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52 2019 =========================================================================
#352
“삼촌은 어떤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음...”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들을 직설적으로 털어놓는 게 힙합이라는 장르의 장점이자 매력인 만큼, 순한 삼촌의 생각을 먼저 듣고 싶었다. 어떤 걸 랩으로 대변되는 힙합에 녹일 것인지가 이번 노래의 핵심이자 전부라 봐도 무방했으니까.
“솔직히 내가 예능에서 맡고 있는 포지션도 그렇고 내 본래 성격도 조금은 주변 사람들한테 몰이를 당하거나 얕잡아 보일 수 있는 그런 편이거든.”
잠시 고민에 빠져있던 순한 삼촌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꽤나 의외의 말이었다. 순한 삼촌이 자신의 캐릭터와 포지션 그리고 이와 관련된 본인의 성격을 내가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신경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 나도 대단한 사람이다. 마냥 바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 힙합 하면 ‘나 진짜 잘난 사람이다. 내 앞으로 다 무릎 꿇어!’ 뭐, 이런 느낌 아닌가?”
“음... 뭐, 그런 게 힙합의 본질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 면이 없지는 않죠. 그러니까 삼촌은 당당해지고 싶은 거네요. 부족한 점이 아닌 내가 잘하는 것들로 남들 앞에서. 그렇죠?”
“어? 뭐... 그렇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뭔가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힙합을 이해하고 있는 듯해서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게 됐지만, 덕분에 순한 삼촌이 무엇을 힙합이라는 장르에 녹여내고 싶은 지 대강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럼 삼촌이 잘하는 게 뭔데요? 남들에 비해서?”
“뭐? 그, 그게...”
정작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뽐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는 순한 삼촌의 모습에 할 말을 잊고 말았지만.
“음... 삼촌은 먹는 거 하나는 대한민국 최고 아니에요?”
“어? 지혁이 너도 알고 있구나! 삼촌이 먹는 거 진짜 잘하는 거!”
아니 정순한 하면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식신인데, 그걸 본인이 모르고 있으면 어떡하나. 나 원 참.
아무래도 가사와 관련된 부분은 순한 삼촌에게 별도로 시간을 줘야할 것 같았다. 전문적인 가수도 아니고 아직 본인이 정확히 무엇을 무대에서 표현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은 듯 했으니까.
“그럼... 다음 만날 때까지 삼촌이 정말 잘하는 것과 관련해서 가사를 써와보세요. 우리 일주일 쯤 뒤에 보는 거니까, 시간은 부족하지 않죠?”
“응? 일주일 뒤까지?”
“다 써오라는 게 아니고요. 그냥 삼촌이 생각하는 가사를 써와보세요. 일단 저는 그 사이에 비트랑... 음... 멜로디나 그런 거 방향 같은 걸 조금 생각해보고 있을게요. 할 수 있으시겠죠?”
“음... 그냥 써오기만 하면 되는 거지?”
“네, 그냥 마음에 담고 있는 것들을 써오시면 되요. 어차피 같이 맞춰보면서 수정할 테니까요.”
그나저나 숙제로 내준 것들을 순한 삼촌이 잘 해올지 모르겠다. 석준 삼촌 말대로라면 시키거나 알려준 거는 곧 잘한다고 하던데 말이다.
*
“오, 오! 나는 천재였지! 나는 먹는 걸 잘하지! 오, 오!”
시킨 것을 잘해오긴 해왔다. 가사를 써오라고 과제를 내줬었는데, 공책 몇 장을 빼곡히 채워왔을 정도로 여러 가사를 써왔으니 말이다.
“사, 삼촌...”
“나는 한식, 중식, 양식 전부 정복했지! 오, 오! 나는 먹는 걸 잘하... 응?”
“삼촌 잠깐만요! 삼촌 잠시 진정하시고요.”
문제는 그 가사라는 것이 무대에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수준이었다는 것이었지만.
“가사 적어오신 거 잠깐 저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응? 어, 그래. 여기.”
일단 가사를 그대로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순한 삼촌이 적어온 가사들을 일일이 직접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비록 형식이 엉망이라고는 해도, 그 안에 담고 있는 것까지 엉망이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게 한참동안 삼촌이 가져온 공책 속 가사들을 살피다보니, 삼촌이 무엇을 무대에서 표출하고 싶은지가 감이 왔다. 확실히 열심히 과제를 하려한 듯, 삼촌의 가사들에는 삼촌이 힙합이라는 장르에 녹여내고 싶은 것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일단 가사는 잠깐 제쳐두고요. 제가 일주일동안 저희 곡 비트랑 만들어봤는데. 한번 들어보세요.”
