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50 2019 =========================================================================
#350
“너는 삼촌이랑 같은 방송 출연하는데 같이 와야지!”
“뭐래. 어제 나 잠실 집에 있었잖아.”
순한 삼촌, 아인유 양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촬영 시간이 다가온 듯 했다. 하나, 둘 참가 가수들과 모자란 녀석들 멤버들이 대기실에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삼촌 어차피 사랑이랑 애들 유치원 보내야 하잖아. 그리고 오늘 용기랑 애들 예방접종 있다며. 삼촌이 같이 가줘야지. 작은 엄마만 보내려했어?”
“어, 어? 아니, 그건... 지혜가 혼자가도 괜찮다고...”
그런데 본의 아니게 가정 사를 대기실에서 드러내게 되었다. 주변에서 그런 나와 삼촌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한 채 말이다.
아니, 저 사람이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안 그래도 작은 엄마 엄청 힘들 텐데!
“괜찮다고 작은 엄마 혼자 보내? 아, 진짜, 그러다가 벌 받아. 엄마가 알았으면 삼촌한테 진짜 화냈을 거야. 알아?”
“너, 이게! 자꾸 이럴 때만 누나 얘길 하고 있어? 네가 그런 말 안 해도 다 알아서 하거든? 저게 기껏 키워놨더니 자꾸 누나 닮아가고 있어.”
“아들이 엄마 닮는 게 뭐 어때서! 그리고 진짜 같이 안 갔어? 작은 엄마 혼자 보냈냐고!”
물론 삼촌이 동생들을 끔찍이 여기고 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일이 없을 때마다 집에 들어가 하루 종일 동생들 얼굴만 보고 있음을 익히 전해 듣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런 구박 아닌 구박이 가끔은 필요했다.
애들 돌보는 것을 꺼리지 않는 삼촌이지만, 눈치가 없는 편이라 종종 작은 엄마가 괜찮다고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던 삼촌인지라 이렇게 미리미리 예방 주사를 놓아주어야 작은 엄마가 조금이라도 편할 수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주변이 왜 이렇게 조용하지?
*
“첫 순서라서 그런지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분도 안올리는 없다고 생각돼서 마음이 놓이네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후회 없는 무대 같이 만들 분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예정되었던 시간이 되자마자 촬영은 시작되었다.
솔직히 이런 세트장 예능은 별로 경험이 없었는지라 모든 게 신기했고 새로웠다. 마치 잘 엇갈린 톱니바퀴처럼 자신들의 역할을 시기적절하게 소화해내는 모자란 녀셕들의 멤버들과 더불어 참가가수들까지 전부.
그래서 조금은 소외될 뻔했다. 옆에서 나를 챙겨주는 재성 삼촌과 더불어 석준 삼촌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뭐, 내가 이번 가요제 파트너 선정의 첫 번째 순서여서 더욱 그러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무대 중앙에 따로 마련된 의자에 앉아 꽤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모자란 녀석들 멤버들을 뒤로 한 채, 제작진을 바라보게 되었다.
“자! 지혁 씨와 같이 파트너가 되고 싶은 멤버들이 지금 지혁 씨의 뒤에 와있는데요. 몇 명이나 와있을 것 같나요?”
“음... 한 명도 안 온 것만 아니면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어? 그런데 설마... 한 분도 안 오신 건 아니죠?”
“하하! 그럼 과연... 그 결과가 어떨지 직접 확인해주시죠!”
이번 가요제 파트너 선정 방식이, 멤버들의 선 선택, 참가가수의 후 선택 형식이라는 지금까지의 가요제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지혁아! 나도 빌보드! 나도 빌보드!”
“아니 저기 하지운씨. 그거 너무!”
“왜! 나 빌보드 갈 거야! 빌보드!”
“그리고 수형 형은 여기 또 왜 나왔어? 형 이미 지혁이 팬들한테,”
“야! 그거 편집해달라고 했는데, 자꾸 말하지 말라고!”
내가 첫 차례여서인지 아니면 정말로 나와 가요제 파트너를 하고 싶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멤버들이 내 뒤에 서있었다. 그것도 꽤나 자신들을 어필하면서.
물론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비록 첫 순서여서 그 의미가 빛바랜 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아무도 없는 것보다는 지금 상황이 훨씬 나았음은 두말하면 잔소리였으니까.
“자! 그럼 지혁 씨는 원하시는 멤버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모든 멤버들이 지혁 씨에게 왔으니까요.”
더욱이 내가 원했던 이를 마찬가지로 선택할 수 있었으니 오죽할까.
“저는 이 분을 선택하겠습니다.”
