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31화 (331/502)

00331  2018  =========================================================================

#331

“여행은 여행인데... 음... 이번에 지혁이가 시사회 NY랑 LA에서 이틀 걸러서 한다는 데, LA에서 하는 거 시사회 초대권 줘서요. 내일 가봐야 해요. 비행기가 내일 비행기라서.”

순간 채팅창은 마치 짠 것처럼 고요해져버렸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방금 전 매니저의 질문과 이영수의 답변으로 인해 발생해버린 것이다.

[지혁이가? 지혁이가? 반말하는 사이에요? 갓지혁이랑?]

[미, 미친! 강지혁 시사회?]

[강지혁이랑 아는 사이인 건 알았지만... 시사회라니!]

[지렸다, 지렸다, 지려버렸다리... 강지혁 시사회를? 이걸 갓지혁이?]

[지금 초대받은 연예인들 SNS에서 자랑질 지리던데... 폭군도 받았다니! 대박!]

[강지혁이 자기랑 친한 사람들 초대해서 그 사람들 스케줄 조정하고 난리 났다던데... 폭군도 그 범주에 들어가는 거임? 지렸다리. 지렸다리! 부럽다.]

하지만 꽤나 오래 방송했음에도 게임 말고는 좀처럼 능숙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던 그답게, 이영수는 그저 자기 할 말만 내뱉을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채팅창에 적힌 팬들의 채팅들을 읽으며 답변을 해주고 있었다.

“초대권 받은 분들 꽤 있다고 들었어요. 자기 전용기로 올 건지 그냥 비행기 표 티켓 받을 건지 선택하라고 해서 저는 전용기 타보고 싶다 했거든요. 뭐, 그것 때문에 시사회 4일 전에 출발해야 하지만.”

[전용기? 지렸다. 우와!]

[전에 모자란 녀석들 방송 보니까, 전용기에 와이파이랑 다 된다던데, 혹시 전용기에서 방송 가능?]

[와... 전용기?]

“아무래도 방송은 힘들 것 같은데요? 다른 분들도 있어서... 그냥 편히 쉬고 온다 생각하고 갔다 올게요. 뭐, LA에서 야외 방송할 수 있으면 한번쯤은 틀게요.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아! 학진이도 마찬가지일걸요. 다른 사람들 있어서 전용기 안에서는 힘들 거에요. 그래도 같이 방송 할 수 있음 할게요.”

물론 너무나도 빠르게 오르내리는 채팅창으로 인해 그의 답변은 주로 매니저와 열혈 팬들의 질문만을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지혁이가 LA 자기 집에서 자면 된다고 그냥 몸만 오라고 했는데요?”

[안 돼! 뭐라도 사가야지!]

[이거, 이거, 사회생활 안한 티낸다! 뭐라도 사가!]

[뭐라도 사가!]

[뭐라도 사가!]

“뭐라도 사가라고요? 몸만 오랬는데...”

[사가라니까!]

[아... 뭐라도 사가! 진짜 이 게임충이! 사회생활 안 해본 티 내냐!]

[비행기 표에 숙박에 시사회까지 초대해줬는데 음료수라도 사가라! 그런다고 진짜 음료수만 사갈 거는 아니겠지? 하아... 진짜 불안해죽겠다. 물가에 놀고 있는 애 보는 것 같아... 하아... 진짜 뭐라도 사가라... 진심.]

“아! 그럼 내일 면세점에서 지혁이 선물 사야겠어요. 그러니까, 아니, 진짜 몸만 오랬는데... 아, 알겠어요! 아무튼 오늘은 이만 나가세요. 저 시사회 때 입고 갈 옷 사야 돼서 학진이랑 쇼핑해야 돼요. 학진이도 오늘 방송 안 할 거에요. 얼른 나가세요. 저 나갑니다. 나가요?”

어쨌든 이영수는 그답게, 폭군다운 진행으로 방송을 꺼버렸다.

[아... 폭군 진행 지리네... 이렇게 끄면 남은 우린 어쩌라고...]

[폭탄 던지고 본인은 날랐네. 하아... 진짜 빠져나올 수 없다. 이 매력.]

[지렸다. 폭군이랑 학진이 LA에서 개인 방송 틀었는데, 강지혁 출연하면 개꿀. 인정?]

[강지혁 바빠서 그럴 일은 없을 듯. 그래도 강지혁 집이랑 뭐 그런 거 소개하고 시사회랑 LA 맛집 콘텐츠 같은 거 하면 재밌을 듯. 근데... 하아... 부럽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대형 폭탄을 남겨둔 채.

*

도대체 손안에 든 보고서를 어떻게 전달해야할지. 눈앞이 캄캄했는지라 사내는 차마 사장실의 문을 열, 아니 두드릴 엄두를 좀처럼 내지 못했다.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점에서 신임사장의 판단은 옳았다. 하지만 결국 신임사장은 뜻을 굽혀야만 했다. 그것도 일반 주주들, 이사들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닌 그룹의 적자 이진호 부회장에 의해.

