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09 2017 =========================================================================
#309
“이 팀 작곡가 도대체 누구에요? 네? 쫌 알려줘요. 궁금해 죽겠네, 진짜.”
“그러게요. 우리들한테까지 숨기기 있어요? 이제 3차 경연까지 끝나가는 마당에? 아니, 이러다가 진짜 프로그램 끝나도 안 알려주는 거 아니에요? 진짜? 설마?”
3차 경연의 마지막 팀 순서가 다가오자, 트레이너들이 모여 있는 대기실에 일순간 불평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들한테는 알려줘야죠. 애들은 그렇다 쳐도.”
제작진은 생각 이상의 철두철미했다. 연습생은 물론이고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는 트레이너들에게조차 시크릿 심사위원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준식 씨, 준식 씨도 몰라요? 진짜?”
“준식 씨 혹시 혼자만 알고 있으면서 우리들한테 말 안 해주는 거 아니지? 진짜 준식씨 이미 알고 있으면서 우리들한테 시치미 뗀 거면 각오해요. 나 완전 삐질 테니까.”
“아니라니까요. 저도 몰라요. 시크릿 심사위원이 누군지.”
“시크릿 심사위원이면 이번에 Girlish Pop 작곡가 분이랑 동일인물이죠? 그 분 누구인지 아직까지 안 밝혀졌, 아니 안 알려줬어요? 제작진이?”
“음악 녹음한 것만 살짝 들어봤는데, 꽤 괜찮던데요? 안무는 못 봐서 정확한 판단은 힘들지만.”
그렇게 제작진과 상대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이준식을 추궁하기 시작하는 트레이너들의 행동에 작곡가들 또한 끼어들기 시작하자, 이러한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갔다.
뭐, 이와 관련된 분량을 어느 정도 충분히 뽑았다고 생각해서인지 이내 이들을 제지하는 담당 PD로 인해 이러한 추궁 아닌 추궁은 오래가질 못했지만 말이다.
“애들이 정말 열심히 하더라고.”
“맞아요. 개인적으로 걱정 많이 했는데, 애들이 똘똘 뭉쳐서 잘해내더라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PD의 제지도 대기실 안을 완전히 고요하게 만들지는 못한 듯 했다.
무대 준비 겸 세트 설치로 인해 2, 30분간의 휴식 시간은 그저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는지라, 트레이너들과 작곡가의 입이 마지막 무대에 관한 얘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가 작곡가가 아니어서 곡을 어떤 방향으로 소화해야하는 지 그걸 확신할 수 없으니까, 지도하는 게 조금 어렵더라고요. 애들 말로는 작곡가가 편지를 써줘서 방향 같은 건 집어줬다고는 하던데...”
“지현이랑 지나가 그래도 중심 잡게 애들 끌고 가려하는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팀 전이다보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만요.”
“그래서 지영이가 그 정도까지는 하는 거겠지. 뭐, 노래 자체가 진성으로 부르려면 굉장히 어려운 곡인데, 대신 안무 자체가 생각 외로 쉽고 노래도 가성으로 대체할 수 있게끔 작곡되어 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말이야.”
이러한 얘기의 주제는 당연하게도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있는 Girlish Pop 팀이었다.
“애들이 지영이 챙기느라 고생하긴 했을 텐데, 그래도 지영이가 노력을 하는 애니까, 아까 리허설 정도 수준이 나오는 거지. 안 그랬으면 어림도 없었을 거야. 아마.”
연습생들의 트레이닝을 전적으로 책임져왔던 트레이너들에게 있어 Girlish Pop팀은 꽤나 애착이 가는 팀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페널티를 자의 아닌 타의로 받게 된 팀이기도 하거니와, 멤버들의 평균 등수 자체가 다른 팀에 비해 낮아, 인지도 또는 실력적인 면에서 열세에 처한 팀이었기 때문이다.
“난 결과에 상관없이 Girlish 애들이 정말 마음에 들어. 물론 다른 애들도 정말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래도 Girlish 애들이 너무 열심히 하는 걸 내가 직접 봤으니까. 뭐, 그래서 더 기대되는 것도 있고.”
“나도 그런 것 같아요. 왠지... 조금 뒤쳐져있는 애들이라서 그런지, 더 신경 쓰이고 노력하는 거 보면 더 예뻐 보이고. 지영이 같은 경우는 뭐, 100% 노력이라는 걸 아니까, 더 그렇고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트레이너들은 리허설 때 상상 이상의 무대를 보여준 Girlihs Pop 멤버들에게 아끼지 않고 칭찬을 쏟아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1위 예측이 달라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대로 가면 아무래도 1등은 Lucky Star나 Pinpoint 일 것 같은데.
