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01 2017 =========================================================================
#301
“나를 잊었더라도 거리를 걷다보면 생각나겠죠. 카페에서 문득 생각나겠죠. 내 노래가 들릴 때면. 나를 잊었더라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아도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도 생각날 거 에요. 내 노래가 들릴 때면.”
생각 외로 작업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애당초 이 노래를 이 목적으로 쓰려고 만들지 않았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곡을 선택한 것은, 내 노래를 부를 이에게 가장 알맞은 곡을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나를 잊었더라도 이제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아도 나와의 사랑을 어린 시절의 치기로 여겨도 행복을 빌어줄게요. 이젠 안녕.”
최근 있었던 한국에서의 논란 후, 저절로 떠오른 악상을 풀어놓은 곡이 바로 이 곡이었다. 내게 무한에 가까운 사랑을 보내주다가도 때로는 한없이 깊은 허탈함과 원망을 안겨다준 이들을 떠올리며 미국으로 가기 전 만든 곡이 바로 이 곡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이 노래의 가사를 입에 담을 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이들이 떠올랐다. 지금은 나를 비난하지만,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내 노래를 들을 때면, 다른 이의 팬이 됐더라도 결국은 나를 떠올릴 것이라는 원망 섞인 저주 아닌 저주가 한시적인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하게 될 이들에게도 어느 정도 어울릴 만한 감정으로 탈바꿈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는데, 조금 신나는 곡인 것 같네?]
[조금?]
[멜로디는 신나는 것 같은데... 노래를 부르는 네 표정이랑 왠지 모르게... 조금 슬픈 기분이 드는 것 같아. 멜로디는 전혀 아닌 데 말이야.]
물론 방금 전 프란카의 말마따나, 작곡 당시의 복잡한 생각 때문이어서인지 이 곡이 지닌 양면성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
뭐, 멜로디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멜로디와 배치되는 가사 내용이 가져다주는 상반된 분위기가 문제라면 문제였을 뿐.
[밝은 멜로디 그리고 이에 상반된 내면을 표현하는 게 이 곡의 포인트야. 안무도 이 포인트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거고. 아! 케이 팝 아이돌은 잘 모른다고 했지?]
[뭐, 어련히 잘하려고. 그나저나 하루뿐인 휴식을 일로 몽땅 보내는 거. 괜찮겠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 이전에, 재밌어.]
[재밌다고?]
어쨌든 작업 환경도 그렇고 작업을 해야 하는 곡의 난이도 또한 상당했지만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내 모습에 이틀뿐인 휴식의 첫 아침을 맞이한 프란카의 이해 안 간다는 표정을 봐야했지만 재밌는 걸, 재미없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럼 나는 먼저 가볼게. 가족들이 와 있어서. 내일 아침에 촬영장에서 봐!]
그렇게 독일에서 가족들이 자신을 보기 위해 와서인지 서둘러 호텔을 나서는 프란케를 간단히 배웅한 뒤, 계속해서 작업에 몰두했다.
준비기간도 충분치 않았고 의미 없이 소모해버린 3개월을 메워보려는 듯 빡빡하게 진행되는 촬영 스케줄 상, 이주 만에 받게 된 단 하루 휴식일지라도 지금이 아니면 해당 곡을 제대로 손보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까.
*
“일단 Girlish 팝 장르에 맞는 곡을 완성했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메일로 음원 보냈고요. 안무는 7, 80퍼센트 완성된 상태에서 JS 엔터 안무 팀에게 맡겨놨으니까, 이른 시일 내로 피디님에게 전달될 겁니다.”
결국 완성했다.
비록 하루뿐인 휴식의 대부분을, 정신을 차려보니 자정이 가까워졌을 정도로 작업에 열중하는 데 모조리 소모해버렸지만 그에 상응하는 성취감과 뿌듯함을 얻을 수 있어서 마음만은 날아갈 것 같았다. 실상은 침대에 털썩 드러누운 채 꼼짝도 못할 정도로 피곤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제 정체가 드러나지 않길 바라서요.”
[지금 한국에서 지혁씨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당초 예정되었던,]
“아니요. 그냥 이대로가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안무 마무리도 그 아줌마, 아니 김수정 트레이너님한테 맡기지 않았던 거고요.”
[아... 알겠습니다. 지혁 씨 뜻이 그렇다면야.]
물론 안무 부분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아쉬움은 있었다. 하지만 포인트 안무를 모두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이를 긍정적인 아쉬움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포인트 안무, 메인동작들과 달리 동작들을 연결하는 링크부분 그리고 동선부분의 창작에 있어서의 내 실력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고 이를 메워줄 수 있는 최고의 안무 팀들 중 한 곳을 이미 섭외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제가 만든 이 곡과 관련해서는 언제쯤 방송이 되나요?”
