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3 2018 =========================================================================
#343
“한때 내 모든 것이었던 네게 줄 수 있는 말. 많이 사랑했어. 행복해야 돼. 부디.”
최대수용인원 10만 명.
실내아레나로는 세계에서 가장 넓다는 말을 처음 이 공사를 확정하게 되었을 때부터 숱하게 들었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이 거대하고 웅장한 아레나에서 1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눈에 받게 된 지금 이 모든 게 헛된 예상임을 절실히 깨닫고 말았지만 말이다.
“안녕하세요!”
[와와와아!]
[강지혁! 강지혁!]
[갓지혁! 갓지혁!]
[오빠!]
“배우로서 오늘 이 자리에서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첫 시작을 노래로 하게 됐네요.”
[괜찮아요!]
[갓지혁!]
그동안 팬 미팅 행사를 한 번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1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 하는 팬 미팅은 난생 처음인지라 떨려오는 목소리를 애써 억누른 채 나를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을 마주보았다.
“방금 전 곡은 이번해 상반기에 갑작스럽게 발표하게 된 음원 곡 ‘중얼중얼’입니다. 괜찮았나요?”
[갓지혁! 갓지혁!]
그렇게 1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주는 위압감이 생각보다 대단했는지라 방금 전 노래가 아니었다면, 노래가 주는 긴장 완화 효과가 크지 않았다면 꽤나 큰 실수를 했을 거라 자평하면서 12월의 팬 미팅은 시작되었다.
“이게 한국에서도 알려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이번 미스터 지에 캐스팅 된 것은 제가 아닌 다른 배우였어요. 물론 그때는 미스터 지가 미스터 지로 불리지도 않았을 때고요.”
“아하! 그렇다면?”
“해당 배우가 촬영 중 심각한 부상을 입어서 중도에 하차하게 됐고 제작진 측에서 오디션을 봤던 배우들 가운데 몇몇 배우들에게 다시금 캐스팅 제안을 했는데 그 중 저만 하겠다고 했다 그러더라고요.”
팬 미팅뿐만 아니라 내 단독 콘서트 그리고 나아가 꿈 콘서트의 진행을 도맡게 된 민재 삼촌의 도움으로 10만 명의 인파가 쏟아내는 기세가 어느덧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사실 이번 팬 미팅의 준비된 콘텐츠들 대부분이 내 주도로 결정된 만큼, 앞으로의 식순이야 머릿속에 똑똑히 박혀있었지만 민재 삼촌의 진행이 아니었다면 이를 풀어내는 데 꽤나 애를 썼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데 말이죠. 사실 그렇게 원래 배우가 큰 부상을 당해 영화 제작에서 중도 하차할 정도의 상황이 전에 있었다면 아무리 그 배역에 큰 욕심이 있었더라도 선뜻, 그 배역을 맡겠다고 하기 힘들었을 것 같거든요? 더군다나, 제작일정도 굉장히 급박한 상태였고요. 그런 상황에서 지혁 씨는 어떻게 그렇게 단숨에 그 배역을 맡겠다고 결정하신 건가요?”
“일단 너무 하고 싶었어요. 미스터 지의 캐릭터를요.”
그나저나 다행이었다. 관객들 또한 민재 삼촌과 나의 단순 토크를 꽤나 흥미진진하게 바라봐주는 것 같았으니까.
“처음 이 대본을 받게 되었을 때가 코난의 생일 때였어요. 코난의 생일 파티 때 코난의 주선으로 미스터 지의 감독인 다이그 리넨만 감독을 소개받았고 그때 오디션 용 대본을 받았었죠.”
“그렇다면 그때부터?”
“아니요. 바로 그 때부터 끌렸던 것은 아니고요. 어느 날 무심코 그 대본을 집에서 슬쩍 봤는데, 두 눈을 뗄 수가 없겠더라고요.”
“아하!”
당초 가수로서 이 자리에 서서 팬 미팅을 했다면 비교적 수월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수월했을 것이다.
앞선 팬 미팅 첫 시작에서 나를 기죽이게 만들었던 10만 관중들의 기세를 노래 한번으로 날려버렸던 것처럼, 지금 이 자리가 가수로서 팬들을 만나는 자리였다면 노래와 함께 수많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재 삼촌과의 토크가 주된 콘텐츠인 이번 팬 미팅이 걱정되었었다. 나야 속에 있는 얘기들을 편하게 털어놓는 것으로 족할 테지만, 정작 이 자리의 또 다른 주인공인 팬들이 이를 재미있어할까 싶은 걱정들이 불쑥불쑥 나를 찾아왔으니 말이다.
