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306화 (306/502)

00306  2017  =========================================================================

#306

“그게... 그 분 덕분에 나 진짜 편하게 이 프로그램 할 수 있었거든. 그래서 혜택 주신 만큼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했는데...”

털털하고 넉살좋은 이미지. 김여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조금이라도 깊게 알고 있는 이들은 이 단어들이 정의할 수 있는 김여정은 고작해야 절반뿐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라났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구김 없이 넓은 마음과 깊은 이해심, 이타심 등을 지녀 남자는 물론 여자들에게도 인기 있는 존재가 그녀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그녀의 마음속에 그늘이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나... Girlish Pop 선택 안했어. 왠지 모르게 내 스타일이랑 잘 안 맞는 것 같았고... 페널티 받기 싫었거든. 그게 의미 있든, 의미 없든지 간에.”

그래서인지, 어느새 우희와 지영이 다가와 그녀를 껴안아주었다.

“에이, 언니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응?”

다른 사람이었다면 신경도 쓰지 않을 일에 마음의 가책을 느끼는 여정의 모습에서, 최근 여정의 표정을 어둡게 만들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고 이것 때문에 그녀가 얼마나 속앓이를 했을지, 익히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언니처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어디있다고요!”

“언니 1차 평가 때도 1등! 2차 평가 때도 1등이었는데! 언니가 그러면 나는 뭐가 돼요? 안 그래요 지영 언니?”

“맞아 여정아. 심사위원분도 네가 혜택 받은 만큼 열심히 하길 바라시지, 굳이 자기 곡을 꼭 선택하길 바라시진 않을 거야.”

“정말요?”

처음이 아니었다. 이렇게 간혹 가다 마음 쓰이는 일 때문에 표정이 어두워져 혼자 끙끙 앓을 때가되면 거의 항상 그녀들이 옆에서 자신을 위로해줬으니까.

“그럼! 그러니까, 지금 네가 선택한 곡으로 더 열심히 하면 돼!”

“고마워요. 언니. 그리고 우희야. 허허...”

그렇게 그녀는 가슴 속에 가라앉아 있던 웃음을 겉으로 내보였다.

“아이 참! 언니 그런 웃음 좀 그만 하면 안 돼요?”

“맞아 여정아. 너 그러니까, 수현이도 그렇고 다른 애들이 전부 너보고 아재라고 그러지...”

아직 마음속에 걸려있는 파편 조각이 채 사라지지 않았지만, 자신을 위해 애써주는 지영과 우희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3차 경연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다른 곳에 신경을 써서는 안 될 테니까.

*

“지나 언니. 언니는 왜 이곡 선택했어?”

“응?”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지현의 목소리에 지나의 입에서 무의식적인 반문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런 지나의 반응에도 지현의 말을 계속되었다. 자신 또한 언니인 지나와 마찬가지로 주변의 의아함을 사로잡을 만한 선택을 했지만, 그녀 또한 지금까지 다른 연습생들처럼 지나의 그러한 선택의 이유가 궁금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언니는 그래도 시크릿 심사위원 보컬 순위에서 2등도 하고 1차, 2차 경연에서도 20등 안에는 꾸준히 들었잖아. 그러니까, 다른 곡도 선택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우리 팀에 온 이유가 궁금해서...”

하지만 이는 지나 또한 마찬가지인 듯 했다.

“치... 그러는 넌?”

“응? 나?”

“너 1차 경연 때도 그렇고 2차 경연 때도 10위 안에 들었었잖아. 넌 나보다 더 네가 원하는 곡 뭐든지 간에 선택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이곡을 선택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느끼기에 자신도 자신이지만, 정작 질문을 던진 지현의 선택이야말로 주변의 의아함을 사로잡을 만한 선택이었으니까.

170cm가 넘는 키, 긴 생머리에 길쭉한 다리, 예쁘게 생긴 얼굴 등 배우라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외모,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양쪽 모두에서 자신의 몫을 해내는 실력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힘입은 최상위권 등수.

동생이지만 절로 부러워 간혹 시샘까지 들 정도로 예쁜 지현이기에, 비록 이 얘기의 서두를 지현이 꺼냈다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지나 또한 궁금함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냥... 이 곡 가사가 마음에 들었어.”

그런 지나의 눈빛이 꽤나 강렬해서일까. 기다리던 대답대신 도리어 질문을 받게 되어 일순간 멈칫했던 지현이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페널티가 있다고는 하는데, 페널티인 것 같지도 않고 찝찝하긴 해도 왠지 모르게 끌려서...”