“어? 나?”
“아! 뭐야! 이거 몰래 카메라지! 장난 쳐?”
“뭐야, 뭐야, 이거! 고민도 안 하고 한 선택이 이거라고?”
내가 선택할 사람은 어쩌면 오늘 이곳에 온 순간부터 정해져있다 볼 수 있었다. 분명 이곳 스튜디오에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따로 생각해둔 사람이 전무했지만, 대기실에서 꼭 이 사람과 파트너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아! 뭐야! 순한 형이 처음으로 선택됐다고? 아 자존심 상해!”
“뭐야, 이거? 순한 형 마지막까지 남을 줄 알았는데!”
“지혁이가 마음이 넓네. 순한 형 저번처럼 마지막까지 선택 못 될 줄 알았는데.”
그런 내 선택에 주변 모두가 꽤나 놀란 듯 했지만 나는 덤덤했다. 그런 나와 주변의 반응에 정작 선택을 받은 순한 삼촌은 얼떨떨한 상태인 것 같았지만 말이다.
“지혁 씨. 별 고민도 없이 우리 정순한씨를 선택하셨는데, 혹시 별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일단 비음이 조금 아니 많이 과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가창력이 뛰어난 편이신 순한 삼촌이 파트너로서 꽤 괜찮다고 생각했고요. 아까 대기실에서 저를 약간 무시하셔서... 저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려고 선택했습니다.”
물론 방금 전 내가 MC인 석준 삼촌의 질문에 답변한, 나를 무시했다와 같은 내용은 모두 버라이어티 예능을 위한 답변이었을 뿐, 순한 삼촌을 선택한 이유의 전부가 아니었다.
조금 오기가 돋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이유인, 발라드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생각 외로 강한 것 같아 이번 기회를 통해 다른 모습 또한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겠다는 것이 보다 주된 이유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내 의도를 짐작하고 있음에도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순한 삼촌을 몰아붙이는 나머지 모자란 녀석들 멤버들로 인해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돋긴 했지만. 이거 완전 피라냐들만 모여 사는 강이네. 강이야. 틈 보이면 안 되겠다. 어휴.
“뭐, 뭐야! 순한 형 지혁이 무시했어? 형이?”
“아! 아니야! 내가 언제!”
“와... 순한 형 지금 빌보드 가수 무시한 거야? 대박이네.”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요. 솔직히 상처 많이 받았거든요.”
“헐, 대박! 순한 형 도대체 대기실에서 지혁이한테 무슨 말 했던 거야?”
“형 다음 주부터 못 보겠는데? 우리 다른 사람 구해야 할 것 같아.”
“아니, 아니라니까! 지혁아 내가 언제...”
그렇게 제법 분량을 뽑았다는 생각에 절로 뿌듯해지는 마음을 애써 숨긴 채,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런 내 뒤를 억울하다는 듯 징얼거리는 순한 삼촌이 뒤따랐고 말이다.
*
가요제 파트너 선정 녹화를 끝마치고 삼일 뒤에 순한 삼촌과 만나기로 했었다. 여느 가요제가 그랬듯, 준비기간이 그다지 길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 장르를 정하고 곡 작업을 시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삼촌 이거하면 우리 가요제에 도움 되는 거 맞죠?”
그런데 예상을 하지 못했다. 같이 할 일이 있다던 순한 삼촌이 나를 여기로 데려올지는 말이다.
“그럼! 지혁이 네가 이번 가요제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잖아?”
“가요제 준비한지 삼일 밖에 안 됐는데...”
“야구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스트레스 확 푸는 거야! 그러면 음악도 잘 나오겠지! 맞지?”
도대체 여길 왜 온 것인지. 이미 내 말을 들을 생각조차 없는 듯 연신 내게 갖은 폼을 다잡으며 공을 던지는 삼촌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전에 어떤 장르로 할 건지 얘기를 먼저 나눠봐야 할 것, 어, 어?”
“이 정도면 시구 잘 던졌다고 소문나겠지?”
아니, 시구 행사가 있으면 혼자 와서 하시고 조금 있다가 나를 부르지 이게 도대체 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래서 그동안 순한 삼촌이 가요제에서 항상 참가 가수들의 외면을 받았던 것일까? 하아. 뭔가 불안해졌다. 앞으로의 준비기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가 벌써부터 눈앞에 선했으니까.
그런데 그 불안감이 이다지도 빠르게 현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 봐봐! 오늘 삼촌이 구속 120 넘긴다. 받아봐! 비장의 무기... 어, 어? 윽!”
“어? 삼촌!”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뭐하자는 거야? 어휴.
