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2 2018 =========================================================================
#342
“정말이요? 정말이죠?”
“대박! 진짜 대박이다!”
우여곡절 많았던 녹음을 끝마치고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던 이들에게 들려온 소식에 소녀들의 표정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12월 27일, 28일, 29일 고양시 한류월드 꿈 아레나에서 10만 명 규모로 3차례 단독 콘서트를 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쉽게도 여러분의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 활동은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종료될 것입니다.”
물론 단독 콘서트를 열게 될 것임을 모르지는 않았다. 프로젝트 그룹 프리티 스타 자체가 대중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걸 그룹인 만큼 그 마지막을 콘서트로 장식하는 것은 애당초 프로그램의 기획단계에서부터 확정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꿈 아레나는 완공된 지 얼마 안 된 공연장이지만, 세계최대규모의 실내 아레나답게 10만 명이나 되는 수용인원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관계자분들과 저희 제작진들이 여러분의 마지막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선물인 만큼, 여러분들과 팬 여러분들 모두에게 좋은 기억과 추억으로 남을 공연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그 단독 콘서트가 8천명 규모의 장충 체육관이 아닌 10만 명 규모의, 요즘 한창 핫한 꿈 아레나에서 개최될 줄은 여기 있는 이들 모두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는지라 소녀들은 좀처럼 흥분을 감추질 못했다.
“대박! 꿈 아레나면 거기잖아! 강지혁!”
“강지혁이 이번에 단독 콘서트랑 팬 미팅 하는데 아니야? 10만 명이나 들어갈 수 있는 공연장!”
“꿈 콘서트? 그것도 연말에 한다던데! 대박이다!”
“10만 명? 우와... 10만 명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데 10만 명이나 되는 좌석이 꽉 찰까요? 혹시나... 텅 비어있으면...”
“걱정마! 팬들이 우릴 꼭 찾아와 줄거야! 우리 홍보하자! 홍보!”
“그래 홍보하자! 동생라인! SNS 부대 출동!
그리고 이는,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때문에 요즘 들어 하루 중 대부분을 어두운 표정으로, 슬픈 표정으로 보내고 있는 소녀들의 밝은 모습이었기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제작진들의 표정까지도 밝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번 주는 정규 활동과 더불어 공연 준비에 돌입하게 될 것이고 다음 주부터 약 이주일 동안은 오로지 공연 준비에만 몰두하게 될 것입니다. 방송 3사 가요대전 일정이 단독 콘서트 직전에 포진한 만큼 여러분들이 실제로 단독 콘서트를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음을 유념해주시길......”
“봐봐! 언니! 단독 콘서트인데 6시간 동안이나 하는데?”
“우와! 정말이네? 그럼 우리 앨범에 있는 곡들 다 불러줄 수 있겠다!”
“프로젝트 데뷔에서 했던 무대들도 직접 보여줄 수 있겠다!”
“동생 라인으로 부족해요! 언니 라인도 홍보 SNS 출동! HURRY UP!”
이미 제작진들을 대변해 단독 콘서트와 관련된 사안을 전달하던 이준식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소녀들은 어느새 제각기 모여 공연의 구성을 스스로 짜고 있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단독 콘서트의 마지막 곡은 ‘봄비가 내릴 때면’과 ‘여우비’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내 실내에 울려 퍼진 이준식의 말로 인해 이 같은 상황은 단숨에 반전되고 말았다. 그 정도로 이준식의 말이 담고 있는 내용은 소녀들에게 그리고 지켜보고 있던 제작진들에게도 쉽사리 넘길 수 없는 무엇인가를 가득 담고 있었으니까.
“봄비가 내릴 때면 그리고 여우비는 지난 1년간의 프리티 스타 멤버로서의, 프로젝트 데뷔 촬영을 포함하게 된다면 총 2년 동안 여러분이 보고 겪었고 느꼈을 모든 것들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곡들인 만큼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막상 마지막이 다가오게 되자 소녀들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여우비를 녹음했을 때 겪었던 슬픔으로 인해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시크릿 심사위원이 그녀들에게 선물한 두 곡 모두가 정말 소녀들 자신들을 위한 곡임을. ‘봄비가 내릴 때면’을 선물 받았을, 아직 프리티 스타가 결성되지 않았을 때는 그 곡에 담긴 감성의 10분지 1도 알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소녀들은 알게 모르게 이 두곡을 피하게 되었다.
