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17 2017 =========================================================================
#317
“따로따로 떨어지더라도 봄비는 하나가 되어 그대에게 기억되길 바라나봐. 새싹이 되어 포근한 그대의 사랑을 기다리나봐. Step by Step. I miss you more and more. 봄비가 내릴 때면.”
녹음된 부분을 듣다가 문득 느껴진 시선에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녀석이 문 옆에서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왔어? 왜 다리 아프게 그렇게 서있었어. 오빠한테 말하고 옆에 앉으면 되지.”
귀국할 날이기에 짐 챙기랴, 그동안 여러모로 신경써준 경호원들과 클라라에게 인사하랴 바쁠 녀석의 등장에 의아한 것도 잠시, 녀석의 초롱초롱해진 두 눈동자를 본 순간 짐작할 수 있었다. 녀석이 무슨 말을 내게 건넬지가.
“오빠 랩도 해요?”
“뭐, 내가 부를 건 아니고 이건 가이드 작업한 거야.”
“가이드? 그럼 이거 따로 누구 주려고 만든 거에요?”
“어? 응. 따로 계약한 게 있어서.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만드는 중. 뭐, 아예 랩 노래는 아니고 일부분이야. 래퍼인 애들도 있는 것 같아서 집어넣은 거라.”
괜히 가수가 아니어서 일까. 순간 녀석의 눈동자에 감도는 욕심에 웃음이 흘러 나와 버렸다. 뭐 내가 웃든 말든 녀석은 자기 할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지만. 녀석도 참.
[포근했던 봄바람이 지나가. 하나둘 꽃향기에서 멀어질 때면 너의 따스한 사랑 식어갈 까 걱정 돼. 순간 지나가버릴 너와 나의 봄이 영원할 순 없는 걸까. 봄비가 내릴 때면 우리 사랑은
새싹처럼 언제나 푸르러 질 수 있나요. 우리의 사랑이 포근했다면 이제는 더욱 뜨겁게 날 사랑해줘요......]
“제목은 ‘봄비가 내릴 때면’이야. 어때? 괜찮은 것 같아?”
그나저나 녀석의 요구 아닌 요구로 지금까지 틈틈이 녹음했던 것들을 들려주고 나니 꽤나 긴장이 되었다. 요즘 들어 가수로서의 생활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이 사실이기에 조금 소심해진 감이 없지 않았으니까.
“엄청 좋아요. 노래. 멜로디랑 가사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너무 좋구요.”
뭐, 그래도 녀석의 반응이 꽤나 좋아 단숨에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나도 참, 좋다는 말 하나에 헤벌레 해서는. 쯧.
“오빤 왜 이렇게 노래를 잘 만들어요?”
“응?”
“오빠가 마음먹으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가 뚝딱하고 나오잖아요.”
“글쎄... 애당초 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곡을 만드는 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
“그럼요?”
“난 대중들이 원하는 곡을 만든 게 아니라, 부를 사람을 위해서 곡을 만들거든. 내가 부를 때는 날 위해서, 다른 사람이 부를 곡이면 그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대화를 하다 녀석으로부터 듣게 된 뜻밖의 칭찬에 어떤 반응을 내보여야할까, 고민하다 그냥 솔직히 털어놓게 되었다. 딱히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앨범 낼 때마다 고민해. 내 노래가 사람들한테서 어필하지 못할까봐. 그 정도로 나 완전 나만을 위해서 노래 만들고 부르거든. 뭐, 그래서 신기하기도 해. 내가 하고 싶은 노래를 하는데, 사람들이 좋아해주니까.”
물론 대중들의 응원은 배우, 아이돌, 가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큰 힘이 되는, 노래나 연기에 매우 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였다.
하지만, 지금껏 나는 애당초 대중들보다 나를 우선시해 곡을 만들어왔기에 내 노래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걱정해왔었다. 물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내 노래에 감정이입이 안 되거나, 만들어낸 결과물이 마음에 안찬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이 곡도 마찬가지야. 봄과 함께 시작해서 봄이 되기 직전 끝나는 그룹에서, 내 스스로가 그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뭐,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보니까, 어느새 이런 가사를 써내려가고 있더라고.”
“헐... 설마... 오빠!”
“응?”
“그럼 오빠가 그... 시크릿 심사위원?”
“응?”
“오빠 프로젝트 데뷔 작곡가에요? Girlish Pop?”
그런데 말을 하다 보니, 녀석에게 힌트를 너무 준 것 같았다.
“어, 뭐... 그렇게 됐네?”
“헐... 대박... 이거 완전 특종 감이네요?”
