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64 2019 =========================================================================
#364
화질이 좋지 않은 영상이 스크린에 나오자, 관객들의 입에서는 의아함이 섞인 탄성이 흘러나왔다.
“순한아! 그렇게 많이 먹었는데 배 안 아파?”
“응! 안 아파! 마시써!”
그리고 이내 그 영상에 나온 조그마한 아기가 이번 무대의 주인공인 순한 삼촌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의 의아함은 놀라움과 웃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돈까스 마시써!”
내 자신이 천재라고 남들에 비해 잘났다는 것을 표현함과 동시에 이 길을 걷게 된 부분을 깊게, 깊게 담아내기 위해 노래를 만든 만큼 지금 영상이 해야 할 역할은 크게 두 가지였다.
“그럼 자장면은?”
“자장면도 조아!”
“순한이 어제는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다면서?”
본 노래가 한 번도 방송에 드러나지 않은 유일한 팀이기에 랩에 보다 쉽게 빠져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영상의 첫 번째 역할이었다.
“김치찌개도 좋고 스테끼도 좋아! 다 좋아!”
그리고 그 영상을 본 관객들의 반응은 다행스럽게도 내가 의도한 그대로였다.
“하하하하!”
“대박!”
“하하하! 스테끼래. 스테끼. 크크크크.”
하지만 내가 이 영상이 효력을 발휘해줬으면 했던 두 번째 역할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기에 나로서는 마냥 편하게 이를 볼 수가 없었다. 뭐, 그런 나와는 달리 순한 삼촌은 관객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스크린을 바라보았지만.
“우리 순한이 많이 먹고 건강해야 한다?”
“응!”
순한 삼촌 또한 관객들처럼 이 영상을 처음 본 것이기에 그럴 만도 했다. 원래 리허설이 끝나고 따로 순한 삼촌을 불러 이를 보여주려 했는데 그러질 못했으니 말이다.
“참가번호 21번! 정순한 입니다!”
순한 삼촌의 어머니께 몰래 부탁드린 과거 영상이 1분 남짓한 시간동안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은 뒤 스크린은 전혀 다른 순한 삼촌의 모습을 다시금 비추기 시작했다. 자신이 해야 할 두 번째 역할을 해내기위해서, 지금 이 순간 어떻게 보면 첫 번째 역할보다 더욱 중요해진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웃기는 게 좋은 정순한!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바아보다! 바아보다!”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물이 자꾸 변기를 넘어 저한테 젖어들어! 대답해주지 않은 채 눈물만 흘리는 변기를 보며! 저도 눈물만......”
개그맨으로서 처음 공채 시험을 볼 때의 영상과 그동안 순한 삼촌이 유행시킨 유행어와 웃긴 순간들이 영상에 하나, 둘 이어지자 관객들의 입에선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 먹는 거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할 때면 정말 즐기면서 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관객들 또한 가요제 무대가 아닌 개그 공연을 보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상대적으로 선명한 화질과, 지금 순한 삼촌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유사한, 가장 최근의 영상이 스크린을 메우자 관객들의 웃음소리 또한 멎어들기 시작했다.
“먹는 걸 떠나서 이 프로그램에서의 제 모습을 시청자 여러분들이 좋아해주지 않으셨다면, 웃어주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좋은 결과 얻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제작진들의 도움을 받아, 순한 삼촌이 제 작년 타방송사에서의 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의 모습을 별도의 편집 없이 이 영상에 싣게 되었다. 순한 삼촌의 마음을 다잡고 본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속내를 다시금 일깨우기 위해.
“먹는 건 제 자신만을 기쁘게 해주지만, 방송 상에 드러난 제 모습은,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여러분을 웃기게 해드리는 일들은 제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분들 모두를... 흑... 기쁘게 해줄 테니까요. 흑흑... 바보로 여기셔도! 속 좁은 사람으로 여기셔도!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하는 정순한이 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이제 본 무대. 더 이상 준비할 시간도 갈등을 빚을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영상이 끝남과 동시에 순식간에 모든 조명이 소등되어 캄캄해져버린 아레나에서 나는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딴, 딴딴. 따다다단단 딴딴딴.]
순한 삼촌이 지금 이 순간에 어떤 심정인지, 어떤 표정인지, 아직도 10만 명이나 되는 관객들이 뿜어대는 기세를 극복해내지 못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삼촌이 손 안에 든 마이크를 들어올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
[딴, 딴딴. 따다다단단 딴딴딴.]
한 번도 언론을 통해 우리의 가요제 곡이 발표되지 않았다는 점이 지금 이 순간 내게는 얼마나 큰 다행으로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가요제 곡이 나의 피아노 건반으로부터 7, 80%에 달하는 비트가 완성된다는 점 그리고 초반부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극대화된다는 점 또한 지금 상황에 있어 천운으로 다가왔다.
[딴, 딴딴. 따다다단단 딴딴딴.]
아직 시동을 걸기 전, 낡은 자동차가 ‘부르릉’ 배기 음을 뱉어내며 시동이 걸릴까, 말까를 줄다리기 하듯 나의 피아노 건반 음은 관객들의 뜻밖의 호응을 일으켜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딴, 딴딴. 따다다단단 딴딴딴.]
