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56화 (356/502)

00356  2019  =========================================================================

#355

[순한 씨가 지혁이에 대해서 조금 모르고 계신 것 같아서 그런 것 같네요. 순한씨는 지혁이를 발라드, R&B 쪽 가수라고... 조금 이상한 선입견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요. 지혁이는 예전부터 장르 국한되지 않고 활동을 해왔어요. 댄스 장르부터 힙합장르는 물론이고 클래식, 재즈, 컨트리, 포크까지 전부요.]

그 후 녹화분위기가 엉망이 된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제가 잠깐 핸드폰으로 뭐를 좀 검색해봤는데요. 정순한 씨에게 질문 좀 해볼게요.]

내가 다른 것도 아닌, 가수로서의 역량 때문에 무시당했다는 생각이어서인지 재성 삼촌 또한 삼촌답지 않게 행동을 하는 등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한 대가는 상상 그 이상이었으니까.

[박재성 씨의 ‘어떻게 하면 그렇게’, ‘쏴라있네’. 아미가 최유진 양의 봄 향기, 아미가의 ‘시계의 태엽을 감아서’, ‘당신을 좋아해요’, 마이식스의 ‘If You’, ‘네가 필요해’, ‘후끈 달아올라’ 그리고 여기 계시는 클라우드의 ‘다른 곳 보지 마’, WIX의 ‘Arrest Me’, 테일러 노우웰의 ‘Shake It’ ‘Stone Face’ ‘Call Me Please’, Trendy의 ‘Hang In There’ 모두 단 한 사람이 단독으로 작곡한 곡입니다. 한 두곡을 제외하면 작사 또한 단독 작사이고요.]

[그게...]

[누군지 아시겠어요? 힌트를 드리죠. 이 곡들을 작곡, 작사한 사람은 강지혁 씨의 정규 3집 앨범 1번 수록 곡 ‘미쳤어’를 작곡, 작사한 분이라는 군요.]

그렇게 다른 것도 아닌, 가수로서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꽤나 여러 차례 짓눌러졌다는 것이 그리고 이것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떠벌려졌다는 점에서 녹화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미숙해서 실수한 것 같습니다. 건방지게 행동해서 죄송합니다.]

간만에 한국에서 갖는 방송활동인 만큼 잘해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째서 이런 식이 돼버렸는지, 어떻게 보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괜히 나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삼촌의 이미지까지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촬영장 분위기와 오늘 녹화에도 악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면목이 없었으니까.

“진짜 전화해줬네?”

그렇게 엉망이 되다시피 마무리된 녹화 현장에서 빠져나오다보니, 내 기분 또한 자연스레 우울해졌다. 전화기가 잠시도 쉴 틈 없이 울려왔지만 도무지 볼 마음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뭐, 그래서 더욱 지금 만남이 기적 같았다. 핸드폰을 소파로 던져버리기 위해 들었던 그 순간, 액정 화면에 보였던 메시지가 바로 녀석의 문자였으니까.

“앉아. 연락하고 싶어서 연락한 거 아니니까.”

물론 녀석이 보낸 문자 메시지의 삭막함에서 알 수 있었듯이, 막상 마주하게 된 유지연의 얼굴은 역시나 차가웠고 눈빛은 매서웠다.

“저녁 먹었어? 뭐, 먹을까?”

“됐어. 너랑 뭐 먹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똑바로 들어.”

이제는 동요하는 기색도, 당황한 기색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눈빛이 내 얼굴을 꿰뚫어버릴 듯 했지만 그래도 복잡한 속내를 무기삼아 태연하게 녀석을 대했다.

“진짜 발로차고 욕이라도 해줘?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먼저 메시지를 보냈는지 모르지 않았기에 그런 점도 없지는 않았고 말이다.

“알겠으니까. 밥 먹자. 밥. 응?”

차갑기 그지없던 녀석의 눈빛이 찰나의 순간이나마 다른 감정을 품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름 태연하게 녀석을 대했다고 생각했지만, 조금의 틈 사이로 비집고 나온 내 속내를 발견해버렸다는 듯 유지연의 눈빛엔‘의아할’ 걱정이 담겨 있었으니까.

“잘 먹을 거면서 튕기기는.”

그렇게 일순간 말이 없어진 녀석을 대신해 간단히 주문을 했고 우리는 함께하게 되었다. 녀석으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나로서도 기대 하지 않았던 늦은 저녁 식사를.

*

“무슨 일인데?”

밥맛이 무슨 맛인지 느끼지 못했다.

그저 나를 보며 ‘괜찮냐’는 듯한 시선을 보내던 동료 가수들과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번 사태의 수습 때문인지 어두워진 안색을 밝히지 못하던 제작진들과 모자란 녀석들 멤버들까지. 오늘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이 그 짧은 새 일어났다고 믿기엔 너무나도 후폭풍이 큰일이었으니까.

