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63화 (363/502)

00363  2019  =========================================================================

#363

[YOU ARE SO SEXY, SEXY.]

댄스의 끝을 보여주겠다는 듯 본인들 뿐만 아니라 스태프들 그리고 출연자들 모두를 들썩이게 만들어버린 재성 삼촌과 석준 삼촌의 리허설 무대 그리고

[내가 갑, 너는 을...]

마찬가지로 다채로운 퍼포먼스와 함께 파이팅 넘치는 무대를 보여준 SAY와 지운 삼촌의 리허설 무대를 거치고 나니 우리들의 차례가 너무나도 순식간에 다가와 버렸다.

“삼촌?”

넋 놓고 리허설 무대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듯 나와 삼촌 또한 말라버린 입에 연신 생수만을 들이킬 뿐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나와 달리 삼촌의 안색은 굳다 못해 하얗게 질려버렸다는 것 그리고 자신감 없는 눈빛과 잔뜩 주눅들어있었다는 것이었지만.

“어, 어?”

“우리 차례에요. 잘 하실 수 있죠?”

“어...”

도대체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답은 곧잘 하지만 표정과 행동을 보아하니 누가봐도 괜찮은 것 같지 않은 순한 삼촌이었기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리고 이내 이는 현실이 되고 말이다.

[딴, 딴딴. 따다다단 딴딴.]

무대 중앙에 마련된 피아노 위 건반에서 내 손가락이 노래의 시작을 알렸다. 그런데 그 후가 문제였다.

“네, 네 살 때부터... 나는 그냥은 안 먹어. 처, 천재였지.”

제대로 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속된 말로 가사를 ‘절어’버린 순한 삼촌으로 인해 리허설이 시작되고 30초도 되지 않아 중단되고 말았다. 비트와 어우러지게 피아노 건반을 치고 있던 나도 무대 조명을 점검하고 있던 스태프들도 모두.

“삼촌.”

“지, 지혁아 미안하다. 다시 해보자. 다, 다시.”

나도 모르게 절로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그리고 이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스태프들과 출연진들 모두의 걱정을 사기에 충분한 사태였다.

“네, 네 살 때부터... 나, 나는 그냥은 안 먹어. 처, 천재였지...”

두 번째 시도에서도,

“하, 한식, 중... 일식 모두 내 바, 밥이었지. 마이크를, 아니 하지만 타, 타고난 걸 버리고 마이크를 드, 들었지.”

세 번째 시도에서도 우리들의 리허설은 1분을 넘기질 못했다.

“삼촌 괜찮아요?”

엉망이 되어버렸다.

다른 팀들이 비장의 무기를 리허설 때에는 숨기는 것처럼 우리 또한 순한 삼촌의 앞부분에 틀어질 영상 그리고 내 파트가 시작되기 전 부분에 틀어질 영상을 리허설 때는 공개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이 무색할 정도였다.

“후우...”

심지어 나는 내 파트 부분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정도로 리허설은 지금 나와 순한 삼촌에게 있어 끝없는 좌절감을 선사했다.

“순한 형 괜찮아요? 지혁 씨 이걸 어떻게...”

그런 우리 팀 상태에 김태훈 PD님과 다른 출연진들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말을 건넸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듯 했다.

“순한 형 진정하고. 쉼 호흡해봐. 들이쉬고, 내쉬고.”

“지금 공연 두 시간 반 정도 남았는데... 태훈 형, 관객들 공연 2시간 전부터 입장이지?”

이미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린 듯 거칠게 숨을 내쉬며 묵묵부답인 순한 삼촌과 더불어 나  조차도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암울하게 다가왔으니까.

“일단 음향이랑 조명부터 맞춰볼게요. 순한 삼촌!”

하지만 머뭇거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 어?”

“일단 대기실 가서 마음 좀 다스리세요.”

순한 삼촌이 백지 상태가 되어버린 지금, 나마저 그런 상태로 시간을 보냈다간 본 무대 자체를 망쳐버릴 공산이 더욱 커짐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리, 리허설은?”

“지금 상태에선 리허설 못해요. 차라리 그 시간에 마음 다스리세요. 본 공연 대비해서.”

다만 지금 대기실에 보낸다고 해서 본 무대에서 순한 삼촌이 실수를 하지 않을 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지혁아 그럼 너도 리허설 못하잖아? 그래도 공연 전에 목이랑 풀어야지?”

“그럴 여유가 안 돼. 확인할 게 많아서.”

“그렇지만...”

