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299화 (299/502)

00299  2017  =========================================================================

#299

[몸 잘 챙기고 이거 네 작은 엄마가 너 주려고 밤새 고아서 가져온 거니까, 꼭 챙겨먹고. 알겠지?]

갑작스런 작은 엄마의 세쌍둥이 소식에 태현 형을 제외한 가족들은 본디 떠나려했던 날로부터 1주일가량을 더 쉬다가 한국으로 떠났다. 아무래도 입덧이 꽤나 심한 작은 엄마였기에 안정을 취하는 게 좋겠다는, 오랜 비행은 그다지 좋을 게 못 된다는 의사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고 새롭게 부지를 사들여 정원을 만든다는 말에 작은 엄마가 흥미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로인해 나의 새로운 정원은 새롭게 맞이하게 된 동생들을 축하하기위한, 작은 엄마의 취향대로 꾸며지게 되었다. 뭐, 나야 사생활 보호 철저하고 주변시선 신경 쓰지 않을 공간이면 됐으니까.

덕분에 꽤나 큰 공사가 되어 당분간은 호텔에서 지내게 되었다. 어차피 어부지리로 참여하게 된 영화 촬영 상 그 호텔에서도 얼마 머물지 못할 테지만.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결국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되었다.

솔직히 계약절차가 이렇게 빠르게 성사될 줄은 몰랐다. 촬영 기간 동안 유지해야할 몸무게와 체형 같은 세부적이고 개인적인 내용과 더불어 트레일러의 규모와 시설 같은 한국에서의 대기실 역할을 할, 꽤나 생소한 부분까지 전부 계약서에 명시해야만 했는지라, 조금 과장을 보태 계약서는 말 그대로 웬만한 책과 같은 두께를 자랑했으니까.

그래도 존이 미리 선임해둔 변호사가 꽤나 유능했다는 점 그리고 내 자신이 이 작품에 정말 참가하고 싶었다는, 꽤나 위험했었고 촉박한 촬영일자 때문에 더욱 위험해질 수도 있는 현실을 결국 감수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듯 했다.

[미스터 강과 같은 작품을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비록 어부지리로 얻게 된 배역이지만, 꼭 잘해내고 싶다는 의지가 이 배역에 대한 욕구를 휩쓸기 시작했고 이는 곧이어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계약을 한지가 언제라고 촬영을 코앞에 두게 되었고 이내 계약서에 명시된 로케 촬영 스케줄을 점검하기 시작 했으니까.

[아무래도 촬영일자가 촉박한 관계로 삼일 뒤부터 해외 로케 촬영이 있습니다. 일단 씬 넘버 147번 파리를 시작으로, 씬 넘버 219번 독일, 씬 넘버 243번 러시아를...... 다만 씬 넘버 187번 제주 같은 경우,]

[네? 제주도?]

그런데 그렇게 로케촬영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문득 들려오는 보다 익숙한 촬영지에 순간 반문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익숙한 촬영지라는 것이 당초 오디션을 보기위해 받았던 샘플용 대본에도 나와 있지 않았던 곳이었으니까.

[미스터 강의 출연으로 대본을 소폭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시안인 미스터 강이기도 하거니와 아시아 지역에서의 프로모션 일환으로 씬 넘버 1에서부터 8까지에 해당하는 그리스 해변과 해상에서의 부분, 즉 기억을 읽게 된 주인공이......]

[아...]

미국인 CIA 요원이 기억을 잃고 난 후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이기에 아시안이라는 조건이 꽤나 불리하게 작용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나 또한 모르지 않았다. 더군다나 할리우드에서 아시안을 주인공으로 하여 제작된 영화는 거의 없다 봐도 무방했고 그 배역이 CIA 요원과 같은 폭발적인 남성미를 뽐내야하는 이라면 아예 없다 봐도 무방했으니까.

[북한 망명인사들을 처단하는 과정에서 남과 북의 대결구도를 격화시키고 이를 통해 쉐도우 측과 연계된 군수업체의 이권을...... 이 부분에 있어서 4일간의 촬영일자가 예정되어있지만 일단 주연, 주조연급 배우들 가운데 제주도를 실제로 방문할 이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영화의 첫 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인지라 촬영 스태프 극소수만이 제주도를 방문해 배경들을 찍을 것이고 나머지 미스터 강이 찍을 부분은 미국 내 촬영 시 세트장을 활용할 것......]

그래서 제작진들이 나를 대체배우로 결정했을 때는 수많은 요소들을 새롭게 고려해야했고 또 수정해야했음을 그제야 실감하게 되었다.

