은... 그냥 한국이랑 같아요.”
“진짜?”
저 자식은 무슨 말을 해줘도 믿질 않아? 그럴 거면 물어보질 말든지. 이거 인도네시아 공항 한번 사람들로 폭파시켜줘?
“메뉴는 주훈 형이 알아서 하시면 돼요.”
“거긴 재료가 뭐, 뭐 있으려나. 외국 가서 한식당을 열라고 하니까, 이게 의외로 당황스럽네. 음...
성준 녀석 때문에 나까지 덩달아 유치해지는 것 같아, 반성하고 있는 사이 주훈 삼촌과 형식 삼촌은 꽤나 진지하게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프로그램의 주된 역할을 담당하게 될 주훈 삼촌이기에 그에 따른 부담감도 클 수밖에 없을 테니까.
“저 정말 팬인데, 사인 한 장만 해주시면 안 되나요? 여기 앨범에다가요...”
그런데 뜻밖에도 서린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는지라, 입에 우겨넣으려고 집었던 음식을 잠시 내려놓는 수밖에 없었다.
“네? 아, 물론이죠. 어? 제 앨범 다 사셨네요?”
“네. 히히...”
“활동 기간이 겹쳤으면 대기실에서 CD라도 드렸을 텐데, 기회가 없었네요.”
내 팬이라는 말이 겉치레인사는 아니었던지, 그녀가 건넨 것은 나의 1집, 2집, 3집, 4집 앨범이었다.
솔직히 놀라긴 놀랐다. 정규 2집이나, 3집, 4집도 아니고 정규 1집을 가지고 있을 줄은 그리고 그 모든 앨범들을 다가지고 있을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사실 미리 알고 있었거든요. 출연하시는 거...”
“네? 아... 그래요? 저는 오늘 알려준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나보네요. 자! 여기 있습니다. 앨범 구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기자로서 최정상급 배우는 아닐지라도 떠오르는 20대 연기자로서 주가를 올리고 있고 또한 아이 돌 걸 그룹으로서는 섹시한 면모로 거의 첫 손가락에 꼽히는 그녀였기에 이런 예능프로그램에서 마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뭐, 그렇게 따지면 내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건 더 이해가 안 되는 게 맞는 거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직접 마주하고 대화를 나눠보니, 그녀 또한 일반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듯 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는 그저 여느 팬 사인회를 찾아온 평범한 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말 편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나이도 어리고... 데뷔도 얼마 차이 안 나는데...”
“네?”
“안되나요?”
그래서 이내 말을 놔달라는 그녀의 요구 아닌 요구에 말없이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내 등장한 녀석의 소란스러움에 서린이 그런 내 모습을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뭐야, 뭐야. 둘이 벌써부터 나 소외시키는 거야?”
“응? 아, 아니야!”
“뭐래.”
이 자식아 네가 말 놓고 주구장창 얘기할 때, 이제 겨우 몇 마디 나눈 건데, 그걸 가지고 소외라고 하면 난 그냥 입만 닫고 있으리? 저게 아까부터 사심이 느껴지는 게, 뭔가 심상치 않았다.
어휴. 그래, 그래. 네 연애사업 방해 안하고 주둥이 쭉 닫고 있으마. 자식.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출국 날짜는요? 출국 날짜는 오늘 말해주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 참! 그걸 깜빡했네요. 고마워요. 서린씨.”
“네? 네... 히히...”
서로에 대한 어색함을 지우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성준 녀석의 붙임성도 붙임성이거니와 내 자신이 성준, 주훈 삼촌 두 사람과 이미 친분이 있다는 점 덕에 자리가 무르익어 가자 자연스레 어색함이란 단어 자체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뭐, 서린이야 남자들이라면 다 좋아할 상이라 말해봤자 입 아플 지경이고.
그런데 그렇게 무르익은 분위기 자체가 서린의 질문에 이은 형식 삼촌의 답변에 깨져버리고 말았다. 당황과 당혹, 놀람 그리고 어처구니없음에.
“22일 오전 1시 비행기?”
“뭐?”
“22일 오전 1시 비행기로 여러분들은 인도네시아로 떠날 예정이니까요. ‘넉넉한’ 시간 드렸으니까, 준비 철저히 해주시기 바랄게요.”
지금 이 시각 21일 오후 6시 30분.
서둘러 보게 된 핸드폰 액정 화면 속 현재 시각에 그저 웃음만 나왔다.
아니, 저 사람 저 버릇 아직까지 못 고쳤네.
도대체 메뉴 선정이니, 준비니 했던 얘기들은 왜 한 것인지. 아니 그것보다 나 이번 주에 명탐정 K 촬영 있는데 이거 어떻게 할 거야? 미리 얘기는 된 거야?
“출연자 분들 스케줄 관련해서는 소속사 분들이 이미 조정해주셨고요. 여러분들은 이제 이 프로그램에만 전념해주시면 됩니다. 자! 6시간도 넘게 준비시간 드렸으니까, 참 넉넉하죠? 지금부터 첫 촬영 시작합니다! 다들 파이팅!”
하아. 진짜. 이래가지고 식당은커녕 뭘 제대로나 할 수 있을지. 아휴, 얄미워 저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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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완결 때까지는 노블 연재는 계속될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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