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58화 (358/502)

00358  2019  =========================================================================

#358

“이렇게 올 줄 알았으면 더 꾸미고 오는 건데...”

“어? 괜찮아. 지금도.”

“정말요?”

“응.”

본의 아니게 유진 녀석과 드라이브를 하게 되었다. 녀석의 꽤나 날카로운 눈초리에 지레 찔려서 말이다.

“날씨가 겨울답지 않게 따뜻하네. 차가운 걸로 가져왔는데, 괜찮지?”

한국에 와서 연락을 하겠다는 말을 했었다. 미국까지 찾아와 적극적으로 내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유진의 행동과 더불어 그 마음에 대해 나 또한 궁금증이 돋아서 말이다.

“날씨 너무 좋아요. 벌써 봄이 온 것 같아. 그렇죠?”

“그렇네. 그래도 명색이 겨울인데 말이야.”

그런데 한국에 오자마자 여러 일을 벌인 까닭에 그 말을 지키지 못했었다. 그리고 오늘도 당초 유진 녀석과 단둘이 무엇인가를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은 게 아닌지라, 녀석의 제안 아닌 제안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언제 그 약속을 지켰을지 장담할 수 없어 내 스스로의 무심함과 안일함에 혀를 내두르게 됐다.

“재계약 했어요. 멤버들이랑 다같이. 걱정했었는데, 그래도 너무 다행이에요. 혼자가 될 것 같아서 조금 두려웠었거든요......”

“콘서트 준비 때문에 요즘 못하고 있긴 해도, 저번 해 말부터 작곡, 작사 공부하고 있어요. 그런데 공부하면 할수록 오빠가 더 대단하게 느껴져요......”

“그래도 팬들이 많이 응원해줘서 다행이에요. 설마하니, 좌석들 다 채울 수 있을지 꿈에도 몰랐거든요. 음... 조금 부담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틀 동안 팬들 볼 생각에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물론 녀석이 내게 건네는 말 하나, 하나는 이미 소진 녀석과 나눴던 얘기였고 다 같이 배달음식을 시켜먹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눴던 얘기였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근황이자 아미가 그룹의 근황을 얘기하는 녀석의 얼굴은 밝았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나와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녀석은 좋은 듯 했으니까.

“아까 커피 샀을 때, 같이 사놨었는데 깜빡했네. 조금 많이 샀으니까, 연습하고 나서 출출할 때 있을 거 아니야. 그때 가서 먹어.”

“어? 우와... 고마워요. 오빠.”

그렇게 녀석과의 짧다면 짧은 드라이브를 마치고 연습실 앞까지 직접 데려다주었다. 콘서트 준비 때문에 제대로 못 챙겨먹는 것 같아 저녁까지 같이 먹을까 싶었지만 동일한 이유로 그럴 수가 없었다.

“다음에는 이렇게 말고 따로 연락주실 거죠?”

“응?”

“그땐 더 예쁘게 준비할 테니까. 그때 봐요. 잘 가요. 오빠.”

오늘 운동복을 입은 채 함께했던 게 그렇게도 마음에 걸려서일까. 녀석은 연습실로 가기 직전까지 이를 언급했다. 그런 행동의 기저에 깔려있는 나에 대한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

“이건 뭔데? 삼촌?”

유진을 데려다 준 뒤, 포이보스 뮤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요제가 얼마 남지 않은 이상 별다른 할 일이 없다면 그 준비에 전념하는 것이 나의 당연한 하루 일과이자 일종의 의무였으니까.

“네가 저번에 방송 아예 안하겠다는 말은 아니라며.”

“그런데?”

그런데 그 별다른 할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포이보스 뮤직에 들어서자마자 내게 꽤나 두꺼운 문서더미를 건네는 민재 삼촌 덕에.

“너한테 섭외 요청 온 프로그램들 중에 괜찮아 보이는 것들이야. 인터뷰나 연예정보 프로그램 섭외는 제외하고 그냥 예능만.”

“예능만?”

물론 약간 당황하긴 했으나, 그 문서더미가 마냥 꺼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한국 체류 기간이 지나면 꽤나 오랫동안 미국에서 지내야하기 때문에 국내 팬들을 위해 되도록 방송 활동에 힘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뭐, 그 마음을 흔들리게 한 것이 바로 지금 준비하고 있는 모자란 녀석들의 가요제 준비 과정이었지만.

“어.”

“그런데 이렇게 많아?”

어쨌든 꽤나 많은 출연 제안서에 골치 아픈 프로그램은 피한 채 국내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제법 관심이 동했다.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 콘텐츠와 같이 막대한 스트레스를 주는 프로그램은 이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즐거워야 보는 팬들도 보다 즐거울 수 있을 거라 믿었으니까.

“출연료도 그렇고 예능 콘텐츠도 괜찮은 프로그램들이야. 새로 론칭 할 프로그램도 있고 기존에 유명 프로그램도 있고.”

“음식평론회?”

