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4 2018 =========================================================================
#334
[오늘은 아주 반가운 손님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하하하!]
무대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듣자니, 예전 기억들이 떠올랐다.
[지금 여러분들 모두 시큰둥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데요. 잠시 후 반가운 손님이 누군지 밝혀졌을 때도 그런 표정일지 두고 보죠.]
그때는 혼자가 아니었다. 재성 삼촌이 대기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마이식스 멤버들이 대기실에서 나와 함께였으니까.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코난의 목소리는 여전했고 그의 유쾌한 진행 또한 여전했지만, 지금의 나는 혼자이고 가수가 아닌 배우로서 이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 자그마한 차이가 생각 외로 꽤나 크게 느껴졌다.
배우로서 이 자리에 있게 될 줄이야.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을 마주했다는 점에서 감회가 남달랐다.
솔직히 관객 수가 몇 명이고 수익이 얼마인지는 첫 주 3일 동안 제작비를 회수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주연이자 아시아인 배우로서 최소한의 내 역할은 다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보다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내가 흘린 땀방울과 시간들 그리고 경험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들이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졌고 말이다.
[자! 날 찬양해라! 내가 해냈다. 해냈어! 자! 소개합니다! 오늘의 게스트인! 요즘 전 세계 수많은 방송사들에게서 섭외 요청을 미친 듯이 받고 있는 배우입니다! 자 나와주시죠!]
무슨 소개를 저렇게 거창하게 하는지. 나 원 참.
이내 세트장 위로 올라가라는 스태프들의 손짓과 코난의 소개말에 상념을 그만두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안 그랬다가는 저 입에서 도대체 어떤 말들이 계속 흘러나올지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 개봉하고 난 후 처음으로 출연한 방송이 바로 그 유명한 코난 쇼라는 게 사실입니까?]
그래도 한번 나와 봤다고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가벼웠다. 일단 코난과 사적으로도 막역한 사이라는 점에서 마음을 푹 놓을 수 있었고 나 또한 그동안의 경험들이 헛되이 되지는 않았는지 토크를 나누는 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으니까.
[잡지사, 일간지 인터뷰는 꽤 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카메라를 통해 여러분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은 처음입니다. 처음.]
[오호라! 그럼 수많은 방송사들의 섭외 요청을 뿌리치고 코난 쇼에 출연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네? 뿌리치지는 않았는데요? 저기요? 저기 제 말 듣고 계시는 거죠?]
[하하하!]
[하하하!]
덕분에 토크쇼의 재미를 살릴 수 있어서 모두가 즐거운 상태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여기 계시는 분이 꽤 유명한 분이라고 하셔서요. 그거 믿고 출연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어휴, 이제야 제 말이 들리시나보네요.]
[역시! 코난 쇼는 요즘 배우로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미스터 지에게도 통하는 게 있나봅니다. 하하하하!]
나름 코난과 서로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 관객들 입장에서는 꽤나 즐거운 콘텐츠로 느껴진 것 같았고 그런 그들의 반응을 받다보니 나 또한 더욱 편하게 토크쇼에 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꿈만 같고 너무 좋아요. 많은 분들이 제 연기를 사랑해준다는 점에서 배우로서는 더더욱.]
더욱이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끄집어내준 코난의 진행 실력까지 더해졌으니 오죽할까.
[제가 사실은 이번 미스터 지 이전에도 배우로서 활동을 해왔었습니다. 아시아 외 지역에서는 이 같은 사실을 잘 모르시지만요. 그래서 그때의 경험들이 이번 작품에 임할 때의 마음가짐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가짐에 있어서 도움이 되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음... 동양인 배우가 주인공인 할리우드 영화가 한 해에 많아봤자 다섯 손가락도 넘지 않아서 부담이 컸어요. 제가 잘해내지 못하면 저의 경우가 또 다른 동양인 배우들에게 벽이 될까봐서요.]
어쨌든 그래서 속에 있는 얘기를 마음껏 털어놓았던 것 같다. 굳이 숨기려면 숨길 수 있는 얘기들이지만, 적어도 코난의 토크쇼에서는 있는 그대로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라든지 어떤 마음으로 미스터 지 촬영에 임했는지에 대해 솔직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 정도로 정말 열심히 했고 이번 영화의 흥행 상관없이 후회는 안 할 것 같았거든요.]
다만, 그런 얘기들을 털어놓음에 토크 쇼 분위기 자체가 너무나도 무거워진 것 같아 조금 흠칫하긴 했다. 때마침 코난이 능숙하게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려줘서 다시금 편하게 토크쇼에 임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결말이 굉장히... 노골적으로 다음 후속편을 떠올리게끔 했거든요? 이에 대해서 혹시 해주실만한 얘기는?]
