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27화 (327/502)

00327  2018  =========================================================================

#327

[아쉽긴 하겠지만 그래도 한국 시장을 제외하고서라도 ‘지’ 덕분에 아시아 시장 마케팅은 우리 예상치를 훨씬 넘어섰을 정도로 성공했으니 그런 마음은 가지지 말게.]

다이그 감독의 위로에 앞으로의 마음가짐을 다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전 영화촬영, 오후 일본 기자와의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일정이 없었기에 내일 촬영을 위한 휴식을 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럴 수가 없었다.

[아! 지! 혹시 시간 좀 내줄 수 있겠는가?]

[에?]

[‘지’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네. 잠깐이면 되네만...]

갑작스럽게 내게 누군가를 소개시켜주려는 듯한 다이그 감독으로 인해 자리에 다시 앉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런 내게 다이그 감독과 비슷한 연령대의 사내가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강.]

[아! 안녕하세요. 지혁 강입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터 제이크입니다.]

마른 편인 다이그 감독과 달리, 새롭게 등장한 피터 제이크라는 사람은 풍채가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감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꽤나 놀라고 말았다.

[하하! 제가 영화감독이라고 말하면 다들 그런 반응들을 보이곤 하지요. 하하!]

비록 나이가 있긴 하지만, 근육질의 몸매에 키도 2미터 가까이 되는 그였기에 영화감독이라고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혹시 이 사진의 주인공이 미스터 강 맞습니까?]

[네? 무슨 사진을... 아!]

그런데 그가 다짜고짜 내게 건넨 사진 한 장에 그 놀람은 경악이 되고 말았다.

[이, 이건...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음... 그러니까, 리허설 때 모습이네요. 방송되지 않은 거라 구하기 힘드셨을 텐데... 팬들이 개인적으로 찍어서 보관 중이었나 보네요. 혹시... 그 자리에 있으셨나요? 이걸 어떻게?]

처음 만난 이가 그것도 외국인 영화감독이 가지고 있을 만한 사진이 아니었다. 복장과 들고 있는 물건으로 이 사진이 언제 적 사진인지 추론할 수 있을 뿐, 나 또한 처음 보는 사진이었으니까.

[저희 아내가 미스터 강의 열혈 팬이라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아내 또한 어렵게 구한 거라, 자그마치 저녁 설거지 일주일 치를 전담하는 조건으로 말이죠. 하하!]

[아... 감사합니다. 그... 사인 해드릴까요?]

얼굴이나 익히라고 이 자리를 주선해준 것은 아닌 듯 했는데, 이어진 피터 제이크 감독의 말에 마음을 상당부분 편하게 놓을 수 있었다.

[하하! 그래주시면 감사합니다. 다만, 그 전에...]

어찌 됐건 일 때문에 가진 만남이 아닌, 단순 팬과의 만남은 자리 자체의 분위기를 보다 밝고 가볍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나의 섣부른 판단일 뿐이었다.

[운이 좋아 제법 많은 투자 금을 얻어 오랫동안 그려왔던 꿈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네? 그런데요?]

[우리의 투자자들은 아시아의 관객들 또한 이에 흥미를 가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흥미를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아시안 배우를 영화에 캐스팅 하는 것이겠죠.]

그가 상대적으로 외진 곳에 자리 잡은 이곳까지 나를 찾아온 이유는 당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무게감 있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미스터 강을 단순히 아시아 마케팅에만 쓰겠단 얘긴 절대 아닙니다. 미스터 강의 실력 그리고 저를 사로잡았던 이 사진 속 모습까지, 그 모든 게 제 구상에 맞아 떨어졌기에 나온 얘기입니다. 듣기로 미스터 강의 나라는 예로부터......]

나로서는 이와 같은 경우를 모를 수가, 익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젠틀맨의 품위, 후계자들 그리고 천손, 하늘의 자손 때 바로 이 같은 방법으로 배역을 따냈으니까.

그래서 그런 익숙함이 기분 좋다기보다 의아했고 조금은 꺼려졌다.

[그런 걸 다 떠나서... 저의 뭘 보시고 이런... 저는 영화라고는 이번 영화가 처음인, 초짜배우입니다. 그런데 실력이라고 하심은...]

할리우드에서는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배우를 제외하고 이같이 직접적으로 배우를 캐스팅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투자자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만큼 실력이 최우선시 되는 게 바로 할리우드 영화 사업의 근간이었기 때문이다.

