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07화 (307/502)

00307  2017  =========================================================================

#307

[정말인가?]

나도 이제 한국뿐만이 아닌, 미국에서 가수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생활할 것이기에 동료 배우들과 관계를 쌓아가는 것에 있어서 소홀히 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체중 관리를 위해 고작 맥주 한 잔만을 들이킬 뿐이지만 말이다.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건 20대 초반 때에요. 그때 개인 교사를 통해서 1년 조금 넘게 배우고 그 후부터는 독학했고요.]

[대단하군 그래. 이거 천재인 걸? 영어 말고도 다른 언어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일어랑 중국어도 배웠어요. 영어랑 다르게 배웠던 기간도 짧고 수준도 뒤떨어지지만요.]

[그래도 그게 어딘가? 영어밖에 못하는 나도 여기 있는데.]

그래도 서로 말이 잘 통해서 다행이었다. 솔직히 말해 크리스는 할리우드 최정상급 주연 배우는 아니지만, 뮤지컬, 연극, 드라마, 영화에서 잔뼈가 굵은 연기자로서 내가 배울만한 경험이 많았고 무엇보다 유쾌한 사람이었는지라 딱히 격식을 중요시 여기는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는 확실히 감이 좋아. 물론 이런 상업 영화에 참여해본 게 손가락에 꼽을 정도지만 말이야.]

[정말요?]

그런데 대화를 나누던 중 크리스의 입에서 꽤나 놀랄 만한 얘기가 흘러나왔는지라 나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아! 자네는 아직 편집 본을 보지 못했나보군? 하긴... 자네는 계속해서 로케 촬영 중이었으니까.]

[편집 본이요?]

[나야 이틀 전에 로케 촬영 팀에 합류했지 않은가?]

아무래도 전체 촬영 기간 중 3개월의 시간을 소모한 꼴이 되었는지라, 제작진도 그렇고 출연진들도 바쁜 촬영 스케줄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래서 제작진들의 대부분은 로케 촬영지에서, 나머지 제작진들은 미국 세트장에서 각각 별도의 촬영을 전개해나갔는데, 아마 크리스가 말하는 부분은 바로 이 것인 듯 했다.

[네, 그런데요?]

[그 전에는 미국에서 촬영 중이었네. 자네도 이건 알고 있을 테고. 어쨌든 그때 자네가 로케 촬영 때 찍은 액션 씬 편집 부분을 볼 수 있었네.]

[정말요?]

[그렇다네. 아직 많은 부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기대할만한 장면들이었는지라, 내가 이렇게 자신하는 거네. 내가 처음 자네를 봤을 때, 연기력에 대해서 그다지 걱정하지 않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고.]

물론 우리 영화가 기존의 액션 영화와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비록 크리스처럼 편집 본을 보지는 못했지만, 촬영 직후 카메라 모니터링을 할 때면 기존 액션 영화와의 차별 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도 한번 봐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지금은 무리겠죠?]

[아마도 그럴 것 같네. 내가 봤던 것도 이번 로케에서 처음으로 촬영했던 부분이었으니 말이야. 뭐, 자네가 따로 부탁하면 영상을 보내줄 수는 있겠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이런 점에 있어서 할리우드는 꽤나 엄격하거든. 전달과정에서 자칫 잘못해서 영상이 유출되면... 파장이 얼마나 클지는 내가 딱히 말 안해도 알겠지?]

[뭐, 그렇겠네요...]

[어차피 러시아에서 로케 촬영이 마무리되면 미국에서 촬영이 진행될 테니, 그때까지만 참게. 어차피 한 달도 남지 않았으니 말이네.]

그래도 못내 아쉬웠다. 내가 최선을 다해 연출한 신들이 어떤 결과물이 되어있을지, 도대체 어떻게 편집을 했기에 크리스가 이번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저렇게 대놓고 드러내는지가 내 궁금증을 자극시켰으니까.

아, 궁금하다, 궁금해.

[스티키 양은 안 오는 건가요?]

[응? 아! 그러고 보니, 스티키가 보이지 않는군. 샤워하고 내려온다 했는데, 말이야.]

더 이상 편집 본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면 지금 가슴에 남아있는 아쉬움을 떨쳐낼 수 없을 것 같아, 다른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뭐, 때마침 지금 술자리를 같이 하기로 했던 파밀라 스티키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지라, 그녀의 행방이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제가 조금 늦었죠? 죄송해요.]

그런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그녀와 관련된 얘기를 꺼내자마자 파밀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꽤나 차려입은 차림새로 말이다.

[와우! 이게 누군가!]

[에이, 왜 그래요.]

