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7 2018 =========================================================================
#337
“자꾸만 자꾸만 가식적으로 말하지 마. 사랑하지도 않는데 자꾸만 자꾸만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 남자들은 다 똑같아. 그저 좋아하면 다 넘어오는 줄 알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야. 너는 정말 특별해. 자꾸만 자꾸만 거짓말 하지 마.”
연습실에서 하나가 된 소녀들의 움직임이 빛을 발했다.
“...... 정말로 내가 좋으면 정말로 내가 특별하면 자꾸만 자꾸만 자꾸만 자꾸만 말해줘.”
다만 그 무대에서 춤과 노래로 홀 내를 열광시킨 이들의 수가 6명이라는 점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감사합니다!”
자신이 작곡가로서 합류한 대신, 자신의 곡은 유닛 활동에만 써달라는 시크릿 심사위원의 조건에 따라 오늘 벽상예술대상의 축하무대에서도 소녀들은 지난 청용 영화제와 마찬가지로 두 부류로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개별 활동을 했던 소녀들의 얼굴은 마냥 밝지 못했다. 비록 프리티 스타로서의 데뷔곡인 ‘프리티 걸즈’를 무대에서 같이 부르게 됐지만, 그 무대에 앞서 정작 1위를 차지했던 프리티 스타의 히트 곡인 ‘Bad Man’, ‘자꾸만 자꾸만’의 무대에서는 씁쓸함을 애써 감추며 무대 밑에서 이를 그저 바라만 봐야 했으니까.
[피쉬앤칩스 최초 걸 그룹 나인 테일! 아쉬움 속에 미니앨범 2집 활동 마무리! 프로젝트 데뷔 시즌 2의 프리티 스타 멤버인 김여정, 선우희가 합류했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해....... 반면에 프리티 스타의 6인조 그룹은 ‘Bad Man’과 ‘자꾸만 자꾸만’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대세 걸 그룹으로서......]
[프로젝트 데뷔 시즌 2의 프리티 스타 멤버 유지나가 중도 합류한 것으로 화제를 불러 모은 라즈베리의 미니 3집이 기대 이하의 성과를......]
[프로젝트 데뷔 시즌 2에 참가하기 위해 탈퇴했던 그룹 사파이어에 또다시 합류하여 활동하게 된 프리티 스타 멤버 정지연이...... 한편 사파이어의 정지연, 나인테일의 김여정, 선우희 그리고 라즈베리의 유지나는 오는 11월 중순부터 다시금 프리티 스타 완전체 멤버로 활약하게......]
개별 활동이라도 잘 풀렸다면 이런 씁쓸함이 보다 덜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질 못했다. 프로젝트 데뷔를 통해 만들어진 인지도를 무기 삼아 새로운 그룹의, 기존 그룹의 상승세를 만들어보려던 그녀들 소속사들의 의도는 말 그대로 실패하고 말았으니까.
“이번 정규 앨범은 또 어떤 곡으로 활동하게 될까?”
“어차피 새 곡이라고 해봤자 서너 곡이고 나머지 트랙은 프로젝트 데뷔 때 곡이랑 1분기, 2분기, 3분기 활동 곡으로 채워질 텐데 뭘.”
“그래도 그 신곡들 중에 한 곡은 시크릿 심사위원님이 또 만들어준다고 했잖아.”
“그건 그렇네. 뭘까? 이번에도 댄스일까? Bad Man이랑 자꾸만, 자꾸만도 댄스였으니까.”
그러다보니 상황이 역전된 것은 오래전 일이었다. 10인조 완전체 활동에 보다 간절함을 드러내던 프로젝트 데뷔 측이 3분기 활동을 4분기 활동의 중간 시기가 되어서야 끝마치는 바람에 완전체 활동을 하기로 했던 4분기 정규 앨범 활동이 한 달 보름을 앞두고서야 시작된 것만 봐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소녀들 사이에서도 알게 모르게 어색함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프리티 스타 유닛으로 활동했던 소녀들과 개인 활동을 했던 소녀들 모두 각자의 활동에서 경쟁을 하기도 했고 따로 지냈던 6개월의 시간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정규 활동에서도 1위 트로피 받았으면 좋겠다. 다 같이 완전체 활동이니까.”
“난 신인상.”
“맞아. 이번에 WMCA랑 KMA에서 하나라도 신인상 탔으면 좋겠다.”
“그래, 다 같이 열심히 해서 신인상도 타고 정규 앨범 1등도 하자!”
아마 그래서였던 것 같다. 리더인 임수진이 따로 떨어져있었던 과거의 일들이 아닌, 앞으로의 일들을 모두에게 언급한 것은.
그런 임수진의 의도를 알아차린 그룹 내 언니들 라인이 서둘러 화제를 돌리자, 그나마 프리티 스타 내에 있던 갈라짐이 완화될 수 있었다. 정지연, 유지나, 선우희, 김여정 모두 개별 활동을 했다 뿐이지,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멤버들과 곧잘 어울렸고 무엇보다 모두 모난 구석이 없는 소녀들이었으니까.