“뭐, 실력도 실력이지만 두 팀 다 애당초 10위권 내에서 먹어주는 애들이 많으니까. 걸 그룹이라는 게 실력만으로 뭔가 되는 게 아니잖아? 알다시피...”
“그래도 혹시 모르지. 다른 팀들도 전부 리허설 때보다 잘했잖아.
“그렇긴 한데... 임팩트가 너무 없어요. 뭔가 팍 하고 터트려야 관객들한테 각인을 시킬 수 있을 텐데. 단팥 없는 찐빵 느낌? 왠지 모르게 주저하는 것 같고 아무튼 아쉽네요. 진짜 열심히 한 것 같던데.”
“지나 부분이 클라이맥스인 것 같긴 했어요. 근데, 아무래도 일정 자체가 너무 빡빡하다보니까, 제대로 잡아주질 못했어요. 언급을 하긴 했는데... 애당초 작곡가 의도를 모르겠으니까, 나도 확신을 못하겠더라고요. 곡 자체가 꽤 난해해서.”
“어? 무대 시작하네요.”
“그러네. 무대 시작한다.”
그렇게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무대를 비추는 모니터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1위 무대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가득 담은 채.
*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거야?]
제작진 측이 제공한 뜻밖의 도움으로 본방송을 볼 수 있게 되어 침도 삼키지 못하고 TV를 바라보던 중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기껏 보고 싶다고 해서 열일 제쳐두고 두바이까지 왔더니, 나 이렇게 방치할거야?]
[뭐래.... 방치는 무슨. 오자마자 계속해서 같이 있었잖아.]
[뭐, 그렇긴 한데... 어쨌든!]
[됐고. 옷 좀 입으면 안 돼? 옷 많이 가져왔잖아.]
[어머? 설마 부끄럽다는 거야? 그렇게 나를 괴롭,]
[됐다. 말을 말아야지. 배는 안 고파? 벌써 3시인데?]
밤새 침대에서 굴러서인지 오후 3시가 될 때까지 잠에서 깨지 못하던 녀석이 다시금 내게 안겨오자, 한숨을 내쉬면서도 테일러를 밀어내지 못했다. 무책임한 내가 어디가 좋아서 이러는지는 몰라도 나를 보기위해 두바이까지 날아온 녀석의 행동이 내심 기뻤고 행복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밤새 먹은 게 너무 많아서 그런지 딱히 배고프지 않네? 뭐, 운동할 때 먹던 단백질 셰이크처럼 초코 맛은 아니었지만.]
[너! 무슨 말을 그렇게! 에휴... 배고프면 저기 테이블 위에 있는 거 먹어. 아까 나 먹을 때, 혹시 몰라서 네 것도 시켜놨어.]
[지금은 먹는 것보다 이렇게 있고 싶어.]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마냥 녀석에게만 신경을 쏟을 수는 없는 상황인지라, 내 품에 안겨있는 녀석을 제지하지는 못할 지라도 시선까지 계속해서 건넬 수만은 없었다.
[저게 뭔데 그래? 이렇게 미인이 안겨있는데, 눈이 다른 데로 돌아가?]
[미인? 어디? 미인이 어디 있는데?]
[뭐?]
[잠깐만 기다려봐. 중요한 방송이라서 그래.]
비록 녀석의 불만 섞인 투정을 듣게 됐지만, 처음부터 볼 수 없었다면 모를까, 제작진의 도움을 받아 본방송을 볼 수 있게 된 만큼 내 노래가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지금부터 프로젝트 데뷔 시즌 2! 3차 경연을 시작하겠습니다!”
[뭔데 그래? 보니까, 무슨 공연 프로그램 같은데?]
[내가 프로듀서 아니, 심사위원 겸 작곡가로 참여한 프로그램이야. 뭐, 참가해놓고 한 번도 챙겨보지는 못했지만.]
[네가 작곡가로 참가한 건 뭐 드문 일은 아니니까, 그렇다 쳐도 심사위원? 저거 오디션 프로그램이야?]
[음...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200명 중에서 10명 뽑아서 1년 동안 케이 팝 아이돌로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거야.]
그래도 다행히 나의 노래를 불러줄 팀이 경연의 가장 마지막 순서였기에 테일러에게 상황설명을 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뭐, 이마저도 안 했으면 녀석의 불만을 풀어주기 위해서 힘깨나 써야 했을 테니까.
[호오... 케이 팝 아이돌이면 그거잖아. 마이식스.]
[응. 뭐, 그런 류의 가수를 말하는 거지. 안무와 노래를 뗄레야 뗄 수 없는.]
