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67화 (367/502)

00367  2019  =========================================================================

#367

형식 삼촌과 정말 오랜만에 만나서 밥을 먹게 되었다. 미리 약속을 잡은 것은 아니고 민재 삼촌과 회사 앞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는 자리에 형식 삼촌이 예기치 않게 추가된 것이지만 말이다.

“뭔데? 미리 얘기된 거였어?”

그런데 가만 보니, 이곳에서 밥을 먹는 것이, 그리고 형식 삼촌이 이곳에 온 것이 ‘예기치 않은’ 것이 아닌 듯 했다.

“뭐, 형식이가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 너한테 직접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삼촌이 불렀어.”

그도 그럴 것이, 별다른 약속이 없었다면 형식 삼촌이 이 근방에 올 이유도, 우리가 자리 잡고 있는 방 안에 너무나도 자연스레 등장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아주 좋겠다?”

“왜 그러는 데 삼촌?”

오랜만에 본 형식 삼촌의 얼굴은 꽤나 타 있었다. 마치 동남아 사람들처럼.

“뭐 때문에 그러시냐고요. 아저씨.”

아름다운 누나, 하루세끼를 통해서 인연을 맺게 된 형식 삼촌이기에 오랜 시간동안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어색함은 없었다. 불편함 또한 없었고.

“아니, 그냥 지혁이 네가 요즘 TV에도 자주 나오고...”

그런데, 형식 삼촌은 그런 나와는 달리 무엇인가가 마음에 걸려있었나 보다. 저렇게 입술이 툭 튀어나와있는걸 보면 말이다.

“뭔데. 밥 먹다 체하겠어. 할 얘기 있어서 왔다며?”

“이번에 삼촌이 새 프로그램 기획중인데...”

“어?”

전에도 이런 적이 없지는 않았다. 몇 년 전 모자란 녀석들에 출연했었을 때, 형식 삼촌이 서운함을 토로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확실히 삼촌의 이런 태도는 뜬금없기도 없거니와 이해가 되지 않을 행동이기도 했다.

“캐스팅 제안서에 삼촌 프로그램은 없던데, 이제서 무슨 소리야.”

잡지, 연예지. 연예 정보프로그램 인터뷰를 비롯해 각종 방송 프로그램들의 섭외 요청과 관련된 리스트에는 삼촌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그게... 위에서 프로그램 기획 승인이 어제 막 나서.”

“하아...”

“그리고 지혁이 네가 이렇게 방송 활동할 줄은 몰랐지. 전에처럼 방송 활동 보다는 개인 휴식에 열중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말 안했었거든. 너 편히 쉬라고.”

뭐,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닌 듯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삼촌의 속내가 부담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나 이제 시간이 좀 없을 것 같은데... 이번에 고정 프로그램 하나 들어가기로 했거든. 10부작 프로그램.”

“10, 10부작 프로그램?”

“그리고 독일, 아니, 이건 일단 제쳐두고. 음... 일단 조금 쉬면서 나도 이제 영화 준비하려고.”

이제 한국에 있을 시간이 2달 조금 넘게 남았다는 점 그리고 4월에는 독일 총리 내외를 5월에는 테일러를 맞이해야한다는 점 때문에 명탐정 K와 몇몇 잡지 인터뷰 및 화보집을 제외하고는 추가적인 일정을 잡지 않으려했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뭐,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그래, 오랜만에 만났는데 얼른 밥 먹자. 이거 삼촌이 사줄게.”

짐짓 웃으며 수저를 들라는 형식 삼촌의 모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음식 맛이 좀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후우. 뭔데?”

“어?”

따지고 보면 2달 보름 정도 남은 휴가 아닌 휴가 기간이 짧다고 보면 짧게 보일 수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 의한 판단임을 모르지 않았다.

명탐정 K도 고정 프로그램이라고는 해도 일주일에 하루 촬영하는 프로그램이고 몇몇 잡지 인터뷰 및 화보집은 끽해야 사나흘 걸릴 일인 만큼 시간을 내려면 언제든 낼 수 있는 널널한 일정이었으니까.

“무슨 프로그램이냐고. 새로 론칭할 프로그램? 하루면 돼? 이틀?”

그래서 괜히 내가 아는 사람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싫어 프로그램 얘기를 이어나가려 했다. 뭐, 아름다운 누나도 그렇고 하루세끼가 촬영 때나 지금이나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 그리고 그 프로그램들 덕에 정신적인 힐링을 많이 받았다는 점도 큰 몫을 했고 말이다.

*

[남자 배우들끼리 해외에서 식당을 여는 프로그램을 할 건데... 12부작이야. 아! 그렇다고 해서 12주 동안 찍는 건 아니고 10일 동안... 해외에서 선 제작 후 방영 식으로...... 전문적인 요리사가 섭외될 게 아니라 요리 만들기, 서빙까지 전부 출연진들이 하는 식으로......]

요리를 아예 못하진 않았다. 하지만 식당을 할 정도 수준은 아니었기에 걱정부터 앞섰다.

