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0 2018 =========================================================================
#330
“슬희 너무 말랐네. 언니는 요즘 잘 먹고 잘 자서 살 엄청 쪘는데...”
여느 때처럼 병실을 찾은 유리아의 손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밝은 햇살이 병실에 들어오게 블라인드를 걷고 꽃병의 물을 바꿔주는 등 이제는 꽤나 익숙해져버린 일들을 해야만 했으니까.
“언니, 요즘에 요리 배우기 시작했어. 희연이보다 요리 잘해서 우리 슬희랑 멤버들 맛있는 거 해주려고. 어때? 기대되지?”
지난번에 병실을 찾아왔을 때부터 오늘까지 자신에게 일어난 일상들을 설명하는 유리아의 얼굴은 밝았고 또 어두웠다.
“희연이가 이미 말했겠지만, 희연이도 최근에 그림 배우고 있어. 뭐, 희연이는 워낙 손재주가 좋고 섬세해서 그림도 잘 하겠지? 그리고 주현이는 열심히 연기 배우고 있고 예린이는 글쎄 작곡 공부를 하고 있다니까? 진짜 놀랍지?”
이렇게 일상들을 얘기하거나 속에 있는 얘기들을 털어놓을 때면 슬희와 대화를 하는 듯해 기분이 좋아졌지만, 이것이 진정 슬희와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님을 인지할 때마다 이는 도리어 꽤나 깊은 슬픔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리아는 그런 슬픔을 오래도록 방치해두지 않았다. 벌써 몇 달 째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슬희였지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깨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으니까.
[중얼중얼, 중얼중얼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날 설레게 만들었던 너와의 모든 순간들을 이제는 꿈속에서만 바라볼 수 있겠지. 네가 날 얼마나 떨리게 만들었는지, 내가 널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너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들이 엉켜버린 것 같아.]
그렇게 나누다, 그만 가야할 시간이 다가오자 그녀는 언제나처럼 핸드폰을 통해 음악을 틀었다. 지금 이 순간 슬희에게 가장 필요하다 여겨지는 노래를.
어쩌면 환자 본인이 깨어나길 원하지 않기에 의식이 되돌아오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슬희의 의식이 왜 돌아오지 않는지에 대해서 의사에게 물었을 때, 전해들은 답변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가족뿐만 아니라 그녀와 멤버들 모두 허탈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들은 슬희 그녀가 깨어나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건만, 정작 슬희는 이를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결코 가볍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중얼거리는 거야. 넌 내 모든 것이었어. 처음 본 그 순간 내게 건넨 미소, 그때부터 널 세상 무엇보다 사랑해왔어. 너와 함께했던 거리들이 내게는 꿈과도 같았어. 그렇게 꿈꿔왔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꿈속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이 되어버렸어. 그래 많이 어렸고 서툴렀던 거야. 서로를 사랑한 만큼 사랑에 익숙하지 못했기에.]
그래서 그녀는 그 후부터 슬희를 만날 때면 항상 이 노래를 틀어주었다. 부디 이 노래를 듣고 스스로 깨어나길 원치 않는다는, 그런 마음 따위는 훨훨 날려버린 채 슬희가 꼭 깨어나길 바라면서.
[한때 내 모든 것이었던 네게 줄 수 있는 말. 많이 사랑했어. 행복해야 돼. 부디.]
그렇게 오늘도 일어나지 않는 슬희를 다시 한 번 눈에 담은 채 그녀는 병실을 나와야만 했다. 울지 않겠다고, 슬희 앞에서는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더 이상 병실에 있다가는 지키기 못할 것만 같았으니까.
“언니...”
*
평창 올림픽이 적자를 기록한 것은 강지혁 때문이다.
이 억지투성이인 명제가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곳이 바로 한국이란 나라였다. 한번 가시털이 박힌 강지혁을 대중들은 결코 가만두질 않았던 것이다.
물론 강지혁이 팬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윽박을 지르기까지 했다는 기사들은 모두 허위사실이었고 이와 관련되어 정도가 심한 이들에게 소속사차원에서 법적인 조치를 강구했다는 것까지 대중들은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강지혁에 대한 얘기들은 온라인상에서 그다지 반길만한 얘기의 주제거리가 아니었다. 강지혁과 관련된 얘기를 꺼내려면 자신들의 부끄러운 행동들을 되 집어 봐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이것이 대중들이 강지혁에 대한 인식을 아예 바꿨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지혁이 잘못을 하기를, 무엇인가 흠잡을 만한 행동을 하기를.
그래서 사람들은 강지혁이 700억이 넘는 영화의 주연 그것도 단독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는 이로 인해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 행사에 힘을 보태지 않았음을 주목했다.
[강지혁 영화 홍보하려고 음원 냈네. 진짜 징그럽다. 징그러워. 그렇게 벌어놓고 또 그러고 싶디?]