[똑똑똑]

“들어오세요.”

이진호 부회장 아니, JJ 그룹과 강지혁의 관계는 한 때 최악으로 치달았지만 고양시 한류월드 사업을 계기로 그 후부터는 제법 긍정적인 관계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관계조차도 이번 상황에 있어 신임사장의 편이 되질 못했다. 그 정도로 차진수 감독이 가진 뒷배가 대단했고 강지혁은 이미 가시털이 박힌 존재였으니까.

“보고서인가요? 추석시즌?”

“예, 그렇습니다. 9월 첫째 주 관련 보고서입니다.”

어쨌든 그런 복잡한 사정보다 사내에게 있어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눈앞 신임사장이었다.

“하아...”

이진호 부회장에게 어떤 얘기들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본인의 뜻대로 배급을 강행할 경우 JJ E&M 뿐만 아니라 JJ그룹 자체에 사업적인 위험을 안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신임사장은 자신의 뜻을 접었었다.

하지만 사내는 불안했다. 신임사장을 안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가 본 눈앞 중년 여인의 방금 전 한숨으로 보건대, 아직까지 그녀는 결코 자신의 뜻을 완벽히 접지 않은 듯 했으니까.

하물며, 자사에서 100억이 넘는 거액을 투자한 라이터 팔이 소년이 속된 말로 역대 급 ‘폭망’의 조짐을 강하게 보이고 있었으니 오죽할까.

[100억이 넘는 제작비로 주목을 받았던 차진수 감독의 라이터 팔이 소년 혹평 잇따라! 개연성 없는 스토리, 제작비를 어디다 썼는지 모를 배우 캐스팅으로 막상 막을 올려보니 모든 게 다 엉망! 개봉 첫날 전국 1500여개 관에서 관객들의 기대를 모아 당일 역대 최다 오프닝 스코어인 44만 3293명의 기록을 세웠으나, 개봉 이틀째부터 관객 수가 현저히 줄어......]

“추석을 목표로 상영 계획을 세웠는데, 정작 추석이 오기도 전에 막을 내려야겠군요.”

이어진 신임사장의 힐난 섞인 눈빛에 사내는 아무런 말을 꺼내지 못했다. 물론 사내 또한 억울한 감이 없진 않았다. 신임사장과 같이 그와 이사들 또한 라이터 팔이 소년의 실패를 예견했었기 때문이다.

“개봉 첫 주 스코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죠?”

“개봉 첫 주 저희 측 800여 개관 타사 상영관 700여개 도합 1500여 개관에서 70만 명의 기록을 달성하여 첫 주 성과측면에서는 그다지 나쁘지 않습니다. 따라서 향후,”

“그 70만 스코어 중에서 60만이 개봉 둘째 날까지의 기록이고요?”

“그, 그렇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타의든 자의든, 그는 다른 이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뜻을 접어야했고 신임사장의 뜻에 반기를 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그저 고개를 조아린 채 신임사장의 눈을 마주볼 수가 없었다.

자신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중년여인에게 말이다.

“문 이사가 직접 검토해보도록 하세요. 최대한 빨리.”

그런데 그때였다. 신임사장의 목소리와 더불어 그의 앞으로 일련의 문서들이 들이밀어진 것은.

그래서 사내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중년 여인을 바라보았다. 아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신임사장의 지시와 더불어 그녀가 건넨 문서들이 담고 있는 내용들이 사내의 불길한 예감을 제대로 적중하는 듯 했으니까.

[강지혁의 미스터 지! 오늘 9월 7일 날 있었던 뉴욕에서의 시사회 행사에서도 호평들이 줄이어! 평소 강지혁과 친분이 두텁기로 유명한 코난 라쉬, 테일러 노우웰, 셰이크 함단빈 모하메드 랄 막품 두바이 5왕자가 시사회장을 방문해 자리를 빛내었으며, 속옷화보에서 인연을 맺은 칼리 켈로스 그리고 조르쟌 아르마, 돌체바나앤, 시넬, 구째 등 수년 간 강지혁의 협찬을 전담해오고 있는 브랜드의 관계자들 또한...... 특히 조르쟌 아르마 같은 경우 오너이자 창립자인 조르쟌 아르마가 직접 자리를 빛내......]

“특별 팀을 꾸려서 검토가 끝나는 대로 즉시 배급 계약 체결이 가능하도록 준비하세요. 인력 인선은 모두 문 이사에게 일임하겠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일의 진행과 구체적인 사항까지 모두 제게 직접 보고하도록 하세요.”

설상가상으로 특별 팀을 꾸려 배급 계약 준비를 하라는 사장의 말이 이어지자 사내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담기기 시작했다.

