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2 2018 =========================================================================
#332
“야, 너무 꾸미고 온 거 아니냐?”
“뭐래.”
“아니, 츄리닝에 반팔 입고 온다더니...”
꽤나 들떠서일까. 개인방송을 짧게 마쳤음에도 잠을 이루지 못한 이영수의 안색에는 피로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복장은 꽤나 신경 쓴 티가 났고 이는 김학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근데... 팬들이 뭐라도 사가야 된다고 하던데...”
“당연한 거 아니냐?”
“어, 어? 진짜?”
“하아... 됐다. 말을 말자. 말을.”
그렇게 극과 극의 성격을 가진 것을 드러내듯 두 사람은 티격태격 거리며 공항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항 내부로 들어온 그들의 발걸음은 이내 멈춰지고 말았다.
“야, 근데 이거 짐 어떻게 해? 그냥 평소처럼 체크인하면서 짐 맡기면 되는 거야?”
일반 비행기도 아니고 전용기를 타고 간다는 사실 때문인지, 그들은 해외여행 경험이 제법 있었음에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지니고 있는 짐을 위탁 수화물로 맡겨야 할지, 아니면 게이트가 있는 면세구역까지 끌고 가야할지 그렇다면 소지품 검사 시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할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럴 줄 알고 형님이 다 준비했지. 잠깐만 기다려봐.”
“어? 누구 따로 기다려?”
“아! 승현이도 오늘 간다고 해서 같이 가자고 했어. 우리 아무것도 모르잖아.”
다행히 이런 상황을 미리 짐작한 듯한 김학진의 대처에 이영수는 걱정했던 마음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어? 형!”
“승현아!”
그리고 이런 그들의 마음을 안 것인지, 때마침 등장한 이의 목소리가 그들에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짐 놔두고 가자. 비행기에.”
“어? 우리가 직접? 그리고 아직 비행기 시간 멀었는데?”
“이미 준비완료 돼있을걸. 그리고 우리가 직접 가서 짐 놔둬도 돼. 화물칸이랑 연결돼 있거든. 뭐, 위탁 수화물로 맡겨도 되는데, 이게 더 마음 편하더라고. 나는.”
“아, 그래?”
“그럼 일단 가서 짐 놔두고 면세점에서 쇼핑하자. 어차피 나도 살 거 있고.”
이미 전용기를 타본 모양인지, 제법 능숙하게 자신들을 이끄는 정승현 덕에 이영수와 김학진은 비교적 마음 편히 출국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권수아! 네 짐 좀 화물칸에 넣어! 지나가질 못하겠잖아!”
“네가 치워! 그렇게 무거운 걸 연약하고 예쁜 내가 어떻게 들어?”
“이게 나보다 힘도 세면서! 그리고 너 자꾸 오빠한테 반말!”
“뭐래. 어, 어? 어머! 누구셔? 오빠 뒤에 있는?”
“뭐? 이제와 오빠? 이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어휴... 짐이나 빼 얼른!”
물론 자신들을 눈앞에 두고 티격태격 거리는, 정승현과 마찬가지로 꽤나 유명한 가수인 권수아의 등장에 잠시 허공을 바라보아야 했지만 말이다.
*
“가도 지혁 형 얼굴 보기 힘들걸. 민재 삼촌은 어제 출발했는데, 얼굴 보지도 못했데. 아직 뉴욕에서 건너오지도 않아서.”
“아, 그래? 그럼 이번에 아예 얼굴 못 볼 수도 있겠네?”
“그래도 시사회 끝나고 LA 집에서 파티 한다니까, 그때 볼 수 있지 않을까? 아! 형들 그거 알아? 지혁 형 LA집 엄청 넓음. 진심.”
“아! 나 방송에서 봤어.”
“에이, HOME ALONE 말하는 거지? 그때랑 또 달라졌어. 지금 집은 그때보다 열배는 커졌을 걸?”
“진짜? 거기서 더? 헐... 거기서 또 이사 간거야?”
“아니, 주변 집들 사서 넓혔나봐. 아무튼 대박이래. 나도 집 넓힌 후로는 처음 가보는 건데, 민재 삼촌 말로는 대박이라던데? 2만평이 넘는다나 뭐라나.”
“헐...”
그렇게 면세점에서 각자 지혁을 위한 선물을 산 뒤 그들은 비행기 내에서 수다 아닌 수다를 떨었다. 어차피 딱히 할 일도 없거니와 꽤나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만큼 할 말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런데 우리 잠깐 개인 방송 틀어도 돼?”
생각 외로 기내 분위기가 마냥 정숙하고 격식 있지 않았는지라 택진이 슬쩍 승현에게 개인방송과 관련된 얘기를 꺼내었다.
