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23화 (323/502)

00323  2017  =========================================================================

#323

소녀들은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들을 둘러싼 문제들로 인해 이제 막 출항하기 시작한 프로젝트 그룹 프리티 스타가 벌써부터 삐꺼덕 거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소녀들은 괴로웠다. 수많은 대중들이 자신들을 프리티 스타의 멤버로서 사랑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욱.

하지만 지금 소녀들의 입을 다물게 만든 것은 그런 복잡하고 더러운 상황 때문이 아니었다.

“슈퍼스타 활동을 기점으로 여러분들은 프리티 스타로서 데뷔를 하였습니다. 이곳은 앞으로 여러분이 1년 동안 생활하게 될 숙소입니다. 마음에 드시나요?”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소녀들의 두 눈동자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건물의 입구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지만 막상 두 눈으로 이를 마주한 것과는 처지차이였으니까.

그러나 이내 이어진 이준식의 말은 소녀들 모두의 시선을 단숨에 그에게로 집중시키게 만들었다.

“각자의 소속사로부터 상황을 설명 받았을 테지만 다시 한 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지금에야 프로젝트 데뷔를 통해서 프리티 스타의 멤버가 될 수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한시적인 것일 뿐이었다. 따라서 소녀들은 여전히 연습생 신분으로서 아무런 힘을 행사할 수 없었다. 자신들과 보다 근본적인, 연습생 계약을 맺은 본디 소속사에게 말이다.

“슈퍼스타 활동은 1월 넷째 주까지 이어질 것이고 그 후부터는 각자 예능 프로그램, 광고 프로그램에 투입될 것입니다. 물론 이는 개별 소속사 활동을 하게 된 4명의 소녀들에게도 마찬가지 사항입니다.

그래서 이준식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개별 활동을 하게 된 소녀들의 얼굴은 어두워져만 갔다. 같은 프리티 스타 멤버들 그리고 제작진들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뻔뻔하게 감내하기엔 소녀들이 지닌 얼굴의 낯짝은 결코 두껍지 않았으니까.

“2분기, 3분기까지 프리티 스타는 6인 유닛으로 활동하게 될 것입니다. 4분기 정규 앨범 활동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죠. 따라서 개별 활동을 하게 된 4명의 소녀들은 이 숙소에서 1분기, 4분기에만 머물게 될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같은 멤버들과 제작진 또한 그런 소녀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미안함에 눈물까지 고이기 시작한 해당 소녀들이 결코 이와 같은 상황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앞으로 3일 간 본격적인 1분기 활동에 앞서 마지막 휴식을 드릴 테니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방의 분배에 관해서는 여러분이 자율적으로 정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다만, 표시된 ”

그렇게 할 말만 딱딱 건넨 채 자리를 떠나는 이준식을 따라, 때마침 고정 카메라 설치를 끝마친 제작진들 또한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소녀들에게 맡긴 채.

“미안...”

한동안 침묵은 이어졌다. 정지연을 시작으로,

“미안... 우리도 말해보긴 했는데...

“정말 미안해. 다들...”

“미안해요...”

김여정, 선우희, 유지나까지 연이어 미안하다는 말을 꺼낼 때까지.

프리티 스타의 데뷔가 왜 이렇게 늦어졌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고, 모두가 함께할 거라 생각했던 프리티 스타 활동이 반 토막 나버렸다는 점에서 해당 소녀들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너무해! 이런 게 어디 있어!”

“민지야... 애들도 어쩔 수 없는 거야. 소속사에서...”

“흥!”

더욱이 프리티 스타 멤버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리고 또 가장 큰 득표수로 프리티 스타에 합류한 주민지가 불만을 토해내기까지 했으니 오죽할까.

그렇게 프리티 스타의 리더이자 최 연장자 중 한명인 임수진이 거실에서 벗어나버린 주민지를 달래보려 쫒아가자, 거실은 다시금 가득차기 시작했다. 좀처럼 깨어지기 힘든 침묵으로.

*

[숙소 문제도 그렇고 작곡 문제도 그렇고 정말 감사합니다. 지혁 씨.]

일주일간의 휴식 마지막 날 걸려온 전화의 목소리에는 고마움이 가득 담겨있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내가 건넨 호의를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당초 계약대로라면 제가 드려야 할 곡은 2곡뿐이지만, 1곡을 더해 총 3곡을 드리겠습니다. 단, 아시죠? 이런 제 호의의 전제조건이 무엇인지?”

[물론 알고 있습니다. 지혁 씨의 곡은 프리티 스타 유닛 활동 곡으로만 쓰일 것이고 프리티 스타 완전체로는 해당 곡을 무대에서 선보이지 않겠습니다. 절대로요.]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얻어가는 게 적지 않은 만큼 이는 서로 윈윈하는 계약이지, 일방적인 호의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면 됐어요. 숙소 생활이나 제가 드린 곡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아직 영화 촬영이 끝나지 않아서 제때, 제때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물론 몇몇 사람들, 아니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네가 클라스가 있지, 무슨 그런 일까지 하려고 해?’, ‘호구네. 호구.’와 같이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주변 시선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것이 힘을 가진 사람의 진짜 증표라는 것을 그리고 굳이 갑 질을 하는 것만이 힘 있는 자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의 전부가 아님을.