그런데 얘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돌 가수에 대한 얘기까지 흐르게 되었다.
[전에 한번 말한 적 있지? 나도 케이 팝 아이돌이 되려고 10년 넘게 연습생 생활을 했었어. 물론 방출됐지만.]
[알아. 뭐, 나로서는 네가 왜 방출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럼 저 그룹도 댄스, 노래, 랩 이렇게 전문적으로 따로따로 맡는 파트가 있겠네? 밴드처럼 말이야.]
[뭐... 그건 그렇지.]
녀석도 참, 뭐가 그렇게도 궁금한 것인지.
물론 나와 미국에서 몇 번 얼굴을 마주하게 된 마이식스 그리고 재성 삼촌 정도가 녀석이 아는 한국 가수의 전부이고 따라서 녀석이 아이돌 가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만큼 아이돌 가수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쯤은 충분히 이해하려했다.
내가 아닌 다른 작곡가의 곡으로 무대를 펼칠 이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컸음에도 말이다.
“Pinpoint!”
하지만 이내 TV화면은 가득 메운 이들을 확인한 녀석의 의뭉스러운 눈빛에 절로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뭐야, 여자애들이잖아?]
[뭐?]
[이거, 이거 또 흘리고 다니네? 진짜 서러워서 남자친구 만들어야겠네.]
[뭔 소리야. 또. 넌 나 놀리는 게 재밌지? 응? 아주 재밌어?]
[그럼. 너 놀리는 게 재밌지. 안 재밌어? 이렇게 귀여운 모습 잘 안 보여주잖아? 너.]
화면에 나온 한 무리의 소녀들이 자신들의 무대를 펼치기 시작하자,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내 모습에 이를 접목시키는 테일러의 말은 그 정도로 뜬금없었고 또 한편으로는 대단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너도 참 대단하다. 대단해.
그래도 녀석의 눈빛에 장난이 한 아름 담겨있었고 이내 펼쳐지는 무대에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서둘러 TV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Girl Crush Pop팀의 Pinpoint! 여러분들 모두 이번 무대 잘 보셨나요?”
그리고 잠시 뒤, 나는 테일러 녀석의 휘파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휘이익! 꽤 하잖아? 제법인데?]
솔직히 나도 마음 같아선 휘파람을 부르고 싶었다. 훌륭히 무대를 소화해낸 소녀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의 소녀가 보여 주의 깊게 살펴보느라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면 말이다.
[난 저 여자애가 마음에 들어. 너무 귀여워서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저 정도면 몇 살이나 먹은 걸까? 14살? 13살?]
[20살인가, 21살일걸.]
[뭐, 뭐? 이런 씨! 이건 반칙이잖아? 저 얼굴에 21살이 말이 돼? 이건 진짜! 아시안들은 진짜 사기야, 사기!]
그렇게 아시안들의 피부가 어쨌다느니, 저 정도 동안이면 사기다느니와 같은 테일러 녀석의 열등감 폭발을 방치하면서도 나는 내심 밀려오는 뿌듯함에 미소를 짓게 되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신 만큼 정말,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꼭 열심히 해서 주신 특별 혜택이 아깝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위원님.]
아직도 제법 생생히 기억났다. 눈물을 흘리면서 내게 고맙다며, 꼭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훌쩍이던 TV속 연습생의 모습이.
그래서 대견했고 뿌듯했다. 그리 큰 걸 해준 게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아 무대에서 재능을 뽐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이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끝내 지켜낸 듯 했으니까.
[오호라. 저런 타입이 이상형 인가봐? 아주 눈을 못 떼네?]
[이상형은 아니고 사정이 있어서, 약간 관심 있는 정도? 그리고 내 타입은 저 연습생보다는 같은 소속사...]
[같은 소속사?]
[아, 아니야. 어? 다음 무대 시작한다.]
그나저나 저 녀석 뭐가 이리 궁금한 게 많아? 하마터면 녀석이 파놓은 함정에 빠질 뻔 했는지라,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다음 무대가 시작된다는 말에 다시금 시선을 TV로 돌리는 녀석의 행동에 나 또한 서둘러 TV로 시선을 돌렸지만 말이다.
*
“후우...”
“어떡해...”
세트 준비가 완료되기 직전, 무대 아래에서 수많은 관중들을 직접 바라보게 된 멤버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리고 이는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웅성 웅성]
[럭키 스타가 제일......]
[난 핀 포인트가......]
[주민지 개 예쁘네. 저거 진짜 2......]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마냥 무대와 관중들이 주는 위압감에 가만히 압도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그녀가 팀 내에서 지닌 비중이 너무나도 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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