“사장님. 안됩니다. 지금 상황에서 저희가 이렇게 독자적으로 나서게 된다면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첫 주 마지막 날 관객 수가 3000명도 안되는데 800개 상영관을 계속해서 할당하라는 게 말이 됩니까? 경쟁사도 그렇고 우리 회사도 그렇고 여기에 상식적인 사람은 나만 있는 겁니까? 총 1500개가 넘는 상영관에서 하루 동안 3000명이 봤어요. 3천명! 상영관 하나 당 2명꼴이라 이겁니다!”

“사장님 그래도 이건 안 되는 겁니다! 반대로 말하면 경쟁사들 또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상영관을 유지하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미 ‘미스터 지’ 쪽에서는 한국에서는 상영계획이 없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사로서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체적인 윤곽이나마 파악하고 있는 그였기에 사내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격렬하게 신임사장의 지시에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 모든 것들이 소용없음을 사내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해야만 했다. 처음 자신에게 건넨 문서가 전부가 아니었는지, 똑똑히 보라는 듯 신임사장은 새로운 문서를 하나, 하나 자신에게 건네기 시작했으니까.

[한국인인 강지혁을 위한 제작사의 배려로 LA 시사회가 계획되었다? 강지혁의 아시아 지역 인맥들이 총출동할 것으로 알려진 LA 시사회에...... 외삼촌 박재성과 평소 삼촌, 조카 사이로 잘 알려진 유민재 포이보스 뮤직 대표, 양동혁 DH 엔터 대표... 후계자들에서 같이 출연한 또래 배우로서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해을, 신현, 양성준, 김유빈을 비롯해 김유빈의 연인 신현지...... 천손, 하늘의 자손에서 인연을 맺은 이진우, 김지현과 젠틀맨의 품위에서 인연을 맺은 장동진, 이은숙 작가, 감수로, 이준혁, 김인직 등...... ]

[마이식스, 빅토리, 트렌디, 아미가 등 가요계 인맥들 또한 스케줄 조정을 통해 LA 시사회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아름다운 누나의 김희연, 이미애, 월요일은 내가 요리사의 안승훈, 김정수와 더불어 셰프 군단 그리고 모자란 녀석들의 김태훈 PD, 유석준, 정순한, 이강현, 박수형, 하지운...... 하루세끼 팀의 김형식 PD와 이새진, 이관규, 차주훈, 유현중...... 솔직담백토크의 신동석, 허주웅, 성지경...... 문화사절단의 신연무 등을 비롯해...... 일본 배우 타카이 에이......]

“LA 시사회가 며칠 뒤 있다는 군요. 그때 문 이사가 직접 필요한 인력들 동원해서 미스터 지 제작사와 접촉해보도록 하세요.”

“사, 사장님!”

“강지혁이 가진 자존심도 있거니와, 그동안 국내에서 푸대접 당한 것이 앙금으로 남아있을 지도 모르니 최대한 저자세로 나가야 할 겁니다. 정 안되겠다 싶으면 유통 수수료를 통상수치보다 낮춰도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언론사들에게 접촉해서 최대한 강지혁의 면을 세워주는 쪽으로......”

그래서 사내는 최후의 병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 무기의 위력과는 상관없이, 신임사장이 그 무기에 대해 꽤나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그래서 이를 사용하는 자신에게 불이익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사장님 안 됩니다! 이진호 부회장님 아니 회장님 또한 이를 결코 원치 않으실 겁니다. 아시다시피 이번 일은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님을 사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상황은 그런 무기를 썼음에도 결코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작년에 비해 설 시즌 매출 430%감소, 상반기 전체 매출 130%감소. 안 그래도 성과가 바닥인데, 추석 시즌까지 이렇게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겁니까? 이런 식으로 상황이 계속되면 이번 해 매출은 전년 대비 십 분지 일도 되지 않을 텐데, 경영자로서 가만히 있으란 말인가요?”

“영화 산업 자체가 타 업종에 비해 매출의 안정성이 뒤떨어지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이런 손실들은 저희 측뿐만 아니라 타사 또한 모두 감내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작년 대비 올해 매출이 극도로 감소한 것은 작년에 천만 영화가 저희 측 제작, 배급으로 세 편이나 등장했고 이것이 설 시즌과 추석시즌을 제대로 관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해에도 그런 영화가 필요한 겁니다. 작년에는 세편이나 천만을 돌파했는데, 이번에는 아직까지 한 편도 없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보유한 스크린이 몇 개고 투자한 금액이 얼만데?”

“사장님 그렇지만,”

“이번에는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없습니다. 가서 즉시 준비하도록 하세요. 동시 개봉은 힘들겠지만, 서두르기만 한다면 10월 상영도 가능할 겁니다. 늦어도 올해 안에는 개봉할 수 있도록,”

“사장님!”

“번복할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의 물러섬은 없다는 듯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신임사장의 마음은 굳건해보였고 이는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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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편은 30분 이내로, 333편은 오늘 점심과 저녁 사이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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