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61 2019 =========================================================================
#361
중간 결산과 중간 결산 바로 직전의 작업 장면이 전파를 탔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며칠 전 석준 삼촌의 말마따나 신경 쓰지 않으려 했는데, 그게 말처럼 잘 안됐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 말처럼 나를 향한 열등감과 시샘, 시기가 뒤섞인 비난에 너무 연연할 필요 없다는 것을 지난 연예계 생활동안 터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이것이 통용될 지라도 마음속으로는 전부 통용될 수 없는 것이 연예인의 어쩔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거 웬걸? 막상 뚜껑을 열어본 솥뚜껑 안에는 생각했던 만큼의 탄 밥이 존재하지 않았다.
[강지혁이 랩을? 정순한과 함께 힙합 듀오로...... ‘클래식 음악과 같다’ VS ‘아직 밑바탕 베이스 일 뿐’ 으로 충돌을 빚은 강지혁 정순한 듀오. 미국 특집에서 시청자들의 혹평을 받았던 정순한의 태도가 또다시 방송 전파를 탐에 따라 시청자들의 눈살이 찌푸려......]
나와 순한 삼촌이 갈등을 빚는 장면이 아예 삭제된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 메인 포털 사이트에 하나, 둘 개제되기 시작한 기사들에는 나와 순한 삼촌의 갈등을 조명한 것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나를 비난하는 대중들의 반응은 극소수였다.
[다음 주 방송에 대해서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순한 형도 그렇고 태훈이까지 논란 일으키지 않게끔 하기로 했으니까.]
석준 삼촌의 말뜻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절묘했다.
-아니 미친! 작업할 시간을 줘 놓고 저런 불만을 해야지. 뭐하자는 거임? 정순한?
-정순한 또 시작이네. 하아. 제 버릇 남 못준다더니. 또 저러네. 또.
-빌보드 스타한테 음악가지고... 하아... 기가 찬다. 기가 차.
-아니 뭘 믿고 저렇게 못 믿는 거임? 다른 가수도 아니고 강지혁인데? 강지혁이 랩을 직접 안 해봐서 그렇지, 미쳤어도 그렇고 마이식스 곡이랑 다른 아이돌 그룹 곡들 보면 강지혁이 전부 작곡, 작사했는데... 강지혁을 몰라도 너무 모르네...
갈등을 빚었기에 다른 팀들에 비해 보다 많이 조명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당위성 측면을 집요하게 잡고 늘어진 제작진 덕에 대중들의 화살은 순한 삼촌에게로 쏠려 있었다.
그래서 미안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순한 삼촌의 행동에 발끈함과 동시에 다소 건방져 보일 수 있었던 행동들이 상대적으로 축소된 반면, 순한 삼촌이 나를 무시하는 행동들은 여과되지 않았다 봐도 무방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방송 전파를 탔으니까.
이거 순한 삼촌에게 전화라도 한 통 걸어야하나 싶었을 정도로 마음이 마냥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대충 훑어보던 기사 창을 내리고 전화를 걸려던 내 두 눈에 인상을 찌푸릴 만한 기사가 보인 것은.
[스웨이스의 ‘힙합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에이진의 ‘랩은 아무나하는 것이 아니다.’, 스템플러의 ‘요즘은 개나 소나 힙합 한다고 하는데 주제를......’ 등과 같이 2016년 WMCA때 강지혁의 수상소감을 빌미로 일제히 반감을 드러냈던 힙합 거성들이 다시금 반발을...... 이날 방송에서 강지혁은 “힙합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라는 발언을 하면서 랩과 힙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거성은 무슨, 얼어죽을 거성?
되도 않는 것들이 또다시 나를 걸고넘어진다는 점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스웨이스 “모자란 녀석들의 유명세와 본인이 지닌 인지도를 통해 또다시 힙합 장르를 우습게 보는 강지혁......”]
[에이진 “힙합을 본인의 인지도 유세에 이용하려는 강지혁의 행동이 역겨워......”]
[스템플러 “주제를 모르고 힙합을 이용하려는 짝퉁 래퍼는 대중들의 냉혹한 혹평을 받게 될 것.” 이라며......]
도대체 제깟 것들이 무엇이건데 나를 제단하려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국 힙합계의 거장인 에쉬맨이나 드렉스일지라도 나를 이렇게 무시 못 할진데, 피라미 몇 마리들이 자꾸만 내 구역의 물을 흐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아. 이 피라미들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동안 저들의 귀여운 행동들에 일일이 대꾸하지 않고 무시로 일관한 것은 바로 이런 대응이 저들을 가장 굴욕스럽게 만들 행동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괜히 발끈해서 반박대응을 하면 인지도나 유명세와 같이 본의 아니게 나를 통해서 저들이 원하는 것들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줄 수도 있었으니까.
