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20 2017 =========================================================================
#320
[모 아이돌 그룹 K양 자살시도? 숙소 내에서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여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 같은 팀 멤버인 Y 양의 발견으로...... 현재까지 의식불명 사태인 것으로...... 연예병사로 복무중인 K군과 관련된 최근 사태에 큰 상심을 얻어 자살 시도를 했을 것으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무엇일까. 충격적인 소식을 담은 기사를 접하고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내게 예상치 못한, 반기고 싶지 않은 이가 찾아왔다. 왠지 모를 불안함이 느껴지는 편지와 함께.
[고마웠어요. 난생처음 느껴본 설렘에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줘서. 그리고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이 행복할 수 있게 해줘서... 그래서 미안해요. 상처를 줘서... 나 때문에 마음 아프게 해서. 당신... 오빠는... 좋은 사람이에요. 나 같은 사람이 사랑을 받기엔 너무나도 과분하고 내가 상처를 주기엔 너무나도 착한... 절대... 오빠가 잘못한 게 아니에요. 그리고 오빠가 모자라서 그랬던 것도 아니에요. 변명 같겠지만... 그냥... 내가 너무 부족했어요. 어리석었어요... 좋은 사람 만나길...... 정말 미안했어요. 정말...]
“염치없다는 거 알아요. 미안해요. 아니 죄송합니다. 흑흑... 그렇지만...”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유리아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더욱 아무런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저 손에 든 편지만 우두커니 바라보며 흐려지는 시야를 용인하는 수밖에.
“흑흑... 와 달라는 말은 아니에... 흑흑... 슬희가... 전해주라고 해서... 흑흑... 와서 죄송합니다. 염치없게 얼굴 들이밀어서 죄... 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흑흑...”
내게 편지를 건네며 그 자리에서 울다가 기절하듯 쓰러진 유리아를 침대에 눕힌 뒤, 오두막 앞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그런 내 손에는 여전히 유리아가 가져온 편지가 들려있었다.
나를 배신했던 여자에게 가장 잔혹한 복수를 하려했었다.
그리고 비록 마지막에 마음이 약해져 강도가 약해졌다 할지라도 충분히 복수를 했었고 모두 털어내 버렸다고 자부했었다. 그녀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든 이제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배신한 그녀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길 바랐던 건 아니었다. 결말이 안 좋았다 할지라도 연인이었던 모든 순간, 그녀는 내게 끝없는 행복과 사랑을 주었던 존재였으니까.
도대체 엉킨 실타래는 왜 이렇게 풀기 힘든 것인지. 얼마나 많은 뒷이야기들을 만들어낼 것인지 이제는 가늠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들이 모두 꿈이기를, 지금 손에 들린 이 편지가 그저 나의 망상으로부터 비롯된 결과물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게 나는 그저 꿈을 꾸고 있으며 망상을 하고 있다고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했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밝은 달빛 아래서 차마 숨길 수 없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
[지... 괜찮은 건가?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아니에요. 한 번 더 가죠.]
[지! 정말 괜찮은 것 맞나? 아무래도 조금,]
[저, 정말 괜찮아요. 존 그리고 감독님. 단지 컨디션이 좋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한 번 더 가요. 이 부분 조금 엇갈린 것 같아서 마음에......]
내게 편지를 건네준 다음날, 유리아는 죄송하다는 말을 연이어 한 뒤 저택을 나섰다.
그것이 나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아직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슬희를 위한 행동인지는 모르겠으나 붙잡지 않았다. 그렇다고 따라나서지도 않았다. 슬희가 내게 남긴 편지를 한없이 되새기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말이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머릿속은 복잡했고 어느 것 하나 정리된 것이 없었으니까.
아마 그래서였던 것 같다.
영화 촬영 하나에만 몰두하고 다른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처음엔 다이그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 모두가 그런 내 모습에서 휴식이 꽤나 큰 효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 듯 했다. 이내 이상하리만치 촬영에 몰두하는 내 모습에서 무엇인가 꺼림칙한 것을 느꼈고 그 후부터는 줄곧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주시했지만.
[후우... 이번 컷은 어땠나요? 부족한 점 있나요? 살짝 멈칫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확신을 못하겠네요. 워낙 훅훅 지나가서.]
[지... 부족하다니. 완벽해. 완벽한데...]
[그럼 바로 다음 신으로 넘어가죠. 이번 신 구도는 전부 찍었으니까. 혹시 빠진 것 없죠? 제 기억으로는 하나, 둘... 하이, 로우까지 전부 다 찍은 것 같은데.]