“네, 네. 제 정체는 밝히고 싶지 않고요. 그냥 지금까지처럼 시크릿 심사위원으로 칭하는 정도만 됐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악을 무찌르는 정의의 기사가 된 듯 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유치하기 그지없는 행동에 이내 맞이하게 된 현자타임과 때마침 들려오는 태현 형의 목소리에 꽤나 놀라버렸지만 말이다.

“무슨 전화야?”

“어, 어? 아! 음원 내는 것 때문에 잠깐 일이 있어서. 그나저나, 짐은 다 쌌어? 소담 누나는 오늘 하루 종일 안보이네?”

사실 내가 시크릿 심사위원이라는 것을 태현형에게 말해줘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유진이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털어놓았던 것처럼 태현 형 또한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가족이었으니까.

하지만 불쑥, 불쑥 존재감을 뽐내는 장난 끼로 인해 끝까지 사실을 숨기기로 마음먹었다. 뭐, 재성 삼촌도 모르는 일을 태현 형에게 먼저 말해줬다가 생길 뒤탈이 두렵기도 했고 말이다.

“뭐, 짐이야 애당초 별로 안 가져와서. 소담이는 뭐... 밖에서 놀고 있나보지. 마지막 날이니까.”

“혼자?”

“아마도?”

“걱정 안 돼? 누나인데?”

“누나는 무슨. 내가 먼저 태어났는데! 쌍둥이라고 오빠 대접도 안 해주는 애를......”

혹시 안석준 CP와의 통화내용을 들었을 까봐, 조마조마했는데 화제를 돌렸음에도 태현 형이 별다른 의아함을 품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아니, 그나저나 태현 형도 그렇고 소담 누나도 그렇고 쌍둥이인데 왜 이렇게 티격태격이야? 나이가 몇인데. 나 원 참.

*

“이 바보야. 그깟 놈이 뭐라고 네가 이 꼴이야? 김영진 그 개자식이 뭐라고!”

조용하기 그지없는 VIP 병동에서 대답해줄 이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음에도 그녀는 끊임없이 질문 아닌 질문을 던졌다.

벌써 반년 가까이 의식을 찾지 못하는, 죽은 듯이 병상에 누워있는 이에게.

“김영진 그 개자식, 망했어. 아주 완전! 재판도 받고 있다하니까... 혹시 모르지, 시간이 지나서 다시 재기할지. 그러니까, 네가 보란 듯이 일어나서 잘 나가야지! 그 사람한테 사과도 직접하고...”

가족들과 같이 슬희를 돌보고 있을 정도로 TWINKLE 멤버들은 하나같이 똘똘 뭉쳤다. 힘든 연습생 생활을 같이 했던 만큼 슬희는 이미 그녀들의 가족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네 편지 전해줬을 때 바로 울더라... 그러니까, 네가 직접 일어나서 사과해. 정말 미안했다고. 그런 편지로 사과하지 말고. 알겠지? 혼자 가기 그러면 언니가 같이 가줄게. 언니도... 미안하거든. 그 사람한테.”

물론 슬희를 원망했던 적도 없진 않았다. 버림받았던 이의 복수는 그만큼 매서웠고 철옹성이라 여겨졌던 회사의 방패 막도 이로 인해 풍비박산이 나버렸으니까. 자신이 걸어왔던 연습생으로서의 고됐던 생활 그리고 화려했던 아이돌로서의 생활까지 모두 무너져버렸으니까.

“회사에서 재계약하자고 하더라. 그래서 애들이 정말 좋아하고 있어. 너 깨어나면 전해줄 좋은 소식이라고.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야 할 걸? 슬희 너 너무 누워있어서 이제는 언니가 춤 더 잘 출 걸? 분하지? 히히...”

하지만 돌이켜보면 리더로서 자신 또한 잘못이 없지 않다는 점에서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슬희에게 미안했다.

“우리 슬희 목소리 듣고 싶다... 언니가 슬희 노래 정말 좋아하는데...”

그리고 그리웠다. 언제나 밝은 미소로 가득했던, 춤과 노래를 할 때면 그 누구보다 즐거워했던 슬희의 웃음소리가.

“요즘 유행하는 노래 들려줄까? 우리 컴백하려면 가요 트렌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하니까. 음... 요즘엔 프리티 스타라는 그룹이 꽤 인기 있어. 프로젝트 데뷔 알지? 우리 같이 봤던 거. 글쎄 주민지가 결국 1등하더라구... 김여정은 2등...”

