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55 2019 =========================================================================
#354
다른 팀들의 그동안 촬영된 것을 보니 앞길이 막막했던 게 나뿐 만은 아닌 듯 했다.
“자꾸... EDM만 고집하셔서. 저도 다른데 좋은데 가서 바깥 구경도 하고 싶은데... 다른 팀들은 야구장도 가고 강가에 가서 보트도 타고 그런다던데...”
그 첫 번째 타자로 나선 아인유 양부터가 가요제 파트너인 박수형 삼촌에게 상당한 불만을 쏟아냈으니 말이다.
아니, 그나저나 야구장 갔다는 게 설마 나랑 순한 삼촌 얘기하는 건 아니겠지? 그걸 놀러간 거라 생각한다면 나로서는 조금 억울한데. 쩝.
“강현이랑 방송하면 다 좋은데... 분량이 안나올까봐 걱정이에요. 저번에 찍은 거 5분도 안나갔던데...”
“석준이가 원하는 댄스랑 제가 원하는 댄스가 다르더라고요. 석준이는... 흠...”
그렇게 한동안 가요제 참가가수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아인유 양이 첫 스타트를 끊자마자 마치 이를 기다렸다는 듯 다른 참가가수들이 불만을 털어놓았으니까.
“지혁 씨는 순한 씨에게 무슨 불만 같은 거 없으신지?”
“엄청 많을 것 같은데?”
“말해버려! 지혁아!”
뭐, 정작 불만으로는 둘째라면 서러울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다른 팀들에 비해서 저희 팀 작업이 조금 느린 것 같아서 걱정이지 불만은 없어요.”
이미 어느 정도 갈등이 봉합된 상태에서 굳이 해묵은 감정을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괜히 이를 다시 언급했다가는 순한 삼촌의 성격이 이를 두고두고 담아둘 것만 같은 불안함도 한몫했고 말이다.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어쨌든 내 차례에서 별다른 분량을 뽑아내지 못한 채 휴식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방송 상으로는 겨우 한 시간 조금 넘게 방영될 분량일 테지만, 이를 위해서는 그 배에 이르는 녹화가 필요했는지라 상대적으로 출연진들 모두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삼촌.”
그렇게 삼촌과 같은 대기실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했다. 오늘 녹화에서 분량이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 함께한 것만으로도 상당한 피로감이 느껴졌으니까.
“좀 쉬어. 녹화 내내 그렇게 떠들어놓고 뭘 또 그렇게 해. 쉴 때 쉬어야지.”
그런데 그렇게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소파에 누워있던 나와 달리 삼촌은 핸드폰으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손보고 있었다. 옆에서 쉬고 있는 내 자신이 조금 찔릴 정도로 열심히.
“삼촌? 내 말 듣고 있어?”
“삼촌 지금 바쁘다니까. 쉬고 있어. 삼촌 건드리지 말고.”
더욱이 제법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신경이 한층 예민해졌을 정도로 열중하고 있었는지라,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어휴, 내가 못산다. 못 살아.
“그거 아예 느리게 해서 잔 박자로 쪼개면 어때?”
“뭐?”
“석준 삼촌이 빠른 걸 원해서 그런 거잖아. 지금.”
삼촌이 저러고 있는 이유 또한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쉬지도 못하고 저러고 있는 삼촌의 모습이 눈에 밝혔기도 했고 나 또한 이와 관련해 조금 생각해둔 게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끼어드는 것 같아서 아무 말 안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석준 삼촌은 빠른 걸 원하잖아. 그런데 그렇다고 꼭 빠르게 할 필요 없잖아. 빠르게 느끼게 하기만 하면 되지.”
“뭐?”
흑인 감성의 그루브가 섞인 댄스를 좋아하는 재성 삼촌, 빠른 비트를 바탕으로 본인이 지닌 흥을 그대로 댄스에 싣는 것을 좋아하는 석준 삼촌.
문제는 석준 삼촌과 재성 삼촌이 원하는 댄스곡의 종류가 조금은 다르다는 점이었다. 당초 두 사람 다 댄스를 좋아해서 팀이 된 만큼 가장 호흡이 잘 맞을 거라 예상했었는데 지금까지 일이 좀처럼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재성 삼촌이 아무래도 더욱 힘들 수밖에 없었다. 석준 삼촌의 기준으로 곡을 만든다면, 본인의 흥을 살리기 힘들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BPM을 110정도로 낮추고 사이사이 잔 박에 신시사이저로 착각효과를 주는 거지. BPM이 빠른 것처럼.”