“언니, 그러니까요...... 엄청 웃기지 않아요?”
그렇게 한층 부드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소녀들은 자신들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개별 활동을 하다 돌아온 소녀들의 짐을 나눠들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러게. 어, 어?”
선두에서 앞장서서 가던 임수진의 입에서 의문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언니? 왜요? 어?”
그러자 뒤따라오던 소녀들의 시선 또한 자연스레 임수진의 눈이 바라보는 곳을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내 임수진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반응들을 내보였다.
“왜들 그래요? 왜 그래? 헉...”
늦가을의 쌀쌀한 날씨임에도 너무나도 가벼운 반바지 그리고 마스크와 모자를 쓰는 것도 모자라 후드를 깊게 눌러 쓴 사내. 누가 봐도 이상한 옷차림의 사내가 자신들이 타야할 엘리베이터 안에 있다는 사실에 소녀들 모두의 눈빛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숫자로는 자신들이 많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컸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들의 불안한 마음이 현실이 된 듯, 사내가 자신이 내릴 층수도 누르지 않고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다는 점 그리고 자신들이 내리자마자 덩달아 같이 내리려 했기 때문이다.
“여, 여기까지 쫒아 오시면 아, 안돼요!”
그래서 리더이자 맏이인 임수진이 멤버들 앞에 서서 수상한 사람에게 소리쳤다. 같은 층수에 사는 사람이 적어 이 방법이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주기적으로 순찰을 도는 경비원과 관리자 그리고 자신들의 숫자에 사내가 겁먹길 바라면서.
“맞아요. 사, 사인해드릴 테니까 그만 쫒아오세요!”
“우리 매니저님한테 이를 거에요! 사인해드릴 테니까, 그만 쫒아오세요!”
그렇게 임수진의 용기에 힘입어 다른 멤버들 또한 덩달아 소리를 지르며 사내를 노려보았다. 사내의 두 손에 들려있는 봉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애당초 이곳은 출입부터가 신원이 보증되어야지 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깜빡한 채.
*
“무슨 일이십니까?”
“저기, 저 아저씨가 자꾸 쫒아와서요.”
꽤나 익숙한 얼굴의 등장에 한숨을 놓을 수가 있었다. 내 앞길을 막고 있는 일단의 무리들로부터 나의 신분을 증명시켜줄 인물이 바로 눈앞에 있는 이였으니까.
“고층 부 컨시어지 서비스 담당 이현아라고 합니다. 혹시 몇 층에 거주하시는 지 알 수 있을 까요?”
어쨌든 상황을 빨리 해결하고 집에 가고 싶었는지라 담당 직원을 잠시 구석으로 데려가 얼굴을 보여주려 했다.
지금은 프로젝트 데뷔 소녀들을 위해 잠시 빌려준 곳에 살았었을 때, 곧잘 보곤 했던 담당 직원이기에 내 얼굴쯤은, 아니 내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 돼요!”
그런데 시작도 전에 실패하고 말았다.
“담당 언니 따로 데려가서 어쩌려고요!”
“언니 가지 말아요!”
“우, 우리가 사람 수 더 많거든요! 그, 그러니까 따라오지 말아요!”
쓸데없이 철저한 무리들로 인해 말이다.
거 참 교육 한 번 잘 시켰네. 아니 따라오지 말래서 그냥 가려고 하는데 왜 막고 있는 거야? 나 원 참.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엘리베이터 한 번 잘못 탔다고 이런 드라마를 찍고 있는 상황이 너무 우습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아. 괜히 소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고 차림새가 후줄근하다보니 창피해서 정체를 밝히기 싫었는데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다보니 어쩔 수가 없게 돼버렸다.
“오랜만에 뵙네요. 위층으로 옮긴 뒤에는 볼 일이 없었는데, 아직까지 여기 맡고 계시나 봐요.”
그렇게 차마 떨어지지 않는 마스크를 벗고 컨시어지 서비스 담당자를 바라보았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수도 안하고 머리도 안 감은 상태에서.
하아. 세상은 썩었어.
*
“금방 온다더니, 왜 이렇게 늦게 와?”
“하하...”
“사람들한테는 안 들켰고? 하긴 눈곱도 안 떼놓고 갔는데 들켜봤자 몰라 봤겠다.”
하아. 사람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연달아 아픈 곳을 콕콕 찌르는 삼촌을 무시한 채, 오늘 일의 원흉인 봉지들을 작은 엄마가 있는 부엌의 식탁위에 올려다 두었다.
그래도 소득이 영 없는 건 아니었다. 방금 전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일단의 무리들이 내 집에 거주중인 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어쩐지 묘하게 익숙했다. 얼굴이나 목소리들이.