그녀는 이내 화제를 돌려야만 했다. 더 이상 이와 관련된 생각을 떠올린다면, 지금도 감당하기 힘든 감정의 홍수가 거세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다, 라디오 들을까? 지금 시간이... 아! 써니 윌 선배님 라디오 할 시간이네. 우리 같이 듣던 거 기억나? 히히... 재밌으니까, 같이 듣자. 노래도 나오고 재밌는 얘기도 들을 수 있으니까. 좋지? 슬희야?”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것이 바로 라디오였다. 아이돌로서 활동했을 당시, 얼마 되지 않은 휴식기 때면 종종 침대에 같이 누워 라디오를 들으며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떠올랐으니까.

[글쎄 그게 알고 보니 저를 말하는 거였더라고요. 푸하하! 0215님 정말인가요? 하하! 0215님 사연 너무 웃기네요. 하하!]

“히히... 정말 대박이다. 그렇지 슬희야?”

그렇게 그녀는 라디오를 들으며 웃었고 또 질문을 던졌다. 당장이라도 들려올 것만 같은 목소리에 더욱 더 자주 그리고 큰 소리로.

그런데 그때였다. 그런 그녀의 입이 누워있는 이의 것처럼 닫혀버린 것이.

“자! 그럼 노래한 곡 들어볼 시간인데요. 이번 신청곡의 주인공은 바로 저입니다! 하하! 놀라셨죠? 에? 너무 식상하다고요? 크흠... 그래도 신청곡만큼은 절대 식상하지 않을 거라 자신합니다! 자신해요! 아주! 자! 다음 곡은 방금 전 오후 6시에 음원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가수 겸 배우 강지혁 씨의 신곡입니다. 중얼중얼.”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듣고 있는 것인지 의심할 정도로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린 유리아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버린 사이 휴대폰은 어느새 낯선 멜로디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것도 쉽게 넘길 수 없는 목소리와 가사들을 담아내며.

*

[지! 정말 대단하군.]

촬영 준비에 앞서 메이크업을 받고 있을 때, 다이그 리넨만 감독이 다가와 다짜고짜 나를 껴안는 바람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이런 행동의 자초지종을 듣고 나자, 나 또한 다이그 리넨만 감독처럼 그를 껴안을 뻔했다.

[벌써부터 아시아 쪽 배급사는 거의 확정되었네. 자네의 영향력이 대단하군 그래. 하하!]

영화 촬영이 아직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촬영이 6개월가량이나 남았음에도 배급사가 확정되었다는 말은 간단히 넘길만한 얘기가 아니었다. 그만큼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서 현지 배급사와의 계약은 영화 흥행의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중국, 일본 쪽에서 최대 배급사와 계약을 마무리 지었네. 개봉관도 벌써부터 폭발적인 반응이야. 필리핀, 인도, 중동도 근시일내로 계약이 마무리될 거네.]

따라서 아시아 최대이자 세계 2위의 영화시장을 자랑하는 중국 그리고 인구대비 가장 큰 영화시장을 지닌, 세계 4위의 영화시장을 보유한 일본의 최대 배급사와 계약을 맺었다는 점 그리고 이를 내 덕이라 칭하는 다이그 리넨만 감독의 말에 절로 뿌듯해졌다.

더욱이 평소 동양인 주연으로서 작품에 마이너스 효과를 주게 된 것 같아 알게 모르게 이에 마음이 쓰였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다이그 리넨만 감독이 이런 기쁜 소식만을 건네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한국 쪽이 유독 미온적인 것 같은데... 혹시 이유를 아나?]

이내 들려온 다이그 리넨만 감독의 말에 순간이나마 얼굴이 찌푸려졌다. 다른 어느 영화시장보다 배급사를 확정짓는 게 쉬울 줄 알았건만, 다이그 리넨만 감독의 말은 이런 내 예상을 무지하게 부셔버릴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아무래도 제가 최근에 한국에서 논란이 조금 있어서...]

[하하! 중국, 일본과의 계약만 해도 7천만 달러짜리 영화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성과네! 이 모든 게 지 덕인데, 미안하다니 무슨 소리인가? 솔직한 심정으로 한국 시장을 포기한다 해도 상관없네. 어차피 중국, 일본은 이미 계약이 성사됐고 인도, 필리핀, 중동 쪽 계약만 이대로 진행된다면 말이네.]

다이그 리넨만 감독의 괜찮다는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찝찝했다. 내가 아무리 논란에 휩싸여 한국을 안 간지 1년 가까이 됐다 해도 이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 작품 후기 ============================

A님 후원쿠폰 5 장 감사합니다.

선작, 코멘트, 추천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음 편은 내일 오후쯤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갑작스럽게 부모님이 올라오셔서요. 죄송합니다. (다음편 내일 점심과 저녁 사이/ 다다음편 저녁과 자정사이에)

추천 꼭 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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