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39화 (339/502)

00339  2018  =========================================================================

#339

“봄비를 맞으며 내 마음도 복잡해져요. 계속 내려줘요. 이 비가 여우비일까, 두려워져요. 아직 부족해요. 금방 그칠 여우비란 걸 알지만, 그래도 계속 내리길 바라 흑흑... 죄, 죄송합니다.”

결국 자신이 담당한 파트의 마지막 가사를 끝내 내뱉지 못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벌써 세 차례나 반복된 현상에 녹음실 안의 분위기는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 활동인데다가 준비기간도 짧아 한 시가 아까울 상황일 진데, 좀처럼 녹음 작업이 진행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어느 누구하나 방금 전 실수의 주인공인 이지영을 탓하지 않았다. 이지영이 멤버들 가운데서 가장 실력이 뒤떨어지는 이여서, 예상 가능한 수순이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지영아 괜찮으니까... 그래, 계속할 수 있겠어? 아니면 조금 쉬다 할래?”

“죄, 죄송합니다. 흑흑... 조...금만 쉬다가 하면 안 될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음... 아무래도 민지 그리고 수정이는 아직... 힘들겠지? 울어서 목도 잠겼을 테니까. 그러니까, 언니라인부터 녹음해보자. 알겠지?”

이지영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렇게 자신이 담당한 파트의 녹음을 울먹임 때문에 마무리하지 못한 이가.

“언니라인에서 누구부터 해볼래? 새연이가 아니, 수진이가 랩 파트니까, 수진이부터 해볼래?”

“네? 저요?”

“왜? 수진이 너도 조금... 그렇니? 그럼 새연이부터 해볼,”

“아니에요. 제가 먼저 할게요. 선생님.”

이지영은 녹음 작업의 첫 번째 주자가 아니었다. 그녀에 앞서 주민지, 최수정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하나같이 방금 전 이지영과 똑같은 전철을 밝았는지라 새로울 게 없었던 것이다. 울먹거림 때문에 녹음을 마무리 짓지 못한 것이.

“자 선생님이 신호하면 두 마디 전이니까, 타이밍 맞춰서 수진이가 치고 들어가는 거야. 알겠지? 그럼... 자신감 있게. 알겠지?”

“네.”

곡 자체가 너무나도 슬펐다. 평범한 이들이 듣기에도 절로 감정이입이 될 정도로 노래 자체가 지닌 감성 자체가 선율에 흐르다 못해 넘쳐날 정도로 말이다.

따라서 마지막이라는 말을 애써 감추고 멀리하려 했던 소녀들에게 이 노래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노래 제목 말마따나, 지난 1년간의 활동이 대중들에게는 한 여름의 여우비처럼 잊혀질 것이라는 그리고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 등이 노래가사를 떠올릴 때면 절로 상기되고 말았으니까.

“이 비가 그칠 때, 내 눈가에 빗물이 흐르지 않을 때,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수많은 기억들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을...... 죄, 죄송합니다.”

그렇게 맏이이자, 평소 감정 표현이 거의 없어 무뚝뚝한 멤버로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던 임수진마저도 자신의 랩 파트를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하는 것으로 녹음 작업은 깊고 짙은 늪에 가라앉아 버렸다. 좀처럼 헤어 나오기 힘든 슬픔으로 가득 찬 그런 늪에 말이다.

*

[최대 수용인원 10만 명에 달하는 꿈 아레나 완공되다! 오늘 있었던 완공 식...... JS, DH, 포이보스 소속 아티스트들이 한데 모여 사인회를...... 3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꿈 아레나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증명......]

[미스터 지 최종 수익 4억 3천만 달러로 집계돼! 올 한해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톱 5 안에 드는 대성과를...... 북미 배급사이자 미스터 지의 제작사인 Universe 사의 후속편 제작 발표에 또다시 대중들의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단독 주연을 열연한 강지혁이 후속편에도 참가할 것인지에 관해......]

[프리티 스타 완전체 11월 20일 출격! WMCA에서 마지막이자 첫 정규 앨범 타이틀곡을 발표할 예정......]

생각보다 큰 행사가 되었던 완공 식을 무사히 치르고 개인적인 일까지 마무리하자, 12월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한 해는 정말이지 수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것도 기쁜 일, 슬픈 일 그리고 안타까웠던 일들이 복합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놀랄만한 일에 대해서 면역이 생긴 것은 아닌 듯 했다. 방금 전 듣게 된 민재 삼촌의 말에 지금까지 놀람과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게 말이 돼? 도대체...”

“이미 방송 3사 연말 시상식은 다른 곳에서 열리는 것으로 확정된 것 같아. 알아보니까, 작년이랑 똑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것 같더라고.”