[영화 촬영하느라 바쁘다 해놓고 음원 낼 시간은 있었네? 평창 개막식 행사 참가할 여유는 없고 영화 홍보할 시간은 있었고?]
지난 자신들 행동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강지혁이 틀렸다는 것을, 강지혁이 잘못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고 이는 그들의 하찮은 자존심과 열등감을 극복할 유일한 방도와도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들의 논리는 강지혁의 본격적인 영화 홍보 활동이 시작되자마자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배급, 유통 및 프로모션 일정도 없다! 강지혁! 일본 프로모션 도중 미스터지와 관련되어 한국에서의 홍보 활동은 절대 없을 것이며 배급 및 유통, 상영 계획 또한 없을 것이다고 밝혀!]
[미스터 지를 한국에서 못 본다? 강지혁 曰 “...... 제 모든 행동들을 다짜고짜 영화 홍보나 개인의 이익으로만 해석하시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신이 있어서인가 아니면 자존심 때문에 무리를 하는 것인가! 강지혁의 발언이 온, 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군 가운데......]
영화의 홍보를 위해서라도 이쯤 되면 먼저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할 줄 알았던 대중들의 예상과 달리 강지혁은 이에 굽히지 않고 대응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영화시장을 지니고 있고 본인 스스로가 한국인이기에 이번 영화의 흥행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한국 시장을 포기하면 안 될 텐데도 말이다.
물론 강지혁이 잘못한 것은 사실상 없었다. 하지만 대중들은 강지혁의 사죄를 당연시해왔고 자신들의 예상대로 일이 흘러가길 의심치 않았다. 따라서 그 후에 이어진 강지혁의 행보가 더욱 큰 파장이 되어 그들에게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일 수밖에 없었다.
[강지혁이 주연이자 단독 주인공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미스터 지! 티져 영상 공개 한 달 보름 만에 8천만 뷰 돌파! 일본 프로모션 행사 때 처음 공개된 풋티지 영상에 대한 프로모션 해당국 언론들의 반응 폭발적! 개봉을 보름 앞둔 강지혁의 미스터 지! 당초 동양인이 주연인! 그것도 단독 주인공으로서 액션연기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유리천장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되었지만......]
무엇인가 심상치 않았다.
그동안 한국의 베테랑 연기자들이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렸고 그 중 몇몇은 주연의 자리를 꿰찬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지금처럼 흥행의 징조를 강하게 내보이지 못했고 결과 또한 그다지 좋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나도 달랐다.
[풋티지 영상에 각국 기자들 및 평론가들, 영화 관계자들의 극찬 이어져! 액션 영화의 신기원을 열게 될...... 동양인 배우로서 서양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할리우드 주연 그리고 액션 연기에 도전장을 처음 내밀었음에도 세계 각지의 반응이 뜨거워......]
대대적으로 전 세계 프로모션을 진행했다는 점과 더불어 프로모션 일정 중에 현지 기자들과 영화 평론가, 영화 관계자들에게 공개된 풋티지 영상의 후폭풍이 굉장했을 뿐더러
[미스터 지! 그동안 한국인이 출연했던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스크린 수 확보! 북미 4323개관, 중국 2341개관, 인도 954개관 일본 443개관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 러시아, 남미 등 전 세계에서...... 강지혁이 주연이자 단독 주인공으로 참여한 미스터 지는 한국에서는 개봉 일정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봉을 보름 앞에 둔 때에 발표된, 미스터 지의 상영관 확보 수는 여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절대 뒤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지혁이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배우로? 가수로서는 이미 월드 스타의 반열에 오른 강지혁이 또다시 연기자로서 도전을...... 압도적인 아시아 인지도를 바탕으로...... 그 밖 지역에서도 여느 할리우드 영화와 같은 기대감을 불러 모으고 있다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꽤나 기대감이 높은, 여느 블록버스터 영화와 같은 행보를 ‘미스터 지’가 보이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국내 여론이 뒤바뀌기 시작한 것은 당연했다.
[동양인 배우에 대한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할리우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또 단련한 강지혁! 그 노력이 결실을 맺나? 칼리 아르니스와 절권도 수련을 통해 자신이 맡은 배역에 완벽히 녹아들기 위한......]
그동안 편파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강지혁을 부정적인 어조로 비판했던 언론들이 제각기 미스터 지에 관련된 보도를 적극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보도들에 대한 해당언론들의 태도에서 부정적인 논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하루도 쉴 날이 없을 정도로 강행 일정에도 불구하고 칼리 아르니스와 절권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아! 기존 배우의 부상으로 인해 급하게 투입되어 일정이 매우 빡빡함에도 동양인 배우가 지니는 편견과 선입견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촬영장에서 함께 동거 동락한 동료 배우들과 제작진들 모두 강지혁의 노력과 연기에 대한 의지에 감탄을!]