[일단 지금 1차 경연과 관련되어 방송이 나가고 있는지라, 대략... 4주 정도 뒤면 지혁 씨의 곡과 관련된 3차 경연이 방송될 것 같군요. 물론 지금 실제 연습생들의 촬영 진행과정은 2차 경연 직전이니 만큼 이 기준으로 따지면,]
“아! 방송이 언제 되는지 그것만 알면 돼요. 다른 건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요. 그럼 일단 안무도 되도록 1주 안에 완성 본을 받아보실 수 있게 말해줬으니까, 촬영에도 지장 없겠네요.”
어쨌든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으로 프로젝트 데뷔 시즌 2를 볼 수 없었는지라,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시크릿 심사위원의 존재감이 드러난 1화, 2화조차도 볼 수 없었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우선순위를 고려해본다면 아쉬웠을지 언정, 후회는 하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단 하루뿐인 휴식일 때 모든 시간을 투자해 프로젝트 데뷔에서의 내 역할을 완수한 만큼, 배우로서 촬영장 내의 모든 이들의 땀과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과 내 스스로의 연기 욕심을 간과할 수 없었고 간과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네다섯 가지의 걸 그룹 장르 곡으로 자신의 끼를 표현하는 것이 3차 경연의 주제인 만큼 해당 곡의 작곡가 또한 어느 정도 흥행의 요소로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혹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시크릿 심사위원의 경우와 같은 생각이십니까?]
“네, 당초 계획에는 어긋나지만 한국에서 저와 관련된 논란이 있은 후 2곡을 연습생 소녀들에게, 2곡을 프로젝트 그룹에게 선물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에는 이런 점들도 고려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 부분은 피디님도 충분히 고려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 맞습니다. 단지 여론이 바뀌었다보니, 혹시나 해서... 일단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창 바쁘실 텐데, 제때 곡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쨌든 당분간은 곡과 관련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한시름 놓게 되었다.
“다음 곡은 경연에 쓰일 곡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그럼 언제까지 보내드리면 될까요.”
[다음 곡은 15명의 연습생들이 최종 10명에 선발되기 전 부르게 될 예정인지라, 4주 뒤에 있을 4차 경연 촬영쯤에는 곡을 보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럼 이 곡도 경연에 쓰일 곡인가요?”
[아닙니다. 경연에 쓰인다기보다는... 마지막 15명의 연습생들은 별다른 경연 없이, 시청자들에게 합동무대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음... 어떻게 보면 경연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4차례의 경연과는 다른 점이 있는지라... 그냥 5번째 경연으로 생각하셔도 되고 아니라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지금으로부터 3주 후쯤이면 해외 로케촬영이 1차적으로 마무리되어 2차 로케촬영지인 러시아 쪽으로 이동할진데 아마도 현지 장소 협조 문제 상 적어도 삼사일의 휴식기간은 보장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간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을 거라 자신할 수 있었으니까.
“어? 그러면 일단 다음 곡은 댄스곡이 아니어도 딱히 상관은 없겠네요?”
[그렇습니다. 평가 개념이 아닌 만큼, 댄스 요소를 굳이 집어넣지 않아도 상관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오디션 프로그램이기에 댄스, 보컬 부분을 적당히 섞어 어느 정도 평가요소를 만들어야 했던 첫 번째 곡과는 달리 두 번째 곡은 댄스 부분을 포함하지 않아도 된다는 피디의 말까지 있었으니 오죽할까.
“이미 어느 정도 생각해둔 곡들이 몇 개 있어서요. 다만, 그 곡들이 댄스곡이라 하긴 조금 그래서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네요.”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다만, 방송 종영 후 프로젝트 그룹에 대한 지혁 씨의 곡들 가운데 한 곡 정도는 댄스곡으로...]
“아, 그건 물론이죠. 어차피 그때는 시간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어서요.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지혁 씨.]
그렇게 안석준 PD와 꽤나 오래 대화를 나누었다.
정체를 방송 상에 드러내지 않더라도 작곡가로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나일 진데, 얼굴을 마주보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고 이렇게 전화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아무래도 서로 할 말이라는 게 꽤나 쌓여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저 또한 연습생들이 잘 되었으면 하는 사람이어서요. 애당초 프로젝트 데뷔 시즌 2에 참가한 것도 그 때문이고요. 음... 잘 모르실 수 있겠지만, 사실 제가 프로젝트 데뷔 시즌 1에 그다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서요.”
[아!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딱히 돈이 궁한 것도 아니고, 한국 활동에 대한 미련도 그다지 없는 상태에서 정체를 숨기고서라도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피디님께서는 또 피디님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으시겠지만요.”
프로젝트 데뷔 시즌 2가 시즌 1에 비해서 꽤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 방송 초중반임에도 벌서부터 평균 시청률이 시즌 1 최고 시청률을 웃돌고 있다는 점 등 나 또한 너무 뿌듯했는지라 되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또 도움을 주고 싶었다. 다만 그 마음이 지금으로서는 행동으로 실현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일 테지만.
