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62화 (362/502)

00362  2019  =========================================================================

#362

“제가 지혁 씨 직접 한번 보고 싶어서요. 오빠한테 엄청 졸랐거든요. 죄송해요.”

“아, 아닙니다. 크흠...”

이혜린의 말과 더불어 클라우드 형의 미안함 가득 담긴 눈빛 그리고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유병준 씨의 모습에서 체념하고 말았다. 여기서 지금 이 상황에 대해 클라우드 형에게 추궁해봤자 분위기만 가라앉을 뿐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자리에 모인 이들을 한 번씩 훑다보니, 방송 작가 출신으로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한다는 유병준 씨는 솔직히 이번 자리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사람인지라 조금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혜린이야 클라우드 형의 연인인 만큼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놀랄만한 일일지언정 이해 못할 일은 아닐 진데, 유병준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오늘 같이 예능 프로그램 출연했었거든. 그래서 우리끼리 한잔 하려고 하다가 너 생각나서 부른 거야. 혜린이도 너 보고 싶어 했고 병준이도 괜찮다고 했거든.”

“아! 안녕하세요. 아까는... 제가 TV를 잘 안 봐서요.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모르시는 게 당연하죠. 네, 당연하고말고요.”

“네, 네? 아, 네...”

“자! 맥주 한 잔 하자! 지혁이 너도 한 잔 할 거지? 안주는 뭐, 너 시키고 싶은 거 여기 메뉴판 보고 시키고.”

따라서 분위기는 자연스레 클라우드 형과 이혜린의 주도 하에 놓이게 됐다.

“저기 말 편히 해주세요. 클라우드 형이랑 동갑이시라던데...”

“제, 제가요?”

“네?”

술도 한두 잔 들어갔겠다, 어느 정도 자리가 무르익자 내가 먼저 유병준 씨에게 말을 놓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내 부탁 아닌 부탁에 유병준 씨는 꽤나 당혹스러운 듯 말을 더듬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될지...”

“네, 편하게 해주세요.”

“그래.”

그런데 이 사람, 뭔가 특이했다. 방송 상으로나 온라인상으로 이 사람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한 번도 직접 목격한 적은 없지만 대강이나마 상상될 정도로.

“네?”

“어?”

방송 작가라고 해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꽤나 지적인 이미지의 캐릭터나 아니면 이를 이용한 허당 캐릭터로만 활약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가?

말을 놓아달라는 내 말에 당황하며 말을 더듬던 그가 순식간에 말을 놓아버리는 것을 보며 알게 모르게 흥미가 돋긴 돋았다. 이 사람 꽤나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이구나 하면서.

어쨌든 그 순간을 계기로 분위기가 한층 매끄러워졌고 더욱 밝아졌다.

“저번에 미국 6월 되면 간다고 했지?”

“어, 촬영 때문에. 5월 말 쯤에 갈 수도 있고.”

“미스터 지 후속편 촬영 하시는 거에요? 미국에서 6월부터?”

“네? 아, 예.”

가게 자체가 워낙 작은 규모였는지라 주변의 시선 또한 그다지 따갑지 않았고 이름 모를 음악으로 인해 우리의 대화가 다른 쪽으로 세어나갈 확률도 없었으니까.

“우와! 저 진짜 재밌게 봤어요. DVD 사서 클라우드 오빠랑 같이 봤어요. 오빠 집에서.”

“재밌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내 자랑 같아서 조금 그렇지만 그래도 내 팬이라는 말이 의미 없는 립 서비스는 아니었는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거창한 반응을 더해주는 이혜린 덕에 뜻밖의 술자리는 어느새 익을 대로 익어갔다.

“무슨 예능인데?”

“어?”

“오늘 다들 같은 예능 프로 나갔다며.”

“아! 그거?”

그나저나 무슨 예능 프로그램이길래, 클라우드 형도 그렇고 이혜린 그리고 유병준 씨까지 함께했다는 건지 궁금해졌다. 더군다나 빅 스타 선배들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예능에나 나가는 건 아님을 모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화투 패거리라고...”

“뭐?”

그런데 막상 듣게 된 프로그램 이름은 내게 꽤나 생소했다.

그래서 깨달았다. 평소 TV도 보지 않은 놈이, 고작해야 아는 예능이라고는 그동안 출연했던 장수 프로그램들뿐이면서 클라우드 형이 말한 프로그램을 아는 게 더 이상한 거라고.