“알면? 해결해줄 거야?”

때문에 괜히 본래 의도에서 벗어나 내 눈치를 알게 모르게 보고 있는 유지연에게 문득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미안해. 장난쳐서.”

얼굴은 저렇게 차갑게 생겨놓고서, 정작 그 속은 여리고 또 깊은지라 차마 자기가 할 말을 내뱉지 못하고 내 걱정을 해주는 유지연의 모습과 더불어 지금껏 조금은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내 자신이었으니까.

하아. 모르겠다. 그냥 모든 게 다 내 탓인 것 같고 한심스러웠다. 한없이 복잡해져버린 상황을 겪고 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뭐?”

“그냥 짜증나서 그랬어. 너무 아무렇지 않게 연락 끊고, 너무 아무렇지 않게 모른 척 하길래. 그래도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그냥... 인사도 없이 순식간에 끝내는 건 너무 매정하잖아.”

나도 모르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버렸다. 그리고 제법 진지한 내 표정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녀석은 그런 내 행동 자체를 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모를 그 큰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을 뿐.

“웃기지? 오는 사람 안 잡고, 떠나는 사람 안 잡는다고 했는데,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그래도 얼굴 좀 풀어라. 오늘이 마지막이잖아. 마지막으로 보는 건데, 가기 전까지 그렇게 차가운, 아니 걱정하는 눈빛으로 볼래?”

“누가 널 걱정했다는,”

“그냥 웃는 모습도 좀 보여주고 그래라. 너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이제와 말하기 뭣하지만, 오늘 기분이 별로거든. 뭐, 이런 것도 진짜 이기적이네. 내 기분 따라 이래라, 저래라. 아, 몰라. 이해해줘. 나 원래 이런 놈이잖아. 너가 치를 떨면서 싫어할 정도로 이기적인 놈.”

그렇게 큰 사고를 친 날, 녀석과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속내를 털어놓았던, 처음 시작부터 엇갈리게 맺어진 억지 인연을.

*

“으으윽...”

깨질 듯한 두통에 눈을 뜨자마자 신음이 절로 입 밖에 흘러나왔다. 도대체 얼마나 마신 것일까.

모자란 녀석들 녹화 때 일도 있고 속내를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는 유지연과의 진짜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자연스레 신세한탄을 하게 됐다. 그래서 절로 술까지 먹게 되었고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나를 보는 유지연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으나, 그녀는 나를 혼자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더욱 고마웠다.

지금 내 품에 안겨있는 이의 체온과 향기가 매우 익숙하다는 점 그리고 그 얼굴까지 낯익다는 점이 나를 당혹케 만들었지만.

하아.

필름이 끊긴 상태인지라,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어떤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나를 아무런 말없이 바라보던 유지연을 앞에 두고 나 홀로 술잔을 기울였던 것까진 기억이 났지만, 그 후의 기억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으니까.

두통으로 인한 신음 그리고 품안에 안겨있는 녀석으로 인한 혼란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어할 때쯤, 유지연의 눈이 떠진 것은 그때였다.

“아... 안녕?”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꺼낸 말이 고작 안녕이라는 점에서 내 자신이 한심스러울 정도로.

“... 워.”

“어, 어?”

“치워.”

“어, 어. 미안...”

그 후로 녀석은 놀란 기색조차 없이 내 품안에서 벗어나 샤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후사정이 완벽하지 않은 나의 마음을 더욱 졸이게끔, 자신을 구속하던 내 팔을 치우라는 말 외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밥 안 먹고 가?”

그렇게 녀석이 샤워하는 내내 머리를 쥐어뜯으며 어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보려고 애썼지만 무리였다.

“미, 미안. 조심히 가.”

유지연이 옷을 입고 집을 나설 때까지, 여전히 아침에 처음 눈을 땠을 때와 다름없는 기억만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을 뿐이었으니까.

*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본의 아니게 프로그램에서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던 내가 다시 모자란 녀석들 녹화에 참가한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솔직히 고민을 많이 했다.

이미 순한 삼촌과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볼 수 있었기에 앞으로의 작업 자체가 불가능할 확률이 너무나도 높았고 제작진들은 또 제작진 나름대로 내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는 나대로 이 상황이 껄끄러웠기에 더욱.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프로그램 녹화에 다시금 참여했다. 당초 중간결산 녹화가 끝난 후 순한 삼촌과 만나기로 했던, 의도치 않게 일주일가량 늦춰진 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작업실로 제작진들과 순한 삼촌을 들였으니까.

어쨌든 촬영 전부터 단 한마디도 서로 나누지 않은 채 눈치만 봤던 나와 순한 삼촌이었는지라 촬영이 시작했다고 해서 이와 다를 리 만무했다. 그래서 그런 숨 막히는 고요 속에서 제작진들마저 고통스러워하자, 서둘러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일단 그 후로 틈틈이 추가 작업한 부분 비트랑 가사 들어볼게요. 아직 가이드 녹음을 안 해서 제가 직접 불러야 될 것 같은데. 괜찮으시죠?”

