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4 2018 =========================================================================
#344
[부산에 사는 김정일님의 질문이네요. 테일러 노우웰과는 어떤 사이인가요? 언론에서도 자주 비춰지고 사람들이 찍은 사진들 속에서도 같이 있는 게 많이 비춰졌는데, 혹시 연인관계인가요? 라는 질문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도 굉장히 궁금하네요. 개인적으로 그리고 소속사 대표로서 말이죠.]
첫날 사고를 쳐서일까, 아니면 10만 명이 뿜어내는 기세에 어느 정도 적응해서일까. 이틀 후 열린 팬 미팅은 첫날 보다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테일러는 정말 친한 친구고요. 제 마음속에 있는 고민들을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지만... 연인 간의 그런 관계는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건 테일로도 마찬가질 일거고요. 심지어 저한테 남자친구로 이런, 이런 사람 어떤 것 같냐고 자꾸 물어본다니까요?]
뭐, 팬들이 적어놓은 질문들이 상당부분 중복된 것들이라는 점이 큰 몫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드라마 같은 첫 만남 허무한 결말. 다시 쓰는 이 소설의 엔딩. 그 상황에서 너는 그녀에게 소홀히 하면 안됐어. 그녀가 눈물 흘리게 하면 안 돼. 그게 맞아. 네가 나를 떠나 횡단보도 너머로 사라지는 그 장면은 말이 안 돼. 다시 써야 돼.”
그렇게 이틀 전 팬 미팅 때와 같이 정규 5집에 수록될 예정인 노래를 끝으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팬 미팅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네가 괜찮다고 한다면 이 소설의 엔딩을 다시 쓰고 싶어. 한 권 뿐인 내 사랑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네가 있어야 하니까.”
노래가 담고 있는 감성이 그와 유사한 멜로디와 가사를 통해 뿜어져 나왔는지라, 팬 미팅의 마지막을 맞이한 팬들을 더욱 아쉽게 만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이 마지막 팬 미팅은 아니니까, 그것으로 일단 만족하기로 했다.
“이틀 동안 진행됐던 팬 미팅. 그 마지막 곡으로 들려드렸던 곡은, 언제인지 정확히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앞으로 나올 정규 5집에 수록될 곡입니다. 제목은 다시 쓰는 이 소설의 엔딩인데... 마음에 드셨나요?”
뭐, 당장 이틀 뒤에 콘서트가 있어서이기도 하고 말이다.
“오늘 먼 곳에서 찾아와준 팬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Thank you, ありがとう, 谢谢, Gracias, Merci, Danke, Grazie, Obligado, благодарю Вас!”
그나저나, 인터넷이 아주 난리가 났다던데. 하아. 괜히 나댔나?
*
[강지혁 단독 팬 미팅! 팬들의 아쉬움과 호평 속에서 마무리 돼! 10만 명에 달하는...... 정규 1집 앨범의 그녀로 잘 알려진 첫사랑 그녀 후, 연애를 한 적이 있다는 발언으로 인해 큰 화제를 불러 모았으며...... 미스터 지의 풋티지 영상에 대한 호평과 당초 미스터 지가 제주도와 서울에서 시사회 및 프로모션 일정을 가질 예정이었다는 강지혁의 말에, 어째서 한국에서는 미스터 지가 상영되지 않은 것인가에 대한 팬들의 의문이 다시금...... 한편 강지혁은 이틀 뒤에 있을 단독 콘서트 준비에 한창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후 꿈 콘서트에도 참가할 것으로......]
10만 명 규모의 단일 팬 미팅이라는, 일찍이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거대한 행사에 대한민국은 들썩이다 못해 난리가 난 상태였다.
[헐... 강지혁 연애 하고 있었네. 지렸다.]
[누굴까? 누구인지는 팬 미팅에서 말 안했음?]
[그냥 사귄 적 있었고 헤어진 지 수년 됐다고 했음. 솔로 된 지 꽤 됐다고 하면서.]
[근데 누굴까? 진짜 궁금하다.]
[난 그것보다 왜 헤어졌는지가 궁금하다. 강지혁이 뭐가 부족해서 헤어졌을까?]
[강지혁이 헤어지자고 했겠지. 여자 쪽에서 먼저 헤어지자고 했겠음? 강지혁이 뭐가 부족해서? 돈? 명예? 능력? 다 가진 남자가 강지혁임. 심지어 애호박...]
[아니, 근데 도대체 미스터 지는 왜 한국에서만 개봉 안하는 거임? 제주도 로케까지 돌았다는데! 시사회랑 프로모션 일정도 있었다는 데 왜 개봉 안하는 거냐고!]
[하아... 풋티지 영상 보고 왔는데, 현자 타임 왔음. 진심 재밌음. 엄청 박진감 넘치고 말 그대로 리얼임. 리얼.]
[인정. 특히 펜 들고 나이프 든 상대방이랑 싸울 때 숨도 못 쉬었음. 장난 아님.]
