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51 2019 =========================================================================
#351
“순한 삼촌은 괜찮데요?”
“어, 팔꿈치 인대가 살짝... 뭐, 큰 건 아니고 일이주정도만 조심하면 된답니다.”
시구를 하고 뭐가 뭔지 모를 야구 게임을 열심히 응원만 하게 되었다. 당초 이곳으로 나를 데려온 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가요제 작업을 하러 왔다는 목적마저 사라져버린 채 말이다.
“저도 팔이 조금 아프네요. 힘껏 던지려고 저도 모르게 욕심 부려서 그런가?”
“힘껏 던지긴 했지...”
“네?”
“아! 아닙니다.”
이미 촬영 팀 또한 오늘 촬영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인지, 야구 게임이 끝나자마자 철수 준비를 하기 시작했는지라 나 또한 가요제 작업에 대한 미련을 버려버렸다.
“그런데 저기 야구팀 감독님이 왜 저를 잠깐 보자고 하셨죠?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서 죄송하다고 하고 나왔는데...”
“그게... 사인 받으려고 그랬겠지. 아마.”
“아! 사인 몇 장해서 보내드릴 걸 그랬네요. 그럼 일단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 하는 게 맞는 거겠죠? 다음 촬영은 순한 삼촌하고 얘기해보고 언제인지 말씀드릴게요.”
그나저나 일이주 동안 조심하라고 했다고 설마 그동안 한 번도 못 만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
“지혁아 저번에는 미안하다. 삼촌이...”
“괜찮아요.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되죠. 그나저나 팔은 이제 괜찮으신 거죠?”
설마, 설마 했었는데 순한 삼촌을 다시금 마주볼 수 있는 데까지 이주나 걸렸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마음이 다급해졌다.
얼마 전 이번 가요제의 또 다른 참가가수인 재성삼촌이 작업하는 것을 슬쩍 엿봤을 때 그다지 진도가 많이 나간 것 같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무슨 장르로 무대를 꾸밀지 정도는 정한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상황이 내 마음 같지가 않았다. 도대체 내가 야구 얘기를 하러 온 건지, 아니면 가요제에 참가하기 위해 이곳에 온 건지 모르게끔 만드는 순한 삼촌 때문에 말이다.
“저번에 시구한 거 가지고 엄청 화제던데, 대단하다. 지혁아!”
“아, 뭐... 우연이죠. 우연.”
“아니야, 지혁아. 전광판 오류 때문이기는 해도 150km면 엄청난 거라고!”
어째서 순한 삼촌이 그동안의 가요제에서 외면을 받아왔는지 이제야 비로소 확실히 알게 되었다.
모자란 녀석들 멤버들 가운데 비교적 준수한 가창력을 지녔는데도 항상 가수들의 마지막 옵션이 되었던 순한 삼촌의 단점은 명확했다.
“지혁아, 그러니까 삼촌이 주말마다 사회인 야구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야구장 언제 한 번,”
“삼촌. 저희 아직까지 가요제 작업 하나도 못한 거 아시죠? 다른 팀은 이미 장르까지 정했고 곡도 만들고 있데요.”
“어, 어?”
일단 고집이 너무 셌다. 아니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제가 나이도 어리고 그래서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여기실 수 있겠지만, 작업할 때는 작업에 집중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 가요제에 참가하기로 마음먹은 게 야구장 때문이 아니니까요.”
분명히 저번에 야구 경기장 때 후로 앞으로 만날 때는 가요제 관련 사안을 중점적으로 다루었으면 좋겠다고 정중히 말씀드렸었다. 그랬기에 2주 동안 만나지 못했음에도 마음이 조급해졌을지언정, 겉으로 순한 삼촌에게 이를 표현하지 않았고 말이다.
“어, 그래... 삼촌이 너무 했지? 아직 우리 그런 사이도 아닌데...”
“아니요. 삼촌. 그게 아니라... 하아...”
또 다른 삼촌의 단점은 바로 방금 전과 같은 삼촌의 태도였다.
“삼촌이 저랑 친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지금 가요제 얘기하려고 만난 거잖아요. 야구 얘기라면 아까 촬영 전에 꽤 했고 지금 카메라까지 찍고 있는데, 굳이 또 야구 얘기를 해야 돼요? 그럼 가요제 얘기는 언제해요? 삼촌 조금 있다가 촬영 있어서 가보셔야 된다면서요.”
“응... 삼촌이 미안...”
속이 좁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쉽게 삐진다고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자신에게 불편한 소리를 하면 입부터 쭉 나오는 순한 삼촌은 지금껏 내가 경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유형의 어른이었으니까.
상황이 이렇다보니 후회됐다.