“연기대상, 가요대전... 연예대상도? 아니 이게 말이 돼? 어제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 자체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완공식이 다가옴에 따라 방송 3사의 꿈 아레나에 대한 장소 섭외 경쟁이 꽤나 치열하다고 전해 들었고 이는 전혀 과장된 보고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12월이 되고 아레나에 대한 장소 섭외 계약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가던 중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 버렸다.

“계약금에 위약금까지 지불한 방송사도 있어. 그러니까,”

“아니 이게 말이 되냐고! 그럼 우린 당장 어떡해? 방송 3사 스케줄 맞춰서 일정 빼놓고 그랬는데, 이제 와서... 순번 뽑아놓고 연기대상은 여기서, 가요대전은 저기서 이렇게 자기들끼리 입씨름까지 해놓고서!”

완공되는 해에 나름 대중들에게 화려하게 데뷔인사를 선보일 예정이었던 꿈 아레나가 졸지에 할 일 없이 쓸쓸히 자리만 지키고 있게 생겼으니 말이다.

“이거 아무래도... 맞지? 삼촌? 내가 생각하는 거?”

“흠...”

“맞잖아! 그렇지? 내가 생각하는 거 맞지? 어? 말 좀 해봐 삼촌!”

기분이 진짜 더러웠다. 이런 갑작스럽고도 뜬금없는 일이 결코 우연히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 배후가 절로 짐작이 갔으니까.

“일단 관리사님이 상황 알아보고 있다니까, 조금 기다려보자. 동혁 형이랑 민재도 따로 알아보고 삼촌도 조금 더 알아볼 테니까.”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겉으로 표출한 나와 달리 삼촌은 그저 기다려보자며 나를 다독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모습에서 확신을 얻게 되었다. 내가 짐작하고 있는 이들이 배후가 아니라면, 삼촌 또한 나와 크게 다르지 않게 반응했을 테니까.

“됐어. 방송 3사니 시상식이니 그런 것 없어도 돼. 알아볼 필요 없다고 전해. 관리사님한테 그리고 동혁 삼촌이랑 민재 삼촌한테.”

“지혁아!”

어떻게 이런 일이 대한민국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안 갔다. 마냥 깨끗하고 상식적인 나라는 아님을 일찍이 깨닫고는 있었지만 이번 일은 좀처럼 쉬이 넘길 수 없을 정도로 비상식적인 상황이었으니까.

“방송 3사 연기대상이 31일이고 가요대전이 25일, 연예대상이 24일이라고 했지?”

“지혁아 너 무슨!”

“12월 마지막 주 콘서트 할 거야. 단독 콘서트.”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거린다. 비록 저들 또한 누군가의 입김에 손해를 감수하고 이런 선택을 한 것일 테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냥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자꾸만 나를 건드리는 저들에게 내가 마냥 가만히 있을 거라는 인식은 헛된 망상임을 알려주고 싶었으니까.

*

“지혁아, 고작해야 몇 달이야. 공연장 한두 달 빈다고 큰일 나는 거 아니다? 내부 임대매장들도 모두 계약된 상태고 사람들도 쇼핑몰이랑 영화관 덕분에 꾸준히 몰려들고 있어. 유동인구만 해도......”

민재 삼촌에게 콘서트를 하겠다고 말하기가 무섭게 삼촌들이 포이보스 뮤직 휴게실로 찾아왔다.

그렇게 한 자리에 모인 삼촌들이 꺼낸 말은 뻔했다.

“다른 걸 떠나서 너 새 영화한다면서. 그거 준비도 있고 이번 영화 후속편 계약 건도 있는데, 삼촌은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 이제 그렇게 가볍게 움직일 나이도, 위치도 아니야. 네가 책임져야할 게 가볍지 않다는 얘기야. 삼촌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물론 내 선택이 순간의 분노 때문에 비롯된 것이기에 무모한 면이 강하다는 삼촌들의 말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삼촌들의 판단대로 콘서트를 하겠다는 나의 결정은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 맞았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을 꺾고 싶지 않았다.

“연예대상, 연기대상, 가요대전에 맞춰서 지혁이 네가 단독 콘서트를 한다고 하면 분명 반응이 좋을 거다. 아마 100% 매진되겠지. 하지만 이건 동료 가수들, 배우들한테 실례가 될 수 있어. 더러운 짓을 한 쪽이 따로 있고 어쩔 수 없이 굴복한 쪽이 따로 있는데 정작 애먼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뜻이야.”