[후속편은... 제가 알기로는 4부작으로 알고 있는데요. 흥행 성적이 좋으면 하나, 하나 제작해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 잘 모르겠네요.]
그렇게 방송을 통해서는 처음으로 공개한 사안, 예를 들어 후속편에 대한 얘기들도 꺼내면서 나름 코난의 토크쇼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도 아니고, 코난은 내가 힘들었을 때나 잘 될 때나 항상 옆에서 조언을 해주는, 나이가 조금 많긴 하지만 친구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사람이었으니까.
뭐,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오늘 토크쇼에서 말할 생각이 없었던 얘기까지 꺼내게 되었다. 그것도 ‘미스터 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말이다.
“사실 이번 미스터 지 촬영이 마무리되기 한두 달 전에 대본을 받은 게 있어요.”
‘앞으로 연기자로서 어떤 활동을 하게 될 것 같으냐, 혹시 다음 작품은 어떤 장르를 생각하고 있느냐’는 코난의 질문에 딱 떠오르는 것이 한 개 뿐이었다. 뭔가 뭉뚱그려서 ‘어떤 연기자가 되어 어떤, 어떤 작품을 하고 싶다’라고 말하기엔 요즘 들어 내가 꽤나 신경 쓰고 있는 대본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올라버렸기 때문이다.
“제게 딱 알맞은 배역이 있다고 대본을 주셨는데, 요즘 그 대본을 살펴보고 있어요.”
“오호. 아직 영화가 개봉한지 2주도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또 다른 작품을 하려고 대본을 살피고 있다네요. 여기 미스터 지가 말이죠!”
뭐, 덕분에 코난은 꽤나 신난 듯 보였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제작진들이 시청률이 꽤나 높다는 사인을 지속적으로 보내주고 있던 터라 더욱 말이다.
“여기서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는 게 조금 그렇지만... 대본을 살펴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굉장히 매료되었어요. 스토리나 배역 하나, 하나에요. 그래서 지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편입니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인지, 어떤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지 말할 것도 아니기에 사실대로 털어놓아버렸다. 그 정도로 그 작품의 줄거리와 내게 제안된 배역이 마음에 들었거니와, 이를 말한다고 해서 딱히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
코난 쇼 촬영이 끝난 뒤, 코난과 간단히 술자리를 가졌다. 그래서 다음날 눈을 떠보니, 벌써 해가 중천이었다. 하아. 오늘 스케줄이 오후여서 망정이지, 너도 참.
그래도 다행인 건 술을 그다지 많이 마시지 않아 속이 쓰리다거나, 아린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뭐, 해장할 거리보단 그저 배를 채울 무엇인가를 찾게 되는 것을 보면 확실한 거겠지.
그래서 뭐 먹을 게 있나 싶어 자연스레 발걸음을 부엌으로 옮기게 되었다.
“어? 지수?”
그런데 뜻밖에 운이 좋게도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되었다.
뭐, 잘됐다 싶었다. 녀석 또한 때마침 밥을 먹으려는 듯 식탁에 앉아있었기에 혼자 밥을 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았으니까.
“지수 여기에 계속 있어도 되는 거야?”
“응, 오빠.”
“어, 어? 어... 그렇구나. 계속 있어도 되는 거구나. 그런 거구나.”
“응.”
그런데 지수야 너무 생각도 안하고 대답한 건 아니니? 너무나도 단호하게 대답하는 지수의 모습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나도 모르게 수긍해버렸다.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으시겠어?”
시사회 때 TRENDY 멤버들 모두를 초대했기에 지수가 이곳에 있는 것은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시사회가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이곳에 있는 지수가 걱정되었을 뿐.
물론 이 걱정이라는 것이 지수가 이곳에 있다는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수의 부모님이 해외에 홀로 나와 있는 지수를 걱정할까봐, 그것이 마음에 쓰였을 뿐이지만 말이다.
“PD님도 여기계시고 휴식기라 조금 쉬고 싶다고 말했더니, 엄마가 허락해줬어.”
그래도 부모님에게 허락도 받았고 회사 일 때문이라면 삼촌이 이곳 LA 저택에 있는 만큼 녀석 또한 나름의 조치는 취하고 이곳에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푹 놓였다.
뭐, 나야 이런 모든 것들이 해결되었다면 녀석이 이곳에 쭉 있어도 딱히 상관은 없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환영할 수 있었으니까.
“오빠가 스케줄 때문에 같이 있어주지도 못하고... 미안해서 어쩌지?”
그동안 아이 돌로서 바쁜 스케줄 때문에 몸도 축나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이곳에서나마 푹 쉬다 갔으면 하는 게 내 마음이었다.
