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15화 (315/502)

00315  2017  =========================================================================

#315

“저거... 경회루? 경회루 맞지?”

“저, 저건 경복궁이잖아? 허허...”

“덕수궁?”

스크린 상으로 펼쳐진 궁궐의 모습에 이진후를 비롯한 한남동 외인부지 팀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사성물산 뿐만 아니라 다른 건설사 또한 마찬가지로 맞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외부와의 단절된 형식을 기본적으로,”

“잠깐만!”

“예, 상무님.”

“그럼 무슨 성벽이라도 쌓으란 소리야?”

“그렇게까지 구체적인 형태는 공고문에 나와 있지 않지만 평창동 고급 주택 수준의 담벼락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듯합니다.”

사성물산처럼 한남동 외인아파트 부지에 상당한 공을 들였던 현진건설 김수태 상무는 좀처럼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굴러들어온, 조금 많이 큰 돌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자리를 내줘야했던 상황보다는 지금의 상황이 나을 테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기준일 뿐이었으니까.

“건물의 형태에 관해서는 한옥식 건물이었으면 좋겠다는 첨언이 달려있었고 시공 예정 건물은 총 세 채, 본채 1채와 별채 2채로 구성될 예정이며 헬기 이착륙 시설과...”

“그 넓은 부지에 고작 세 채? 거기다 헬기? 얼씨구?”

“지하 시설에 관해서도 각종 시설들을... 일단 공고에 실린 사진들을 보건대, 별채 중 한 채는 구 서울 역사나 덕수궁 석조전과 같은 근대양식으로, 나머지 별채와 본채는 한옥식으로 그리고 정원과 정자는 경회루의 양식을 원하는 것으로 추측......”

그렇게 현대판 아방궁을 만들 생각인지, 조선말 경복궁 중건 후 150년간 남한에서 지어진 적 없는 궁궐을 연상시키는 공고문에 김수태와 팀원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일순간 떠오른 의문이 김수태의 입을 열게 만들었다.

“그래서 경쟁사들은?”

“일단 한하건설에서는 관련 전문가들을 소집하는 것으로 파악 중이며 심지어 사성물산에서는 관련 중요무형문화재 가운데 이적수 대목장에게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뭐?”

그리고 이는 회의실 분위기를 다급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에 대목장이 몇 명인데?”

“총 3명이며, 숭례문 복원 건으로 횡령 재판을 받고 있는 신지추 대목장을 제외하면 현재 활동 중인 대목장은 두 명인 것으로.”

“뭐?”

“예?”

당장 시행사가 원하는 형태의 건물이 어떤 것인지가 너무나도 명확할 진데,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한 일종의 치트키와도 같은 무기가 매우 희소하다는, 그리고 유력한 경쟁사들 가운데 한 곳인 사성 물산에서 이미 이 무기를 지니려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대응은 늦은 감이 없지 않았으니까.

“공사비 8천억에 부가적인 것만 합쳐도 거의 9천억, 최대 1조짜리 공사야. 다들 알지? 주 과장! 입찰 시일이랑 첨부서류들은 어떻게 되지?”

“예, 상무님. 입찰 시일은 올해 12월 31일까지이고 첨부서류는 관련 설계도면과 가예산안......”

그렇게 현진 건설의 알짜배기 인력이 죄다 모인 특별 팀의 회의실은 밤이 깊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한하건설, 사성물산과 같은 경쟁 회사들 또한 마찬가지로 밤을 불태우고 있음을.

*

“예? 뭐라고 하셨어요?”

순간적으로 들려오는, 들려서는 안 될 단어들에 자연스레 반문하고 말았다.

[씨마르사가 시행사로서 공고한 한남동 외인 부지 사업 시공사 모집안에 현진 건설과 사성물산, 한하 건설을 포함한 국내 8개 건설사가,]

“아니요. 그거 말고요. 그 전이요.”

[총사업비 8천억, 물론 이 점은 건설사들에 대한 추가 지급금과 건설 추가금을 제외한 것이기에 실질적으로는 9천억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부지의 이용 내역으로는 본채 하나와 별채 둘 그리고 경회루를 모티브로 한 한국식 정원을 기준으로 한,]

“파, 팔천 억이요?”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두바이 왕자의 도움과 관련된 일은 꽤나 중점적인 사안이었고.