“나도 마찬가지야. 멜로디는 밝은 편인데 가사는 너무 슬퍼서... 꽤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도 왜 이렇게 끌리는 건지 몰랐었는데 오늘 작곡가님 편지 내용 보니까 조금 알겠더라.”

“응, 맞아. 안 그래도 예전부터 연습할 때 조금 울컥하긴 했는데”

이내 들려온 질문에 대한 답이 예상한바 그대로였는지 지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지현의 말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동안 수많은 연습생들의 의아함 섞인 시선을 받아야했던 그녀들이지만 정작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명확히 알지 못해 그저 Girlish Pop 곡이 끌렸다는 말만 대답으로 꺼낼 수밖에 없었는데, 오늘 그 이유를 명확히 해줄 순간을 맞이했었기 때문이다.

“노래가 들으면 들을수록 뭔가 끌리는 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안무랑 같이 무대에 섰을 때는 또 다른 것 같아요. 확실히 Girlish 느낌이 물씬 풍겨져서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처음엔 멜로디랑 가사가 잘 어울리지 못한 것 같았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까 너무 좋은 것 같아. 그러니까, 우리 잘해보자.”

그렇게 김지현과 유지나는 아직 연습실에 도착하지 않은 팀원들을 기다리며 한동안 계속해서 3차 경연과 자신들이 부를 노래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등수도 등수거니와, 실력도 팀원들 중에서 수위권에 해당하는 그녀들이기에 일주일 정도를 앞두고 있는 3차 경연에서 팀원들을 이끌 책임이 보다 많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홍삼 스틱 하나 빨까요?”

“그럴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진지한 얘기만 그녀들이 나눈 것은 아니었다.

“근데 도대체 누굴까?”

“네?”

홍삼 스틱 한 개와 마카롱 한 개씩을 먹으며 행복한 웃음을 짓던 지현의 표정이 일순간 호기심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질문을 던진 지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시크릿 심사위원 말이야.”

“아!”

작곡가 선물 공개 시간을 기점으로 그녀들을 포함한 Girlish Pop 팀원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다른 연습생들까지 전부 시크릿 심사위원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보다 깊고 짙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게 시크릿 심사위원이라고 해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방송 상에서도 엄청 비중 있게 다뤄졌구... 이렇게 작곡가로 참가까지 했잖아.”

물론 그 전부터 연습생들 사이에서 시크릿 심사위원에 대한 관심을 꽤나 높은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그램의 초반부에서 전혀 영향력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시크릿 심사위원이 의외로 방송 상에서 꽤나 비중 있게 다뤄졌고 그로 인해 수혜를 받은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쎄... 유명한 작곡가 아닐까? 그것도 해외에서 활동하는?”

“음... 누군지 잘 모르겠다. 근데 나이 엄청 많이 먹었을 것 같아. 그치 않아? 언니?”

“맞아. 편지 내용 보니까, 젊은 것 같진 않았어.”

어쨌든 이제는 그 시크릿 심사위원이 Girlish Pop 장르 팀의 작곡가로서 그녀들에게 선물까지 준 장본인이 되어서인지, 지현과 지나의 표정에는 한 아름의 호기심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편지도 그렇고 선물도 너무 좋았어요. 덕분에 자신감도 얻고... 열심히 하면 뭔가 이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헤헤...”

뭐, 그래봤자 호기심에 대한 답을 얻을 수는 없을 테지만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야. 음... 그럼 우리 그런 의미에서 먼저 연습 한번 하고 있을까?”

“응, 언니!”

그렇게 그녀들은 한동안 이어졌던 수다를 마무리 한 채 연습실의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자신들을 찍고 있던 고정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그리고 이를 통해 소녀들의 대화를 듣게 된 누군가가 남모를 미소를 짓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

[삐이잉!]

[삐이잉!]

거리를 가득 채운 자동차 경적 소리에 그들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췄다. 그리고 이내 정전이라도 된 듯 암흑이 되어버린 실내 전경에 그들의 눈동자가 불안함을 내포하기 시작했다.

[지지직]

[지지직]

“Hurry! Something is wrong.”

“...... okay! Let's go.”

그들이 속해 있는 집단의 베이스가 정전이 됐다는 것은 단순히 넘길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무전기가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를 그들에게 전달하려 했지만, 이는 이미 그들의 신경 밖일 뿐이었다.

[탈칵]

하지만 그 순간 때마침 들려오는 낯선 소리에 문서들을 가방에 급하게 쑤셔 넣고 방을 빠져나가려던 그들의 행동은 제지를 당하고야 말았다.

“It's ji. isn't it?”