뭐, 물론 나 또한 나름 인기 있는 배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시아 지역에서의 말 뿐이었다.

할리우드에서 나란 존재는 그저 가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따라서 굳이 아시아 마케팅을 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내 실력이 자기 자신을 사로잡았다느니, 우리나라의 역사가 어떻다느니 같은 얘기를 하는 피터 제이크 감독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등장한 새로운 이유라는 것이 그 모든 의문의 조금이나마 상쇄시켜주었다.

[일단... 이 친구가 미스터 강처럼 칭찬한 배우가 없었습니다.]

[네?]

[성실, 끈기, 독기, 책임감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바탕으로 비상할 수 있는 실력까지.]

[크흠... ‘지’만한 배우는 정말 찾기 힘들지. 암 그렇고말고.]

가만히 옆에서 나와 피터 제이크 감독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다이그 리넨만 감독이 결정적인 원인인 듯 했다. 그것도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모든 게 완벽하다고 하더군요. 액션 연기에 있어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를 거라 자신한답니다. 이 친구가 말이죠. 뭐, 저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 친구의 안목과 연출력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기에 이번 영화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뭐라고? 내가 왜 네놈보다 못해? 이게 내가 업어 키워줬는데, 그걸 기억 못하고!]

[내가 너보다 5살 많거든?]

어느새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티격태격 거리는 두 감독과 상관없이 그저 고마웠다.

단순히 나를 금칠해줘서 고맙다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나를 극찬했다는 말은 그 근저에 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것을 알기에 고마웠을 뿐.

*

[샘플용 대본입니다. 미스터 강의 분량이 많지는 않을 테지만, 후속편이 제작되기만 한다면 이는 다른 말이 될 거라 자신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판타지 영화인지라 거리낌이 있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편견과 선입견은 잠시 거둬주시고 대본을 한번이라도 살펴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예... 미스터 지 촬영 끝나고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제안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도리어 제가 감사합니다. 하하! 혹시 대본을 읽어보시고 마음에 드신다면 언제라도 이 번호로 연락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손안에 든 대본이 내게 어떻게 당도했는지 알게 된 이상 가볍게 생각되지 않았다.

내 믿음이 결실을 맺은 느낌?

어쨌든 ‘미스터 지’의 촬영이 마무리되지 않은 만큼 이 대본은 빨라도 7월부터 살펴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달아오른 마음을 앞으로의 촬영을 위해 애써 다스려야 할 정도로.

“네, 아무래도 한국 일정은 없을 듯 해요.”

그렇게 침대에 누워 일찍 잠에 들려던 찰나에 관리사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래서 잠깐이지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한국에 일을 벌여놓은 게 많은 만큼, 시간이 허락하는 한, 관리사님과 자주 대화를 나누는 게 꼭 필요했으니까.

“일본이랑 중국에서 대규모로 행사할 것 같으니까, 그때 뵐 수 있으면 봐요. 음... 일본이랑 중국 둘 다 3박 4일 정도 있을 것 같아요. 일본은 더 추가될 수도 있고요. 아, 예, 예. 아무래도 중간에 한국에 들를 여유는 없을 것 같아요. 아시아 프로모션 일정이 꽤나 빡빡한 것으로 알고 있어서요.”

아레나 완공 그리고 한남동 부지 공사 시작과 같은 일들이 있었기에 한국에 한번쯤 가긴 가야했다. 단순히 돈 몇 푼 든 것도 아니고 수천억을 쏟아 부은 사안 인만큼 제 아무리 한국 방문이 꺼려진다 해도 말이다.

“상반기에는 절대 불가능 할 것 같고요. 음... 하반기도 아마 아레나 완공 때 돼서야 가능할 것 같아요. 아시아, 유럽, 남미 프로모션 끝나고 바로 미국에서 프로모션 겸 시사회 행사가 있어서요. 네, 네. 9월에 개봉할 것 같아요. 추석 즈음에요.”

이렇게 일정들을 정리해보고 한국에 방문할 수 있을 때를 생각해보니, 이제는 내 활동 무대가 더 이상 한국에 국한되지 않음을 새삼 다시금 깨달았다. 지금 확정된 일정만 보자면 오히려 미국과 전 세계가 나의 주 활동지가 된 듯 했으니까.