방금 전 순한 삼촌의 랩 아닌 랩에서 나름 순한 삼촌만의 Flow를 느꼈었고 가사 작업은 이제 라임과 펀치라인 등 좀 더 힙합다운 면모를 갖추는 부분으로 넘어가야 될 것 같아 일단 제쳐두기로 했다.
단시간 내로 끝날 작업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삼촌이 내가 내준 과제를 해온 만큼, 나 또한 그동안 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힙합 느낌이 아직 많이 나진 않죠?”
1분 남짓한 짧은 비트를 들은 순한 삼촌의 얼굴이 오묘했지만, 그 속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방금 전 순한 삼촌에게 들려준 비트의 완성도는 50%도 되지 않았고 그 수치도 힙합적인 색체를 제외한 노래의 전반적인 밑바탕을 깔아주는 선에서 진행된 것이기에 순한 삼촌의 입장에서는 애매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먼저 선수를 쳐 현재 상태를 순한 삼촌에게 풀어서 설명해주었다.
“아직 전부 완성된 게 아니라서 그래요. 지금까지 완성된 건 피아노를 주로 활용했고요. 앞으로 베이스 드럼 킷으로 힙합 색체를 조금 더 입힐 거 에요. 후크 파트에는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가미할 생각이고요.”
괜히 또 사서 걱정할까봐, 신경이 쓰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럼 별도로 질문할 거 없으시면 우리 가사 수정해볼까요? 삼촌이 워낙 열심히 해 오셔서 저도 아이디어가 엄청 떠올랐,”
“저, 저기...”
더 이상 질문이 없을 거라 생각해서 가사 수정 단계로 넘어가려던 게 섣부른 판단이었을까. 삼촌이 내 눈치를 살짝 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피쳐링 가수 파트는 어디야? 그... 후크? 거기 부분이야?”
“네?”
삼촌이 내게 건넬 질문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싶었는데, 그 질문이 꽤나 뜬금없고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었는지라 조금은 당황하고 말았다.
하긴, 힙합하면 저런 형태를 생각하는 게 보통일 테니, 삼촌도 크게 다르진 않겠지.
“피쳐링 가수 없어요. 이번 노래는 삼촌과 저만 부를 거니까요.”
“어? 그렇지만...”
나는 애당초 힙합을 이번 가요제 곡으로 선택했을 때, 피쳐링 가수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피쳐링 곡을 하는 게 보다 나은 결과를 도출해낼 수도 있겠지만, 무대의 주인공인 순한 삼촌이 묻혀버릴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었기 때문이다.
“피쳐링 가수가 없어도 충분해요. 저를 믿으세요. 아직도 못 믿어요? 삼촌?”
“어? 아니 그건 아닌데. 그래도 힙합하면 여자나 남자 가수가 피쳐링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것 안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음... 아까 들었던 비트가 조금 이상해서 그래요?”
“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가요제 하면 그래도 피쳐링 가수가 깜짝 등장하고 그래야 할 텐데... 시청자 분들도 그걸 원하시는 것 같고...”
“음... 그것 때문이 아닌 것 같은데요? 삼촌. 방금 전에 들은 건 아직 힙합적인 색채를 넣지 않아서 그래요. 그리고 만든 지 아직 일주일밖에 안됐는데, 너무 이르게 실망하신 거 아니에요?”
“어, 어? 아니야! 실망한 거 아니야!”
“그럼 피쳐링 없는 걸로 가는 거에요? 아셨죠?”
더욱이 굳이 피쳐링 가수를 구하지 않더라도 나와 순한 삼촌으로도 충분히 무대에서 관객들을 열광시킬 수 있다는 믿음까지 있었으니 오죽할까.
아니, 그런데 순한 삼촌은 도대체 나를 왜 이렇게 저평가하는 거야? 힙합이나 랩 쪽이랑 거리가 멀다 해도 나란 존재가 누군가에게 음악적으로 이렇게까지 불안함을 안겨다줄 존재는 아닌데 자꾸 서운하게 왜 저러는 건지. 나 원 참.
두고 보자. 기똥찬 걸로 만들어낸다. 기필코.
*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 꿈 아레나에서 3월 중순 개최예정! 당초 여름 또는 가을로 예상되었던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가...... 강지혁, SAY, 아인유, 제라, 클라우드, 박재성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섭외되었다는 점을 들어 벌써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이...... 그동안의 전례와는 달리, 이번 해 가요제는 유료 공연이라는 점을 이유로 온, 오프라인 상 뜨거운 찬반...... 한편 이번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 관련 첫 방송은 이번 주 방영될 예정이다.]