“쉽게 말해서 복불복이야. 화투 패 중에서 하나 뽑아서 광 나오면 최고급 숙소에 밥에 호강하는 거지. 퇴근도 빨리하고.”

“광이 안 나오면?”

“퇴근도 늦게 하고 뭐, 고생만하다 오는 거지.”

뭐 그런 내 모습에서 나의 속내를 짐작한 탓인지, 클라우드 형이 이내 화투 패거리라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다. 그런데 그 설명을 듣다보니, 이해가 안 갔다. 왜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인지가 말이다.

“2박 3일 촬영인데 나랑 혜린이는 1박만 촬영했어. 중간 게스트로.”

“살벌하네. 그 예능 왜 나갔어? 갑자기 고생이라도 하고 싶어졌어?”

“야, 너 진짜 TV 좀 보고 살아라. 요즘에 그게 얼마나 핫 한데?”

“진짜?”

“광이 그냥 광도 있고 상대편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광도 있어서 재밌어요. 오늘 녹화 때도 그것 덕에 이렇게 일찍 퇴근한 거구요.”

“그리고 병준이가 거기 고정이잖아. 그래서 같은 소속사니까, 힘도 실어주고 나름 트렌드 좀 따라가려고 나간 거지.”

뭐, 재미가 있으니까, 클라우드 형 말마따나 요즘 대중들에게서 핫 하다는 평가를 받은 거겠지.

“그래. 가요제 때 봐.”

가요제가 얼마 남지 않았는지라 그 날의 술자리는 빨리 끝마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제외한 이들이 당일에 이미 녹화를 하고 온 터라, 상대적으로 피로도가 꽤나 쌓여있는 상태였고 그 중 클라우드 형은 나와 마찬가지로 가요제의 참가 멤버였으니까.

“어, 형. 그때 봐. 그리고 오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다음에 또 뵐 수 있으면 뵈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다음에 오빠랑 같이 해서 또 봐요. 그리고 사인 감사했어요.”

“그래. 다음에 또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늘 재밌었어. 너도 잘 가.”

그렇게 클라우드 형과 오늘 친분을 나누게 된 유병준 씨와 이혜린 양에게 다시금 작별 인사를 건넨 뒤 택시에 올라탔다.

“...... 로 가주세요. 기사님.”

하아. 오늘은 편하게 집에서 자야겠다.

*

“삼촌 첫 오프닝은......”

드디어 가요제 날이 다가왔다.

[강지혁과 정순한의 가요제 곡 ‘천재였지’ 벌써부터 반응이 심상치 않아? 방송 말미에 짧게 공개됐던 전반부 랩 첫 마디와 베이스 비트에......]

솔직히 제작진 측에서 의도한 것처럼 대중들의 관심이 생각 그 이상으로 뜨거워져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우리 팀의 작업 시작 자체가 늦어져 방송 상에서 분량이 적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도리어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더한 것 같았으니 말이다.

“영상 틀어지고 나서 제 피아노 반주가 깔리면 그때부터 삼촌의 시간인거에요. 아시겠죠?”

“그럼. 그런데 지혁아, 너무 떨린다. 삼촌.”

뭐, 과정 자체가 순조롭지는 못했으나 결과적으로 모든 준비는 끝을 맺었다. 100% 완전한 준비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부족한 점이 두 눈에 잔뜩 들어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준비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순한 삼촌이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쏟아 부을 수 있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완벽하지도 않은 준비일진데 그마저도 다 소화해내지 못한다면, 그동안의 고생들과 노력들이 모두 헛수고가 되어 무대를 끝마치고 난 뒤의 내 자신을 무척이나 허무하게 만들 것만 같았으니까.

“저도 떨리는 건 마찬가지에요.”

“정말?”

“아무리 가수라도 무대 앞에서면 떨리는 건 당연해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보통 무대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10만 명이라는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공연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부담감이거니와 꿈 아레나가 지닌 장점인 센터 서클 무대 덕에 전방뿐만 아니라 360도 방면을 모두 신경 써야 된다는 압박감마저 염두에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다른 팀 리허설 하는 거 보고 긴장 좀 풀고 우리 리허설 때 마음껏 자랑해보세요. 삼촌이 가진 것들을요.”

그래도 짐짓 괜찮다는 듯, 나 또한 무대를 앞두고 떨리는 것은 일상다반사임을 순한 삼촌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그러는 사이 가요제 공연의 첫 번째 차례인 제라, 클라우드, 이강현 팀이 리허설을 시작하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OH MY GOD!”