하지만 그마저도 5번째 건반 음이 끝을 맺게 되면, 관객들 또한 이내 이런 비트와 멜로디가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 아닌, 방송 사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임은 자명했다.
그래서 나 또한 피아노 건반을 치면서 내 앞에 설치된 마이크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뭣하면 내가 이 파트까지 소화하는 것이 지금 이 곳을 찾아준 관객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딴, 딴딴. 따다다단단 딴딴딴.]
“네 살 때부터 나는 그냥은 안 먹어. 천재였지.”
피아노 건반 비트에 맞춰 순한 삼촌의, 약간의 울먹임이 담긴 목소리가 아레나 홀을 메우기 시작한 것은.
*
피아노 건반을 치며 비트를 담당하는 나. 그리고 반대 방향에서 쭉 늘어선 통로를 통해 관객들에게 다가가 열성적으로 자신의 랩을 털어내고 있는 순한 삼촌.
“한식, 양식, 양식, 양식 모두 내 밥이었지.”
비록 첫 시작이 늦었더라도, 중간에 가사를 실수했더라도 당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 또한 내가 할 일에만 신경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타고난 걸 버리고 마이크를 들었지. 너희들을 웃기는 게 좋아. 먹는 건 나만 웃게 만드니까.”
10만 명에 달하는 관객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순간부터, 삼촌의 머릿속엔 관객들이 쏟아내는 기세에 대한 부담감과 압박감 그리고 앞선 팀들의 화려한 무대, 뜨거운 반응 따윈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실실 웃게 만들어, 이게 나의 Appetizer.”
“Appetizer!”
“미친 듯이 웃게 만들어, 이게 나의 Main dish.”
“Main dish!”
“날 보며 미치게 만들어, 이게 나의 Dessert.”
“Dessert.”
당초 기획했던 관객 호응유도와 이런 의도에 딱 들어맞게 반응해주는 관객들까지.
내가 기획한 영상이 이런 기적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경이롭기까지 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미 나와는 멀리 떨어진, 남쪽 방향에서 관객들과 소통하기로 했던 당초 계획과는 달리 내가 바라보고 있는 북쪽을 제외한 모든 방향에서 날 뛰고 있는 순한 삼촌의 모습은 그동안의 모습이 상상가지 않을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마이크는 절대 무기, 내 면상은 절대 방패.”
그렇게 나 또한 다른 복잡한 생각을 제외한 채 오로지 건반으로 순한 삼촌이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들을 꾸며냈다. 조명이 제대로 비춰지고 있는지, 순한 삼촌이 기존에 기획되었던 동선대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걱정하지 않고 오로지 내 건반이 순한 삼촌의 랩과 어우러지는 지만을 생각했다.
“나는야 천재였지. 천재였지.”
순한 삼촌 파트의 끝을 알리는 래핑이 들려오고 이내 익숙한 영상이 또다시 스크린에 비춰졌을 때, 내가 친 건반 음이 아닌 미리 녹음된 건반 음이 스피커에서 들려오기 시작할 때까지.
*
순한 삼촌 때와는 달리 소리 없는 영상이 중앙 천장에 달린 360도 스크린을 가득 메웠고 이는 별도의 시청 시간 없이 내 랩과 동시에 관객들에게 보여졌다.
[딴, 딴딴. 따다다단단 딴딴딴.]
단조롭다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이 당초 이 곡을 만들었을 때 의도한 바였다.
모든 이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 쉽게 호응할 수 있는 노래가 이번 힙합 장르에 맞춰 내가 선보이고 싶었던 노래였고 또 순한 삼촌의 마음을 관객들에게 보다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노래였으니까.
“네 살 때부터 나는 춤을 췄지. 천재였지.”
“천재였지!”
불과 몇 십초 전에 처음 들었을 노래지만, 관객들은 내 랩에 충실히 호응해줬다. 그리고 이는 내게 무한한 열정을 안겨다 주었다.
“마이클 잭슨.”
스크린에서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를 따라하는 네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무대 위에서 문 워크를 하는 나.
“박재성.”
스크린에서 박재성의 마이 허니 춤을 따라하는 일고여덟 살 정도의 아이 그리고 지금 이 순간무대 위에서 마이 허니 춤을 추는 나.
“양동혁.”
스크린에서 서태인 패밀리의 컴백 하우스 춤을 따라하는 대여섯 살 정도의 아이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무대 위에서 컴백 하우스 춤을 추는 나.
“모두 내 선배였지.”
“선배였지!”
10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동안 세 가지의 포인트 춤을 무대에서 선보이며 랩을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관객들의 호응이 알 수 없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힘을 준 것만 같았다.
“하지만 타고난 걸 버려, 방출 됐지.”
“방출됐지!”
어느새 무대 북쪽이 아닌 남쪽으로, 서쪽으로, 동쪽으로 부지런히 이동하고 있는 내 모습에서 좀 전 순한 삼촌의 모습이 잠시나마 떠올랐고 정신을 차린 어느 순간부터 순한 삼촌은 내 곁에서 추임새를 넣으며 관객들의 호응에 발을 맞추고 있었다.