“삼촌 괜찮아?”
“으윽...”
얼씨구?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스트라이드를 크게 가져 갈수록 구속이 잘 나올 겁니다.”
“저... 근데 스트라이드가 뭐죠?”
삼촌이 팔을 얼싸안은 채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 갔는지라 졸지에 잠실야구장에 혼자 남게 되어버렸다. 삼촌이 하기로 했던 역할까지 떠맡게 되어버렸고 말이다.
“릴리스 포인트를... 음... 공을 손에서 놓는 순간이 머리 앞쪽으로 왔을 때가 가장 정석적인 릴리스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송해요. 그냥 던지면 된다고 생각해서...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사람으로 빨리 구하라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괜히 제가 욕심 부렸네요.”
본디 나의 역할도 아니거니와, 원채 야구에 대해서 잘 몰라서 본의 아니게 행사에 지장을 줄까봐 걱정이 커져만 갔다. 시구를 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말이다.
차라리 내가 대신하겠다고 말을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시구행사를 하지 않거나, 다른 연예인을 급하게 구해보기라도 했을 테니까. 어휴, 내 입이 방정이지. 방정.
“아닙니다. 그냥 던지실 거면 제가 한 말 신경 쓰지 않고 아까처럼 던지시면 됩니다. 보통 남자 연예인 분들은 구속을 높이길 원해서 그렇게 말한 거지, 그냥 던져도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시구행사 자체가 그다지 볼을 잘 던지지 않아도 딱히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자꾸 전문적인 단어를 이용해서 나를 당황하게끔 했던 투수 분이, 구속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그냥 던져도 된다는 말을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남자 연예인들은 시구 던질 때 구속이 빨라야 하나? 괜히 신경 쓰이네 이거. 아, 모르겠다.
“그럼 이렇게 던져도 되나요? 야구 보면 이렇게 던지시는 투수 분들도 있던데...”
“아! 음... 사이드 암 말씀하시는 거군요.”
지금은 그저 얼떨결에 떠맡게 된 시구 행사를 무난하게 끝마치는 게 내 목표였는지라, 나를 도와주기 위해 온 투수 분의 말을 더욱 유심히 듣게 되었다. 뭐, 결국은 내 마음대로 편하게 던지게 됐지만.
“그렇게 던져도 상관은 없는데, 익숙하지 않으시면 조금 힘드실 텐데... 남자 연예인분들은 구속도 엄청 신경 쓰지만 보통 포수까지는 무조건 던지고 싶어 하던데 괜찮으실까요?”
“아! 그거면 상관없을 것 같아요. 아까 순한 삼촌 연습 도와줄 때 살짝 이렇게 던져봤는데, 꽤 세게 나갔거든요. 편하기도 방금 전 자세보다 그게 더 편했던 것 같고요.”
“네, 그럼 그렇게,”
“제욱아! 지금 감독님이 너 잠깐 부르신다!”
“아! 네! 지금 가겠습니다! 저 이만 가봐야 될 것 같습니다. 사이드 암도 아까 제가 알려드린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그렇게 조금만 더 연습하시면 구속도 충분히 나오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인이랑 사진 찍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그렇게 나를 도와주러 온 투수 분이 자리를 비우게 된 순간부터, 열심히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하다 보니 제법 재미가 붙었는지라 시간도 잊은 채 계속 말이다.
*
[퍽!]
자신의 미트가 있는 곳. 스트라이크 존의 정 중앙.
굳이 미트를 움직일 필요도 없이 순식간에 손으로부터 느껴지는 강렬한 타격감에, 방금 전까지 1군에 콜 업 된 후 처음으로 선발 출전했다는 점 때문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던 포수 유경남은 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윽!”
“뭐, 뭐야?”
그리고 곧이어 방금 전 시구 볼을 마주했던 또 다른 이인, 시타자 석에 서있던 선수의 입에서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엇인가 이상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공이었기에 더욱.
이런 두 사람의 당황이 꽤나 적나라했던 것일까. 무슨 이유에서인지 강지혁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시구를 하러 왔다는 사실에 열광하던 관중석이 일순간 침묵으로 가득 차버렸다.
160.
그리고 이내 전광판에 방금 전 시구의 구속이 떠오르자, 관중석은 열화와도 같은 함성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광판에 찍혀있는 방금 전 시구의 구속을 보던, 정작 그 공을 받았던 이와 이를 타석에서 마주했던 이는 여전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이날 경기를 앞두고 있는 두 팀 덕 아웃 또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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邪美男님 후원쿠폰 5 장 감사합니다.
Groover님 후원쿠폰 10 장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