뭐, 그래서 조금 미안하긴 했다.
스케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오빠가 되어서 동생이 왔는데 제대로 챙겨주는 것 하나 없이 녀석을 혼자 내버려둔 듯 해 적지 않게 마음이 쓰였기 때문이다.
“뭘 어떻게 해? 오빠는 오빠일 열심히 해. 난 나 때문에 오빠 일에 차질 생기는 거 싫어.”
“이제 다 컸네. 우리 동생.”
“세살차이면서... 진즉 다 컸거든? 나 이제 스물다섯이야.”
어휴. 얼굴도 예쁜데, 마음씨까지 착하네. 착해.
그래도 내가 신경 쓰일까봐, 서운할 텐데도 걱정하지 말라는 지수를 보니 마음이 훈훈해졌다.
하아. 진짜 지수 데려갈 놈은 각오하고 와라.
이렇게 예쁘고 착한 지수를 쉽게 데려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진짜 오해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수 눈에 눈물이라도 흘리게 했다간 그날이 ‘그놈’ 제삿날 일 테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오빠,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응?”
“물어봐도 돼?”
갑작스럽게 물어볼 게 있다는 녀석의 표정이 꽤나 진지해진 것은. 바꿔 말하면 정색할 때의 표정으로 바뀐 것은 말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다. 훈훈하기 그지없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이렇게 바뀐 것으로 보아 지수가 내게 건넬 질문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닌 듯 싶었으니까.
“아미가 유진.”
“어, 어?”
“여기 왔다 갔었어?”
어째서 지금 지수의 입에서 유진이가 흘러나오는 지, 도대체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반문하게 되었다.
아니, 아미가애들 시사회 보러 온 거 직접 봤을 텐데도 그걸 지금 왜 물어보는 거야? 그것도 저렇게 진지하게.
“왔다갔지. 이번에 아미가 멤버들 전부 시사회 초대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예상한 질문의 의도와 녀석이 의도한 질문의 뜻이 꽤나 다름을 이내 깨닫고야 말았다.
“아니, 그 이전에.”
“응?”
“시사회 전에 이곳에 온 적 있냐고. 아미가 유진.”
[콜록콜록]
도대체 저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순간 당황한 나머지 사레가 걸려버렸다.
물론 예전이었다면 그저 친한 동생이 미국에 와서 재워주고 맛있는 것도 먹였다고 말했으면 됐을 것이다. 이렇게 사례가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런데 유진 녀석의 고백을 받고 난 지금은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유진이 어째서 LA에 온 것인지 그리고 그때도 역시나 내게 적극적으로 다가온 유진의 모습이 아직도 꽤나 생생했기에 더욱.
“응 한번 왔다갔었어.”
“오빠랑 아미가 유진... 그냥 선후배 아니 오빠, 동생 사이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이런 게 바로 여동생의 오빠 방어 스킬인 것인가. 그래도 여자라고 유진과 나 사이의 무엇인가 오묘함을 방금 전 내 반응에서 유추한 것인지, 지수의 표정이 꽤나 어두워져 있어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고 말았다.
벌써부터 시누이 역할을 하려드는 녀석의 행동이 꽤나 귀여웠기 때문이다.
어휴, 우리 지수가 언제 이렇게 다 커서 오빠한테 이런 말도 하고. 진짜 다 컸네. 다 컸어. 그런데 어떡하냐, 지수야. 아직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는데?
“오빠, 내일은 쉰다고 했지?”
“으, 응? 응.”
“그럼 하루 종일 집에 있겠네?”
“아마도?”
“그래도 다행이다. 가기 전에 오빠랑 같이 시간 보낼 수 있어서. 오빠 많이 보고 싶었거든. 근데 괜히 나 때문에 오빠 일 하는데 신경 쓰일까봐. 아무 말 안했었는데... 다행이다... 그럼 내일은 나랑 같이 있어줘. 알겠지?”
“당연하지. 우리 지수.”
더욱이 내가 말하기 조금 곤란해 하는 것 같자, 더 이상 이를 깊게 캐묻지 않고 화제를 돌려 날 배려하기까지 했는지라 새삼 느껴졌다. 녀석이 이제는 마냥 내 앞에서 코 찔찔, 눈물 찔찔 흘리던 지수가 아니라는 것을.
하아. 참 잘 컸다. 잘 컸어.
============================ 작품 후기 ============================
에이스의주인총운검님 후원쿠폰 6 장 감사합니다.
요핫님 후원쿠폰 3 장 감사합니다.
후원쿠폰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편은 내일 점심부터 저녁 사이에 올리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부탁드려요! 추천 꾸욱!
원고료 쿠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