“너희들 모두 내게 목매달게 하는 게 좋아. 나 혼자 즐거우면 억울하니까. 춤 하나에 목매달지 않지. 타고난 게 잘나 그냥 해도 난 잘하지.”
공식적인 자리에서 카메라와 1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 앞에서 내 랩을 보여준다는 게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난 이미 미국의 유명 에쉬맨이었고 드렉스였다.
“네 눈동자를 촉촉하게 만들어, 이게 나의 Melody.”
“Melody!”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들어, 이게 나의 Lyric.”
“Lyric.”
“꿈에서도 널 슬프게 만들어, 이게 나의 Emotion.”
“Emotion”
그래서 이대로 끝내기가 아쉬웠다. 우리 팀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한곡에 한정되었지만 지금 나와 순한 삼촌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뜨거운 래퍼의 열정과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이었으니까.
“마이크는 절대 무기, 내 목소리는 절대 방패. 나는야 천재였지. 천재였지.”
조명도 필요 없었다. 정해진 동선 따위 이미 어긴지 오래였다.
[딴, 딴딴. 따다다단단 딴딴딴.]
베이스 비트 따위, 이 노래의 비트 7, 80%가 내 손가락 건반 음에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점이 그때 내 머릿속의 모든 것을 채운 상태였다.
순한 삼촌 또한 이미 이를 신경 쓰지 않은 듯 했다. 갑작스럽게 피아노 건반을 거칠게 두드리기 시작하는 나의 행동에 이어 순한 삼촌 또한 자연스레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댔으니까.
“네 살 때부터 나는 그냥은 안 먹어. 천재였지.”
“천재였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이클 잭슨, 박재성, 양동혁 모두 내 선배였지.”
순한 삼촌 파트고 뭐고 구분할 필요 없이 서로가 제각기 다른 방향에서 비트에 모든 것을 맡겼고 나 또한 이성보다는 가슴과 관객들의 호응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하지만 타고난 걸 버리고 마이크를 들었지. 너희들을 웃기는 게 좋아. 먹는 건 나만 웃게 만드니까.”
“네 눈동자를 촉촉하게 만들어, 이게 나의 Melody.”
하나의 비트 다른 가사. 하지만 삼촌과 나 가사 한 줄씩 순서대로 이어지는 랩은 아레나에 가득 들어찬 관객들의 열기와 열정, 환호를 더욱 뜨겁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관객들과 호응하다 땀으로 온 몸을 젖게 되었을 때, 어느새 입고 있던 상의들이 모두 벗어재껴져 있었을 때, 지치다 못해 바닥에 드러누워 거친 숨을 쉬었을 때, 관객들마저 호응하다 목이 쉬어버렸을 때까지.
*
[빅 스타의 클라우드, 제라. 아시아의 별 SAY. 대한민국 대표 여성 뮤지션 아인유. 댄스에 죽고 댄스에 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댄스 가수 박재성. 국내와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강지혁. 단 한 팀도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역대 급 가요제가 막을 내려!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아레나 고양시 한류월드 꿈 아레나에서 개최된 이번 2019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에 참석한 10만 명에 달하는 관객들의 감탄과 호평 일색인 후기가 물밀 듯이......]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 10만 명을 열광시킨 2019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 참석 후기가 온라인상을 뜨겁게 달궈...... 특히 인증 샷들 가운데, 한때 인터넷을 떠돌던 박재성의 굴욕 영상을 연상시키는, 상의를 벗은 채 조각 같은 몸매를 자랑하며 피아노 건반을 치면서 한쪽 발로 건반을 뭉개듯 쓸어내리는 강지혁의 굴욕 아닌 굴욕, 흑 역사 샷에 본 방송에 대한 네티즌들의 기대감이 더욱 드높아......]
============================ 작품 후기 ============================
萬年雪花님 후원쿠폰 16 장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 글을 쓰면서 자주 느끼는 것은, 제가 '와 이번 편은 진짜 잘 썼다. 독자들 반응이 좋겠다.' 라고 느낀 편의 실제 독자분들 반응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적이 꽤 많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이번 편 진짜 잘썼다. 독자들 반응 기대, 기대.'라고 10번 예상했다면 3번은 혹평을, 5번은 그저 그런 반응이, 2번은 예상대로 호평이라는 피드백을 받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고민이 많이 됩니다. 제가 쓴 글이 어떤 부분에서 재미가 있고 어떤 부분에서 호평을 받는지, 글을 쓰는 제 자신이 예상을 못하고, 오히려 트렌드에 벗어난 반응을 예상하고 있으니까요.
참, 글이라는 게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이런 점들이 설렜습니다. 오늘은 과연 어떤 반응을? 마치 복권을 긁는 심정으로 독자분들의 코멘트를 바라보았으니까요. 그런데 선호작 수도 늘어나고 독자분들이 제 작품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감에 따라 조금은 무서워지더라고요.
이 또한 작가가 감내해야되고 또 노력해야 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좋은 꿈 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