“너랑 다른 사람들 안 나오게 할게. 크게 시끄럽게도 안하고.”
평소 방송 활동을 꾸준히 하는 타입이 아닌 김학진이었기에 이런 질문은 꽤나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번 LA 행에서 아예 방송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이영수까지 옆에 있었으니 오죽할까.
“어? 개인 방송?”
“응, 그냥 팬들이 워낙 해달라고 성화여서. 안 되는 거면 어쩔 수 없는데, 여기 와이파이 된다고 그러더라고. 팬들이.”
“해도 상관없을 걸? 나는 상관없어. 근데 다른 사람들은 조금... 저기 소파 있는데서 찍어 형. 다른 사람들도 자기 모습만 안 나오면 상관없을 거야.”
뭐, 어쨌든 그런 질문이 꽤나 의외였을 지라도 이내 들려온 정승현의 말에 그는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좀처럼 방송 욕심이 없는 그였지만, 이렇게 전용기에 탄만큼 누구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 방송해도 된다고 해서요. 아쉽게도 제꺼 배터리가 별로 없어서 영수 방송으로 잠깐 켰습니다.”
이내 방송을 킨 김학진의 행동은 수많은 이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와! 방송 켜줬네! 대박!]
[헐... 지금 LA 가는 중이에요?]
[그런데 지금 어디에요? 게이트 앞?]
[소파 있는 걸로 봐선 게이트 앞일 듯.]
그런 관심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에 김학진의 눈과 입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당연했다.
“지금 저랑 영수는 전용기 안이고요. 지금은... 일본 상공이래요. 아! 여기는 저희 좌석이 아니고요. 소파랑 TV있는 쪽이에요. 아무래도 좌석 쪽에는 다른 분들도 있고 해서 여기에서 켰어요. 방송.”
[와... 전용기 안? 와이파이 빵빵하다던데, 대박이네!]
[비행기 안에 소파랑 TV가 있어. 지렸다. 지렸어.]
[게이트 앞인 줄 알았는데, 전용기 안이었음? 헐...]
그만큼 그들의 개인방송은, 요즘 한창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강지혁에 대한 일종의 내부정보와도 같았으니까.
“안녕하세요. 여러분. 가수 정승현입니다.”
“오늘 저랑 영수가 포이보스 뮤직 분들이랑 같이 이동하게 돼서요. 근데 승현아, 너 이거 나와도 돼?”
“어, 상관없어.”
이내 그들의 방송 상에 정승현이 깜짝 서프라이즈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방송의 시청자 수는 점차 그 속도를 더해가며 상승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어? 잠깐만요.”
“해산물 코스와 소고기 코스 두 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떤 걸 드시겠습니까?”
“아! 저는... 그러니까...”
때마침 등장하여 기내식과 관련된 질문을 건네는 승무원의 목소리까지 방송에 출연함에 따라, 자신이 해보지 못한,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생생히 방송을 통해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지켜보는 이들에게 더욱 큰 메리트로 다가갔으니 오죽할까.
“저도 여기에서 먹을 거고요. 저는 두 개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저기, 승현아. 기내식 두개 다 먹어도 되는 거야?”
“응. 두 개다 먹어도 돼. 뭐 먹을지 고민되면 그냥 두 개 다 시켜. 형.”
“그, 그럼 저도 두 개다 주세요. 영수 너는?”
“저도 두 개 다...”
“예, 알겠습니다. 곧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저희 밥 먹어야 돼서 방송 이만 할게요.”
[악! 안 돼!]
[우리도 알 권리가 있다! 기내식 뭐 나오는 지 알려줘!]
[방송 조금만 더 하면 안 돼요? 너무 아쉽다...]
“잠깐이라도 인사드렸으니까, 섭섭해 하지마세요. 아셨죠?”
그렇게 방송은 순조롭게 이어져갔다.
“그냥 먹방 해. 형들.”
“응?”
“지금 시청자도 많은데 그냥 먹방하면 되잖아.”
아예 기내식, 그것도 그냥 기내식이 아닌 전용기 기내식을 소개하는 것을 콘텐츠 삼아 방송을 진행하라는 승현의 말마따나 시청자들 또한 열성적으로 이에 호응했기 때문이다.
[역시학진님께서 별풍선 1293개를 선물하셨습니다.]
[공BLEE님께서 별풍선 321개를 선물하셨습니다.]
[폭군이영수님의 방송이 사바나 TV 핫꿀잼 방송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라이몬드님께서 별풍선 342개를 선물하셨습니다.]
“5, 5만 명?”
“뭐, 뭐야. 계속 올라가는데? 5만 5천명?”
“형! 지금 형 방송 6만 명 돌파했는데?”