“30분밖에 안 남았잖아. 관객들 들어오는 게.”

그런 내게 클라우드 형이 우려를 표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30분 남짓한 시간은 조명과 동선 그리고 음향을 점검하기에도 바쁜 짧은 순간인지라, 리허설도 없이 본 무대에 서는 것이 현실임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입장 시간을 조금 늦추는 건 안 되나? 태훈 PD님 관객들 입장 30분만 늦춰주면 안 돼요?”

“맞아, 태훈아. 재성 형 말처럼 관객분들 입장 조금만 늦추면...”

“그게... 1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벌써 줄을 서고 있어서요. 아무래도 힘들 것으로...”

재성 삼촌과 석준 삼촌이 그런 내 상황에 타개해보고자 해결책을 제시해보았지만, 결과적으로 불발이 되었기에 서둘러 음향부터 점검하기 시작했다.

현실에 좌절하고 암담해할 시간마저도 지금은 너무나도 소중했고 상황이 급박했으니까.

*

[이때 저는 북쪽 방향을, 순한 삼촌은 남쪽 방향을 주로 보고 있을 거에요. 네, 네. 그렇게 비춰주셔야 해요. 무대가 센터 서클이어서 한 방향만 볼 수 없어서 자주 움직이긴 할 거에요. 네, 네. 그렇게요. 조명 부분을 맞추시기 힘드시면 차라리 무대 전반적으로 밝게 비추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랑 순한 삼촌이 중간에......]

[베이스 비트는 소리를 조금 더 키워주셔야 할 것 같아요. 제 피아노 소리에 묻혀서도 안 되고 비트 소리에 제 피아노 소리가 묻혀서도 안 돼요. 네, 네. 아니요. 거기서 조금만 더. 네! 딱 그 정도가 괜찮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부분 제외하고는 제 피아노가 베이스 비트 역할을 할 테니까, 그 부분은......]

[이 부분은 영상을... 네, 네. 알고 계시죠? 네, 그 부분이 끝나고 바로 제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베이스 비트가 시작되는 거에요. 네, 그렇게요. 중간 영상 타임에도 마찬가지로요.]

30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음향과 동선, 조명 등을 점검하다보니, 어느새 대기실에서 공허한 눈빛으로 TV화면을 지켜보게 되었으니까.

[우와, 나 꿈 아레나 처음 와봐. 진짜 크다.]

[무대가 가운데 있네? 나 이런 무대는 처음 봐!]

[여기 진짜 좋다. 상점들도 꽉 차 있고. 우리 일찍 오길 잘 했다. 여기 지하 영화관에서 영화 도 한 편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자리도 이렇게 좋은 데 잡고. 히히.]

아직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기 직전인 만큼, 대기실에 마련된 TV화면들에는 관객들이 속속들이 좌석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카메라 전환을 시험해보는 듯 여러 구도에서 무대가 비춰지는 모습까지 말이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유석준! 유석준!”

이내 화면을 가득채운 석준 삼촌의 등장과 멘트로 2019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가 그 시작을 알렸다.

“2019년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10만 명이나 되는 분들 앞에 서니까, 정말 떨리네요. 하하...”

10만 명이라는 사람들의 기세를 온몸으로 받아 내야한다는 점에서 석준 삼촌 또한 부담감을 쉽게 떨쳐내지 못한 듯, 멘트를 하는 삼촌의 목소리는 알게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제 아무리 석준 삼촌이 국민 MC라 할지라도 이는 당연했다. 대기실에서 화면으로만 이를 체감하고 있는 출연진들 또한 떨려오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10만 명이라는 숫자와 그들이 보내는 열기와 함성은 대단한 것이었으니까.

“삼촌? 지금까지 해온 대로 연습해온 대로 하면 돼요.”

“그, 그래. 지혁아...”

뭐, 나는 그로인해 더욱 암담해지는 속내를 애써 감춰야 했지만.

“첫 번째 공연은 여러분들이 정말 많이 기대해주셨던 팀의 무대인데요. 동갑내기 세 명의...... 빅 스타의 클라우드, 제라 그리고 모자란 녀석들의 막내 이강현이 펼칠 무대입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로 맞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는 사이 첫 번째 무대를 꾸밀 클라우드, 제라 형 그리고 이강현 씨가 어느새 대기실 TV 화면 속에 모습을 드러냈고 스태프들이 서둘러 무대를 꾸미기 시작했다.

“OH MY GOD!”

그리고 이내 화려한 변주 리듬과 함께 그들의 무대는 시작되었다.