[그래, 지, 네 말대로 이번 신은 다 찍었어. 그런데... 괜찮겠어? 이렇게 연달아 찍는 거 체력적으로 꽤 부담이,]
[문제없어요. 제작진 쪽 문제 때문이 아니라면 촬영 이어서 하고 싶어요. 오늘 컨디션이 좋아서 이 정도는 뭐...]
하지만 그런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내 행동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맨 정신으로 있을 수 없을 것만, 아니 없을 테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 온전히 내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에 강력히 몰입하여 집중할 것이 필요했으니까.
*
“도대체 일을 이따위로 해서 어떻게 하자는 거야!”
[가칭 강지혁 아레나로 불리는 한류월드 내 공사 중인 아레나의 기존 최대주주로 알려진 두바이 5왕자가 아레나 사업과 한류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아레나의 의결권과 운영권, 수익권 등 일체를 강지혁에게 양도했다고는 하지만 아레나 사업 자체에 대한 관심과 응원은 결코 멈추질 않겠다는...... 사업의 안정성과 아레나 운용의 다각화를 위해 JJ E&M과 협의를...]
일찍이 본 적 없을 정도로 대노한 사내의 모습에 기립해 있는 이들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가득 맺혀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내의 이런 분노에 어떤 변명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창 쪽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이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모든 일의 컨트롤 타워인 사내의 이러한 분노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으니까.
[강지혁! 보유중인 아레나 지분 87.5% 가운데 37.5%를 기존에 아레나 지분 12.5%의 지분을 3분할하고 있던 JS ENTERTAINMENT, 포이보스 뮤직, DH ENTERTAINMENT 그리고 새롭게 지분 보유자로 합류하게 된 JJ E&M, 호텔백제 등에게 당초 투자액에 20%의 프리미엄을 얹은 가격으로 매매하여...... 강지혁 50%, 나머지 5개 회사가 10%의 지분을 각자 보유하게 된......]
[강지혁 아레나의 새로운 지분 투자자로 JJ E&M과 호텔백제...... 한류월드 내에 대규모 투자를 강행한 JJ E&M 그리고 호텔 백제 측의 지분 투자 안을 수락하게 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물론 어디까지 버틸지 두고 보겠다는 듯 끊임없이 아레나 관련 투자 제안을 건넸던 그들을 제대로 물 먹인 이가 강지혁이라는 점 그 하나뿐이었다면 사내가 이 정도로 분노를 토해내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사내가 진행하고 있는 계획의 다방면에서 강지혁이 발을 걸치고 있었고 그 모든 것들에서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었지만 말이다.
[강지혁이 일개 개인 신분으로 낙찰 받아 화제가 되었던 한남동 외인 부지가 현대판 궁궐로 탈바꿈 된다는 소식에 또다시 온, 오프라인 상...... 강지혁 아레나의 시행사였던 씨마르사가 또다시...... 랜드마크 생성예고에......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실제 거주할 궁궐이 될......]
“한남동 외인 부지는 어떻게 된 거야.”
“그것이 한남동 외인 부지 측이 우리 측 계획을 짐작하고 경매 입찰자 명단을 철저히 숨기는 바람에...”
“그래서... 지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강지혁이 쳐 먹어버렸다는 얘기 아니야. 안 그래?”
“그, 그렇습니다. 당초 저희 측 요구대로 경매 입찰가를 제한받은 대기업들이 2천억 이상의 금액을 써내지 못한 까닭에 저희 예상을 뚫고 입찰에 참가한 강지혁이 낙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현재 강지혁 측의 부지개발 진행 상황은, 씨마르사가 시행사로서 연말까지 시공사 공고모집을......”
“후우... 씨마르사가 시행사로, 시공사 선정은 연말까지라...”
그렇게 평창과 더불어 자신의 계획들 가운데 가장 노른자라고 볼 수 있었던 한남동 외인 아파트 부지 경매에서 낙찰 실패의 쓰디쓴 결과를 받아들게 된 것도 강지혁 때문이었다는 것을 되새긴 탓일까.
그저 애써 분노를 삼키려는 듯 붉어진 얼굴만이 사내의 속내를 드러낼 뿐 사내의 입에서는 더 이상 고함과 같은 거친 소리들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평창 쪽 일 마무리 확실히 해. 그것까지 어긋난다... 그럼 어긋난 건 그 일만이 아니라는 거... 너희들 모가지도 어긋날 거라는 거 명심해.”
“네, 네! 명심하겠습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 그런데...”
