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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노래로-354화 (35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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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그래, 가요제 작업은 잘 되고?”

“뭐, 이제 걸음마 단계야. 시작자체가 워낙에 늦어져서.”

“그렇다고 무리하지는 말고. 알겠어? 잠은 집에 와서 자라는 소리야. 이제 곧 미국 가서 한참동안 있을 텐데 한국에 있을 땐 집에 와 있어야지. 네 작은 엄마도 너 잘 챙겨먹는지 걱정하더라. 애들도 오빠 어디 갔냐면서 너 보고 싶어 하고.”

아무래도 삼촌입장에서는 내가 요즘 본가에 들어가지 않고 작업실이 있는 잠실 집에서 일어나고 자는 게 꽤나 신경 쓰였나보다. 넌지시 작업 얘기를 꺼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것을 보니 말이다.

“조금 있으면 중간발표잖아. 아직 하나도 완성된 게 없어서 작업할 게 많아. 이러다가 방송  사고 날 것 같아서 조마조마할 정도로.”

“그때 꼭 완성시킬 필요 없어... 그러니까, 왜 힙합을 한다고 해서, 아니 순한이랑 왜 팀을 하겠다고 한 거야? 그냥 편하게,”

“됐어. 이미 지난 일인데, 뭘 자꾸 들춰.”

자연스레 나를 본가로 오지 못하게 만든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 얘기로 화제가 넘어가자, 나 또한 당연히 할 말이 꽤나 많았으나, 대충 대답하고 넘어가버렸다. 그런 얘기들은 일단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으며 나눠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삼촌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거리를 거닐었다.

저녁을 먹을 곳이 회사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기도 했고 눈발이 제법 세서인지 거리가 꽤나 적막했는지라,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몰리는 것과 같은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여기 저번에 석준 삼촌이랑 같이 왔어. 음식 맛이 엄청 좋아. 재료도 전부 유기농이고.”

“그래? 그럼 다행이고. 어? 뭐라고? 누구랑 같이 왔다고? 석준? 어느 석준?”

“삼촌이랑 같이 무대하시는 그 석준.”

“왜? 무슨 일로? 언제? 단 둘이? 나 빼고?”

삼촌은 그냥 집에 가서 먹자고 했지만, 괜히 저녁때도 지났는데 작은 엄마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얼마 전 석준 삼촌이 나를 데려갔던 한정식 집을 가기로 했다. 그때 먹었던 음식 맛이 꽤나 좋았었고 무엇보다 음식 모두가 유기농으로 만들어졌다는 안내판을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시간대가 맞아서 같이 먹게 됐어.”

“뭐? 그냥? 아닌 것 같은데? 뭐야? 뭔데?”

“아니, 별 거 없다니까? 그냥 시간대가 맞아서 같이 먹었어.”

“너, 너! 내가 널 어떻게 키웠,”

“어서 오세요. 손님. 어머?”

“안녕하세요. 혹시 룸 자리 있나요?”

“세상에나! 정말 팬이에요.”

“네? 아, 네. 감사합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혹시 예약은 하셨나요?”

“네, 네? 아... 방으로 들어가려면 예약을 해야 하나요?”

그런데 막상 도착한 식당이건만, 사람들이 꽤나 몰려있었는지라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밖에서 먹는 것은 사실상 동물원 원숭이 신세가 될 것이기에 꺼려졌고 종업원의 말을 들어보니 방 자리는 미리 예약한 이들에게 배정되는 듯 했으니까.

이상하네. 저번에 석준 삼촌이랑 왔을 땐 아마 미리 예약 안했을 건데.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니고요. 확인 차 여쭤본 거에요. 잠시 만요. 방 자리 있는 지 확인하고 알려드릴게요.”

의아함에 고개를 갸우뚱거린 것은 꽤나 섣부른 행동인 듯 했다. 그저 예약 여부를 묻는 것일 뿐, 방 자리에서 식사를 하려면 꼭 예약을 해야 되는 건 아닌 듯 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종업원을 기다리고 있던 도중, 보게 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들을.

“어?”

“어?”

삼촌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은 듯,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자 입에서 자연스레 놀라움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이는 상대편도 마찬가지인 듯 했고 말이다.

“PD님 안녕하세요.”

“어, 그래. 재연이구나. 밥 먹으러 왔니?”

“네? 네... 언니랑 같이 밥 먹으러 왔어요.”

확실히 화장 끼 없는 수수한 얼굴에 모자를 깊게 눌러쓴 유재연의 등장은 놀라운 감이 없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이 타이밍에 얼굴을 마주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뿐더러, 유지연까지 이곳에서 마주할 줄은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 언니는?”

“저 잠깐 화장실... 언니는 방에 있어요...”