그래도 촬영지가 유명한 열대 관광지라는 점에서 마음을 푹 놓아버렸다. 게다가 촬영 일자도 아직 여유가 남아있는 편이었고 굳이 내가 요리를 하지 않아도 다른 출연진들이 잘 해줄 거라는 그런 근거 없는 믿음이 조금씩 가슴속에서 세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혁아, 왔구나. 정말 고맙다.”

어쨌든 이내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상념에서 빠져나와야만 했다.

“당연히 와야죠. 늦지는 않았죠?”

“그럼. 딱 맞게 왔어.”

석준 삼촌의 목소리와 얼굴을 오랜만에 듣고 보니 꽤나 반가웠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이 이런 감정을 부풀렸고 말이다.

“순서는 어떻게 돼요?”

“일단 중간에 애들이 시계의 태엽을 감아서, 이 노래 할 때, 네가 끼어들어서 같이 추면 돼. 자연스럽게.”

아미가가 꿈 아레나에서 단독 콘서트를 그것도 당초 예정되었던 기간보다 하루를 추가하여 개최한다는 사실에 힘을 더해주고 싶었다. 그동안 아미가 멤버들에게 여러모로 도움만 받아왔었기에 이에 대한 보답도 할 겸 깜짝 게스트 출연으로 말이다.

“여기서 대기하고 있으면 스태프가 와서 마이크랑 채워줄 거야. 너 나가기 20분쯤 전에. 그리고 시계의 태엽을 감아서 무대 시작하기 5분 전에, 삼촌이 다시 올 거고.”

석준 삼촌도 그렇고 아미가 애들도 내게 게스트 요청을 하지는 않았다. 아마 지레짐작으로 내가 다른 할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먼저 석준 삼촌에게 전화를 걸어 깜짝 게스트로 출연하고 싶다며 제안을 했었다. 그런 내 제안에 석준 삼촌은 걱정을 하면서도 기뻐했고 나 또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고 말이다.

“잘하고 있는 것 같네요.”

별도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 VIP석에서 내려다본 아미가 녀석들의 무대는 완벽했다. 관객들 또한 녀석들의 무대에 열광하고 있었다. 지난 7년간의 아이 돌 생활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미가와 관객들은 호흡하고 있었다.

“그렇지? 어느새 저렇게 베테랑이 되어있더라.”

노래가 슬플 때는 같이 슬퍼하고, 신날 때는 같이 흥에 겨워 몸을 들썩이는. 가수라면 그 누구나 꿈꿀만한 무대를 녀석들은 어느새 자신들의 것으로 능숙하게 다룰 이들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너무 빠른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 아미가 애들도 막 신인이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렇지. 삼촌도 그런 것 같아. 삼촌네 회사는 아미가 애들이랑 성장을 같이 해왔거든. 그래서 회사 모습을 볼 때면 아미가 애들이 떠오르고, 반대로 아미가 애들 볼 때면 회사가 떠올라서 그 시간이 흘렀다는 게 더 실감나더라.”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지만, 현재의 모습이 그 모든 과거들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그런 감정들을 마음 한편으로 잠시 치워두었다.

“여기서 구경하고 있어. 대기실에 안 있으면 애들 또 서운해 할 테니까.”

그런 나의 속내를 짐작한 것인지 삼촌 또한 이내 내 등을 두드리며 웃는 얼굴을 보여줬고 말이다.

*

“왜 나는 자꾸 이런 것일까. 너에게 말을 걸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어.”

자기소개 춤 때 슬쩍 녀석들의 뒷줄에 섰다. 그리고 그런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해,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소진에게 짐짓 태연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일렬로 서있는 포지션으로 노래가 시작한 탓도 있거니와, 노래의 안무자체가 워낙 역동적이어서 멤버들 모두가 나의 등장을 알아차리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너에게 가까이 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어. 그저 원망만 했어.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멀어져버리는 너를. 용기를 내지 못했어. 다가가지 못했어. 마치 영영 못 만날 것 같아, 두려워. 그럴 순 없어. 네게 반드시 다가갈 거야. 다가갈게 용기를 낼게.”

그래도 베테랑 걸 그룹답게 녀석들은 나의 갑작스런 등장에 잠시 멈칫했을지언정 자연스럽게 무대를 소화했다. 깜짝 게스트로 등장한 내게 무안함과 나름의 뿌듯함을 안겨다줄 정도로 말이다.

“용기를 내지 못 했어. 너를 좋아 했어. 어릴 적 꿈꿔왔던 상상처럼 시계의 태엽을 감아서  네게 다가갈 수만 있다면 너의 손을 잡고 말하고 싶어......”

그래도 아미가를 최정상 걸 그룹으로 발돋움 시킨 이 노래의 안무를 같이 추면서 관객들의 놀람과 경악 섞인 호응이 아레나 홀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무안함을 상쇄시킬 수 있었다.