하지만 그런 사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사내의 편이 아니었다.
“넌 또 뭐야?”
“그... 개막식과 관련해서 차질이...”
“차질?”
다시 한 번 일의 중요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강조하자마자 들려온 차질이라는 단어가 사내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평창.
한남동 외인 아파트 부지와 함께 노른자 계획으로 여겨지던 평창 계획이 있었기에 사내는 연이은 계획 실패에도 화를 참을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평창과 관련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말은 사내의 역린을 건드린 것과 같다 볼 수 있었다.
하물며 계획의 90%이상이 마무리되어 이미 성공했다 여겨졌던 평창 쪽에서 차질이 생겼다고 하니 오죽할까.
“애국가와 축하 공연을 위한 가수 섭외에 차질이...”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해? 그딴 걸 네 선에서 해결 못해서 지금 나한테...”
“그것이 아니라... 여론도 그렇고 개막식 연출 담당자도 강지혁을...”
“뭐?”
“아무래도 나라를 대표할 만한 가수로는 강지혁이 제격이라는...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화제성을 불러 모아 대회 흥행뿐만 아니라...... 그런데 강지혁 측이 이 제안을 거절하는 바람에 개막식 연출 담당자가 지속적으로 강지혁 섭외에 보다 지원을 해줄 것을 요구......”
“강지혁... 강지혁...”
또다시 등장한 강지혁이라는 세 글자에 사내의 입이 그 세 글자 이외의 것을 읊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최근 진행된 거의 모든 계획에 강지혁이 걸림돌로 작용한 만큼, 이제는 강지혁이 계획의 장애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은 그다지 놀랄 만한 얘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남동 외인부지는 포기한다...”
“예, 예? 아... 예, 알겠습니다.”
“아레나 사업은 JJ E&M, 호텔 백제 쪽으로 접촉방향을 바꾸도록 하고. 평창 개막식은... 계속해서 강지혁 쪽으로 접촉해.”
“예, 예! 예, 알겠습니다!”
“단.”
“예!”
“개막식은 우리 측에서 접촉하는 게 아니라, 아니다. 그쪽은 내가 맡도록 하지. 그러니까, 별도 지시 있을 때까지 신경 끄도록. 아무래도 프리패스가 나서는 게 여러모로 효과가 좋을 테니까. 하아...”
그래서 그는 언제나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무기를 꺼내들게 되었다. 자신의 말을 아주 잘 듣는, 무슨 요구를 해도 도리어 자신의 칭찬을 받기 위해 간이며 쓸개까지 전부 빼다 줄 프리패스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이보다 든든하게 느껴졌으니까.
*
“웬일로 내 저나 바닫네?”
어째서 통화 버튼을 누른 것일까.
누구의 전화번호인지 모르지 않았고 받아서는 안 된다고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어째서 통화버튼을 누른 것인지,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너 지짜 나쁘다. 나빠. 어떠케 그렇게 딱, 딱! 열라글 끄너버리냐?”
하지만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두 눈이 흐릿해진 자신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멈칫하고 말았다.
“야! 저나 끈치 마. 너 지금 저놔 끄느려고 했찌? 나 다 알아! 다 안다고!”
애써 부정하려고 했던, 외면하려고 했던 사실과 마주하게 된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모든 감정들이 더욱더 선명해지고 짙어진다는 점에서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으니까.
“미안... 미안...”
그렇게 술에 취한 듯 엉망인 발음과 더불어 눈물의 흔적이 물씬 풍겨져 나오는 목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녀는 핸드폰을 자신의 귀에 더욱 가까이 붙였다.
“너 바께 저나할 사라미 업서서...”
그렇게 그가 자신에게 왜 전화했는지, 지금 인터넷, 오프라인 상에서 엄청난 이슈를 자아내고 있는 사태가 그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르지 않았기에 그녀는 ‘너 밖에 전화할 사람이 없다’는 사내의 말을 하나, 하나 새겨듣기 시작했다.
“웬만하면 너한테 저나안하고 테일러한테 할 텐데... 테일러가 저나를 안 반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가 너무나도 걱정됐다. 그리고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선명해지는 자신의 마음과 감정에 괜스레 서글퍼졌다.
“미안해... 저나해서 미안해...”
그렇게 자꾸 목소리 자체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자신과 더불어 그의 품이 너무나도 그리운 제 자신의 솔직한 마음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는 결코 허용될 수 없다는 점들이 더욱 사무치게 그녀를 감싸기 시작했다. 전화가 끊긴 뒤에도 한참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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