지난 2년 동안의 시간들이 자신들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화려했고 또 아름다웠는지를 절실히 깨닫고 있는 요즘이기에, 가사를 떠올리기만 해도, 노래의 첫 마디 선율을 듣기만 해도 저절로 떠오르는 마지막과 이와 관련된 슬픔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금 전 이준식의 말에 소녀들은 그동안의 태도를 고수하지 않았다.
“네! 저희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네!”
“꼭 그렇게 해주세요!”
소녀들도 알았던 것이다. 곡 자체가 담고 있는 슬픔이, 그녀들의 지난 2년 동안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가사와 선율이, 소녀들의 마지막에 가장 잘 어울림을. 그리고 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녀들의 얘기를 이 두 노래들이 가장 선명하게 담고 있음을.
*
“상태가 왜 이래? 진짜 괜찮은 거야? 너 그러니까, 삼촌이 무리라고 단독 콘서트든 팬 미팅이든 하나만 하라고 했지? 1월 달에 골든 글로브랑 아카데미 시상식도 가야하는데! 우리 지혁이 멋진 얼굴 상하면 거기 애들이...”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 집무실로 들어선 내 모습에 삼촌의 조카바보짓이 또다시 발동이 걸려버렸다.
아니, 이 사람이 지금 심란해죽겠는데 자꾸!
“그런 거 아니야. 그만 좀 해. 이젠 진짜 시도 때도 없네. 어휴...”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지! 어, 어? 뭐? 그럼 뭔데.”
물론 규모 자체로만 보면 LA 저택과 한남동 부지는 비슷했다. 문제는 규모만 비슷하다는 게 중요했지만 말이다.
“말도 마. 엄청난 걸 보고 와서 그런 거니까. 하아... 나 좀 쉬어야겠다.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 커.”
아무래도 내가 한국 사람이다 보니 더 그런 듯 했다. 무슨 덕수궁보다 더 덕수궁 같은, 경복궁 보다 더 경복궁 같은 집을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위압감에 질려버렸으니까.
하아. 나도 모르겠다.
아레나에서 단독 콘서트 동선을 파악하고 콘텐츠들을 연구하고 또 어마어마한 ‘내 집’을 구경하는 등 하루에 너무 많은 일들을 겪었는지라 잠시 쉴 틈이 필요했다. 그래서 삼촌과 일 얘기를 나누기 전 저녁을 먹기 위해 구내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 카페에 있을게. 일 마무리하고 와!]
[그래. 삼촌 곧 갈 테니까, 뭐라도 마시고 있어. 우리 지혁이 맛있는 거 사줘야하니까, 삼촌이 일을 열심히 해야지. 암 그렇고 말고.]
[하아...]
카페인이 당기기도 했거니와 삼촌도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마무리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린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전혀 뜻밖의, 이게 반가운 건지 아니면 당황스러운 건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건지 모를 이를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냐?”
하지만 확실한 것은 생각보다 너무 자연스럽게 녀석에게 인사를 건네고 그 맞은편에 앉았다는 것이다. 내 자신이.
“연락을 끊었어도 만나면 아는 척 정도는 하자. 우리 사이에.”
녀석은 여전했다.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주변에서 접근하기 힘든 오라를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물론 지금 나를 보는 눈빛은 그보다 더한 차가움으로 무장해 있었지만 말이다.
“같이 드라마도 찍었고 베드신도 찍었는데, 아는 척 좀 해주세요. 저기요? 제 말 안 들리시나요?”
그래도 묵묵부답인 녀석의 차가운 눈동자 속에 일말의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다는 점이 느껴졌는지라 더 자연스럽게 그리고 능청스럽게 행동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는 왜 모른 척하고 지나갔는지 모를 내 행동들의 연장선상에서 꽤나 태연스러운 행동들이었다.
“지금 주변 사람들이 우리들 엄청 많이 보고 있는데. 나는 엄청 떠들고 있는데, 너는 본 척 만 척하면... 사람들이...”
“하아...”
결국 녀석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오자 나도 모르게 절로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겉을 차가움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고 연락이 끊겼던 지난 세월동안 이는 내게 꽤나 그리웠던 모습들이었으니까.
“독한 년.”
“뭐?”
“독하다고. 너.”