그런데 놀랄만한 일은 이것으로 끝이 아닌 듯 했다.

“손님 죄송한데, 안쪽 방은 방금 전 오신 손님들이 먼저 자리하셔서요.”

자리를 알아보러 간 종업원의 말이 무엇인가 예상치 못한 상황을 야기 시켜 버린 듯 했으니까.

*

[같이 드세요. 어차피 테이블도 남고 자리 없으시니까...]

[그래도 될까? 괜히 언니랑 같이 저녁 먹는 자리......]

어쩌다 지금의 상황이 되어버린 건지, 도무지 답이 안 나왔다. 그 정도로 순식간에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어버렸으니까.

“친해. 드라마도 같이 했는데, 친하지.”

“그래? 정말인가요? 지연씨?”

“네, 네? 아, 네... 친하죠. 많이...”

그래도 음식 맛이 안 느껴진다거나, 자리가 불편해 식은땀을 뻘뻘 흘리거나 그러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 이 자리가 제법 흥미진진했다.

서로 작품을 같이한 만큼 친분이 있냐는 재성 삼촌의 질문에 자연스레 친하다고 답변을 했는데, 이로 인해 녀석의 눈가가 순간이나마 찌푸려졌다는 것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미국에 있어서 조금 오랫동안 연락을 못하긴 했는데, 그래도 얼마 전에 잠깐 봤어. JS 구내 카페에서. 그렇지? 누우나?”

“누나? 유지연 양이랑 누나, 동생 하는 사이였어? 꽤 친하나보네.”

“작품이랑 해외 프로모션 행사도 같이했고 그랬는데, 안 친해지면 이상한거지. 촬영 기간까지 따지면 1년도 넘을걸.”

그래도 삼촌 앞이라고 표정관리를 하는 녀석의 모습이 꽤나 재밌었고 장난 끼를 동하게 만들었는지라, 나 또한 더욱 이를 부채질했던 것 같다.

“지혁이가 사교성이 없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친한 애가 별로 없어요. 더욱이 배우인 친구는 더 그런 것 같고요. 그러니까, 같이 배우이기도 하고 동생이기도 하니까... 누나로서 잘 부탁드려요.”

“아니에요. 제가 오히려 지혁...이한테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서요. 부탁이라는 말은 조금...”

오랜만에 녀석의 저런 모습을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말이다.

“아 참! 저번에 밥 한번 사주기로 했잖아. 언제 먹을까?”

“뭐?”

“카페에서 봤을 때, 맛있는 거 사준다고 연락한다고 했잖아. 설마 까먹었어? 본인이 사준다고 해놓고?”

“내가 언!”

“응? 뭐라고?”

“... 너 바쁜 것 같아서... 연락을 못했어. 조만간 연락할게.”

그렇게 있는 말, 없는 말 지어내며 녀석을 한참동안 골려주다 보니, 어느새 시켜놓은 음식들이 하나, 둘 접시 바닥을 드러냈다. 물론 그에 비례해 새로운 코스 음식들이 계속해서 테이블 위로 자리를 잡았지만 말이다.

“영화준비는 잘 돼가는 거지?”

“어, 어? 어. 뭐 그렇지.”

음식 맛이 워낙 좋아서일까.

새롭게 접시가 등장하기 무섭게 젓가락질을 해대다보니 어느새 배가 어느 정도 차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삼촌 또한 마찬가지인 듯 했다. 정신없이 접시를 비워가던 삼촌이 자신의 입을 잠시 음식을 흡입하는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쓰기 시작했으니까.

“5월까지는 한국에 있을 거야.”

“촬영 7월이라며. 6월까진 한국에 있어도 되잖아.”

“빠르면 6월에 들어갈 것 같아. 그리고 7월이나 8월쯤에 크랭크인 한다 해도 미리 가서 대본 리딩도 하고 배우들이랑 인사도 나눠야지.”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만... 작품 준비하느라 피곤하지는 않고? 가요제랑 겹쳐서 힘들 텐데.”

“뭐, 딱히. 그냥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있잖아. 앞으로도 그럴 거고.”

계약한 영화가 무려 두 편이나 됐기에 한국에 머무르는 것은 길어봤자 상반기일 수밖에 없었다. 당장 빠르면 6월, 늦으면 8월부터 미스터 지 후속편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고 내년 상반기에는 피터 제이크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답을 하면서도 뭔가 이상했다.

나의 해외 스케줄을 매니지먼트 해주는 곳이 JS ENTERTAINMENT이고 그 해외 지부의 일을 손바닥 훑듯이 하는 사람이 박재성이라는 사람일진데, 굳이 지금 타이밍에 이를 물어본다는 게 말이다.

