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57화 (357/502)

00357  2019  =========================================================================

#357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랩처럼 하지 않아도 돼요.”

“응?”

“처음 각운만 신경 쓰시고 뒤부터는 그냥 순한 삼촌이 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해도 상관없어요.”

곡이 얼추 완성되어 이제부터는 자신의 파트를 숙지하는 것이 가요제 무대를 위한 우리들의 마지막 관문이었다.

“오늘 수고하셨어요. 가사 숙지 틈틈이 하시고 다음 주에 봬요.”

주말만 시간이 된다는 순한 삼촌의 말마따나, 이제는 가요제 공연까지 만날 기회가 여섯 번 남짓 남은 이때, 웬만하면 갈등을 빚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진짜?]

[정말로?]

무슨 말만 하면 불안하다는 듯이 되묻는 순한 삼촌의 행동과 태도가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여기서 한 번 더 무엇인가를 터트렸다가는 클라우드 형이 말해줬던 선배 가수의 절차를 그대로 밝아나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한 삼촌과 모자란 녀석들 스태프들을 배웅한 뒤, 허기를 채우기 위해 뭐라도 시켜 먹으려했다. 이내 들여다본 휴대폰 액정에 표시된 부재중 전화가 아니었다면.

“전화 주셨더라고요. 네, 네. 제가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이제야 확인했네요.”

오늘 오전에 한남동 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현장 소장 분에게 메시지를 보냈었다. 모처럼 한국에 있는 만큼 집 공사가 잘 되어가고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에 사전에 일정을 통보하기 위해서였다.

[석조전과 구 서울역사를 모티브로 한 본채가 이달 초에 완공되었습니다. 내부 인테리어 작업에 석 달 정도의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요?”

직접 살펴보진 않았지만, 현장 소장 분의 말을 듣다보니, 관리사님이 특별히 신경 쓴 티가 났다. 공사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듯, 본채가 벌써 완공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으니까.

[안동 서원을 모티브로 삼은 별채 A의 진행률은 현재 34%, 경복궁 교태전을 모티브로 삼은 별채 B는 현재 38%의 진행률을 보이고 있으며 경회루를 모티브로 삼은 누각을 포함한 정원 지역은 95%의 진행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른 건물들 또한 착실히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어진 현장 소장 분의 보고 아닌 보고가 이어지자 기대가 됐다. 이번 주 내로 공사장을 직접 찾아갈 예정이었는지라, 두 눈에 담길 광경이 절로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완공은 내년 6월쯤으로 예정되어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확실한 것은 이번 해 말쯤이 되어봐야...]

“이번 주 내로 한번 직접 보고 싶네요. 아무튼 공사 잘 부탁드립니다. 시간은 조금 지연돼도 상관없으니까요.”

그렇게 현장 소장 분과의 짧다면 짧은 통화를 끝마쳤다.

“삼촌?”

때마침 작업실로 들어온 민재 삼촌 때문에 배달 음식을 시키지 못한 건 여전했지만.

“방금 촬영 끝났다며? 그래, 가요제 준비는 잘 되고?”

“뭐, 그럭저럭.”

아무래도 내가 걱정되어 작업실까지 방문한 듯 했다. 오늘 순한 삼촌과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 촬영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혹시 모를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하는 마음이 민재 삼촌의 걱정스러운 눈빛에 가득 담겨 있었으니까.

“조금만 참아라.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어휴. 그러니까, 왜 순한이를 선택해서는.”

“됐어. 이제 3주 남았는데 뭘.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다. 객기 아닌 객기 한 번 부렸다가 이게 무슨 고생인지. 하아.

촬영을 하면 할수록 이런 순한 삼촌과 어떻게 10년이 넘도록 한 프로그램에서 호흡을 맞춰왔는지, 존경스러웠다. 모자란 녀석들 출연진들과 제작진들 모두가.

“그럼 이제 가요제 끝나면 방송 활동은 안 할 거지? 협찬 사 활동만 하면서 편히 쉬어라. 파리랑 이탈리아 갈 때, 바로 오지 말고 좋은 데서 푹 쉬다오고.”

어쨌든 괜히 더 피곤한 기색을 내보였다가는, 민재 삼촌과 민재 삼촌의 입을 통해 그 모습을 전달받게 될 재성 삼촌까지 걱정할까봐, 괜찮다는 듯 애써 웃음 지었다. 이게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누나 때랑 하루세끼 때는 몸은 좀 고됐는데,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너무 편하고 그래서 프로그램 끝날 때 개운했거든? 그런데 이번 가요제는 좀 그렇네. 앞으로는 음악 관련해서 웬만하면 예능 안하려고. 오히려 일 할 때보다 더 일 하는 것 같아.”