괜히 나의 콘서트 때문에 한해를 뜻 깊게 마무리하며 축제의 장이 되어야할 각종 시상식들이 빛바랠 수 있다는 동혁 삼촌의 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른 가수들은 연말 콘서트 안 해?”

“뭐?”

“크리스마스 콘서트, 연말 콘서트 같은 거 안하냐고.”

그래서 억지를 부렸다. 누가 봐도 억지라고 느껴질 그럴 억지를.

“나 그냥 다른 가수들처럼 평범하게 콘서트하려는 거야. 오랜만에 팬들한테 인사하고 싶어. 가수로서.”

“지혁아!”

물론 억지라고 해서 마냥 억지인 것은 아니었다. 나 또한 다른 가수들처럼 콘서트를 할 수 있는 것이고 나라고해서 크리스마스 시즌이나 연말에 콘서트를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뭐, 다른 가수들에 비해 나는 10만 명이나 되는 규모의 단독 콘서트를 개최할 생각이긴 했지만.

어쨌든 삼촌들이 그런 내 억지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이번 결정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거린다는 말을 여실히 드러내줄 선택일 테지만, 내가 전면에서 저들의 집중적인 포화를 받을 수도 있는 선택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자.”

지금껏 좀처럼 말을 아끼던 동혁 삼촌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온 것은.

*

“방송 3사 측에 압력을, 아니 권고를 했고...... 정상적으로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방안 히터바람이 그다지 강하지 않음에도 기립한 상태로 보고를 하는 이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한가득 맺혀 있었다.

심지어 사내는 그런 땀방울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앉아 있는 중년 사내의 심기에 모든 관심을 쏟을 뿐.

“좋군. 좋아.”

그런 사내의 마음에 하늘이 탄복해서일까. 이내 들려온 중년인의 목소리에 사내의 입에서 작지만 짙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일처리가 꽤 깔끔한데?”

“감사합니다.”

사내는 원래 이렇게 중년사내를 직접적으로 마주볼 만한 위치에 있던 이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문화재단의 인턴공고를 보고 지원하여 합격한, 말 그대로 복사용지나 정수기 물이나 갈아 끼던 인턴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기회는 사내가 예상하지 못한 때 찾아왔다. 지금 사내가 하고 있는 일을 전담하고 있던 것으로 추측되는 전임자들이 어디론가 사라졌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 자신이 눈앞 중년인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을 잘하면 그에 걸 맞는 당근이 주어져야겠지. 계좌확인해보도록.”

“가, 감사합니다.”

“내일부터 정직원이니 전담하도록 해. 일처리가 아주 마음에 드니까.”

“열심히 아니,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물론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가 마냥 행운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님을 사내 또한 모르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내용 자체가 그다지 좋지 못했고 일을 하다 보니, 이 재단자체가 가진 수상쩍은 부분이 꽤나 많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불안했다. 학력도 좋지 않아 그저 스펙 내용에 한 줄이라도 더해보려 이 재단의 인턴에 지원했을 진데, 하고 있는 일의 규모가 너무나도 어마어마했고 내용자체도 경천동지할 만한 것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나주에서 배 과수원을 하신다지?”

“예, 예? 그걸 어떡해, 아, 아니 그렇습니다. 대대로 과수원을 하고 있습니다...”

“여동생은 이번에 대학신입생이고.”

이어진 중년인의 흘려가는 말에 그렇게 사내는 빠져나올 수 없는 올가미에 걸려버렸음을 비로소 확신하게 되었다.

“여동생이 좋은 대학에 입학한 것도 그렇고 참 예쁘던데, 신경 꽤나 쓰이겠군.”

그리고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중년인의 눈빛을 사내는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 지독하고 깊은 늪과도 같은 사내의 두 눈동자를.

============================ 작품 후기 ============================

약속을 못지켜서 죄송합니다. 오늘 총 3편이 올라갈 예정입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 사실 요즘 글이 잘 안써집니다. 풀어내야할 스토리들은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있는데, 예전과 달리 줄거리, 인물들간의 상관관계 그리고 조사해야 될 것들이 꽤나 복잡해져서 글 한편을 쓰는데도 고민이 많아져서요.

고민을 많이 하고 수없이 썼다가 지우고 해도 독자분들의 마음에는 항상 부족할 제글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작가로서 살아가기로 한 만큼 이번 작품에서는 이런 것도 배우고 저런 것도 배우고, 다음 작품에서는 이런 점을 보완하고 더 부각시키고... 이렇게 되면 저도 유명하고 독자분들이 사랑해주는 작가가 될 수 있겠죠?

-연재 시간도 불안정하고 부족한 점이 많은 작가이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늘 제 작품 기다리셨던 분들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2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꿈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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