강지혁의 팬 미팅을 다녀온 총 20만 명의 눈과 귀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한 듯, 이내 SNS 상으로 관련 내용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지혁 팬 미팅의 오프라인 반응이 온라인 상 반응에 비해 덜한 것은 아니었다.
[고양시! 때 아닌 외국인 관광객들 방문에 함박웃음! 삼일 전 그리고 어제 있었던 강지혁 팬 미팅 그리고 내일과 글피 있을 강지혁 단독 콘서트 참가를 위해 고양시를 방문한 외국인만 10만 명이 넘어! 조기 개장한 호텔 백제의 한옥 게스트 하우스 전 객실이 일주일가량 만석을 기록한 가운데, 외국인 관광객들 대부분이 고양시에 머무르며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러 모아! 고양시 측 曰 “한류월드가 새로운 관광테마단지로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신을 얻은 만큼...... 이번에 호평을 받은 각종 문화행사를 바탕으로 한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 당연한, 가장 한국적인 테마단지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을......]
일개 가수의 팬 미팅 행사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그 긍정적인 효과를 직접적으로 받게 된 고양시뿐만 아니라, 가깝게는 서울 멀게는 대한민국 전역이 말이다.
[와... 이거 아레나 지을 때 경제효과가 10조 넘는다고 그러길래, 뭐 흔하디흔한 부풀리기 인줄 알았는데... 이거 진짜 그 정도 되는 거 아님?]
[근데 이번에 강지혁 팬 미팅 가면서 느낀 게, 그럴 만도 할 것 같음. 가면 일단 주차문제 걱정 없고 지상은 전부 차 없는 공간이어서 애들 데려가기도 편함. 쇼핑몰에 영화관에 식당에 전시회, 박물관 뭐 없는 거 빼고 다 있다고 보면 됨.]
[그리고 한옥 게스트가 신의 한수인 듯. 진짜 한복 입고 가도 될 것 같음. 거기 직원들 전부 한복 입고 있고 컨벤션 센터랑 거리 상점 직원들도 전부 한복 입고 있음. 심지어 아레나 안 쪽 매장들에서도 한복 입고 있는 사람들 많음.]
[그거 시설 임대한 사람들한테 한복입고 영업하면 임대료 혜택이랑 재계약 우선권 줘서 그럴 듯. 그런데 그게 진짜 신의 한수임. 분위기 자체가 진짜 좋음.]
그렇게 팬 미팅, 단독 콘서트를 보기 위해 예매에 성공한 외국인들이 혼자 올 리가 만무할진데, 그 관광객들을 가까운 서울 그리고 경기도 지역에 뺐기지 않고 한류월드에 잡아두는 데 성공했다는 점 등이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각종 역사 관광지들이 산재한 서울에 관광객들을 뺏기지 않았다는 점이 그리고 일개 가수의 영향력이 이렇게나 대단함에 감탄을 그치지 않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강지혁의 단독 팬 미팅의 엄청난 영향력이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놀라게 또는 감탄을 하게끔 만들지는 않았다.
어느 사람의 뛰어남이 자신의 상식 선 이상을 넘어가게 될 경우 열등감과 함께 시기, 시샘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 가진 본능이었으니까.
물론 누군가는 열등감과 시기, 시샘이 아닌 분노를 강렬히 토해내고 있었지만 말이다.
*
[강지혁 단독 팬 미팅, 단독 콘서트, 프리티 스타 단독 콘서트, 꿈 콘서트에 이어 골든 디스크 시상식까지! 완공되자마자 막대한 경제 효과를 가져 오는 꿈 아레나! 고양시의 효자 랜드마크가 되다! 그런데 이런 상승세를 바탕으로 할리우드 팝 가수들까지 꿈 아레나에? 1998년 영국 런던 UCL에서 결성된 Alternative 록 밴드로서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팬들을 지닌 Hot play 그리고 Thrash 메탈계의 4대 거장에 손꼽히고 있으며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밴드로 평가받고 있는 Metalist가 1월 아시아 투어의 개최지로 꿈 아레나를 선택했으며, 현재 꿈 아레나 측과 구체적인 일정 협의 과정에 있다는......]
신문지의 일면에, 그것도 연예지가 아닌 일반 일간지의 일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꿈 아레나와 관련된 소식에 중년인의 얼굴이 차마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찌푸려졌다.
그리고 이는 중년인의 분노가 겉으로 표출됨을 드러내는 사전 징조가 되었다.
[쾅!]
따라서 중년인의 그런 모습에서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 사내의 입이 필사적으로 무엇인가를 내뱉기 시작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무래도 10만 명이나 되는 수용인원과 세계 2위의 음악 시장인 일본과 가장 많은 인구수를 지닌 중국 등, 두 나라 모두에게 가깝다는 점. 그리고...”