순한 삼촌의 모습을 보아하니, 오늘 촬영도 왠지 모르게 이미 그른 듯 보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나와 순한 삼촌의 애매한 분위기 때문에 졸지에 꿀 먹은 벙어리들처럼 우리 둘의 눈치를 보고 있는 제작진들의 모습에 괜히 이런 말을 꺼냈나 싶었으니 말이다.
“태훈아 잠깐 끊어서 가자.”
“어? 형 언제 오셨어요?”
“순한 형! 잠깐 나 좀 봐!”
때마침 언제 이곳에 왔는지 모를 석준 삼촌이 촬영을 끊고 순한 삼촌을 바깥으로 데려가는 것으로 그날의 촬영은 실제로 끝을 맺고 말았다. 대기시간 1시간, 촬영시간 20분이라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라는, 꽤나 큰 허탈함을 내게 안겨다 준채.
*
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가려던 그때, 석준 삼촌이 저녁을 사준다며 나를 근처의 한정식 집으로 이끌었다.
솔직히 피곤한 마음이 없지 않아,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어차피 저녁 먹을 때이기도 하고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 석준 삼촌의 눈빛을 보았기에 군소리하지 않고 따라나섰다.
“지혁이 많이 힘들지?”
“네, 네? 아니에요. 제가 순한 삼촌한테 너무 건방지게 해서...”
“아니야. 그런 거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된다. 지혁아.”
그 하고 싶은 말이라는 것은 역시 오늘 촬영 때 있었던 일과 관련된 것이었다.
“전에도 이런 적이 꽤 있었거든. 순한 형이 착하긴 한데... 조금 순박해서...”
순한 삼촌이 이랬던 적이, 내 예상대로 오늘이 처음이 아니라는 석준 삼촌의 말을 듣고 보니 마음이 조금 더 착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순한 삼촌은 이번 가요제에서의 내 파트너였고 이를 변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삼촌이 순한 형한테 알아듣게 잘 말했으니까, 다음에 봤을 때는 그런 일 거의 없을 거야. 순한 형도 눈치가 없어서 그렇지, 알려주면 잘 하거든.”
그래도 석준 삼촌의 이어진 말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막말로 순한 삼촌이 오늘과 같은 모습만 보여줬다면, 그동안의 가요제에서 순한 삼촌은 제대로 된 무대를 소화해내지 못했을 테니까.
그렇게 순한 삼촌에 관련된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식사를 하게 되었다. 술을 잘 못하는 석준 삼촌이기에 술자리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다채로운 음식들의 향연과 이에 어울리는 맛은 자리 분위기 자체를 계속해서 밝게 만들어줬고 말이다.
“그나저나 요즘엔 괜찮아?”
“네?”
그런데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석준 삼촌의 말에 의아함을 품게 되었다.
“한창 때인데, 연애도 하고 그래야지. 지금 좋은 여자들 많이 만나봐야 나중에 결혼도 좋은 사람이랑 하고 그러니까.”
“아... 그게...”
그리고 이내 조금은 부끄러웠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는지라, 말을 쉽게 이을 수가 없었다.
[흠... 잘 모르겠어요. 하는 연애마다 뭔가 그 끝이 안 좋아서요. 영원한 사랑이 있을까.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볼 수 있을까. 그 사람도 나를 바라봐줄까. 뭐 이런 회의감만 들어요. 요즘엔.]
[많이 힘들었니? 괜히 그런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지.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고 아물고를 반복해야지 그런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놀라곤 했는데... 그래. 그렇지. 힘들고말고.]
[지운 삼촌을 보면 너무 행복해보여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되지 못할 것 같아요. 사랑을 하는 게 두렵고 누구에게 마음을 주는 게 무서워요. 차라리 혼자인 게...]
예전에 지운 삼촌의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기 위해 참석했을 때, 석준 삼촌에게 꽤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던 적이 있었다.
“아! 혹시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 있는 거야? 그럼 다행이고.”
“아니요. 그건 아닌데...”
“응? 그럼... 아직도 마음이... 마음이 조금 그래?”
“음... 그것도 아닌데요...”
사랑에 대한 회의감이 극에 치달았을 때인지라, 그때 당시에는 이와 관련되어 감정을 조절하는 것을 꽤나 힘들어했었다. 때마침 행복해 보이는 지운 삼촌을 보며 옆에 있던 석준 삼촌에게 거의 울다시피 고민을 털어놓을 정도로 말이다.
“그럼? 혹시... 네 눈이 높아서 그런 거야?”
“아뇨. 그냥 고민 중이에요. 뭔가 지금까지 해왔던 연애들이 전부 뒤끝이 안 좋아서 또 그럴까 봐요. 그냥 친한 사이로 있고 싶은데, 괜히 사귀자고 했다가 잘못되면... 아예 끝인 거잖아요.”