“그래. 아름다운 누나 때랑 하루세끼 때는 너도 즐거워 보이고 그랬는데. 어쨌든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고.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삼촌이랑 밥 먹고 살짝 들어볼까? 너 이번에 가요제 곡?”

“어차피 밥 대충 먹고 다시 작업하려고 했는데 그러지 뭐. 뭐 먹을 거야? 삼촌?”

“나가자. 요즘 살도 좀 빠진 것 같고 너 기운도 없어 보이니까, 제대로 몸보신이라도 좀 하게.”

기왕 이렇게 된 거 밥이라도 제대로 먹고 작업을 재개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미 작곡, 작사 단계는 어느 정도 마무리된 상태이고 자기가 맡은 랩 부분 숙지와 무대 퍼포먼스 기획을 해야 할 단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으니까. 뭐, 삼촌이 옆에서 봐주면 혼자 할 때보단 훨씬 낫겠지.

*

“요즘도 활 쏘고 그러냐?”

“응? 어... 요즘은 힘들지. 작업 때문에 잠실 집에서 지내니까. 뭐, 오늘은 본가 가서 자려고 포이보스 작업실 쓴 거지만.”

근처 삼계탕 집에 가서 때 이른 보양을 했다. 아직 봄도 오지 않은 날씨이지만, 내게는 요즘이 복날보다 더 힘들었으니까.

“삼촌도 해봐. 정신 집중도 되고 꽤 좋아.”

“됐다. 삼촌은 그런 거 안해도 정신 집중 잘하니까.”

“뭐래.”

그렇게 삼촌과 근황 아닌 근황 얘기를 하며 간만에 복잡한 생각들을 치워버렸다. 뭐, 이내 삼촌으로부터 들려온 목소리에 이내 닭을 발라먹던 젓가락을 내려놔야했지만 말이다.

“그 영화는 잘 될 것 같아? 솔직히 삼촌은 아직 잘 모를 것 같다. 판타지 영화라니...”

요즘도 활 쏘고 그러냐는 질문을 건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을까.

아무래도 걱정되는 모양이다. 판타지 영화에 출연하겠다는 내 결정이.

“할리우드 애들은 큰 작품들 중간, 중간에 독립영화에도 출연하고 소규모 상업 영화에도 출연하면서 경력이랑 경험 같은 거 쌓는 다지만... 삼촌은 아직까지 잘 모르겠어. 삼촌이 연기를 잘 몰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첫 영화를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시작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정작 내 자신은 별로 거리낌이 없었다. 엑스트라 역을 맡는 것은 솔직히 조금 그랬지만, 주연 급 조연 역이라면 경험을 쌓기 위해서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선택지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굳이 주연도 아니고 판타지 영화에 출연하겠다는 네 뜻이 그래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물론 삼촌의 입장도 이해는 됐다. 전에도 이런 걱정을 내게 건넸던 삼촌 말마따나 이는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는 상식이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반응은 나를 걱정해서 그런 것임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삼촌.”

“응?”

“영화 잘 안되면 어때? 주연 아니면 어때?”

별로 모르는 사람이, 내 울타리 안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가 이런 말을 꺼냈다면 기분이 조금 나빴을 것 같기도 하다. 괜한 오지랖이라고 느꼈을 것이고.

하지만 삼촌은 후자가 아닌 전자에 속한 이였기에 몇 번 정도는 기꺼이 수고를 감내할 의향이 있었다.

“영화 잘 되면 좋겠지. 그리고 주연하면 뭐, 그것도 나쁘진 않지.”

물론 이것도 내가 지금 가요제 얘기만 아니라면 언제든 환영할 정도로, 가요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인 부분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런데 항상 액션 연기만 할 수는 없잖아. 항상 주인공만 할 수 없고. 그러니까, 그냥 여러 가지 해보고 싶어. 음악도 연기도.”

“그럼 예능도?”

“뭐?”

어쨌든 그렇게 삼촌의 실없는 농담과 함께 꽤나 든든하게 저녁을 챙겨먹을 수 있었다. 삼촌이 오지 않았다면 그저 자장면 한 그릇으로 저녁을 때웠을 텐데 말이다.

*

“어?”

건물 지하에 자리 잡았던 스타 뮤직의 위치는 어느새 바뀌어있었다. 위치 자체는 강남에 있다는 점에서 바뀐 게 없었지만, 3층짜리 건물이나마 그 건물 전체가 스타 뮤직의 건물이라는 점에서 상전벽해와 같았으니까.

[아미가 애들 꿈 아레나에서 단독 콘서트한다는데, 한번 찾아가보지 그러냐. 저번에 꿈 콘서트에도 참가해주고 네 단독 콘서트에도 참가해줬는데.]

어제 같이 저녁도 먹고 작업도 일부 같이 했던 민재 삼촌이 작업실을 나설 때 했던 말이 좀처럼 잊히지 않아 다음날 바로 이곳까지 오게 됐다. 바뀐 사옥 위치를 몰라 민재 삼촌에게 전화를 해 물어봐야 했지만.