“네, 네. 삼촌.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삼촌은 괜찮으세요? 괜히 저 때문에...”
그렇게 도리어 내게 먼저 전화를 건 순한 삼촌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시 피라미들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었으나 잊지는 않았다. 어떻게 요리해야 저들에게 가장 큰 굴욕을 줄 수 있을지도 곁들여서 말이다.
*
[모자란 녀석들 티켓팅 내일 오전 6시부터 아웃파크를 통해 예매 시작! 오는 3월 8일 금요일 저녁 6시부터 고양시 꿈 아레나에서 개최될 2019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는......]
[...... 미 대통령 5월 달에 10일 가량 중국, 일본 방문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그런데 한국은 방문하지 않는다? 급박한 동북아 경제, 안보 상황 속에서 국제 외교에서 한국만 배제되는 현 사태는 오는 4월 마찬가지로 중국, 일본을 방문할 예정인 마이켈 독일 총리의 경우에서도...... 백악관 대변인은 “이번 동북아시아 일정은 가드너 오바마 대통령의 여름휴가를 앞당긴 것으로, 중국 및 일본 방문 또한 공식 일정이 아닌...... 대통령과 가족들의 개인적인 휴가를 확대해석하는 것은 자제해......” 라는 공식 발표를 하며 독일 총리 측 대변인의 “중국, 일본 공식 일정을 마친 뒤 마이켈 총리는 곧바로 개인 휴가 일정을 소화할 것이며 행선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와 다를 바 없는......]
[테일러 노우웰 월드 투어의 마지막을 꿈 아레나에서! 북미, 남미, 유럽 투어 등 6개월여 간의 대장정을 끝마치는 오는 5월 중순 아시아 투어의 개최지로 고양시 꿈 아레나를 선택한 것으로 밝혀져! 현재 구체적인 공연 날짜와 횟수를 꿈 아레나 측과 조율 중에 있으며...... 메탈리스트, 핫 플레이 등에 이어 테일러 노우웰까지!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아시아 투어 개최지로 꿈 아레나가 각광을 받고 있는 가운데, 벌써부터 고양시는 지역 경제 활성화로 함박웃음!]
녀석도 양반은 아닌 듯 했다.
[공연은 잘하고 있어? 월드 투어 한다고 그랬었잖아.]
[물론이지.]
[기사 봤어. 한국에는 5월 초? 중순? 그쯤 온다며?]
순한 삼촌과 촬영 스태프들을 기다리며 간단히 인터넷 기사들을 보던 중 테일려 녀석의 소식을 보자마자 당사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으니 말이다.
[어? 한국에도 벌써 기사떴나보네.]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댄데 그게 숨겨질 거라 생각하는 거야? 바보야.]
뭐, 보름에 한 두 번꼴로 연락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녀석의 전화가 반갑긴 반가웠다.
[지금은 어딘데?]
[리우야. 어제 LA 공연으로 북미 투어마치고 지금 남미로 내려왔어. 여기서 한 달 정도 있다가 유럽 투어 한 달 보름? 그쯤 있다가 서울 갈 거야.]
이곳과 달리 남미는 지금쯤 아침이어서인지, 녀석의 목소리가 조금 잠긴 듯 했지만, 그 정도로 반가움이 가시지는 않았으니까.
[너 한국에 5월까지 있는 다며?]
[어?]
그나저나, 이 녀석 도대체 내 일정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안 그래도 월드투어 하느라 바쁜 녀석이.
하나, 둘 작업실로 들어오는 스태프들에게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내게 들려온 녀석의 말로 인해 순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녀석에게 이와 관련된 스케줄 일정을 알려준 적이 없었는데, 정작 녀석은 너무나도 자연스레 이를 알고 있는 듯 했으니까.
[코난이 그러던데?]
범인은 바로 코난이었다. 내게 다이그 리넨만 감독을 소개시켜준 코난.
아니, 이 아저씨가 내 일정을 흘리고 다닌다 이 말이지? 전통술을 선물하려고 했는데, 취소해야 하나? 나 원 참.
[그럼 같이 가면 되겠다. 한국에 있다가 미국 갈 때.]
[어, 그러던가.]
[그런데 주변이 조금 시끄럽네? 밖이야?]
[아니, 한국에서 프로그램 하나 하고 있거든. 그거 스태프들 와서 장비 설치하느라 그래.]