“아레나 쪽 좀 관리사님께서 신경 좀 써주세요. 완공이 코앞인데 그 전까지 직접 가보는 게 불가능할 것 같네요. 네, 네. 한남동 부지도 신경써주시고요. 네, 알아요. 감사해요. 항상.”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드는 일 천지이고 이제는 씁쓸하게도 골치만 아픈 곳이 되어버렸지만 한국은 내 가족이 있는 곳이고 친구가 있는 곳이며 추억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뭐, 물론 이제는 한국보다는 미국에서 지내는 날이, 타국에서 지내는 날이 훨씬 많아지게 될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일 테지만 말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한국이 빠졌어도 아시아에서 배급 계약이 잘 이루어져서 그런지 제작진들 얼굴이 밝더라고요. 네, 네. 혹시 알아요? 진짜 대박 날지? 미국 박스오피스 5위, 아니 10위 안에만 들어도 대박인 걸요, 아! 그리고 유럽 지역에서도 계약 중이더라고요. 네, 네. 로케 촬영이 러시아랑 프랑스 그 쪽이니까요.”

어쨌든 이제는 일 관련 얘기를 할 때조차 걱정이 물씬 담겨 있는 관리사님의 목소리에 애써 태연한 척 말하는 게 아님을 어필하는 것으로 통화는 마무리 되어갔다.

“그냥 흥행에 연연하지 않으려고요. 첫 영화인데 좋은 경험 쌓았고 좋은 사람들 만난 것만으로도 좋아요. 물론 주연이니까, 좋은 성적을 그 사람들한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죠. 네, 네.”

손자뻘인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신경써주다시피 하는 관리사님이기에 괜스레 걱정을 안겨다주기 싫었기도 하거니와, 내가 한국 시장에 신경이 쓰이는 주된 이유는 내 영화가 배급, 유통되지 않는다는 결과보다는 그 원인과 관련된 무엇인가였으니까.

뭐, 한국인으로서 할리우드 주연을 맡았고 내 덕에 제주도가 영화 초반부에 살짝 언급될 정도인데 이런 반응이라는 게 조금 창피하고 섭섭하긴 했지만.

*

[Bad Man, Bad Man. 알고 있어 너는 Bad Man. 네 눈빛이 나를 사로잡아. 알고 있어 그리 착한 눈빛은 아니야. 위험하지만 흔들려볼까. Bad Man, Bad Man. 알고 있어 너는 Bad Man.]

들려오는 가이드 곡에 작업실 안에 있는 이들이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경쾌한 힙합 비트 그리고 중독성 있는 후렴구까지. 좀 전 이 곡을 작곡, 작사해준 이가 누구인지 듣게 되었을 때와 비견될 정도로 소녀들과 녹음을 전담해줄 트레이너들의 얼굴엔 놀라움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래 나 지금 널 보고 있는 거야. 네가 친 그물에 걸려들고 있는 거야. 위험한 줄 알면서 네게 잡히고 있는 거야. 조금 더, 조금 더 다가와. Bad Man, Bad Man. 알고 있어 너는 Bad Man.]

시크릿 심사위원이 또다시 소녀들의 앨범 활동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소녀들과 트레이너들은 예상했었다.

Girlish Pop 팀을 음원사이트, 음악방송 1위의 자리에 오르게 만들었고 최종 경연 직전 또다시 15명의 소녀들에게 이와 동일한 경험을 선사했던 시크릿 심사위원이었기에 이번 곡 또한 그와 유사한, 소녀스러움과 청순함 같은 감성들을 극대화 시킨 곡일 것이라고.

“곡의 제목은 Bad Man, 나쁜 남자입니다. 다들 어떻게 들으셨나요?”

하지만 방금 전까지 작업실에 흘러나왔던 곡은 모든 이들의 기대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곡이었다. 그래서 소녀들과 트레이너들은 노래가 끝나고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도대체 어떤 작곡가이기에 이런 폭넓은 음악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지, 이번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강렬한 비트를 바탕으로 한 Girl Crush Pop을 보냈다는 점에서 놀람을 넘어선 존경심까지 들 지경이었으니까.

따라서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이런 놀람과 존경이 소녀들과 트레이너들의 호기심을 극대화시킨 것은.

“아니, 도대체 누구에요. 우리한테는 알려줘야죠. 언제까지 숨길 건데요?”

“진짜 너무하네. 우리도 제작진이나 마찬가진데 왜 숨기는 거 에요? 도대체?”

뭐, 물론 제작진들에게 적극적으로 항의한 것은 오늘 자리에 함께한 트레이너들뿐이었지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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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많이 안 좋나봅니다. 감기에 걸린 것 같진 않은데 계속 콧물이... 훌쩍...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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