[이렇게 출연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저희로서는요... 그리고 기존에 1곡이었던 선물 곡도 4곡이나 선물해주시겠다는 것에서부터 여러모로 신경써주시고 있다는 것 모르지 않습니다.]
“감사해요. 저도 제 능력껏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돕도록 노력할게요. 이해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어쨌든 10년 넘는 연습생 기간이 뭐라고, 내가 꿈꾸었던 것과 동일한 꿈을 위해 과거의 나처럼 구슬땀을 흘리며 노력하고 있을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줄 수 있어 기뻤다. 피곤함에 안석준 피디와의 전화가 끊기자마자 두 눈이 저절로 감겨진 그 순간까지 계속.
*
[컷!]
[좋아, 좋아!]
단 하루뿐인 휴식기간을 곡 작업에 소모했다는 점을 후회한 것은 오래지 않아서였다.
[방금 이 부분 임기응변으로 한 거지? 좋았어. 합을 맞춰본 사안이 조금이라도 틀어지게 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지만 액션 사이, 사이에 방금 전처럼 입술을 깨문다던지 눈을 살짝 찡그린다던지 같은 애드리브는 딱히 상관없으니까, 지금처럼만 하라고? 좋아. 아주 좋았어!]
이제는 나를 대하는 게 한층 편해진 다이그 리넨만 감독의 칭찬에 뿌듯함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몸이 고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영화 자체가 현대 영화의 트렌드인 조연의 주연 화 같이 작품 내 주인공이 여럿처럼 보이는 형태가 아닌, 남자 주인공 한 명에게만 오롯이 초점이 맞춰진 작품이었기도 하거니와 그 초점의 대부분이 액션 연기라는 점도 큰 몫을 했기 때문이다.
[지! 괜찮아? 보니까, 방금 씬 4번째 구도 촬영에서부터 폼이 좀 느려진 것 같던데...]
[힘들지 않다고는 못하겠네요. 솔직히 약간 버거워요. 한 씬을 한번만 찍는 게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야 되니까요. 제가 엄살 피우는 건가요?]
[아니야, 지. 이 작품 자체가 지금껏 내가 맡아왔던 그 어떤 작품보다 액션 강도가 놓아서 그런 거니까, 그런 생각은 가당치도 않아.]
[후우... 그런 거면 다행이고요.]
역시나 지금 내가 지금 상태를 꽤나 버거워한다는 점을 스티븐은 잡아낸 듯 했다. 아무래도 수십 년간 할리우드에서 무술 감독을 해왔던 베테랑인 그에게,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액션 합 속에서 조금의 딜레이를 찾아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 일 테니 말이다.
[지! 힘들면 휴식이 필요하다고 당당히 말해. 촬영 일자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건 너의 컨디션이니까.]
[걱정 말아요. 정 힘들면 쉬고 싶다고 말 할 테니까. 뭐, 나는 이 작품 무조건 끝까지 촬영하고 싶다는 거. 스티븐도 잘 알잖아요. 내가 얼마나 이 작품에 욕심이 많은 지.]
[그 말대로 꼭 이뤄지길 바라지. 액션 연기의 합을 나누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삐끗하다가는 그 욕심은 그저 후회로만 남게 될 거야. 명심해. 지!]
물론 깊고 짙은 걱정과 우려가 단지 그의 경력과 능력 때문만은 아닌 듯 했지만.
============================ 작품 후기 ============================
WhoUR님 후원쿠폰 5 장 감사합니다.
부트님 후원쿠폰 5 장 감사합니다.
글의 호흡이 느리다, 전개가 느리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는데요...
도저히 제 글 실력으로는 단숨에 이 부분을 고치기 힘들어서 차츰 나아지기 전까진 하루 2화 연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비축분이 얼마 없어서 힘들겠지만,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다만, 동시연재를 시작했을 때는 [원고 수급->이펍파일 제작->각 플랫폼 업로드->검수 및 승인->판매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하루당 2편 연재식이 된다면 최소 14편의 비축분을 마련해야 해서요. 조금 벅찰 것 같습니다.(현재 비축분 8편 수준.) 그래서 [일일 1화 연재, 주 7일 연재] 또는 [일일2화연재 주 5일연재] 식으로 바뀔 수 있으니 양해부탁드립니다 ㅠ
.........추천 선작 코멘트 원고료쿠폰 부탁드립니다! 연참을 하면 아무래도 먼저 올린 편의 추천수가 상대적으로 적더라고요. 꼭 부탁드립니다!
[코멘트퀴즈]
지혁이 제주도 호텔 백제에서 묵었을 때마다 안내를 맡았던 이의 이름은?
[코멘트 퀴즈 선착순 정답자] - vcnpav님의 막판 뒷심이 정말 대단하시네요!
1등 :vcnpav님 3점
2등 : 사랑그사람님 2.5점
3등 : 하하하오라님 2점
4등 : silbia실비아님 1.5점
5등 : 라이몬드님 1점
6등 : Te4Rs님 0.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