그래서 약간 발상의 전환을 해보았다. 굳이 본 비트 자체를 석준 삼촌의 기준으로 바꾸는 것보다는 일종의 착각 효과를 내보는 게 어떨까 싶은 생각이 녹화하는 종종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하면 빠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실제 BPM은 지금보다 더 느리겠지만, 느껴지는 건 더 빠른.”
“오호...”
그렇게 내 말에 혹한 듯한 삼촌과 한동안 휴대폰 앱을 통해 착청 효과를 내보려했다. 정작 앞날이 막막한 건 재성 삼촌이 아니라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는 우리 팀이겠지만 그래도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를 마냥 미뤄두긴 싫었으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지혁이랑 하는 게 좋은데... 너무 영광이지. 영광인데...”
“와... 이 형 설마 지금 지혁이한테 불만 있는 거?”
“미쳤네, 이 형?”
그런데 진짜 내 처지에 남일 걱정하는 건 확실히 오버였나 보다. 한층 밝아진 얼굴로 재개된 녹화에 참가한 재성 삼촌과 달리 나는 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됐으니 말이다.
“힙합 곡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지혁이가 다른 장르를 하자고하면 난 그거 그냥 하려고 했어. 그런데 지혁이가 힙합하자고 하더라고.”
도대체 이게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믿고 하는데... 일주일 전에 들은 곡이... 클래식 곡인 줄...”
“뭐라고 클래식? 와... 말이 심하네! 이 형!”
“형 지금 뭐하는 거야! 이 형 지금 지혁이 앞에서!”
부디 저런 말들이 방송 상의 재미와 본인의 캐릭터를 위한, 어쩔 수 없는 발언이길 바랐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상황을 쉽게 넘길 수 없을 것만 같았으니까.
“지혁이가 발라드 가수여서 그런지, 힙합 쪽에는 조금... 소질이 없는 것 같아서. 부, 불만은 아니고! 그냥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걱정돼서!”
도대체 이 방송을 위해 얼마나 더 자존심이 상해야하고 마음이 상해야하는 지 모르겠다. 좋게, 좋게 알아듣게 잘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또 일어나니 말이다.
하아. 제발 방송 분량 때문에 저런 말을 꺼내길, 부디 그러길 바라는 수밖에.
*
온갖 애를 써가며 표정관리를 했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중단된 녹화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도리어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참가 가수들과 다른 모자란 녀석들 멤버들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아니... 진짜 그 노래를 들어봐야 한다니까? 진짜 클래식 같았다고! 지혁이가 힙합을 잘 모르는 것 같아. 그래서 그랬다니까? 아니 진짜 들어봐! 내 말 맞다니까?”
설상가상으로 무거워진 세트장 분위기 속에서 순한 삼촌은 본인이 무슨 말을 꺼냈는지, 그 말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눈치 채지 못한 듯 했다. 주변의 제법 싸늘한 눈빛에 연신 본인의 억울함을 주장하며 또다시 했던 말들을 입에 담기 바빴으니까.
“아니... 진짜 그 노래를 들어봐야 한다니까? 진짜 클래식 같았다고!”
그래서 그냥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도리어 나대신 발끈한 재성 삼촌을 손짓으로 막은 내게 다른 동료 가수들의 시선이 여전히 걱정스러움을 담고 있다는 점조차 짜증날 정도로.
“형, 진짜 그렇게 생각해?”
“어?”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냐고.”
“말했잖아. 진짜 들어보라니까?”
더 이상 상대하기가 싫어 빨리 녹화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저 사람이 가요제에서 참가 가수들에게 왜 외면을 받아왔는지가 절실히 느껴짐과 동시에 이제는 그저 지겨웠는지라 헛구역질까지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여전히 억울하다는 듯 주변을 바라보는 순한 삼촌, 왜 이렇게 자신을 보냐는 듯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그를 외면한 채 김태훈 PD를 쳐다보며 녹화재개를 요청했다.
“녹화 재개해주세요.”
“지혁아.”
그런 내게 석준 삼촌이 다가왔지만 필요가 없었다.
“방송 때문이거나 아니면 본인 캐릭터 때문에 그런 말 꺼낸 것이길 정말 바랐는데, 역시나였네요. 방송 재개해주세요. 저한테도 해명? 아니 제 의견도 말할 기회는 주셔야죠.”
나보다 나이도, 방송인 또는 가수로서 경력도 많은 이들 천지인 이곳에서 이런 모습 자체가 건방져 보일 수 있겠지만, 그런 모든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일단 클래식 곡 인줄 알았다는 순한 삼촌의 말씀 잘 들었고요... 제 입장에서 보자면요. 저희 팀은 곡 작업 시작 자체가 너무 늦었어요.”