그래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석준 삼촌에게 워낙 부끄러운 모습을 많이 보였었는지라 지금 속내를 털어놓는 게 그다지 어렵지가 않았다. 아니 쉬웠다. 마치 누가 물어봐줬으면 한 것처럼.
“그럼 그 마음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랑 만난다고 생각하면 어떤데?”
“네?”
“계속 친구로 지낼 수 있겠어? 다른 사람이 네가 친한 사이로 있고 싶은 사람이랑 연인 사이가 되면... 그래도 계속 친한 사이로 지낼 수 있겠냐고.”
그리고 이런 내 느낌에 걸맞게 삼촌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꽤나 큰 조언이 된 듯 했다. 그 조언이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정도로.
“살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어. 두 가지 모두를 갖게 되면 좋겠지만, 그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거든.”
“아...”
“선택이 어려우면 방금 전 삼촌이 말했던 상황을 상상해봐. 뭐, 지혁이 네가 믿지는 않겠지만 한 때 삼촌도 그 방법 썼던 적이 있거든.”
그동안 헤어지고 나면 예전의 사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내게는 꽤나 큰 의미였었다. 지금 내게, 살다보면 불가피한 선택을 해야 함을 조언해주는 석준 삼촌의 말처럼.
“그래, 지혁아. 다음 촬영 때 보자. 그리고 순한 형 문제로 또 걱정할 일 생기면 삼촌한테 언제든지 전화하고. 알겠지?”
그렇게 석준 삼촌과의 저녁 식사는 이내 마무리되었다. 식당에 들어갔을 때와 확연히 다른 고민을 내게 안겨다준 채.
*
“순한 삼촌 그때는 제가 죄송했어요. 알게 모르게 너무 다급해졌었나 봐요. 다른 팀들이 장르도 정하고 곡 작업도 한다고 하니까요.”
“아니야. 지혁아. 삼촌이 조금... 나이에 맞지 않게 행동할 때가 많지?”
“아니에요.”
걱정했던 것과 달리, 순한 삼촌과의 세 번째 촬영은 꽤나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석준 삼촌이 순한 삼촌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순한 삼촌의 지금 태도로 보건대 직전 촬영에서의 갈등을 어느 정도 털어낸 듯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둘러 가요제와 관련된 얘기부터 꺼내게 되었다.
“삼촌 그럼 이제 우리 가요제 얘기 좀 나눠볼까요?”
“응? 어, 그래. 그러자. 우리.”
일단 우리 팀의 진도가 상당히 늦다는 것이 명확한 사실인 만큼 오늘 촬영마저 망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일단 장르부터 정하기 위해 순한 삼촌의 의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삼촌 저번에 힙합 아니면 댄스해보고 싶다고 하셨죠?”
“응? 응... 그렇긴 한데... 발라드해도 상관은 없어.”
“힙합이나 댄스해요. 삼촌이 하고 싶어 했잖아요.”
나와 팀을 해서 발라드 쪽으로 장르를 정해야하나 싶은 모양인지, 내 눈치를 살피는 순한 삼촌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나이에 맞지 않은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 그렇긴 한데... 그래도 되겠어?”
아니, 그런데 도대체 내가 왜 댄스나 힙합을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직접적으로 솔로 댄스곡이나 힙합 곡으로 활동을 한 적은 없지만 아이 돌들에게 댄스 또는 힙합이 섞인 댄스곡들을 건넸던 적이 꽤나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도 사람인지라 조금은 서운했다. 그런 마음도 이내 들려온 순한 삼촌의 말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지만.
“삼촌 왜 댄스랑 힙합이 하고 싶어요? 그때 말했던 이유가 전부에요?”
“그냥... 가요제에서는 댄스가 보통 반응이 좋거든. 그리고 힙합은... 그냥 해본 말이야.”
“네?”
“나 같은 게 힙합을 어떻게 해?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않았는데. 래퍼들이 힙합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힙합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하냐는 삼촌의 평범한 말이 어째서인지 무척이나 거슬렸다. 방금 전까지 은은하게 남아있던 서운함이 순식간에 존재감을 감춰버릴 정도로.
“힙합으로 해요.”
“어?”
“노래는 꼭 배워야지 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힙합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우리 힙합해요.”
그래서 발끈한 나머지 삼촌에게 힙합을 하자고 먼저 역으로 제안해버렸다.
힙합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흔히 말하는 언더에서 래퍼 생활을 했던 적도 없지만, 음악은 누군가에게 국한된 권리가 아님을 순한 삼촌뿐만 아니라 순한 삼촌처럼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으니까.
============================ 작품 후기 ============================
네. 개연성을 날려버린 작가입니다. 이 소설은 프로야구 소설로 전환될 예정입니다. 이 작품의 장르는 당초 퓨전 판타지로 연재를 시작했으므로 빙의 및 능력치 물로 전환하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