“그동안 배우로서의 저는 작가님을 통해서 오디션을 거치지 않고 단번에 배역을 따냈던 그런 배우였는데요. 그게 알게 모르게 저의 배우로서의 콤플렉스로 작용했었어요. 오디션을 통해서, 연기력 하나만으로 배역을 쟁취하는 그런 배우가 아니라 그저 낙하산으로 배역을 편하게 따내는... 그런 게 조금 아니 많이 부끄러웠었거든요.”
“여러분 저도 지혁씨 옆에서 지켜 볼 때면 지혁 씨가 알게 모르게 이 부분에 대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스스로를 많이 부끄럽게 여기더라고요. 이 정도까지 부끄러워해야하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미스터 지의 대본을 받게 되었을 때 그 콤플렉스를 깨부수고 싶어졌어요. 어떻게든 이 배역을 따내야겠다. 오디션을 무조건 합격해야겠다. 영어 대사든, 액션 연기든 모조리 씹어 먹어주겠다. 이런 식으로요.”
“여러분 정말 장난 아니었다니까요? 애가 시간만 나면 목각인형을 두드리고 있질 않나, 정규 4집 활동해야 하는데 칼리 아르니스? 이름도 생소한 걸 배워야 한다질 않나. 이러다가 지혁 씨 죽는 건 아닐까 싶었다니까요?”
“뭐... 그렇게 하긴 했는데... 결과적으로 오디션에서는 떨어지고 말았지만요.”
조금의 웅성거림도 10만 명이 동시에 웅성거린다면 무척이나 큰 소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나와 삼촌의 대화가 이어질 때면 쥐 죽은 듯이 이를 듣고 있다, 중요한 포인트가 나올 때면 나지막이 탄성을 터트리는 팬들의 모습을 보며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래도 후회는 별로 안 되더라고요. 그 정도로 정말 열심히 노력했고 실패해도 성공해도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 시간과 땀 그리고 열정을 쏟아 부었으니까요.”
팬들은 나의 대단한 모습을 원하는 게 아니라고. 그저 언론에 공개된 어떤 행보에 관한 속 얘기뿐만 아니라 나의 평상시 생각들과 같이 사소한 것들만으로도 매우 만족한다는 것을 말이다.
*
민재 삼촌과 영화와 관련된 얘기를 나누다, 이번 미스터 지의 풋티지 영상을 다 같이 관람하게 되었다.
[대박...]
[지렸다...]
[와... 영화 꼭 보고 싶다. 진짜.]
[한국에서는 개봉안하나? 지금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미스터 지 제작진이 이번 한국 팬 미팅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기존 프로모션 행사 때 선보였던 풋티지 영상에 플러스 10분 정도의 분량을 더한 이번 영상을 보니 제작진의 세심한 배려가 곳곳에 보였다.
자막뿐만 아니라, 한국 팬들을 위한 다이그 리넨만 감독의 영상 그리고 심지어 동료 배우들의 짤막한 인사말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영상 말미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에 한국에서 미스터 지가 개봉되었다면 저뿐만 아니라 감독님과 동료 배우들까지 한국에 방문할 예정이었어요. 서울이랑 그리고 아마 제주도가 로케 촬영지에 포함되어서 제주도에서도 프로모션 행사랑 시사회를 열었을 거고요.”
[와... 제주도랑 서울에서 시사회랑 프로모션 했으면 대박이었겠다.]
[아니, 도대체 왜 개봉을 안 하는 거야? 다른 나라면 몰라도 한국에서는 무조건 개봉해야지!]
그래서 팬들의 관심과 호응이 그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이었다.
“풋티지 영상의 메인에 해당되는 저 격투신이 이번 영화의 3대 액션신이에요. 다르게 말하면 가장 위험한 액션 신 톱 3안에 드는 것일 테니까요.”
“아! 그렇다면 혹시?”
“네, 제가 볼펜을 잡고 상대가 나이프를 잡은 상태에서 액션 연기를 펼치는 저 장면에서, 본래의 배우가 굉장히 큰 부상을 입었었고요. 저 또한 심하지는 않지만 조금 부상을 당하기도 했어요.”
“이런!”
[어머! 어떡해!]
[근데, 부상당할 만하다. 진짜 박진감 넘치네. 와... 괜히 액션 영화의 신기원을 열었다, 그런 얘기하는 게 아니네...]
풋티지 영상을 다 같이 보고나서 간단히 그 영상에 대한 에피소드를 풀어놓는 과정에서 관객들 모두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고 이는 내 자신을 굉장히 뿌듯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한참동안 풋티지 영상과 관련된 토크를 민재 삼촌과 나누며 관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제주도 서귀포시에 사시는... 어휴, 엄청 먼데서 오셨네요.”