그렇다보니 음식평론회라는 프로그램의 섭외제안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한 번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제목부터가 비교적 부담 없는 음식 관련 프로그램 분위기를 물씬 풍겼고,

“동석이랑 신연무가 하는 프로그램인데, 그냥 마음 편히 음식 먹고 리뷰하는 프로그램이야. 괜히 또 이번 가요제처럼 신경 쓰는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MC를 맡고 있는 이들이 친분이 있는 신동석 삼촌과 안면이 있는 신연무 씨였기 때문이다.

“거기서 직접 먹는 거야?”

“그 점이 조금 걸리긴 하는데...”

“응?”

“촬영 날 스튜디오에서 뭘 먹는 게 아니라, 미리 먹어야 되는 거야.”

“어?”

“제작진 측에서 미리 서너 곳 정도 관련 주제에 맞는 식당을 알려주면 촬영 당일 이전에 모두 다녀와야 해.”

뭐, 삼촌은 촬영 당일만 시간을 빼내야하는 게 아닌, 그 전에도 몇 차례 개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한다는 점이 조금 걸린 것 같았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출연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한 끼 먹고 온다 생각하지 뭐. 그럼 일단 이거 할래. 음식평론회.”

그래서 그냥 하겠다고 생각했다.

보아하니, 제작진 측이 알려준 음식점들을 촬영 전에 돌아보는 것은, 어차피 끼니 때우는 거 보다 맛있는 곳에서 해결한다는 셈 치면 될 것 같았고 같이 갈 사람이야 내 바로 옆에서 덩달아 프로그램 제안서를 살펴보는 할 일없는 백수들이 넘쳐났는지라 걱정할 필요가 없는 듯 했으니까.

“지혁아 그런데 들어보니까, 이번엔 한 끼 채울만한 주제가 아닌 것 같던데... 괜찮겠어?”

“어? 이번 촬영 주제 음식? 토픽? 그게 뭔데?”

“디저트.”

다만, 이번에 내가 참가할 해당화의 주제 음식이 끼니 류가 아닌 디저트 류라는 점에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

“석조전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어떻게 보면 현재 중구 정동에 위치한 덕수궁 석조전보다 더욱 석조전 같은 건물이라 자부합니다.”

전화로 예고했던 방문을 시간 난 김에 행동으로 옮겼다. 다른 사람이 살 곳도 아니고 내가 직접 살 곳이기도 하고 한국에 있는 동안 되도록 시간 날 때마다 자주 들려보는 게 좋은 듯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석조전을 모티브로 삼았는데, 석조전보다 더 석조전 같은 건물이라는 관리소장 분의 말마따나 직접 본 본채의 위용은 장난이 아니었다.

“대, 대단하네요.”

“만족하셨다니, 저를 비롯한 공사 인부들 전부가 정말 좋아할 겁니다...... 공사과정에서 일체의 부실 공사가 없었음을 제 스스로의 이름을 걸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어렸을 적 한번 가봤던 덕수궁이고 석조전 자체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설계도만 보고 본채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을 보상하듯 완성된 본채의 모습은 정말이지 왕이 살 만한 건물이었으니까.

“대리인이신 조영환 관리사의 요청으로...... 예산 문제로 인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점이 엿보이는 석조전 내부 인테리어와 달리, 이곳 내부 인테리어는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로서 나전칠기장 기능을 보유한 이준재 기능장께서 1년 전부터 준비한 물품들을 우선 배치시키고 있으며......”

더욱이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부분까지 관리사님이 미리 지시한 듯, 건물 내부 인테리어마저 무형 문화재, 나전칠기와 같이 듣기만 해도 고풍스럽게 느껴지는 계획까지 듣게 되었으니 오죽할까.

“경회루를 모티브로 삼은 누각과 못은 현재 95%의 진행률을 보이고 있으며, 이미 정원 공사가 마무리된 만큼 누각 공사가 완공될 다음 달 말쯤이 되면 저택의 전체적인 윤곽을 확실히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별채 공사가 아직 절반도 완공되지 않은 것과 달리 본채에 이어 정원과 누각, 못 공사까지 거의 완공된 만큼 기분이 너무 좋았다.

경회루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누각위에 올라서자 못을 비롯한 저택 내 정원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두 눈에 담겼으며 담장 너머에 위치한 남산, 매봉산, 한강의 경치까지 훤히 들여다보였는지라 가요제 문제로 답답했던 가슴이 뻥하고 뚫리는 듯 했기 때문이다.

“별채 A, B의 공사로 인해 전체적인 저택 완공시기가 내년 6월로 예정되어있지만, 본채 내부 인테리어가 완공되는 석 달 뒤, 5월 중순쯤에는 누각과 못 및 정원 공사까지 이미 완공되어 있을 예정 인만큼 미리 입주하셔도 상관이 없을 듯합니다.”

“별채 공사가 진행 중인데... 입주가 가능하다고요?”