술이 주가 아닌, 이번 인연을 통해 조금 더 깊은 관계가 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 만큼 몸에 착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파밀라의 모습은 확실히 놀랄 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어색한 웃음으로 그녀를 맞이하게 되었다.

[내가 스티키를 안지 몇 년 됐지만, 이런 모습을 보는 건 거의 처음인 것 같은데?]

[그건 오웬 앞에서 이렇게 입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안 그런가요? 강?]

[네? 아, 뭐... 하하...]

물론 그녀와 예전 작품에서 만났던 적이 있다던 크리스는 꽤나 넉살스럽게 그녀를 맞이했지만 말이다.

[이거 내가 자리를 비켜줘야 할 것 같은데? 하하!]

[에이, 무슨 소리에요. 오웬씨.]

[뭐, 비켜주면 좋고요.]

솔직히 눈 호강은 됐다. 영화 배역 상 그다지 중요한 역할이 아닐뿐더러, 섹스어필을 담당하는 역할도 아닌지라 이런 몸매를 지녔을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더더욱.

[좋을 때군. 좋을 때야.]

[아니, 저기...]

[젋을 때는 즐기는 거라네, 청년!]

하지만 상당히 차려입고 나온 그녀 때문에 조금은 불편해졌다. 그저 동료 배우끼리 친목 교류 명목으로 이 자리를 만들었을 진데, 그녀의 매혹적인 눈빛이 이를 가볍지 않은 자리로 만들 것만 같았으니까.

[다만, 아름다운 장미는 가시가 있으니 조심해야겠지만 말이야.]

[오웬씨. 잠시만...]

[자네가 맥주 한 잔을 마실 동안 줄곧 위스키를 들이켰더니, 머리가 어지럽군. 그럼 미국에서 보세. 자네와 겹치는 촬영은 이제 없겠지만, 그래도 세트장 내에서 간혹 얼굴이라도 마주칠 수 있을 테니.]

아름다운 장미는 가시가 있다는 말을 내게 슬쩍 건넨 뒤, 파밀라와 내게 작별 인사를 하며 자리를 비켜주는 크리스의 행동에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아니, 상황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이건 누가 봐도, 짠 것 같잖아?

[정말 팬이에요. 가수로서도 그리고 배우로서도.]

[아! 감사합니다.]

[솔직히 배우로서는 잘 몰랐는데, 이번에 한 신이지만 같이 촬영하면서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어요. 배우로서 열정도 있고 호흡도 잘 맞아서 같이 계속 연기하고 싶다... 라는 생각 자주 들었었거든요.]

그녀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관없이 꽤나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앉더니, 위스키 한 잔을 주문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나와의 대화를 이어감에 주저함이나 머뭇거림은 없었고 말이다.

뭐, 어쩔 수 없이 약간의 불편함을 감내해야만 했다.

[저랑 단 둘이 있는 게 불편한가요?]

물론 그 감내라는 것이 여자의 직감까진 피하질 못했지만.

[네? 아니요. 그건 아닌데, 음... 보는 눈들이 없지 않으니까요.]

조금은 찝찝한 속내를 겉으로 티낼 생각까진 없었는지라 애써 표정관리를 했었는데, 단숨에 이를 집어내는 그녀를 보며 조금은 놀랐다. 사실 얼굴을 약간 찌푸리긴 했어도 극히 짧은 순간이었고 이를 제외하면 꽤나 밝은 얼굴로 그녀를 마주보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음... 그것 때문만은 아닌 듯 한데...?]

[네?]

[뭔가...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요? 주변시선 때문이 아니라, 나를?]

[그게... 사실 스티키가 이렇게 입고 올 줄 몰라서요. 저는 그저 가벼운 술 자리인줄 알고...]

[이 옷차림이 마음에 안 드나요? 나 나름대로 챙겨 입고 온 건데... 흠...]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음...]

[조금 자존심 상하네요?]

어떻게 된 게, 본인에게 넘어오지 않으면 죄다 자존심이 상하는 건지. 테일러도 그렇고 칼리도 그렇고 본인의 매력에 대한 묘한 자부심 겸 자존심이 있어 고생 꽤나 했었는데, 이제 보니 이런 성향은 미국 여자들의 전유물인가보다. 아니면 모든 여자들의 전유물이던가.

[오해하지 마세요. 스티키가 아름답지 않다거나, 매력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주변 눈들이...]

[그럼 자리만 바뀌면 상관없다는 얘기네요?]

[네?]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곳에서 얘기할래요?]

얼씨구. 하아. 여기서도 동네북이네. 동네북.

*

[아시안들은 원래 다 그런 건가요?]