“그, 그래...”

이 프로그램에 다시금 참가하겠다고 결정한데는 내가 만든 상황을 내가 해결하자는 뜻이 담겨있었다는 점도 이 같은 생각에 한몫했고 말이다.

그렇게 신시사이저 앞에 앉아 복잡한 속내를 마음 저편으로 날려버린 채, 온전히 내가 만든 비트와 감성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네 살 때부터 나는 그냥은 안 먹어. 천재였지. 한식, 중식, 양식, 일식 모두 내 밥이었지. 하지만 타고난 걸 버리고 마이크를 들었지. 너희들을 웃기는 게 좋아. 먹는 건 나만 웃게 만드니까.”

가이드를 녹음할 정도로 정신이 있었던 게 아닌지라 순한 삼촌이 원했던 방향과 감성을 피아노 음과 신시사이저 음을 토대로 한 비트에 손수 풀어냈다. 다른 복잡한 생각에 연연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은 그저 내 목소리와 손가락의 어우러짐에 전념했다.

“실실 웃게 만들어, 이게 나의 Appetizer. 미친 듯이 웃게 만들어, 이게 나의 Main dish. 날 보며 미치게 만들어, 이게 나의 Dessert. 마이크는 절대 무기, 내 면상은 절대 방패. 나는야 천재였지. 천재였지.”

그리고 두 눈을 뜨고 마이크를 들었을 때 보게 된 제작진들과 순한 삼촌의 눈빛 또한 이전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품고 있었다.

“네 살 때부터 나는 춤을 췄지. 천재였지. 마이클 잭슨, 박재성, 양동혁 모두 내 선배였지. 하지만 타고난 걸 버려, 방출 됐지. 너희들 모두 내게 목매달게 하는 게 좋아. 나 혼자 즐거우면 억울하니까. 춤 하나에 목매달지 않지. 타고난 게 잘나 그냥 해도 난 잘하지.

순한 삼촌의 파트를 지나 나의 파트에 이르러서 그 무엇인가는 꽤나 명확해져만 갔다.

“네 눈동자를 촉촉하게 만들어, 이게 나의 Melody.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들어, 이게 나의 Lyric. 꿈에서도 널 슬프게 만들어, 이게 나의 Emotion. 마이크는 절대 무기, 내 목소리는 절대 방패. 나는야 천재였지. 천재였지.”

본인이 써왔지만, 정작 본인 스스로도 몰랐던, 대중들에게 힙합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것들이 비로소 랩이라는 형태로 표출되었다는 걸 두 눈으로, 두 귀로 느껴서일까. 순한 삼촌은 나의 입에서 마이크가 떨어져 나오고 한참이 지나서까지 입을 열지 못했다. 촬영 중이라는 걸 잊고 박수를 치던 제작진들 사이에서.

*

“미안하다. 지혁아. 나는 그런 뜻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애들 말도 들어보고 네 말도 들어보니까... 나도 내심 그런 생각들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던 것 같아. 네 가수로서 자존심도 있고 네가 걸어온 커리어가 있는데, 그렇게 말해서는 안됐던 것 같다. 더군다나, 그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아니에요. 제가 죄송해요. 며칠 전에 삼촌한테 충분히 설명해드렸다고 생각했었는데, 서운한 감정이 들기도 했고 영양가 없는 자존심 때문에 제가 너무 버릇없게...”

물론 모든 감정들이 말끔히 정리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녹화를 시작하기 전 보다는 확연히 나았다. 아직은 어색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서로 마주보며 얘기를 할 정도의 분위기는 되었으니까.

“가사가 아직 완성된 게 아니고 비트도 부족한 점이 많아요. 거기다 이제는 무대 퍼포먼스도 생각해야 돼서... 되도록 자주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스케줄 되세요?”

“어, 어? 응. 그게... 다른 방송 스케줄 때문에 주말 밖에 안될 것 같은데, 어쩌지?”

“주말에는 그럼 된다는 말씀이시죠?”

“어? 그렇지. 주말은 상관없어.”

남아있는 어색함은 추후 만남을 거듭하면 점차 사라질 것이라 예상해보면서 그날의 걱정 많았던 녹화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그럼 최대 8번이네요. 가요제 준비로 같이 만나는 게.”

물론 이건 실제 상황일 뿐이고 방송 상으로는 이번 사태가 어떻게 비춰질지 생각만해도 머리가 아파왔지만.

============================ 작품 후기 ============================

JORDAN님 후원쿠폰 6 장 감사합니다.

추천, 선작,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기를 싫어하시는 분이 있어 조금 내렸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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