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7 2019 =========================================================================
#347
“여러분들 오늘 저희들이 이렇게 모인 것은 다름 아니고요.”
유석준의 능숙한 진행으로 모자란 녀석들의 본격적인 녹화가 시작되었다. 사전에 어느 정도 오늘 주제에 대해 전해 들었던 멤버들이었지만, 그때만큼은 한 마음이 되어 유석준의 진행에 힘을 보태었다.
“이번 해가 바로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의 해 아닙니까?”
2년마다 한번 씩 개최되는 가요제는 언제나 멤버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 만한 소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초창기 때부터 가요제는 항상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았기 때문이다.
“예!”
“그런데 지금 추워죽겠는데, 무슨 가요제야?”
“맞아, 원래 여름 때 하잖아?”
그렇게 지금까지의 가요제와는 사뭇 다른 개최시기라는 점을 멤버들이 번갈아가면서 부각시키자 국민 MC 유석준이 이를 놓치지 않고 진행의 맛을 곁들이기 시작했다.
“지금 말씀해주셨다시피 그동안 저희가 해왔던 가요제들은 모두 여름과 가을에 개최됐었는데요.”
“맞아요. 이렇게 날이 추운데, 지금 해도 되는 거에요?”
“야외에서 하면 엄청 추울 텐데...”
기본적으로 모자란 녀석들이란 프로그램 자체가 대중들의 관심을 워낙에 많이 받고 있는 국민예능프로그램일진데, 가요제라는 인기도 상위 콘텐츠까지 이에 결합하게 되자 그동안 개최됐던 수많은 가요제들은 항상 매진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수만 명에 달하는 공연 규모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실내에서 하는 거면 너무 좁지 않나? 저번에 했을 때 3만 명 넘게 왔었잖아.”
그래서 멤버들의 이러한 의아함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금부터 가요제 콘텐츠를 가지고 녹화를 시작한다면 본 공연은 늦어도 3월 초 중순쯤이 될 것이고 그때가 비록 봄이라 할지라도 야외 공연을 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날씨가 애매한 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멤버들의 의아함은 그리 오래지않아 놀람과 경악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번에는 얼마 전 고양 시에서 완공된 강지혁 아레나...? 어?”
“아!”
“설마! 대박!”
“대박이네!”
강지혁 아레나라는 말을 내뱉기가 무섭게 앞에 있던 담당 PD 김태훈을 바라보는 유석준과 그와 동시에 놀람을 표현하는 다른 멤버들로 인해 녹화 장은 순식간에 왁자지껄한 시장 통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규모의 아레나에서 가요제를 열게 될 건데요. 야! 태훈아 이건 아니잖아. 아, 진짜!”
“아니, 태훈아. 거기 10만 명이잖아. 설마 10만 명 앞에서 우리보고 공연을 하라고? 아서라...”
“태훈아 우리 사람들 눈빛에 눌려죽는다. 죽어!”
“야! 우리 가수 아니라고!”
그러나 그런 멤버들의 불만 아닌 불만에도 김태훈 PD는 안색한번 바뀌지 않은 채 태연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는 이내 멤버들의 기세를 한순간에 억누르는데 성공했다.
“이번 공연의 수익금은 마찬가지로 전액 기부하게 될 건데요. 부모님을 일찍 여위어서 고아원에 있거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 자라고 있는 소년, 소녀 가장 어린이들에게...”
“야... 그러면 우리가 뭐가 되냐.”
“아니, 김태훈 저건 우리 못된 놈 만들려고 아주... 씨...”
그동안의 가요제가 그랬듯 이번에도 모든 수익금은 기부가 될 것임을 넌지시 언급한 김태훈 PD로 인해 멤버들의 불만 아닌 불만이 언제 나왔냐는 듯 도로 입 안으로 삼켜져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희도 보다 많은 수익금을 확보하기위해 의도치 않게 소액이나마 공연을 유료로 하게 됐습니다.”
“유료?”
“유료면 시청자분들이...”
“더욱이, 꿈 아레나 측에서 저희 이번 가요제를 위해서 무료로 대관을 해주시겠다고...”
“뭐?”
“진짜?”
“좋은 뜻에서 가요제를 연다고 하니, 그 대관 비 전액을 기부금에 보태달라는 연락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또한 보다 많은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고요. 따라서 부득이하게 유료 티켓 공연이 되었습니다. 물론 티켓 비용이라고 해도 5천원 이하가 될 것이고요.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도록 구체적인 티켓 가격이 정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이번 가요제가 전과 달리 소액이나마 유료 공연이 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이를 포함한 음원 수익 또한 모두 기부될 것이라는 점을 들어가며 모자란 녀석들의 녹화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자! 지금부터 이전 가요제들과 마찬가지로 파트너를 선정해야 될 텐데요.”