그렇게 그날 그들은 최고 시청자수 13만 명을 찍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것도 1시간 남짓한 짧은 방송동안.
*
“여기가 저랑 영수가 같이 쓸 방이라네요. 짐 다 풀고 방송해도 된다고 해서 켰습니다.”
열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비행기를 탔음에도 김학진은 강지혁의 LA저택에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개인방송을 켰다.
“보시다시피 싱글 침대 두 개가 있고요. 저기는 욕실 그리고 이렇게 테라스가 있어서 창문 열고 나가면 바로 바다가 보이고요. 정원도 엄청 넓어요. 아! 영수야! 여기 집이 몇 평이랬지?”
“어? 2만평 이랬던가?”
같은 이유에서였다. 전용기를 타봤다는 점에서 개인 방송을 켰든, 지금 그들이 짐을 푼 이곳 저택을 통해 그는 꽤나 큰 감명을 받았고 전용기 때와 마찬가지로 이를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집이 거의 정원이라서 잘 안보이실 텐데 저기 보시면 헬기장도 있어요. 그리고 집 전체가 무슨 성처럼 담벼락으로 쭉 둘러싸여 있고요. 아! 그리고 경호원 분들이 입구랑 담벼락 주변에 순찰같은 거 하고 계시는 데 총 들고 있어요. 총.”
[헐... 지렸다. 무슨 집이 중세시대 서양 성 같네. 와...]
[강지혁 클라스 후덜덜하네.]
[경호원들이 총 들고 있다고? 역시 미국이네. 미국. 강지혁 클라스도 대박이다. 대박. 총 들고 있는 경호원에 성 같은 집에서 살고...]
결과적으로 그의 의도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비록 핸드폰 카메라로 대충 훑듯이 보여진 LA저택 광경이었지만 이는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어냈으니까.
“시사회 참석하려고 백 명 조금 넘게 여기로 온다던데, 아직 다 오진 않은 것 같아요. 50명? 그 정도 있는 것 같은데... 아무튼 다들 엄청 유명한 분들이세요. 그래서 여기 방 밖에서 방송 못 켜요.”
[누구, 누구?]
[누구 봤어요? 유명한 사람들 엄청 많이 갔다던데!]
“유명한 사람 누구누구 봤냐고요? 음... 아! 트렌디랑 아미가 봤어요!”
[와... 트렌디? 트렌디를 봤다고? 헐...]
[지금 학진이랑 영수 아미가랑 같은 공간에 있는 거임? 그것도 같은 집 안에? 지렸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지렸다. 아니 세 번.]
그런 반응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김학진의 얼굴엔 어느새 만족스러움이 가득 담긴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김학진의 마음이 꼴 보기 싫어서일까.
“여기에서 시사회 끝나고 파티 할 것 같아요. 아마 그때는 방송 못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요. 방송은 오늘 이거 하고 나중에 LA에서 유명한 맛 집 같은 데 가서, 아! 아니면 저기 산타모니카 해변? 저기 가서 야외 방송 한번 키는 걸로 할게요. 저희도 쉬러 왔으니까요.”
[와... 산타모니카 해변이 저렇게 잘 보여? 창문만 열었는데도? 대박이네 진짜...]
[님들 저런 집은 보통 얼마 함? 지렸다. 지렸어.]
[적어도 네가 평생 번 돈 한 푼 안 써도 못 살 정도로 비쌈.]
“저기 테이블들 보이시죠? 영화에서 보는 그런 파티 할 것 같아요. 지금 도우미 분들이 엄청 열심히 준비하고 계세요. 아까 살짝 물어보니까, 뷔페라던데 뭐, 뭐 나올까요?”
“야! 나 다 씻었어! 정원 구경하러 가자! 밥도 먹고!”
이내 샤워를 마치고 옷을 다 갈아입은 이영수의 재촉에 김학진은 만족스럽기 그지없던 개인 방송을 계속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아, 잠깐만! 여러분 지금 영수랑 같이 씻고 나서 밥 먹고 집 정원 구경하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방송 꺼야겠네요.”
“빨리!”
모두가 씻은 다음 저택을 구경하자고 말을 나누었기도 하거니와 애당초 이영수는 이번 LA 일정에서 개인방송을 할 마음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야! 지금 시청자 10만 명 넘었단 말이야!”
“안 오면 나 먼저 간다!”
“야! 잠깐만! 여러분 그럼 다음에 봐요.
그렇게 김학진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방송을 꺼야만 했다.
하지만 서둘러 방송을 끈 김학진도 그리고 그를 재촉한 이영수도 알지 못했다. 자신들이 개인 방송 시청자들에게 대충 보여준 테라스 밖 풍경이 지상파 방송을 타게 될 것이라고는.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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