녀석에게 딱히 숨길만한 얘기가 아니라 생각해서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내가 시크릿 심사위원이자, 작곡가로서 프로젝트 데뷔 시즌 2에 참가했고 앞으로도 참가할 것임을.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밝힐 생각 없어서 두 세 명만 알고 있거든. 내가 시크릿 심사위원인 거.”
“그런데 저한테는 왜?”
“그냥. 뭐, 어쩌다보니?”
“에이 그게 뭐에요.”
이거 녀석의 반응을 보건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프로젝트 데뷔 시즌 2가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만든 곡과 안무가 음원차트 1위를 달성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직접 그 붐을 느낀 이에게 듣는 것과 인터넷을 찾아본 것은 꽤나 큰 차이였으니 말이다.
“오빠가 우리한테 준 곡 있죠? 당신을 좋아해요. 그 곡 마지막 주에 밀려났었거든요. 1위곡에서. 그래서 엄청 아쉬웠었는데...”
“설마?”
“맞아요. 오빠가 프로젝트 데뷔에 준 곡에 밀렸어요. 치... 결국 오빠가 우리 1등에서 밀려나게 한 거네요? 나 진짜, 진짜 아쉬웠었는데... 진짜로...”
“어, 어? 그게... 미안. 의도한 건 아닌데...”
“히힛. 장난이에요. 장난. 오빠 귀여워.”
“뭐, 뭐?”
“그래도 나쁘지 않네요. 기분이.”
“응?”
“오빠 비밀을 내가 알게 됐다는 거, 꽤 기분 좋아요. 뭐, 그 비밀이란 게 영원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오빠가 날 믿으니까, 그래서 지금 말해준거잖아요. 맞죠?”
얼씨구. 이제는 표정까지 오묘하게 지을 줄 아는 녀석을 보니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와버렸다.
“그런데 댄스 곡이 아니네요?”
“응? 응. 그래서 아무래도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네. 그쪽에선 댄스 곡을 원할 텐데 말이야.”
“에이, 노래가 너무, 진짜 너무 좋으니까, 그런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정말?”
“그럼요. 음... 그런데 혹시 다른 곡도 있어요? 오빠?”
“어, 어? 어. 있긴 한데. 그건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서... 그래도 들어볼래?”
“네! 들려주세요!”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이 녀석아.
*
[봄비를 맞으며 내 마음도 복잡해져요. 계속 내려줘요. 이 비가 여우비일까, 두려워져요. 아직 부족해요. 금방 그칠 여우비란 걸 알지만, 그래도 계속 내리길 바라요. 그치면 안 돼요. 내 눈가에 흐르는 빗물을 들키고 싶지 않아요. 빗물에 몸이 젖어 추워지겠지만, 떨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계속 내리길 바라요. 너무 걱정 말아요. 금방 그칠 여우비니까.]
프로젝트 그룹의 시작과 끝을 생각하다보니, 이 곡을 만든 나조차도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었다. 그래서 걱정을 했었는데, 그 걱정이 막상 현실이 되자, 몸 둘 바를 모르게 되었다.
다급히 손수건을 녀석에게 건넬 뿐, 이렇다 할 제대로 된 위로를 건네지 못했으니까.
“제목은 여우비야. 조금... 걸 그룹이랑 안 맞게 노래가 너무 슬픈 것 같지? 그래서 조금 걱정,”
“아니에요. 오빠.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봄비가 내릴 때면’도 ‘여우비’도... 그리고 오빠도요.”
조금 분위기를 전환해볼까 싶어, 짐짓 망했다는 듯 이 노래에 대한 평을 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감정을 가라앉힌 녀석의 대답 가운데 뜻밖의 것도 포함되어 있어 당황을 해버렸지만 말이다.
“오빤 모르죠? 내가 오빠 왜 좋아하는지?”
“어? 응...”
나 또한 진심으로 녀석을 대하기로 마음먹은 이유 중 하나가 유진의 입에서 튀어나오려하자,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져 버렸다. 이렇게나 쉽게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본격적으로 알아보겠다고 마음먹은 지 오래지않아 훌쩍이던 녀석의 입을 통해 이를 듣게 될 것만 같았으니까.
“오빠 노래는 듣는 사람 마음을 움직여요. 내 마음을 그대로 가사에, 멜로디에 녹여낸 것처럼.”
하지만 쉽게 나온 답이라 할지라도, 그 답 자체가 간단하다거나 의미가 없다는 얘기는 아닌 듯 했다.