“이번에도 우리가 직접 작곡가들 섭외하러 가는 거야?”
“아, 그럼 난 저번에 갔던 송현 형한테 가야되는데...”
가요제와 관련된 세부적인 내용들을 한 번씩 살펴보던 초반부 녹화가 끝나자마자, 유석준은 본격적인 가요제 녹화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유석준과 호흡을 맞춰야할 멤버들은 때론 맞장구를 쳤고 때론 의아함과 놀람을 표출하는 등 진행에 감칠맛을 더했다.
“한 분, 한 분 이번에 저희들과 같이 합을 맞출 작곡가 또는 가수 분들이 나올 겁니다.”
“오! 이번에는 우리가 선택하는 거야? 직접 찾아가는 게 아니라?”
“대박! 누구, 누구?”
“아! 또 석준이만 알려줬네. 김태훈 저거는 맨날 차별하네. 진짜.”
“아니, 수형 형. 나도 몰라. 누군지.”
지난 가요제들과는 꽤나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번 녹화에 멤버들과 유석준의 얼굴엔 기대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내 등장한 자문단이라는 이들의 면면에 그런 멤버들의 얼굴엔 기대감이 아닌 실망감이 가득차 있었다.
“자! 그럼 그 전에 저희들과 해당 가수 분들과의 궁합을 맞추는 데 도움을 주실 분들을 먼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윤송현, 이석, 유민재 씨입니다!”
“에이...”
“아 뭐야... 클라스가 확 떨어지잖아.”
“어디서 노땅들을 데려와서는...”
“야! 뭐? 노땅! 이게!”
“아니! 사람 불러놓고 이게 무슨 짓이야!”
모두가 지난 가요제에서 작곡가 또는 가수로서 참여했던 이들이기에 멤버들은 노골적으로 실망감을 드러냈고 이에 발끈하는 자문단들의 모습까지 더해지면서 녹화는 보다 큰 재미를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 시작했다.
“자문 위원단과 함께 이제 가수 분들을 한 명, 한 명 맞이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는 이번 가요제의 본격적인 참가가수를 소개하는 코너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다음 가수분 안 나오시나요?”
“다음엔 동혁 형 나오는 건가요?”
“저를 캐스팅 하러 오셨네요. 그런데 저는 관심이 없어요. 관심이. 원래 저는 JS보다 DH였거든요.
“여러분 여기 가수분 나오셨는데, 그렇게까지. 에이...”
정체를 숨기기 위해 가면을 쓰고 나온다는 설정에 맞게, 제법 신경 쓴 듯한 가면 남자의 등장에 모두가 앞선 자문단의 등장 때와 마찬가지로 실망감을 대놓고 드러냈던 것이다.
“아니, 저분 말고 저분 조카 분 안 나오나요?”
“저분 가수였나요? 제가 알기론 어떤 분 외삼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요?”
“아! 맞다! 저도 그분 외삼촌으로만 알고 있었지, 가수인지는 몰랐었는데요?”
그렇게 손이 비정상적으로 긴 외형 그리고 목소리에서부터 느껴지는 누군가의 선명한 특징에 멤버들의 노골적인 실망감은 그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해당 가수가 그런 자문단과 모자란 녀석들 멤버들의 말에 삐진 듯 무대 뒤로 돌아가려는 듯한 모션을 취하기 전까지 말이다.
“아니 애 아빠가 무슨 예능이야?”
“제수씨 무슨 고생이야! 같이 봐줘야지!”
정체가 다 드러난 마당에 더 이상 가면을 쓸 이유가 없어진 해당 가수가 이내 가면을 벗었고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것을 벗어나지 않았다.
“사실 저기 방금 관중석에서 박재성 씨가 가수냐고...”
“하아...”
“그 어떤 분 외삼촌이지 가수인줄은 몰랐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게... 하아...”
하지만 가면을 벗고 한숨만 쉬는 박재성에게 멤버들과 자문단의 실망감이 또다시 발동이 걸리는 듯 하자, 유석준이 이를 북돋으면서도 말리는 행동을 취함으로서 녹화는 점점 목표하는 분량을 채워갈 수 있었다. 뭐, 놀림과 실망감의 대상이 된 박재성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해졌지만.
“음악만 30년 넘게 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가수가 아니라 다른 호칭으로 저를 부르더라고요.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습니다.”
“아... 부러워!”
“매일 볼 거 아니야!”
“이분이 또 소문난 조카바보거든요?”
물론 박재성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곡가이자, 최고의 댄스가수이다. 그래서 이런 멤버들의 앞선 실망감들은 다분히 예능적인 웃음을 위한 제물일 뿐이었다.
“지혁이 지금 미국 갔다며. 골든 글로브랑 아카데미 참가하러.”
“민재도 알고 있는데 아니, 궁금하면 인터넷 쳐보면 되지. 우리 지혁이가 얼마나...”