“...... 대목장의 지시로 작업이 외부에서 진행된 후 이곳에서 조립되는 전통 목재건축 방식도 있고 부지 자체가 워낙 넓은 만큼 오전, 오후 일부 시간대를 제외하면 딱히 지내시는 데 불편함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멋진 집에 빠르면 석 달 뒤부터 살 수 있다니 가슴이 설레 왔다. 물론 현장 소장 분의 말대로 석 달 뒤에 입주한다고 해봤자, 고작해야 보름 정도만 살고 미국으로 떠나야 할 테지만.

“공사 마무리 잘 해주시고 입주 문제는 따로 생각 더 해보고 추후에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현장 소장 분의 안내를 뒤로하고 본래 의도보다 더 오랫동안 저택을 둘러보았다. 별채 공사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지만, 저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원과 누각 그리고 못이 거의 완공되어서인지 둘러보는 데 방해가 될 만한 요소는 전혀 없었다.

“후우.”

누각 위에서부터 정문이 자리 잡은 방향의 담장 위를 걷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나 많이 흘러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한강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석양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그래서 더욱 발길을 떼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런 순간의 감정들이 이 집에 대한 애착을 벌써부터 생기게 하는 것 같았다. 더불어 언젠가는 이 집이 고요한 나만의 공간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할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

“네 살 때부터 나는 그냥은 안 먹어. 천재였지. 한식, 중식, 양식, 일식 모두 내 밥이었지. 하지만 타고난 걸 버리고 마이크를 들었지. 너희들을 웃기는 게 좋아. 먹는 건 나만,”

“잠시 만요.”

“어, 어?”

며칠 전 한남동 저택을 둘러보는 것으로 나름 정신적인 피로감을 털어냈던 나였는데, 막상 모자란 녀석들 촬영에 임하게 되자 또다시 몰려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골치가 아파왔다.

“삼촌 조금 더 자신 있게요.”

“어...”

일주일에 이틀 만나는 게 걱정이 됐었다. 준비할 게 산더미인데, 준비할 시간은 다른 팀에 비해 현저히 짧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이보다 더 많이, 빈번히 만났으면 가요제 공연을 하기도 전에 몸져누웠을 것 같다.

“저번 주에 말씀드렸던 사안이 아직도 걸려요. 처음 힙합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마음을 다시 떠올려보세요. 랩부터 제스처, 눈빛, 표정까지 전부 너무 주눅들어있어요. 지금.”

변한 게 거의 없었다. 지난 주 때와 지금이나 랩을 하는 것부터 그 외적인 모든 것들이.

“그, 그래?”

“자신 있어지고 싶다면서요. 아니면 비트나 가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시는 거에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이도저도 아닌 순한 삼촌의 태도에 한숨부터 흘러나왔다. 애써 이런 감정들을 숨기려했지만 도저히 흘러나오는 한숨까지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만나는 빈도가 다른 팀에 비해 적고 작업 시작 자체가 늦었다면 더욱 열심히 하는 게 맞았다. 그 이유가 본인 때문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삼촌의 모습에 어떻게 해야 할 지 앞길이 막막했다.

물론 랩을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순한 삼촌은 개그맨이지 가수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이해해 보려했다. 대중들 또한 모자란 녀석들 출연진들이 압도적인 실력으로 무대를 꾸미기보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랩을 잘 못하는 것 같아서.”

“네?”

하지만 열심히 하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주저하는 순한 삼촌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도 그리고 나의 기대에도 걸맞지 못했는지라 머리가 아파왔다. 나잇값 못하는 눈앞의 사람으로 인해 제작진들까지 또다시 조마조마해하는 모습이 보여서 더욱.

“랩을 잘하고 못하고는 일단 생각하지 마세요.”

“응?”

“먹는 거, 웃기는 거를 생각하세요. 삼촌이 가장 잘한다고 말했던 사안에 대해서요.”

이런 순한 삼촌을 이끌고 10년 넘게 한 프로그램의 주축으로 다듬어온 석준 삼촌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대단하다고 생각됐다.

“그 두 개를 가장 잘한다면서요. 랩을 못하고 잘하고 보다 랩 가사 자체에 먼저 심취하세요. 이렇게 자신감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랩을 잘한다고 해도 관객들이 삼촌이 말하고자하는 걸 알아들을 수도 없을 테고 삼촌도 만족스럽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를 끊임없이 지원해왔고 지금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김태훈 PD의 인내심이 존경스러워졌고 말이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요제 준비 기간.

사라져버렸다. 만족할 만한 무대를 치러낼, 후회하지 않을 무대를 만들 자신이.

============================ 작품 후기 ============================

많이 늦었지요? 죄송합니다.

오전 5시에 광주 도착해서 집근처에서 밥 먹고 사전 투표하고 한숨 잔다음에 연재하려고 했는데, 하나카드 때문에 모든 게 어긋나버렸네요.

하나카드가 갑작스럽게 전산 작업 때문에 안되어서 택시비도 못내고 본디 계획도 어긋나서 오후 세시쯤에 일어나게 됐네요. 그 후로 사촌 동생들 돌보다보니 예상보다 글이 늦게 올라가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다들 사전 투표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황금 연휴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즐거운 꿈 꾸세요.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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