[네? 그게 무슨...]

[자존심이 조금 상하긴 하지만... 아니 솔직히 퇴짜 맞은 것 같아서 부끄럽지만. 그래도 그만큼 매력적인 사람이니까, 오늘은 가벼운 술자리로 만족할게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면에 있어서 보다 솔직하고 주저함, 머뭇거림이 없다. 바로 이 점이 테일러, 켈리 그리고 파밀라가 다른 여자들과 다른 점이었다.

[액션 연기는 언제 그렇게 배운 거 에요?]

[북미, 남미, 유럽 쪽에서는 가수로만 알려져 있지만, 아시아 쪽에서는 배우로서도 활동하고 있어요. 뭐, 액션 연기는 한국에서 찍었던 작품 때문에 처음 배우게 됐고 이번 작품 오디션 준비 때문에 더욱 본격적으로 열심히 하게 된 거고요.]

[어머! 진짜요? 나, 정말 강의 팬인데, 배우로 활동하는 것까진 몰랐어요. 출연했던 작품이름 알려줄 수 있어요? 시간 될 때, 챙겨볼게요. 꼭.]

그래서 솔직히 끌렸다. 연인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의 나는 매력 있는 여성과의 잠자리를 거절할 만큼의 순둥이도 아니었으니까.

[안아 줄래 정말 좋아해요. 코난 쇼에서 불렀던 그 곡이요.]

[다음에 만나게 되면, 여건이 된다면 불러줄게요.]

[정말요? 그럼 꼭 만들어야겠네요. 다음에 만날 일을.]

[네? 아, 네. 하하...]

더군다나, 나의 팬이라고 했던 말들이 예의상 한 말이 아니었는지 나의 노래들에 대해서 나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점부터 가수뿐만 아니라 이 작품 이전에 연기자로서도 활동했다는 점 등에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으니 오죽할까.

[802A에요. 마음 바뀌었으면... 와도 돼요. 나로서는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아! 그리고 다음에 봤을 땐 파밀라라고 불러줘요. 성 대신에 이름으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노골적인 대시를 웃으며 어영부영 넘겨버렸다. 노골적으로 내게 몸을 기대어오며 섹스어필을 해오는 그녀의 행동들이 싫지 않았고 내 마음도 알게 모르게 그녀의 유혹에 응하려했지만 그러기엔 마음속에 걸려있는 파편 조각들이 너무나도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공항으로 내일 오전 11시에 두바이로 갈 예정이에요. 차질 없게 준비해주세요.”

방에 들어와 샤워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침대에 누워버렸다.

하아. 파밀라의 몸에서 느껴지던 매혹적인 향수 냄새가 어느새 내게도 흔적을 남긴 것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는지라 다른 것들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네, 네. 승무원분들도 그렇고 미리 오셔서 면세점 쇼핑하고 계셔도 상관없어요. 11시에 이륙할 수 있게 끔만 준비하시면, 네, 네. 그럼 그렇게 하고 이만 끊을게요. 내일 봬요.”

그래서 서둘러 전용기 기장 분과의 통화를 마무리 한 채 두 눈을 감아버렸다.

파밀라의 대시를 못 이기는 척 받았어야 했을까.

170cm의 큰 키에 날씬하고 매끈한 다리와 볼륨감 그리고 남자를 매혹시킬만한 매력들을 지닌 파밀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지금쯤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무엇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을까. 파밀라의 대시는 나에 대한 호감을 표시한 것이지만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부담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그저 즐기면 됐고 앞으로도 이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테니 나로서는 전혀 손해볼일 없는 제안이었으니까.

확실히 이건 조금 이상했다. 이런 관계를 꺼려하는 것이 본래의 나였다면, 테일러와 칼리 켈로스와의 섹스는 변해버린 내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아. 모르겠다. 파밀라가 섹스를 꺼릴 만큼 매력이 없는 여자도 아닌데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파밀라가 아닌 테일러였다면 오늘 잠자리를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중적인 결론이 어째서 도출되는지가.

[전화 일부러 안 받는 것 같아서 더 이상 안 할게. 그동안 고마웠다. 진짜 너무 많이. 그리고... 많이 미안했어.]

어느새 핸드폰 액정이 익숙한 누군가에게 보냈던 마지막 톡을 비췄지만, 이내 핸드폰을 소파 저편으로 던져버렸다.

테일러는 되고 파밀라는 꺼려지는 지는 내 심정이, 누군가가 문득 떠오르는 지금 내 머릿속이 정작 내 자신도 이해가 가질 않았고 혼자 있는 것만 같은 외로움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으니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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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몬드님 왕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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