짐짓 투정부리듯 녀석에게 투덜거리게 되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녀석과 공개석상에서 언론과 대중들을 마주하게 됐을 때처럼 겉은 웃는 표정으로 입은 그와 상반된 얘기들을 담았던 그때처럼 말이다.
“유재연 만나러 왔나?”
“하아...”
“그런가보네. 야. 너무 싫은 티 내지마라. 상처 받으니까.”
어느새 오늘 하루 종일 알게 모르게 쌓였던 복잡한 생각들과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녀석의 여전히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고 있었지만 내 몸 안의 무엇인가가 강렬히 작용하여 이 같은 복잡함을 단숨에 분쇄시켜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기분도 이내 들려온 녀석의 말다운 말에 사그라들고 말았다.
“술 먹고 몇 번 문자 보낸 건 미안하다. 조금 힘든 일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그랬나봐. 뭐, 술 안 먹고 보냈을 때는 타지에서의 외로움 정도라고 생각해줘. 그래도 답장 한 번은 해주지 그랬냐. 욕이라도 좋으니까. 그랬으면,”
“너랑 나랑 무슨 사이인데?”
“어?”
“이런 거 조금... 과하다고 생각되지 않나? 우리 사이에?”
차디찬 눈빛이 그때만큼은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차가운 눈빛 속에 다른 사람들이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감정들을 담아내는 녀석이기에, 그 눈동자 속에서 제법 여러 감정들을 분간해낼 수 있다 자부하는 나조차도 그때만큼은 차가움 이외의 감정들을 발견할 수 없었으니까.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막는 게 네 마인드잖아. 안 그래?”
녀석의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시처럼 내게 박혔고 조금은 내 자신이 구차하다고 생각됐다.
“아니면 욕 안하고 발로 안차서 그런 건가?”
[싫으면 말해. 책임감 같은 거 없는 대신 그렇다고 네 발목 잡진 않을 테니까. 뭐, 나쁜 놈이라고 욕하고 발로 차도 상관없어.]
예전 녀석과 처음으로 관계를 가졌던 그날 밤 건넸던 말과 지금의 내 모습은 무척이나 모순되었고 지금의 내 행동이 녀석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임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해줘? 아! 유명 스타시니까, 그건 조금 곤란하시겠고. 그럼 잠깐만 따라오실래요? 그렇게 해드릴 테니까.”
그래서일까. 이내 가슴을 가득채운 민망함, 허탈함, 씁쓸함 등이 강렬한 반발심을 불러일으켰다.
“사귀는 사이면.”
“뭐?”
“그럼 독하다고 해도 되고, 전처럼 네 품속에서 울어도 되고 네 무릎... 베개 삼아서 누워도 되고, 그런 것들 전부다 해도 되는 건가? 연락 안 받으면 이렇게 투정부려도 되고?”
그렇게 순간적으로 튀어나와버린 말에 녀석의 두 눈이 차가움을 잃어버렸다. 나 또한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자각하지 못했고.
이내 우리 둘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채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뒤늦게 내가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깨달은 나조차도 좀처럼 이와 관련된 뒷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으니까.
*
“오랜만이네. 저번 시사회 때도 제대로 얼굴보기 힘들었으니까.”
“여, 여긴... 왜 언니랑...”
아무런 말없이 그저 흘러가는 시간만 느끼고 있던 나와 유지연을 구원해준 것은 유재연이었다. 나와 유지연이 같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보는 유재연을 뒤로 한 채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시간 보내라. 난 이만 간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이곳 카페에서 있었던 일들이, 너무나도 한 순간에 벌어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고 나 또한 제정신이 아닌 듯 했으니까.
도대체 마지막 그 말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귀는 사이면 그럼 독하다고 해도 되고, 전처럼 네 품속에서 울어도 되고 네 무릎... 베개 삼아서 누워도 되고, 그런 것들 전부다 해도 되는 건가? 연락 안 받으면 이렇게 투정부려도 되고?]
당혹스러웠다. 머리 필터를 거치지 않고 말이 흘러나와버렸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 말들이 담고 있는 내용 자체는 좀처럼 감당하기 힘든 내용들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좀처럼 답이 안 나왔다. 이런 경우는 보통 답이 안 나왔으니까.
아니 답이 있어도 내가 모른 척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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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P.S - 생각 외로 글이 안써져서요. 죄송합니다. 1편 누락된 것은 꼭 채워넣겠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