“약속해줘. 내가 다가갈 때까지 그 자리에 있겠다고. 내가 네가 왔을 때 그때도 나를 보며 웃어 줘. 시계의 태엽을 감아서 네게 다가갈 수만 있다면 너의 손을 잡고 말하고 싶어.”

그렇게 마지막 시계바늘 춤을 끝으로 노래가 마무리되었지만, 장내는 좀처럼 걷잡을 수 없는 환호성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환호성들과 나를 바라보며 놀란 듯한 아미가 멤버들의 눈빛들을 동시에 바라봐야 했지만.

“여러분 안녕하세요!”

“와아아아아아!”

“갓지혁! 갓지혁!”

비록 이 콘서트가 나의 콘서트는 아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깜짝 게스트로서 진행 아닌 진행을 해보고 싶어 핀 마이크를 무기 삼아 모두의 함성을 유도했다.

“오늘 이렇게 아미가 단독 콘서트에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 내 모습에 아직까지도 말을 꺼내지 못한 멤버들의 모습에서 장난 끼가 동했기 때문이다.

“평소 친한 동생들과 소진이가 단독 콘서트를 한다고 해서, 초대받지 못했음에도 이렇게 인사드리고 싶어서 깜짝 게스트로 참가하게 됐어요. 저 잘했죠?”

“네!”

“네!”

“갓지혁! 갓지혁!”

“갓지혁! 갓지혁!”

10만 명에 달하는 관중들의 환호소리에 내 마이크 소리가 묻힐 정도였지만, 그런 상황마저도 기뻤고 벅찼다. 내 무대이든, 다른 이의 무대이든 가수로서 이런 무대는 언제라도 벅찬 감정을 전달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치트 키와도 같았으니까.

“글쎄 아미가 분들이 단독 콘서트 하는 데 저한테 섭외 요청도 안하시더라고요. 이제는 떴다고 저는 안중에도...”

“그, 그게!”

“그게 아니라!”

“옛날에는 아주 귀여웠었는데, 요즘엔 컸다고 연락도 안하고... 너무하죠! 안 그래요? 여러분?”

그런 내 멘트가 기대 이상으로 관객들을 열광시키자 이내 아미가 멤버들이 리더 소진을 필두로 하나, 둘 입을 열기 시작했지만 이미 분위기는 나의 편이었다.

“너무해!”

“너무해!”

녀석 딴에는 석준 삼촌과 마찬가지로 내게 부담을 주기 싫어 그런 판단을 내렸겠지만, 나 또한 나름대로 약간의 서운한 감정을 느꼈었는지라, 이 정도의 몰이쯤은 녀석들 또한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녀석들의 억울한 표정을 실컷 감상했다.

이내 들려온 낯익은 멜로디로 또다시 같이 합동 무대를 펼치기 전까지.

*

두 곡을 합동 공연으로 펼친 뒤, 나의 솔로 곡들을 서너 곡 불러주는 것으로 그날의 콘서트는 끝을 맺었다. 다음날 공연도 공연이거니와, 녀석들에게는 아직 2시간가량의 공연이 남아있었기에 뒤풀이 자리를 갖지는 못했지만, 조만간 같이 만나 밥을 먹기로 했기에 아쉬움의 상당부분을 상쇄시킬 수 있었다.

“지혁씨?”

“네, 네? 아! 죄송해요. 제가 조금 긴장해서요.”

그날의 깜짝 게스트 출연으로부터 3일 뒤. 나는 명탐정 K의 첫 촬영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일산에 마련된 세트장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촬영 시작할게요. 3, 2, 1.”

메이크업과 명탐정 K 룰을 숙지하는 사이 어느새 촬영이 시작되었는지라, 잡생각들을 서둘러 머릿속에서 비운 채 오늘 촬영과 관련된 생각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짝!]

명탐정 K는 추리 서바이벌임과 동시에 각자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해야하는 일종의 연기자적 성격도 가지고 있었기에 촬영 시작을 알리는 슬레이트 소리가 생각 외로 낯설지만은 않았다.

“출연자분들께서는 주어진 각자의 롤 카드를 숙지하여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내 카드 속에 담긴 내용들을 보자니, 생각이상으로 복잡하고 상세했는지라 이마에 나도 모르게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더욱이 내가 입고 지녀야할 각종 소품들이 심상치 않은 포스를 풍겼으니 오죽할까.

“이, 이게...”

“출연자분들께서는 각자 배정된 방 순서대로 추리 조사를 시작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아. 미치겠다.

입고 있는 옷은 그렇다 쳐도 내가 지니고 다녀야할 ‘소품’들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것들이었는지라 벌써부터 명탐정 K의 첫 촬영이 걱정됐다. 내가 추리를 잘 해낼 수 있을 지보다, 내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연기해낼 수 있을 지가 더.

============================ 작품 후기 ============================

joyfulday님 후원쿠폰 10 장 감사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P.S 저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명탐정 K와 관련된 부분은 그저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일뿐, 추리물로서의 기능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추리물같은 소설 파트를 원하셨던 분들에게는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 오늘 나라 지키고 오겠습니다. 하아..................예, 비,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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