“어휴 또 시작됐다.”
“내가 뭘? 우리 지혁이가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고 또 못하는 게 아예 없는 그런 완벽한......”
“카메라 켜지면 그러지 좀 말아라. 깬다, 깨.”
그래서일까. 무대에서 관중석에 있는 자문단과 멤버들이 있는 자리로 이동한 박재성에게 모두가 반갑다는 듯 인사말을 건넸다. 그런 이들에게 박재성은 어김없이 조카바보 모습을 드러냈지만 말이다.
그렇게 박재성이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녹화는 재개되었다. 그리고 이내 소개된 이번 가요제의 다른 참가 가수들은 박재성과는 사뭇 다른 멤버들과 자문단의 반응을 불러 모았다.
“군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빅 스타의 제라, 클라우드!”
“와! 나 쟤네들이랑 할래! 나 찜!”
“그런게 어딨어!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데!”
“아니, 형은 저번에 제라랑 했잖아! 제라 몰래 대타 구해서 행사도 뛰었으면서!”
얼마 전 멤버 전원이 군복무를 끝마치고 활동의 청신호탄을 쏘아올린 빅스타의 제라와 클라우드 그리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뮤지션! 아인유!”
“헐, 대박!”
국민 여동생에서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뮤지션과 여배우로 발돋움한 아인유,
“한국을 넘어선 아시아의 별 SAY!"
“뭐야, 이번 가요제 라인업? 이거 장난 아닌데?”
한류의 시초이자,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트렌드를 주도한 SAY까지.
어느 누구하나 박재성에 모자라지 않을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뭐야, 나 나왔을 때는 다들 한숨만 쉬더니! 뭐? 가수인지 몰랐다고? 그랬으면서 지금 반응들 뭔데?”
뭐 그로인해, 단숨에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돼버린 박재성의 분노 섞인 외침이 한동안 세트장 곳곳에 울려 퍼지긴 했지만 말이다.
*
잠시 주어진 휴식시간동안 자문단과 모자란 녀석들 멤버들 그리고 이번 가요제에 참가하게 된 가수들은 각자 인사를 하며 나름의 친분을 나눴다.
좁다 보면 좁다할 수 있는 가요계에서 직접적인 친분은 없다할 지라도 대부분의 가수들은 서로 몇 다리만 건너뛰면 서로 연결되어있다 볼 수 있을 진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직접적으로 어느 정도 인연이 있는 이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녹화 장은 그들의 대화 소리로 잠시도 조용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근데, 가수가 한명 모자라지 않아?”
“어? 그러네?”
그런데 그때였다. 자문단으로 이번 화만 특별히 참석한 윤송현의 입에서 의아함이 튀어나온 것은 말이다.
“제라랑 클라우드 별개 팀으로 진행되는 거야? 제라야 뭐 들은 거 없어?”
“네? 아... 저희 둘은 팀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석준아 뭔데? 참가 가수 이게 전부야?”
“응? 그게 여기 진행지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럼 이게 끝 아닐까? 알잖아, 대본이라고 해도 그냥 누구 나온다, 이것만 써져있는 거.”
윤송현의 이런 말이 시초가 된 듯,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이들 모두가 저마다 의아함을 내뿜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윤송현의 말대로 이 자리에 있는 참가 가수는 5명, 그 중 빅스타 제라와 클라우드는 한 팀으로 나설 것이고 이는 결국 가수 팀은 4 팀에 불과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은 이내 한 곳을 향하게 되었다. 자신들끼리는 이 의문을 품을 방법이 오로지 하나 뿐이라는 것을 멤버, 자문단, 참가가수 가리지 않고 모르지 않았으니까.
“가요제에 참가할 가수 분들은 박재성 씨, 아인유 씨, 클라우드, 제라 씨, SAY씨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가수 분까지 합쳐 총 5 팀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서일까. 이내 김태훈 PD가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는 모두의 의아함을 일거에 해소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 누구 한 명 더 있네.”
“그럼 그렇지.”
“아니! 모자란 녀석들 녹화인데! 건방지게 참석을 못해? 누군데 이렇게 잘난 척이야?”
“수형 형 또 오버한다. 오늘 앞에서 분량 많이 못 채웠다고.”
“형, 그러다가 진짜 유명한 사람 나오면 어쩌려고 그래?”
“내가 뭐!”
하지만 그런 그들의 해소된 의아함은 개운함으로 바뀌질 못했다.
“안녕하세요. 이번 2019년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에 참가하게 된 가수 강지혁입니다. 이렇게 화면으로 인사드리게 돼서 죄송합니다.”
어느새 재개된 녹화 그리고 이내 무대 뒤편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비춰지는 얼굴 그리고 목소리에 장내의 모든 이들이 놀라움을 감추질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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