갑작스런 경적 소리, 정전 그리고 이내 들려오는 낯선 인기척.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을 지금까지 두렵게 만든 이의 것이라는 점에서 린다 랜디의 목소리는 쉴 새 없이 떨려오고 있었다.

“You move, you die.”

“Ji...”

그리고 이는 이내 권총을 빼들고 입구 쪽으로 조심스럽게 향하던 다니엘 콕스의 뒤통수에 권총의 끄트머리가 대어지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Ji, calm down... wait, wait!”

CIA 역사상 최고의 요원이라 평가받을 정도로 거의 모든 관련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닌 그의 등장에 장내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얼어붙게 되었다. 제 아무리 CIA 파리 지국장일지라도 머리에 권총을 댄 채로 그것도 CIA 최고의 요원의 손에 의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여유를 부릴 수는 없을 테니까.

“What the hell is wrong with you?”

“I don't remember. What happened!”

“What?"

그렇게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를 묻는 사내의 재촉으로 인해 다니엘 콕스의 행동은 약간의 자유를 얻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 여전히 사내의 총구는 그를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Cut! Excellent!”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낯선 이의 목소리에 긴장감과 두려움 그리고 급박함이 뒤죽박죽 섞여있던 분위기가 순간 사라져버렸다.

[좋았어!]

만족스럽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감독의 눈빛에 지혁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는 한 씬을 공유했던 다른 두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잠깐만 휴식하고 구도 바꿔서 다시 촬영 들어갑니다!]

작품 자체가 주인공인 지혁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에 로케 촬영이라고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로케 촬영 후 프란카 프렌테 이외의 배우를 만난 것이 사실상 지난 이틀 동안이 전부였는지라 지혁으로서는 나름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프란카 프렌테와 상당한 친분을 쌓고 연기 호흡도 맞춰보았지만, 이것이 다른 베테랑 배우들과의 호흡에서, 그것도 영어권에서 자라지 않아 영어 대사가 불안할 수밖에 없는 초짜 배우가 잘 해낼 수 있는 지를 장담해주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연기가 아주 매끄러웠어. 대단한 걸?]

[네? 아,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난 이틀 동안의 촬영에서 그랬듯 지금 그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CIA 파리 지국장 다니엘 콕스 역의 크리스 오웬의 행동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런 지혁의 우려와 걱정은 다소 지나친 것이 된 듯 했다.

[감정에 몰입하는 게 대단한 것 같은데? 덕분에 상대역들도 꽤나 편하겠어. 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번 씬을 찍었으니까 말이야.]

[저야 말로 오웬 씨와 연기하는 동안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굳이 몰입하려 하지 않아도 내가 작품 속 인물이 되는 듯한 느낌을요.]

[그럼 저랑은요?]

[네? 아! 물론 스티키 양과의 연기 호흡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애당초 처음 만남 때부터 자신의 팬이라고 다가오는 크리스 오웬과 파밀라 스티키로 인해 첫 단추를 잘 꿰어서인지, 연기 호흡 또한 상당히 잘 맞았는지라 지혁으로서는 다소 깊었던 긴장감과 약간의 두려움을 씻은 듯이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처럼 비교적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고 말이다.

[오늘 끝나고 한 잔 어때?]

[네?]

[오늘이 로케 촬영 마지막 날인데, 그냥 넘어갈 수야 없지. 안 그런가? 뭐, 나는 러시아에서 이삼일 찍은 게 전부지만, ‘지’는 두 달 가까이 찍었으니 기념해야지. 상반기 로케 일정이 끝났으니 말이야. 스티키? 스티키도 갈거지?]

[뭐, 저도 좋아요. 프렌테까지 데리고 가면 되겠네요. 어차피 지금 쯤 호텔에 박혀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갑작스런 크리스 오웬의 술 한 잔 제안에 그들의 사이는 보다 친밀감을 더해갔다.

[음... 알겠어요. 그럼 촬영 끝나고 나서 어디서 볼까요.]

그리고 지혁 또한 체중 관리를 하고 있는 입장이었지만 크리스 오웬이 건넨 술 제안이 단순히 술 한 잔 하자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다고 생각했기에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사람들 눈도 있으니, 호텔 바가 어떻,]

[자자! 촬영 뒤풀이는 이번 씬 마무리하고 나서 얘기하시고! 3번 구도에서 다시 촬영 시작합니다!]

다만, 마치 그런 그들을 시샘하듯 서둘러 촬영 재개를 선언하는 다이그 리넨만 감독으로 인해 술 한 잔 제안의 얘기를 마무리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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