다 좋았다. 왕자와 만난 뒤, 곧바로 주한 아랍에미리트 대사관의 직원들이 관리사님과 접촉해 여러모로 신경을 써주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형식적이지만, 두바이 왕가가 아레나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는 기사들이 중동 지역과 일부 한국 언론에 개제되기 시작했으니까.

그런데 마지막으로 슬쩍 흘겨들으려 했던 한남동 외인 부지 얘기가 문제였다. 아니, 문제도 그냥 문제가 아니었다.

[예, 그렇습니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 두바이 왕자 측과 따로 얘기를 나누신 것 아니셨습니까?]

“잠시 만요. 저 전화 좀 해봐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재빨리 관리사님과의 통화를 끊고 두바이 왕자에게로 전화를 걸게 됐다. 대관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도움이라는 게 너무나도 엄청난, 내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는 점에서 설명 없인 넘어가기 힘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목소리에, 설명을 듣더라도 이와 상황을 감내하는 것은 전혀 별개라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왕가 23.4%, 국영기업 21.4%, 국가펀드 19.4% 다음으로 많은 지분인 8.4%를 주군께서, 아니 왕자님께서는 하사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왕자님께서는 본인이 지닌 12.4%지분 가운데 6.2%의 지분을 미스터 강에게 양도하시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전화를 받지 못한 왕자 대신, 너무나도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주는, 왕자의 경제 자문이라나 뭐라나, 어쨌든 전문가의 설명을 듣자니 내가 무심코 뱉었던 말의 무게감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 둘러보신 왕가 시설과 더불어 관광시설의 총 투자액은 20억 불에 달하며 이의 잠재가치를 고려한 현실 가치는 3, 40억 불 그 이상을 상회하는 만큼 왕자님께서는 미스터 강에게 6.2% 지분의 시가에 상응하는 지원과......]

그리고 무지막지한 일을 벌여놓고 나에게 지분을, 그것도 자신 지분의 절반을 뚝 뗀 6.2%라는 어마어마한 지분을 건네려한 왕자의 의도와 이를 대신한 것이 8천억에 달하는 공사비 지원이라는 점에서 기가 찼다.

[‘조언의 가치와 그로 인해 얻게 된 국왕 폐하의 신임은 값어치를 매길 수 없다.’라는 것이 왕자님의 뜻입니다. 부디 부담 따윈 받지 마시길.]

말은 잘하네. 말은 잘 해. 아니, 그런데 인간적으로 부담을 안 받게 생겼나. 나 원 참.

[지? 무슨 일이야?]

[아, 아니야. 대본 리딩 하기로 했지?]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네 트레일러에 온 거고.]

[아! 미안한데, 나 5분만 시간 줄 수 있을까? 중요한 전화라... 진짜 미안.]

대본 리딩 연습을 위해 나의 트레일러를 찾아온 프란카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잠시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심장 마비에 걸릴 것만 같았으니까. 하아.

*

[지혁 또는 지혁 씨 사후 지혁 씨의 직계자손들이 더 이상 해당 거처를 사용하지 않고 매매할 의도를 가질 시, 5왕자 측에서 이를 해당 부지 전체 시가의 50%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휴유... 왕자가 겨우 고집을 꺾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 일단 저택에 대한 모든 권리를 지혁 씨가 가지게 되는 것이고 5왕자 측에서는 그저 매매 시 우선 매입권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시가의 50%라 해봤자, 전체 부지 가격과 건물의 시가를 생각해보면 지혁 씨가 부지 매입에 썼던 돈을 상회할 것으로......]

“네, 네. 그래도 다행이네요. 솔직히 너무 부담스러웠는데, 그 정도만 해도 만족이에요. 관리사님 계약 사항 조율하느라 고생하셨어요. 그럼 나중에 또 통화해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너무나도 힘들었던 로케 촬영이 마무리되고 미국으로 향하는 지금까지 촬영은 순조롭게 이어져갔다.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10대 때는 불운이 나를 지독하게 쫒아 다닌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나보다 운이 좋은 사람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지금의 나를 온전히 운이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남들에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은 기회들이 연달아 왔다는 점에서 운의 역할은 대단했지만, 이 모든 것들을 악착같이 잡아낸 것은 나의 실력이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었으니까.

[누구라고요?]

뭐, 그래서 ‘내 사람이다’고 생각한 이들을 보다 특별하게,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관리사님과의 전화가 끊기자마자 걸려온 존으로부터의 전화에서처럼.