[강지혁이 평창 동계 올림픽에 참석할 수 없었던 이유. 그것은 바로 너무나도 빡빡한 촬영 스케줄! 기존 배우의 부상으로 3개월을 날려버린 제작 환경 상 도저히 시간을 빼낼 수 없었기에......]
이상할 정도로 미스터 지에 대한 호재들을 보도하지 않았던 언론들로 인해, 한국은 강지혁과 관련된 기사로 홍수가 날 지경이었다. 강지혁이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 행사 섭외 요청을 거부했을 때부터 보도되지 않았던 미스터 지에 관한 정보들이 일순간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미스터 지! 한국 개봉 안 하나? 한국인으로서 할리우드 영화의 주연이자 단독 주인공에 캐스팅 된 강지혁을 정작 한국에서는 볼 수 없다?]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국민 의식! 애초에 강지혁은 잘못한 것이 없다! 유언비어에 부화뇌동한 대중들의 미성숙한 모습에 한국의 자랑이 정작 한국에서는 외면 받아! 일각에서는 한국의 자랑이 한국 활동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렸을 수도 있다는......]
그렇게 모든 책임을 대중들에게 떠안긴, 대중들이 누구 때문에 유언비어에 부화뇌동했는지를 쏙 빼놓은 기사들이 또다시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든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그런 것들이 지금 당장 무엇인가를 바꿔놓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꽤나 불편한 진실이 되었고 말이다.
*
16년 10월 전역한 이래 사바나 TV 개인방송과 사바나 TV 스타리그를 통해 제 2의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는 이영수는 오늘도 변함없이 방송을 켰다.
하지만 막상 시작된 이영수의 개인방송은 평소와는 무엇인가가 달랐다.
순식간에 그의 방송으로 만 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몰려들었지만 정작 그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켤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평소답지 않게 꽤나 차려입은 듯한 모습까지 카메라에 비췄으니 오죽할까.
[오늘은 게임 안 해요?]
[스폰 없어서 그래요? 스폰 붙여줄까요?]
[말만해요. 스폰 무한으로 붙여줌.]
[오늘 뭐임? 왜 이렇게 차려입었어? 안 그래도 얼굴 잘생겼는데, 그렇게 차려입으면... 게이 될 것 같아. 하아... 현자타임 온다...]
그의 경기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던 수많은 이들의 의문이 이내 채팅창에 도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수많은 이들의 의문은 이내 예상치 못한 이영수의 답변으로 인해 더욱더 뜨거워지고 말았다.
“여러분 제가 오늘은 방송 못해요.”
갑작스럽게 오늘 방송을 못하겠다는 이영수의 말에 채팅창은 순식간에 폭주 상태가 되어버렸다.
[왜요! 아...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혹시 여자? 여자 만나러 가는 거임? 모쏠 탈출?]
[지렸다... 어떻게 버티냐. 폭단 현상 지릴 텐데. 아... 어떻게 버텨!]
[어쩐지 차려입었더라니... 뭐임? 여자 생겼음?]
그런 채팅창과 상관없이 이영수는 그저 자신의 할 말을 할 뿐이었다. 평소 그가 지닌 무심함으로 무장한 채 말이다. 하지만 이어진 이영수의 말은 이런 팬들의 반응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고야 말았다.
“아! 그리고 내일부터 일주일 정도까지도 방송 못하는데요. 제가 LA에 일이 있어서요. 그래서 조금 쉴 겸 일주일 정도 놀다가 오려고요. 그래도 되죠?”
열성 팬들이 많기로 유명한 그답게 채팅창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루 방송을 안 하는 것도 충격일진데, 일주일이나 방송을 하지 못하겠다는 이영수의 말은 상상을 초월한 충격을 팬들에게 선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영수는 팬들의 이런 반응에 평소 그 답지 않게 보다 자세히 방금 전 발표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것이 보다 큰 이슈를 자아낼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한 채.
“그게... 이번에 아는 친구가 LA에서 뭐하는 데, 고맙게도 저한테까지 초대권을 줘서요. 학진이도 같이 가는 거라서. 아무튼 그렇게 됐어요.”
한 때 미국에서 활동하기도 했거니와, 평소 여행을 자주 다닌다는 이영수의 말이 있었기에 시청자들 모두가 아쉬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하려 했다. 그 순간 방송 매니저의 의문 섞인 채팅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LA에 무슨 일이요? 학진님이랑 같이 여행가세요?]
============================ 작품 후기 ============================
공Blee님 후원쿠폰 70 장 감사합니다. (깜짝 선물처럼 이번 편을 공블리님에게~)
요핫님 후원쿠폰 3 장 감사합니다.
아크투러스님 후원쿠폰 6 장 감사합니다.
황회님 후원쿠폰 18 장 감사합니다.
능력Skyey님 후원쿠폰 6 장 감사합니다.
레미너스님 후원쿠폰 1 장 감사합니다.
후원쿠폰 주신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부탁드려요! 추천 꾸욱!
원고료 쿠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