제라 형의 목소리가 녹아든 잠시도 쉴 틈 없이 변주되는 리듬이 들려오자 나와 순한 삼촌의 대화도 이내 멎고 말았다.

“HIGHER, MAKE IT HIGHER.”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는 지금까지 댄스 장르가 대세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는 이번 가요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댄스 장르인 재성 삼촌과 석준 삼촌 팀, 자신이 지닌 본디 음악적 캐릭터와는 달리 파격적인 변신이라고 할 만한 EDM 댄스 장르를 선택한 아인유 양과 박수형 삼촌 팀 그리고 아시아의 별이라고 불렸던 댄스 가수임을 증명하듯 이번에도 댄스곡을 준비한 SAY와 하지운 삼촌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서 대중들에게 관심을 끌기에 가장 유리한 장르는 다름 아닌 클라우드, 제라 형 팀이었다.

댄스 힙합.

그들이 가장 잘하는 장르임이 분명한 장르이기도 하거니와 지금 들려오는 노래와 무대는 이를 증명하듯 높은 완성도를 자랑할 정도였으니까.

“WHY SO SERIOUS?”

리허설 때는 비장의 한 수를 숨겨두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본 무대에서는 이보다 더욱 화려한 무대로 관객들을 매혹시킬 게 분명했는지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GIVE ME, GIVE THAT.”

화려하게 변주되는 힙합 리듬 그리고 그 리듬이 관객들을 지루할 틈 없이 만들 것이고 중간, 중간 곁들여진 댄스 브레이크 때는 무대를 소화할 가수들의 호흡을 고려한 듯 적절한 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 모든 공연을 소화해내는 당사자들의 얼굴은 놀이터에서 아무 걱정, 근심 없이 뛰어노는 아이들 같았고 말이다.

[짝짝짝]

[와아아아!]

[짝짝짝]

짧다면 짧을 첫 번째 팀의 리허설이 끝나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팀들 또한 기립해서 박수를 치며 환호를 했다. 그 정도로 첫 번째 팀의 무대는 완성도 높은 무대였고 관객들이 기대할 만한 무대였으니까.

“삼촌 주눅 들지 마요.”

“어, 어?”

“댄스 힙합이 아니어도 충분해요. 지금껏 준비해온 대로만 하면.”

다른 팀들 또한 첫 번째 차례답지 않은 첫 번째 팀의 무대에 부담감과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팀은 이런 경향이 조금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자신감이 부족한 순한 삼촌일진데, 형식적인 경쟁이라 할지라도 경쟁을 하고 있는 상대팀의 무대가 굉장히 수준 높은 무대라는 점에서 부정적인 감정들이 기세를 탄 듯 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아이 돌 가수이지만, 노래나 랩과는 거리가 먼 이강현 선배가 비교적 양호한 랩 실력을 선보였다는 점과 더불어 첫 번째 팀도 댄스곡이라는 점만 다르지 우리와 마찬가지로 힙합 곡을 무대에서 선보였다는 점까지 이에 더해졌으니 오죽할까.

“그, 그래...”

“주변 사람들이 삼촌 랩 듣고 좋다고 했던 기억 떠올려요, 자신감이 생겼다면서요.”

이거 이대로 다른 팀들의 무대를 계속해서 봐도 되나 싶었다. 내 말로 자신감이 생겼던 순한 삼촌도 아니거니와 그런 삼촌의 자신감을 상승시켜줬던 과거의 기억마저도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순한 삼촌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별 효용이 없는 듯했기 때문이다.

“야옹.”

그런 내 예상은 다음 차례로 무대에 오른 아인유 양과 박수형 삼촌의 리허설이 시작되자마자 현실이 되고 말았다.

본인이 그동안 주로 해왔고 또 잘 하기도 하는 장르가 아닌, EDM 댄스곡을 선택한 두 번째 팀은 결코 첫 번째 팀에 밀리지 않은 완성도를 지켜보고 있던 모두에게 선사했다. 세련된 레트로 블루스 풍의 멜로디에 박형수 삼촌만의 EDM을 결합시킨 무대는 그 정도로 눈을 뗄 수 없는 무대였으니 말이다.

걱정됐다.

지금이라도 공연장 밖에 내보내 오늘 공연 곡을 연습시켜볼까 싶을 정도로.

하아. 도대체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

어리석다. 어리석어. 강지혁.

============================ 작품 후기 ============================

cacao99님 후원쿠폰 10 장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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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드디어 표지 최종본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조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제와 되돌리기엔...

조만간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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