[그래? 그럼 오늘 통화는 이만 하고 나중에 또 연락할게. 나도 배고파서 아침 먹어야겠다.]
그렇게 테일러와의 통화는 본격적으로 촬영 장비를 설치하기 시작한 제작진들로 인해 비교적 일찍 마무리되고 말았다. 뭐, 녀석의 통화가 갑작스러웠던 것이지 촬영 스태프들이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는지라 나 또한 미련 없이 휴대폰을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테일러요. 이번에 한국 공연한다고 연락이 와서 잠깐 받았던 거에요.”
그런 내 모습에 이내 다가온 김태훈 PD님의 얼굴은 생각 이상으로 걱정에 가득 차 있었다.
“괜찮은가요? 오늘 방송 때문에...”
“제가 문제인가요. 저 때문에 순한 삼촌이...”
그런데 김태훈 PD님을 걱정에 찬 얼굴로 만든 원인이 내가 예상한 것과 사뭇 달라 조금은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래퍼들이 지혁씨한테...”
“아!”
별 같잖지도 않은 놈들 때문에 내 주변 사람들이 도리어 나보다 걱정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잠시 제쳐두었던 거슬림이 다시금 머릿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상관없어요. 그것 관련해서는요.”
“네?”
“원래부터 그런 사람들 많아요. 저 이용해서 본인 인지도 끌어올리려는 사람.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한테는 지금까지 무시로 일관한 거고요.”
괜히 괜찮다고 대충 답변하면 계속해서 걱정할까봐, 단호하게 말했다. 발톱의 때처럼 여기는 이들 인만큼, 내가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큰 굴욕이고 그런 이들의 접근이 내게는 꽤나 익숙한 일이라고.
“그나저나 순한 삼촌은요?”
서둘러 화제를 돌리려 했다. 방금 전 말이 효과가 있든 없든, 일단 화제를 돌려야 이와 관련된 생각을 잠시 제쳐둘 테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곧 온다고...”
“지혁아!”
“삼...촌?”
새롭게 등장한 화제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
“이게 다...”
눈앞에 펼쳐진 것들로 인해 촬영이 지연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촌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요...”
“너 요즘 집에도 못가고 혼자 있는 다며. 그러니까, 잘 챙겨 먹어야지. 이거 강원도에서 바로 잡아온 피 문어인데, 이거 살짝 데쳐서 초장에 찍어먹어도 맛있고...... 이건 완도에서 전복을......”
순한 삼촌이 양손 가득 들고 온 상자 안에는 갖가지 음식들이 가득 담겨 있었으니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갑작스럽게 이런 걸 가져온 순한 삼촌 행동의 기저에 무엇이 있는 지가 궁금해졌다. 당연스럽게도.
“그게... 대기실에서 연습하다가 같이 출연하는 애들한테 들려줬는데... 애들이 천재였지 듣고서 너무 좋다고... 누가 부른 거냐고, 어떤 래퍼 곡이냐고 막 나한테 묻더라고...”
이런 삼촌의 행동에는 본인의 자신감 상승이 큰 몫을 한 듯 했다. 그리고 그 자신감 상승에는 내가 아닌 주변 사람들이 큰 몫을 한 듯 했고 말이다.
“내가 자신감이 없어서... 그동안 자꾸... 그래도 그게 나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지. 지혁이 너를 못 믿어서는 아니야. 내가 다...”
어휴. 내가 못산다. 진짜.
미운 짓을 했다면 모를까, 날 위해서 저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온 순한 삼촌을 보니 말이 안 나왔다. 말이.
저렇게 싸들고 오면 연습은 언제 하겠다는 거야? 나 원 참.
*
[한잔 하자. 그때 봤던 호프집에서. 오케이?]
바리바리 음식들을 싸온 순한 삼촌을 데리고 서너 시간 동안 연습을 해서일까. 진이 다 빠졌는지라, 작업실 한쪽 소파에 드러누워 꼼짝도 하지 않으려했다. 이내 보게 된 문자 메시지 속 내용을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고민을 했다. 갈까, 말까를.
에라 모르겠다.
내일도 점심때부터 가요제 연습이 있었기에 조금은 망설여졌지만, 맥주 한두 잔, 정도는 괜찮겠거니 싶어 기분 전환도 할 겸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겼다.
그런데 그 선택이 조금은 섣불렀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혼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클라우드 형의 연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혜린만 형의 옆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사해. 여긴 병준이라고. 요즘 예능 프로에서 잘나가고 있는데... 설마 얼굴까지 모르는 건 아니지?”
이 사람이 진짜.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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