*

사물 놀이패의 등장으로 한껏 끌어올린 분위기를 폭파시켜버리다시피 터트려버린 첫 번째 팀 그리고 이내 이어진, 이십여 명 댄서들과 함께 다채로운 모습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킨 두 번째 팀의 모습은 그들이 리허설 때는 보여주지 않았던 비장의 무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번 무대는 지난 2009년......]

[여러분께서 많이 사랑해주신 노래죠? 지난 2011년 가요제에서......]

그렇게 중간, 중간 그동안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에서 인기를 끌었던 노래 또한 다음 무대 설치 시간 동안 펼쳐져 관객들의 흥 그리고 열정은 한껏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관객들의 기대감을 이내 이어진 재성 삼촌과 석준 삼촌의 무대와 SAY와 지운 삼촌의 무대는 충분히 충족시켜주었다.

[YOU ARE SO SEXY, SEXY.]

댄스의 끝을 보여주겠다는 듯 무대뿐만 아니라 관중석까지 들썩이게 만들어버린 재성 삼촌과 석준 삼촌의 무대 그리고,

[내가 갑, 너는 을...]

자신이 왜 아시아의 별로 불렸었는지를 보여주는 SAY의 역동적인 댄스 퍼포먼스와 노래에 레게 멜로디를 뒤섞어 자연스레 관객들과 호흡하는 지운 삼촌의 무대까지.

모든 팀들의 무대가 너무나도 완벽하다고 느껴졌다. 우리 팀의 상태가 어떤지를 인지하고 있어서인지 더욱.

“삼촌. 우리 차례에요.”

드디어 우리차례가 되고 말았다. 무대를 향한 설렘보다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리허설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오죽할까.

“그, 그래.”

리허설 때 끝까지 자기 랩 파트를 소화하지 못한 순한 삼촌 거기에 아예 내 파트를 아예 불러본 적도 없는 나.

이런 상황임을 모르지 않았다. 여기에 있는 모두가.

“지혁이 파이팅!”

“순한 형! 끝장내고 와버려! 마지막 피날레!”

그래서일까. 다른 출연진들의 응원이 다른 팀들의 차례 때보다 더욱 우렁찼고 한편으로는 절박함과 간절함마저 느껴졌다.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절박함과 간절함의 십 분지 일도 안 될 테지만.

“삼촌. 무대 시작 전에 영상 나온다고 했죠? 그때 영상 끝나고 언제 시작 한다고 했죠?”

어쨌든 무대 설치를 위해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석준 삼촌이 멘트를 통해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이 순간이 우리에게 허용된 공연 전 마지막 시간이기에 다시금 점검해야만 했다.

“어, 어?”

“삼촌!”

“어, 어?”

“정신 차려요. 지금 우리 차례라고요!”

관객들이 뿜어내는 기세에 정신을 차리고 있지 못한 순한 삼촌의 모습에서 이제는 더 이상 참고 있을 수 없었다. 이건 건방지고 아니고를 떠나서 우리에게 허용된 마지막 시간이었으니까.

“이거 리허설도 아니고 주말에 만나서 한 연습도 아니에요. 알아요?”

그런 나의 정색과 낮게 깔린 목소리에 순한 삼촌의 눈동자에 약간이나마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본 무대라고요. 지금 10만 명이 우릴 기다리고 있고 그 10만 명 앞에서 우리 무대를 펼쳐야 한다고요!”

“그, 그래. 그래!”

“정신 바짝 차려요. 무대 시작 전에 영상 나온다고 했죠? 그때 영상 끝나고 언제 시작한다고 했죠?”

“네가 피아노 치면 그때 조명이 날 비추고......”

무대 준비라고 해봤자, 피아노 한 대를 무대 중앙에 설치 해놓는 게 전부이기에 시간은 금세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순식간에 흘러버렸다.

“자! 마지막 무대입니다!”

“와아아아아!”

“강지혁! 강지혁!”

“이 팀은 준비 과정부터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요. 방송 상에서 유일하게 가요제 곡이 드러나지 않은, 아니 드러나지 못한 팀입니다. 그래서 시청자 여러분들이 많이 걱정하셨을 텐데요.”

우리에게 그나마 많은 시간을 벌어주려고 갖은 애를 쓰는 석준 삼촌을 보며 잠시나마 두 눈을 감아버렸다.

모든 게 의도대로 되길, 무대에서 후회하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내가 준비한 것들이 순한 삼촌의 자신감과 감정을 조금이나마 움직일 수 있기를 바라면서.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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