“그럼 연애는?”

맙소사.

뭔가 이상하다는 예감이 현실화된 풍경은 역시나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았다. 자리도 자리이거니와 단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금 이 순간 본인의 속셈을 채우려는 듯한 박재성 씨의 표정은 이에 어울리지 않게 꽤나 진지했으니까.

“그런 얘길 뭐 이런 데서 해? 집에 있을 때나 하지.”

“네가 머리 좀 컸다고 집을 안 들어오니까 그렇지.”

도대체 이 자리에서, 이 타이밍에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요즘 다른 이유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 때문에 잠실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그런 쪽으로는 신경 좀 꺼. 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그런 사생활 쪽은 지켜줘야지.”

“남자는 마음 붙잡아둘 곳이 안정적으로 생기면 바깥일도 잘 되는 법이야. 책임감도 생기,”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나이 사십 넘어가도록 결혼을 안 하셨어요?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하고 밥 먹어. 체할 것 같으니까.”

어휴. 내가 못 산다. 이런 것도 조카바보 짓의 변종인 건가? 그놈의 조카바보 짓은 사라질 기미가 안 보이네. 안 보여. 하아.

*

“재연이는 말 들어보니까, 요즘 연기자 준비하고 있다며?”

본의 아니게 자리를 합친 것 치고는 식사 자리가 그다지 적막하지는 않았다.

유재연 같은 경우 한때 소속사 대표였고 지금도 회사 내 영향력이 대단한 삼촌과 한 자리에 있다는 게 조금 불편한지 좀처럼 목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나와 삼촌 그리고 타의로 대화에 참가하게 된 유지연의 목소리가 방 안을 적절하게 메웠으니까.

그런데 그런 상황이 조금은 마음에 걸려서일까. 나와 본인이 갑작스럽게 합석하게 된 것이 자매간의 식사 자리를 방해한 것처럼 느껴졌는지 삼촌의 시선이 수저를 내려놓은 채 후식으로 나온 수정과를 마시는 유재연에게로 향했다.

“네? 네... 저번 달부터 연기수업 듣고 있어요.”

“그래. 이제 너희들도 7년차니까,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해야 될 거야. 작곡을 배워서 뮤지션적인 역량을 키우거나, 연기를 배워서 연기자로 새 도전을 하거나.”

“네...”

아미가도 그렇고 TRENDY도 어느새 아이 돌 그룹으로서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월이 그만큼 흘러갔다는 것을 느꼈다. 내 스스로의 시간은 그다지 군 전역 때에서 멀어지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 면에서 재연이 너는 언니가 연기자로 먼저 활동하고 있으니까, 다른 멤버들보다 한 걸음 더 앞서 있는 거야. 그러니까, 열심히 하고. 알겠지?”

그래서 더욱 색달랐다. 유재연이 언니인 유지연처럼 연기자의 길을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 기억속의 유재연은 나를 여러 방면에서 미치게 만들었던 사람이고 아이 돌 가수로서의 꿈을 향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던 이였으니까.

유재연이 연기자라.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겼으니 연기력만 된다면야, 아이 돌로서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무난하게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을 테지만 꽤나 오래전 과거의 그녀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좀처럼 어색함을 털어내기 힘들었는지라 무의식적으로 피식 웃음이 흘러나와버렸다.

넌 참 속도 좋다. 좋아. 너 싫다고 헤어지자고 한 녀석 걱정을 할 때냐? 지금? 어휴.

*

[지연 씨도 동생 좀 잘 도와주세요. 데뷔 때도 중요하지만, 7년차 때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 아시죠? 10대 때 노력이 데뷔를 위한 거였다면 지금 이 순간은 앞으로 재연이 남은 인생을 위한 거니까요.]

[네, 당연히 그럴 생각이고요. 안 그래도 오늘 만난 게 그것 때문이에요. 음... 저... 말 편하게 해주세요.]

[그럴까? 음... 그리고 우리 지혁이도 잘 부탁해요. 겉으론 저렇게 생겼어도 속은 여린 애니까요.]

저런 친화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유지연에게 말을 놓는 것도 모자라, 유재연과 나까지 부탁하는 삼촌의 행동에서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물론 입을 떼지 못한 이유가 하나 더 있기는 했지만.

뚫어지겠다. 뚫어지겠어.

내 얼굴을 얼음송곳으로 뚫어버리겠다는 듯한 녀석의 눈빛에 말은커녕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유지연의 시선을 피하려했으니 말이다.

“삼촌 같이 가!”

전혀 없는 일들을 꾸며내며 녀석의 곤란해 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던 좀 전 식사자리에서의 일이 이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는지라 서둘러 발걸음을 놀렸다.

어휴. 도망가야겠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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