[유진 최. 아시는 이름입니까?]

미국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듣게 된 녀석의 이름에 순간 움찔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상상치 못한, 지금 상황에서 들을 거라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이름이었으니까.

[용기라는 거,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용기 내봤어요.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얼굴 싸매들고 엄청 후회할 테지만, 지금이 아니면 오빠는 또다시 제게서 멀어질 테니까요.]

[용기가 없어서 머뭇거렸어요. 그래서 오빠랑 점점 멀어졌죠. 뭘 해보지도 못하고. 그런데 이젠 그게 싫어요.]

[이제는 제 마음대로 하고 싶어요. 저... 이럴 자격 있다고 생각해요.]

[쪽]

[오빠가... 제가 싫다면 포기할게요... 그런데 제가 동생처럼 여겨져서... 제가 아이돌이라서 머뭇거리는 거라면 이젠 동생하기 싫어요. 오빠한테 이제... 여자이고 싶어요.]

그리고 불연 듯 떠오르는 기억들이 나를 당황케 만들었으니까.

*

“집이 공사 중이라... 많이 이상하지? 그런데... 진짜 혼자 온 거야?”

당초 묵을 예정이었던 호텔로 가지 않고 LA저택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손님이, 정확히 말하면 온다고는 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그것도 예고도 없이 온 손님을 한창 공사 중인 저택에 홀로 남겨둘 수는 없었으니까.

“미리 말 안하고 와서 죄송해요.”

“아니야. 온다고 했으니까. 오빠가 신경을 못 쓰고 있었네. 일단 여기에 짐 풀어. 이래보여도 있을 건 다 있으니까, 지내는 데 불편한 건 없을 거야.”

그래도 다행인 것은 LA 저택 확장 공사가 꽤나 진전된 상태라는 점이었다. 뭐 나무들과 오두막 부근은 아직 손을 대지 않은 듯 했지만 나머지 부분은 거의 완성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나름 볼만 했는지라 걱정을 한층 덜게 되었다.

“오빠 요즘 바빠요? 다른 활동 없는 걸로 되어 있어서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응? 아! 그게... 오빠가 지금 따로 하는 일이 있어서.”

“아... 그럼 오빠 바쁘신데 괜히...”

“아니야. 앞으로 일주일 정도는 쉬는 날이라서 딱히 바쁘진 않아. 그나저나 피곤하진 않아? 비행시간 길어서 피곤했을 텐데.”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녀석의 얼굴을 보니,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처음 봤을 때의 앳된 모습들이 꽤나 희석된 탓일까. 녀석에게는 제법 여자다운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아니요. 괜찮아요. 오빠 얼굴 봤으니까요.”

“어, 어? 어... 그래...”

그것도 긴장을 쉽게 놓을 수 없게 만들 당돌함을 내포한 분위기가.

“배고프지 않아? 뭐라도 먹을래?”

“먹을 게 있어요? 여기 공사 중인 것 같은데...”

“여기에도 먹을 건 어느 정도 있을 거야. 잠시만 짐 풀고 쉬고 있어. 뭐라도 있는 지 확인해볼 테니까.”

괜스레 내 기분이 오묘해졌다. 주변 분위기와 더불어 녀석 답지 않게 당돌한 행동들이 그리고 이를 위해 녀석이 얼마나 큰 용기를 내고 있는지 모르지 않는 내 자신 때문에 더더욱.

*

[강지혁 아레나에 이어 한남동 외인아파트 부지까지? 버즈 두바이와 강지혁 아레나로 유명한 두바이 국영 기업 씨마르사가 2주 전 공고한 한남동 외인 부지 입찰 안이 화제를 불러 모으고...... 두바이 왕자와 강지혁의 관계에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새로운 랜드마크 등장을 예고하는 씨마르사의 공고로 인해 한남동 외인 아파트 부지 주변의 땅값이 일순간 상승하는......]

[용도제한, 고도제한, 용적률, 건폐율, 연면적 등 각종 규제가 해소된, 특혜란 특혜는 죄다 받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한남동 외인 아파트 부지가 초고층 건물, 대형 쇼핑몰 계획에서 벗어남에 따라 남산과 매봉산 인근 주민들의 걱정이 해소되어...... 씨마르사가 원하는 부지 개발안이 경복궁과 덕수궁을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전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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