“우와! 제주도에서 와주셨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뭐, 그러다보니 이번 팬 미팅에서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코너의 순서가 어느새 훌쩍 다가와 있었다.
사실 그동안의 토크는 나와 삼촌간의 양방향 소통일 뿐이었다. 비록 그 목적이 팬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한 토크라고는 해도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팬들의 직접적인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 따로 있었다.
“제주도에서 와주신 분의 질문을 뽑게돼서 정말 기분이 좋네요. 멀리서 오신만큼 궁금증 꼭 풀어 가시길 바랍니다. 아셨죠? 뭐, 지혁 씨한테 무조건 성심성의껏, 솔직하게 질문에 답하라고 압박 주는 건 절대 아닙니다?”
이곳 아레나에 입장할 때 개인당 하나의 질문지를 건넸고 시작하기 직전 관련 스태프들의 도움아래 이를 한데 모아 무대 한편의 거대한 항아리에 담아두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과연 팬들이 내게 궁금해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팬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궁금증에 가득 차 있었는지라 잔뜩 설레는 마음으로 질문지를 뽑은 삼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제주도 서귀포시에 사시는 김지영 양의 질문이네요. 오빠! 오빠는 연애 안 해요? 첫 사랑이랑 헤어지고 나서 연애에는 아예 관심이 없어진 건가요? 아니면... 혹시 연애를 하고 있는데 비밀 연애만 한다는 주의인가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제법 센 질문이 나왔는지라, 이를 뽑은 삼촌 또한 잠깐이나마 곤란한 기색을 얼굴에 드러내보였다.
“이거, 이거 소속사 대표로서 저도 무척이나 궁금하네요.”
뭐, 이내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점에서 금세 표정관리를 했지만.
물론 아이돌처럼, 나의 연애와 관련된 얘기가 대중들에게 공개된다는 점 때문에 삼촌이 그런 표정을 지었을 리는 만무했다.
삼촌의 저런 표정은 나를 걱정하는 마음 또한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추첨함 조작 가능한 건가요? 일부러 저 질문 뽑은 것 같은데...”
그래서 넉살스럽게 삼촌에게 장난치듯 말을 걸었다. 삼촌이 걱정하는 것과 달리, 이제는 관련된 구체적인 사실까진 아니어도, 내가 연애를 했다는 사실 자체에 기분이 다운되거나 감정의 북받침을 감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사실 저도 남자이고 한창 때의 남자인 만큼 연애를 당연히 하고 싶죠. 그것도 엄청.”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강지혁?”
“하하...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쉴 새 없이 벌어져서요. 정규 앨범 활동에 드라마 활동 그리고 영화 활동까지 연달아 하다 보니, 실제로 제가 쉴 틈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많지가 않아요. 국내에서의 활동이 끝나면 해외 활동이 시작되고 또 반대로 해외 활동이 끝날 때 쯤 되면 약간의 휴식 뒤에 다음 활동을 준비해왔으니까요.”
삼촌 또한 그런 나의 속내까진 아니더라도, 내 의도 정도는 파악한 듯, 그런 내 장난 끼에 맞춰 넉살스럽게 대화를 진행시켜나가기 시작했다.
“첫 사랑 분과 헤어지고 나서 지금까지 연애 한번 안 해봤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에에에?]
[헐...]
뭐, 그렇다곤 해도 내가 이런 발언까지 할 줄은 몰랐을 테지만 말이다.
“지혁아?”
“어? 우리 소속사 대표님 엄청 당황하신 것 같은데요?”
잘 넘어가는 듯하다가, 폭탄 하나를 터트린 나로 인해 삼촌이 진행하는 것도 까먹을 정도로 당황해하는 사이 관중석을 가득 메운 팬들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했다.
[설마?]
[뭐야, 뭐야. 연애했다는 거야?]
[헐, 대박!]
“첫 사랑 후에 사귄 여자 분이 있었는데요. 아쉽게도 그분과도 헤어지게 되어서 지금은 몇 년 째 솔로랍니다? 답변에 만족하시나요? 제주도에 사는 김지영 양?”
그런 모든 웅성거림과 당혹스러움 그리고 놀람을 극에 달하게 만든 이어진 나의 말에 장내는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첫사랑 이후의 분과는 이미 헤어진 상태고 수년 째 솔로라는 사실보다는 내가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 연애를 했다는 사실에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듯 했으니 말이다.
“삼촌? 삼촌? 어? 이거 어떡하죠? 여러분? 저희 삼촌이 지금 기절한 것 같은데요?”
그렇게 팬 미팅 첫날 나는 화려하게 사고를 쳐버렸다. 그것도 소속사 대표님 앞에서 그리고 10만 명에 달하는 팬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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