“첫눈에 반했다면 거짓말 같겠지만... 홍대에서 오빠 길거리 공연 처음 봤을 때부터 너무 좋았어요. 오빠가 부르는 곡의 주인공이 나인 것만 같아서 가슴도 두근두근 거렸고 무엇보다... 오빠랑 시선... 가끔 마주칠 때면 너무 떨려서 서있지도 못할 정도로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녀석이 내게 던진 대답은 꽤나 간단한 단어들로 이루어져있었다. 간단한 단어들로 이뤄진 것 치곤 꽤나 깊은 울림을 지녔지만.
“헤헤... 부끄럽다. 아무튼 일주일동안 고마웠어요. 오빠 많이 바쁜데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했구요. 그래도... 전 너무 좋았어요. 오빠랑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그럼 한국에서 봐요. 오빠.”
뭔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긴 시간도 아닐 진데, 녀석이 남기고 간 것이 마냥 적지 않았다. 그래서 녀석을 공항에 데려다 준 후 저택 오두막에 드러누운 지금까지 녀석이 남기고 간 것들을 되새기게 되었다.
“내 마음을 노래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아까 전 말부터 어젯밤 나의 마음속에서 강한 반발을 일으켰던 것들까지 전부.
*
[톱스타 K모 군 군인신분으로 퇴폐업소 다니다? 국방 홍보 원 소속 연예병사로 군 복무...... 어제 방영되었던 KTBS 시사 프로그램 “정의는 살아있다”의...... 파주 소재 퇴폐업소에서 성매매를 업을 삼는 M양과의 현장취재가 예고 동영상으로..... 다음 주 연예병사 2편에 대한 관심이 온, 오프라인을......]
두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잠깐만 기다려줄래. 미안해. 프란카.]
[응? 지? 무슨 일이야? 표정이 너무 안 좋아. 어디 아픈...]
[미안... 잠깐. 잠깐이면 되니까, 자리 좀 비켜줘. 정말 미안.]
[알겠어. 그럼 5분 뒤에... 아니 20분 뒤에 올게.]
내 트레일러로 찾아온 프란카를 차마 맨 정신으로 맞이할 자신이 없어 그녀를 돌려보낸 뒤, 기사들 하나, 하나를 살펴보았다.
[같은 소속사 동료 가수와 공개열애를 발표했던 톱스타 K모 군 퇴폐업소에서 성매매를...... 해당 소속사는 이렇다 할 발표를 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국방부 또한 갑작스럽게 터진 사태에......]
[통솔 지휘관조차 없는, 평범한 민간인처럼 생활하는 연예병사의 실태에 온, 오프라인이 뜨거운 가운데...... 예고편에 나온 K모 군이 카메라를 부수려는 듯한 행동을...... 시민들의 강한 반발에 국방부와 국방홍보원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등, KTBS ‘정의는 살아있다’ 연예병사 편의 영향력이 극도로 고조되고......]
K모 군.
누굴 의미하는 지, 모를 수가 없었다. 실명만 거론되지 않았을 뿐, 기사에 첨부된 사진들은 모자이크 하나 없이 그 누군가를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더 이상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고 내 마음이 편한 복수가 가장 최선의 복수라 생각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멍청한 새끼.”
누군가를 군대로 보내는 것으로, 누군가를 1년 남짓 남은 계약기간이나마 가수로서 살게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모든 것들에서 미련을 버리고 신경을 꺼버린 지금, 내가 바랐던 것보다 더한 논란을 제 스스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놈을 위해 나를 버린 이, 그런 놈에게 내 여자를 뺐긴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졌다.
[K모 군. 케이블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한 것으로 화려하게...... 아이돌 그룹 출신으로서 갑작스럽게 해당 그룹에서 탈퇴, 군에 입대한 것으로 대중들의 큰 의아함을 자아냈...... 본래부터 인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소식통에 의해...]
이제 또다시 누군가는 누구를 위해 버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경우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이가 아닌, 누군가를 버리는 주체도 아닌 그저 명백한 제 3자였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명백한 제 3자임에도 엉킨 인연의 실타래가 계속해서 내 눈앞을 아른거린다는 점에서 오늘 촬영에 좀처럼 집중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으니까.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조금은 서글퍼졌으니까.
============================ 작품 후기 ============================
깊고깊은...님 후원쿠폰 5 장 감사합니다!
뀨뀨꺄까님 후원쿠폰 18 장 감사합니다!
邪美男님 후원쿠폰 20 장 감사합니다!
후원쿠폰 주신분들 열심히 하겠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테블릿이랑 자판 연결부가 말썽이네요. 계속...
컴터가 빨리 와야 할텐데...
추천 선작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p.s - 표지가 제가 원하는 대로 나올 것 같아 기대 중이에요. 러프 스케치 본을 받아봤고 이번 달 마지막 주에 최종 표지 받을 텐데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