솔직히 내가 엘리베이터를 잘못 타지만 않았더라도 적어도 이 건물 안에서는 마주칠 일이 없었을 텐데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 것일까?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곡 만들어 보내줬더니, 정작 그 걸 그룹이 나를 물 먹인 것은, 아니 사생 팬 또는 치한으로 몰다니. 분했다.
나의 곡으로 기대에 어울리는 활약을 해 선물이라도 하나씩 사다줘야 하나 싶었는데 말이다.
복수하고 싶다. 내게 이런 수모를 주다니.
그렇게 분노에 치를 떨다, 맛있는 밥을 먹고 동생들과 놀아주다가 삼촌과 같이 아레나로 향했다. 원래 동생들도 같이 데려갈까 싶었는데, 배부르게 먹고 실컷 뛰어놀다보니 아레나로 갈 때쯤엔 모두 곤히 자고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뭐, 기회야 이번뿐이 아니니까.
“우와...”
한 시간 정도 차로 달린 끝에 아레나가 있는 한류월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진으로만 보던 아레나를 눈앞에 둔 나는 여지없이 탄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미 내부 시설도 완비됐고 임대매장들도 준비 완료 했다더라. 영화관부터 시작해서 카페, 쇼핑몰까지 뭐, 너무 많아서......”
크기도 크기였지만, 너무 멋졌다. 지금껏 내가 본 그 어떤 아레나나 경기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튜브? 보트 모양이라서 조금 이상할 줄 알았는데 보는 사람들마다 멋있다고 하더라. 기사들 댓글에서도 찬양일색이고.”
공사를 진행하는 와중에 설계가 조금씩 변경되어서 감이 잘 안 왔었는데 직접 눈으로 바라보니 가슴속에 차있던 기대감이 충족되는 듯한 개운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지상 8개 층, 지하 8개 층으로 보다 크고 넓은 구조를 가졌다는 점과 더불어 지하층은 GTX 한류월드 역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교통까지 편리하다고 하니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이곳을 찾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마냥 감탄에 빠져있을 수가 없었다.
이내 들려온 삼촌의 말이 그 모든 감명 깊은 순간들을 철저히 깨 부셔버렸으니까.
“뭐, 몇몇 사람들은 애호박 닮았다고...”
[콜록콜록]
하아.
*
“꿈 콘서트라고 한해에 한 번씩 연례행사로 여는 거에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감탄과 충격을 동시에 안겨다준 아레나 견학을 끝마치고 강남의 한정식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아. 애호박이라니. 애호박이라니!
“한 해에 한 번씩 청소년들 대상으로 콘서트 열자는 거지? DH, JS, 포이보스 이렇게 해서?”
지난 시사회 때 얼굴을 마주하긴 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이렇게 자리를 갖는 게 꽤나 오랜만인 만큼 동혁 삼촌과 민재 삼촌의 얼굴 또한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뭐, 그런 삼촌들의 모습에 재성 삼촌의 입이 한 댓 발이나 나왔다는 게 이해가 안 갔지만.
“네, DH, JS, 포이보스 이렇게 고정적으로 해두고 플러스 알파 식으로 청소년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가수들 인터넷 투표 식으로 해서 추가 게스트로 섭외하고요.”
어쨌든 이 자리가 며칠 뒤에 있을 아레나 완공 식에 앞서 앞으로 아레나를 어떻게 운영할 건지에 대해 다시금 정리하는 자리 인만큼 내가 구상한 것들을 삼촌들에게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솔직히 수익은 별로 안날 것 같아요. 청소년들 대상이기도 하고 그래서 시설 대관 비 정도만 뽑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거든요... 아레나 이름이 꿈이기도 하고 콘서트 이름도 꿈이니까, 저소득층 애들도 부담 없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겠지. 해봤자 만원도 안 넘는 선에서 해야겠네. 지혁이 네 의도라면.”
아무래도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 보니, 보고는 주기적으로 받고 있었지만 정작 내 얘기를 삼촌들에게 건넬 기회가 적어 이번 기회에 모두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흠... 괜찮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10대 애들이 K 팝에서 차지하는 부분도 있고 미래 소비자들을 미리 끌어들일 수도 있을 것 같고.”
“주기적으로 하면 괜찮을 것 같다. 너무 자주는 말고 네 말대로 일 년에 한번씩.”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 계획이 수익적인 측면에서 꽤나 문제가 있었음에도 삼촌들이 긍정적으로 이를 바라봐 주었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수익이 전혀 나지 않을 계획을 건의 사항이랍시고 가져온 나 자신이 조금 염치없게 느껴질 정도였는지라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았던 이 자리에 뜻밖의 말을 듣게 되어 자연스레 반문하고 말았다.
“그래, 어차피 한동안 10만 명 규모로 공연할 사람 없을 텐데. 마냥 아레나를 놀릴 수는 없지?”
“네?”
이제 완공을 하게 되면 아레나의 당초 목적에 맞게 활발히 문화, 예술 공연을 진행해야 할 텐데, 방금 전 동혁 삼촌의 말은 그런 내 기대에 찬물을 뿌리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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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밥 먹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