“오랜만이네.”

“그러게? 연말 꿈 콘서트에서 보고 못 봤네?”

어쨌든 그렇게 직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연습실에는 소진이 혼자만이 있었다.

“애들은?”

“이제 곧 올 거야. 어제 늦게까지 연습해서 오늘은 점심 때 보기로 했거든.”

여전하다면 여전했다. 연말 콘서트 때와 단독 콘서트 때 얼굴을 마주하긴 했지만, 이렇게 일 외적인 일로 마주하긴 꽤나 오랜만인데도 녀석은 예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으니까.

“숙소 생활 안하나보네. 예전엔 했던 것 같은데.”

“우리도 이제 7년차야. 바보야.”

뭐, 그래도 얼핏 남아있던 소녀티를 이제는 완전히 벗어버리고 한 명의 여인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겨 나와 조금은 어색했다. 순식간에 흘러버린 세월을 실감하게 되어 분위기에 맞지 않게 조금의 아련함까지 느껴질 정도로.

“그나저나 웬일?”

“단독 콘서트 한다며. 그래서 응원 차 들렸지.”

“영광이네? 아주?”

“그래, 영광으로 생각하세요. 부디. 꼭.”

“뭐? 참 나.”

“점심 안 먹었지? 뭐 시킬까? 아니면 나가서 먹을래?”

“그럴까? 애들 오면 결정하자. 이제는 내 말 듣지도 않아. 참... 내 말대로 했다간 엄청 구박할걸?”

다른 멤버들이 오기 전 소진 녀석과 꽤나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말 못할, 제주도에서 있었던 일과 같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랜만에 이런 자리를 가지게 됐음에도 딱히 대화가 끊기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대화가 끊기지 않으려 노력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석준 삼촌 얘기 들어보니까, 전부 재계약하기로 했다며?”

“응. 그렇게 하기로 했어. 3년.”

생각보다 오지 않는 다른 멤버들 덕에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워 사뭇 무거운 얘기도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시간이 꽤나 많이 흘렀음을, 정말로 빠르게 흘렀음을 다시금 느꼈다.

“그냥...”

“그냥?”

“연습생 때부터 시작하면 10년? 그래, 10년 가까이 함께했어. 6년 차 때부터 숙소 생활을 함께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엄청 오랫동안 같이 지냈는데... 숙소 생활 끝낼 때도 후폭풍이 조금 크더라고... 그런데 재계약 안하면 숙소가 아니라 아예 떨어진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무섭더라고. 이제 난 10대 후반 소녀도 아니고 뭣 모를 20대 초반도 아닌데 말이야. 우습지?”

얼핏 들었었다. 아미가 애들 모두가 재계약을 했다고. 그런데 생각보다 이와 관련해 소진 녀석의 속내는 복잡한 듯 했다.

“아이 돌이라는 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찬란하게 빛났다가 금세 사그라드는.”

“흠...”

트렌디도 그렇고 아미가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아이 돌의 운명이었다. 지금껏 수많은 금자탑을 쌓아올렸던 전설적인 아이 돌 그룹들처럼 7년이라는 시간은 아이 돌에게 있어 되돌릴 수 없는 모래시계일 테니까.

“대표님 포함해서 직원 3명이던 회사가 이제는 스무 명 넘는 직원들이 다닐 정도로 커졌고 연습생들도 있어. 이번 해 말에 데뷔할 데뷔 조 애들도 있고.”

그렇게 녀석의 얘기를 듣다보니, 아무래도 아미가 애들에게는 이번 재계약이 더욱 큰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을 듯 했다.

“조금 슬프긴 해. 뭔가 밀려나는 걸 느끼거든.”

소형 기획사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점과, 본인들이 해당 기획사의 모든 것이었다는 점 그리고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느꼈을 7년차 걸 그룹으로서의 박탈감이 상대적으로 매우 클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형 기획사들과 달리, 자신들이 밟아왔던 길들을 되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회사가 바뀌었으니 오죽할까.

“그래도 애들이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 제 2의 데뷔? 새롭게 도전해야할 때 말이야. 이제는 가족 같아서, 아니 가족이어서 따로 살아도 함께하고 싶었거든. 왠지... 꼭 그렇다는 건 아니겠지만. 재계약 안하고 아미가라는 이름이 사라지면, 그룹이 해체하게 되면 함께했던 추억들이, 시간들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거든...”

아무래도 오늘이 아니더라도 언제 한번 날을 잡아 단순히 맛있는 음식보다 씁쓸한 소주와 잘 어울리는 음식을 먹어야 할 것만 같았다. 이렇게 무거운 얘기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녀석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어느새 이런 상황까지 맞이하게 되어버렸으니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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