이번 주 첫 방송을 탄다는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 방송에 벌써부터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떠들썩하여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한창 음악작업을 하고 있긴 했지만, 사실 순한 삼촌과 함께 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예전 앨범 준비할 때와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이런 좋은 기사에는 항상 눈살을 찌푸릴 만한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소리 질러! 대박이다. 강지혁에 제라, 클라우드. 와... 라인업 죽이네. 죽여.
-진짜 라인업 대박이다. 대박. 제라랑 클라우드는 뭐 모자란 녀석들 광팬이니까, 이번에도 나올 것 같았는데, 강지혁이라니! 강지혁까지 나올 줄은!
-역대 급임. 진심. 완전 가수 올스타네. 올스타. 이번 앨범은 장난 아니겠다. 대박.
물론 대부분의 댓글들은 이번 가요제의 라인업을 보고 역대 급이니, 올스타니 하면서 놀람과 기쁨을 표현하는 것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성향 상 수많은 좋은 댓글들이 있음에도 그 외적인 것에 눈이 더 간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런데 왜 유료 공연임? 그동안 쭉 무료공연이었는데.
-소문에 강지혁 섭외하느라 돈 너무 많이 써서 입장료 받는 거라던데?
-진짜임? 하긴, 강지혁 출연료 장난 아니겠지. 월드스타인데.
-강지혁 출연료 주려고 입장료 받는 건 진짜 좀 그런데... 유료 공연으로 하면서까지 강지혁을 출연시켜야 하나? 그동안 강지혁 없어도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는 항상 매진이었었는데...
이번 가요제가 예전 가요제와 달리 유료 공연이라는 점이 이런 댓글들의 주된 이유였다. 그리고 내가 모자란 녀석들에 출연한다는 게 이 주된 이유의 조미료였고.
-와... 진짜 거지근성들 장난 아니네. 보니까, 입장료 30만원도 아니고 3만원도 아닌 3천원이던데. 그거 가지고 지금 트집 잡는 거임? 진짜 거지새끼들만 있나? 여기엔? 어휴...
-인정. 저래놓고 커피 마신다고 5천 원짜리 커피 마실 놈들임. 일단 캡쳐는 해놓겠음.
-또 강지혁 탓하냐? 어휴, 진짜 징글징글하다. 열등감 폭발한 대상이 따로 있지. 입장료 받는 게 강지혁 출연료 때문이라고? 나 참. 깔 게 없어서 이제 별 거지같은 걸로 까네. 일단 나도 캡쳐 해놓겠음.
-강지혁이 출연료 제대로 받는 다고 했으면 공연 수익 가지고 되겠냐? 강지혁 가진 돈이 얼마고 미국에서 받은 출연료가 얼만데? 어휴, 진짜 찌질하다. 찌찔해.
도대체 사실이 아닌 저런 것들을 왜 퍼트리고 다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네, 그렇게 조치해주세요. 모자란 녀석들에 피해가지 않게요. 네, 네. 일단 첫 방송이 나오면 저런 소리 다 사라질 거지만... 그 후에도 계속되면 강력히 대응해주세요. 네, 네. 그럼 수고해주세요.”
망상을 하는 것까지는 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열등감이나 시기, 시샘을 해소하고 싶다면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일 테니까. 그런데 그 망상을 본인 머리 밖으로까지 꺼낸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런 내 반응을 원해서 저런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동안의 전례도 적지 않은 만큼 확고히 대응하는 게 보다 나은 결과를 도출해낼 것임을 믿었으니까.
그렇게 이와 관련된 대처를 전화로 요구한 뒤, 괜스레 나빠진 기분을 달래보려 소파에 드러누우려던 그때였다.
“왜? 무슨 일 있어?”
“어, 어? 아니. 그냥. 삼촌 연습은 잘 돼? 곡 이미 나왔다며.”
삼촌이 작업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말이다.
“그 소린 또 어떻게 들은 거야? 도대체?”
“연습실 지나가니까, 다 들리던데 뭘. 모자란 녀석들 스태프들도 촬영하려고 엄청 많이 서있고.”
삼촌이랑 태현 형이랑 같이 저녁을 먹으려고 왔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태현 형이야 회사 일 때문에 바쁜 지, 힘들 것 같다며 나를 돌려보냈고 삼촌은 벌써 곡을 만들었는지 안무를 다듬느라 바쁜 것 같아 말을 꺼내지도 못했으니까.
그나저나, 내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말도 안하고 온 거라, 왔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텐데 말이다. 뭐, 텔레파시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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