자신의 전임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제는 모르지 않았으니까. 자신조차 모르는 자신과
관계된 사안들을 훤히 꿰뚫고 있는 이가 바로 눈앞의 사내임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사내는 자신이 무엇이라도 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이번 팬 미팅에서 아시아 전역의 팬들이 꿈 아레나를 찾았다는 선행사례까지... 할리우드 스타들이 꿈 아레나를 찾는 게 바로 이 점 때문이라는...”
[쾅!]
“내가 지금 그딴 분석이나 듣자고 너를 부른 줄 알아?”
“죄, 죄송합니다.”
비록 그것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함을 모르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중년인이 시킨 일의 내용이 그다지 깨끗하지 않음을, 그 스케일이 엄청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고 또한 중년인의 배후에 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됨에 따라 사내는 후회했다. 그리고 원망했다. 이런 흙탕물에,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제 스스로 발을 담궈버린 자신의 행동을.
“나가! 당장 나가!”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복잡한 감정들을 묻어둔 채 사내는 서둘러 움직여야만 했다. 이렇게라도 해야 자신이 살 수 있을 테니까. 굽신거리며 잘못을 비는 것, 날아오는 담배 재떨이를 피하지 않고 맞아내는 것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으니까.
*
“삼촌...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 진심이야.”
제 아무리 단독 콘서트라고 할지라도 혼자서 모든 공연 타임을 채울 수는 없었다. 한두 시간도 아니고 다섯 시간이나 되는 공연 타임동안 혼자서 노래와 토크로 이를 감당하려 한다면 해당 가수의 목은 그날 내로 망가져 버릴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친분이 있는 가수들에게 이번 공연의 초대 가수 자리를 부탁할 수는 없었다.
“삼촌한테는 자세히 설명해줬잖아. 내가 어떤 상황에 빠져있는지.”
나의 콘서트에 일조한 대가로 해당 가수가 어떤 보복을 당할지를 걱정해야할 정도로 내가 처한 상황의 배후는 더러운 이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이번 단독 콘서트의 초대 가수는 JS ENTERTAINMENT 그리고 포이보스에서 전담하기로 했다.
초대 가수를 구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사안일진데, 해당 가수에게 가해질지 모르는 보복까지 고려한다면 그 대상자는 한배를 탄 이들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괜히 나랑 같이 한다는 인식이 박히면 삼촌한테도 그리고 애들한테도 피해가 갈 수 있어. 그러니까, 이만 돌아가 삼촌.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녀석들과 소석준 삼촌의 모습에서 이 전제조건이 무너져버렸다.
“지혁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우리 애들도 하고 싶다고 해서 온 거니까. 응?”
이 바보 같은 삼촌과 녀석들이 굳이 가시밭길을 재촉하려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혹시 우리 애들이 부족해서 그러냐?”
“삼촌! 그런 얘기가 아니라는 거 알잖아!”
잘 알아듣게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말이 안 통하는 삼촌의 말에 끝내 언성을 높이고야 말았다.
이런 게 예의 없는 행동이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삼촌의 결정을 돌려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내 들려오는 삼촌의 목소리와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들이 내 입술을 꽉 다물게 만들어버렸다. 언성을 높여서라도 결정을 번복케 하려고 했던 내 의도를 모조리 분쇄하면서 말이다.
“우리 애들 첫 콘서트 참가가 지혁이 네 제주도 콘서트 때라는 거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시간 참 빠르지? 애들도 이제 7년차야. 12년 10월에 데뷔했으니까.”
도대체 세상에 이런 바보들이 또 어디 있을까.
“물론 애들이 노력하고 잘 따라와 줘서 최고 걸 그룹도 돼보고 그런 것이겠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 지혁이 네 공로가 가장 크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어.”
“삼촌...”
“애들도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대충 상황은 알고 있어. 그런데도 네 공연 게스트에 서겠다고 한 거야. 그러니까, 애들 걱정이 네 거절의 이유라면 거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우리 애들이 네 콘서트 게스트로 나서기에 부족해서 그런 거라면 이해하겠지만.”
아니, 저렇게까지 말하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하아.
굳이 가시밭길을 사서 걷겠다는 삼촌이나 이를 말리지 않고 덩달아 뒤따라온 녀석들을 보니 한숨부터 흘러나왔다. 진짜 이 바보들이. 하아.
“지혁아!”
“어, 어? 삼촌이 여긴 어떻게...?”
그런데 ‘세상에 이런 바보들이 또 어디 있을까’ 싶었던 생각은 섣부른 판단인 듯 했다.
“공연 하루 전날인데 오늘 하루 가지고 될까 모르겠네? 스케줄 조정해서 오긴 왔는데 말이야.”
“네?”
“그래도 삼촌 오늘 엄청 열심히 할 테니까. 걱정 말고. 지혁이 너 알지? 삼촌이 사람들한테 어떻게 불리는 지?”
생각 외로 세상에는 바보 같은 이들이 많다는 점 그리고 내 주위에는 특히 많다는 점을 정작 나는 그동안 깨닫지 못한 듯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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