재개된 녹화장의 분위기는 한층 가라앉아 있었지만 나는 그저 내 할 말만 할 뿐이었다.
“처음 팀을 결정하고 3일 뒤에 순한 삼촌과 만날 수 있었지만, 그 장소가 작업실이 아닌 야구장이었죠. 만나서 캐치볼만 1시간 넘게 했고 그 결과 삼촌은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실려 가셨고요.”
순한 삼촌이 어떤 표정으로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떤 시선으로 보든지 간에 차분히 그동안의 일정들을 풀어놓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것 외에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저 나는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으니까.
“그로부터 한동안 순한 삼촌을 보지 못했고요. 2주 쯤 지나서야 순한 삼촌을 볼 수 있었지만 그때도 작업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죠. 결과적으로 그로부터 3일 뒤, 팀이 결정되고 20일 후가 되어서야 겨우 장르를 결정할 수 있었어요. 오늘 기준으로 10일 전에요.”
“아! 뭐야! 10일 전에? 다른 것도 아니고 장르를 정했다고? 10일 전에?”
“순한 형 뭐하자는 거야? 지금?”
“그, 그게...”
그렇게 정색을 하며 얘기를 하자, 다른 모자란 녀석들 멤버들이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띄워보려 일부러 과장되게 반응을 하며 평소처럼 순한 삼촌을 몰이해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삼촌이 클래식 같다고 한 곡은 장르 결정하고 7일 뒤, 지금 기준으로 3일 전에 처음으로 들려드린 밑바탕 베이스 비트이고요. 이와 관련해서는 힙합 색체를 추가로 넣는 과정을 그때부터 진행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저렇게 말씀하시니까. 조금 그렇네요.”
아 뿐만 아니라 참가 가수들 또한 그런 과장된 행동에 반응할 만큼 속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또 그럴 마음도 없었으니까.
“그게 그러니까... 나는 불안해서...”
“힙합적인 색체를 집어넣는 것은 삼촌이 가진 고유의 Flow와 무엇을 힙합으로 표현하고 싶은 지가 필수적으로 필요해서 처음 들려드린 비트는 말 그대로 밑바탕일 뿐이에요. 그래서 실제 작업 일은 그때 이후 오늘까지 단 3일 뿐이었어요.”
그러다보니 나의 말 상대는 자연스레 순한 삼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변명만 하는 순한 삼촌의 모습을 보게 되어 다시금 한숨이 흘러나오게 됐고 말이다.
“삼촌이 가진 고유의 Flow와 무엇을 힙합으로 표현하고 싶은 지가 필수적으로 필요해서 그 전에 일주일 정도 작업하고 처음 들려드린 비트는 말 그대로 밑바탕일 뿐이에요. 하아. 도대체 이 말을 몇 번이나 해야 하죠? 처음 들어보신 말인가요? 이 말이? 3일 전에 몇 번이고 말씀드렸는데요?”
“아니, 지혁아... 그게, 그게 아니라...”
“안 그래도 다른 팀들에 비해서 시작도 늦었는데, 그나마 제가 해드린 설명도 제대로 듣지 않으신 것 같아서 조금 그렇네요. 가수로서 자존심도 상하고 도대체 제가 왜 무시를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그 말이 어떤 식으로 해석이 될지 정말 모르고 그런 말을 꺼낸 것일까.
물론 모르고 말했든, 알고 말했든 지금 상황에선 중요하진 않았다.
저 나이 먹고도 이 정도도 모르고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면 그 또한 문제가 있는 것이고, 알고 말했다면 굳이 다른 설명 필요 없이 이는 정순한이라는 사람이 이런 사람임을 나타내주는 지표일 테니까.
“일단 제 말에 믿음 자체가 없으신 것 같네요. 그렇죠? 저는 삼촌이 아니 정순한 씨가 생각하시기에 발라드 가수이고 힙합에 힙도 모르는, 그저 소질 없는 가수이니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뭐가 아니에요. 아까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억울하다는 듯이. 모든 잘못은 저한테 있다는 듯이요. 안 그런가요? 카메라 돌려볼까요?”
생각 이상으로 감정적인 대응을 했다는 점에서 문득 후회가 되긴 했다. 내 자신의 행동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보다 이 후속처리가 생각 이상으로 나와 주변 사람들을 골치 아프게 만들 것임이 불을 보듯 뻔했으니까. 제길.
============================ 작품 후기 ============================
연재가 시원찮아서 죄송합니다. 글이 잘 안써지네요. 의욕도 별로 없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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