[로케 촬영에 관한 것들은 대부분 극비리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제작발표회가 이뤄지지 않은 점 그리고 미스터 강이 새롭게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점이 보도되지 않은 만큼, 촬영 허가절차로 인해 어느 정도 우리들의 일정이 공개는 되겠지만 극히 미비할 것이고 촬영이 계획된 곳이 애당초......]

내가 제아무리 그래미 시상식을 포함한 각종 시상식 상들을 휩쓴 세계적인 가수라 할지라도 연기자로서의 인지도는 아시아지역에 국한된 만큼 아무래도 영화의 흥행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를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아시아지역에 대한 마케팅이 필수적일 테니까.

[물론 미스터 강이 무슨 촬영을 하고 있다는 점은 대중들에게 밝혀질 것이지만, 제작진 측 내부에서 미리 밝혀질 일은 없을 것이니만큼 최대한 관련 사실을......]

물론 이런 제작진 측의 행동들이 조금 불쾌하긴 했다. 좋은 말로하면 영화의 흥행을 위한 행위라 포장할 수 있겠지만, 이는 연기력보다는 아시아 마케팅으로서의 내 가치를 보다 높게 판단하여 나를 대체배우로 선정했다고 해석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더욱 이를 악물게 되었다. 촉박하기 그지없는 촬영일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

[반가워요.]

[처음 뵙겠습니다. 강지혁입니다.]

당장 파리 로케 촬영이 코앞이었기에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서둘러 오르게 되었다. 뭐, 솔직히 전용기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면 이다지도 서두를 필요까진 없었을 텐데, 이번 로케촬영동안에는 전용기를 이용하지 않기로 했는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할리우드에서 전용기를 이용하는 것이 공식적으로나 불문율로서 금지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뒤늦게 촬영에 합류하기도 했고 주인공 배역의 배우가 큰 부상을 당해 어부지리로 합류한 만큼 서둘러 촬영장 분위기에 녹아들고 싶었는지라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다.

[프란카 프렌테에요. 정말 팬이에요.]

뭐 덕분에 주조연급 배역인, 이 영화자체가 남자주인공만이 있을 뿐, 여자주인공은 없는지라, 어떻게 보면 여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프란카 프렌테 양과 옆자리에 앉아 파리까지 갈 수 있게 되었으니 벌써부터 이 결정에 소득이 생겨버렸다.

[로케 촬영은 처음이에요. 석 달 동안 찍은 건 미국 쪽에서 진행됐으니까요.]

[아...]

[로케 촬영 스케줄도 있고 사전 촬영 협조 기간도 있어서 이런 식으로 스케줄이 짜인 것 같아요. 당초 계획이 초반부는 미국에서 마무리하고 로케 촬영을 하는 것으로 돼있었거든요.]

그렇게 LA에서 프랑스 파리까지는 가는 동안 심심치 않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이 영화 엎어질 줄 알았거든요.]

뭐, 자신을 프란카 프렌테라고 소개한 독일출신 여배우가 다행히 무척 친절한 사람이었고, 얘기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는지라 비즈니스 적으로 대화를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나 유익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예상한대로 주인공 배역을 맡았던 배우의 부상이 영화 촬영 자체에 꽤나 큰 타격으로 다가왔다는 말과 더불어,

[사실 이 영화 자체가 엑스트라를 제외한 배역 자체가 거의 없어요. 주인공에게 엄청나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다른 배역들이 들어설 여유가 없으니까요.]

[아...]

[이번 로케 촬영에서도 미스터 강과 저만 이동하는 게 바로 그 이유에요. 실제로 다른 조연 배역들은 굳이 로케 촬영을 할 필요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이야기 스토리 자체가 그쪽에 중점을 두고 있으니까요.]

내게 부담감과 더불어 책임감을 불러일으킬 말까지 꽤나 다양한 얘기들을 다룰 수 있었고

[그래서 스태프들이 많이 걱정했어요. 주인공 배역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배우가 상대적으로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영화인데 기존에 캐스팅 했던 배우가 부상을 입어서 하차하게 됐으니까요.]

촬영장의 분위기부터 앞으로의 진행 상황을 추측한 얘기까지 꽤나 다양한 얘기를 다룰 수 있었으니까.

[그 기대에 부응하길 바랄게요. 나에게도 이번 기회는 흔치 않은, 어렵게 얻은 기회라서 영화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마찬가지라서요.]

흔치 않은 기회. 어렵게 얻은 기회.

프란카 프렌테의 마지막 말이 유난히도 가슴에 와 닿음을 느끼며, 막을 올리게 되었다. 흥행이라는 무거운 부담감을 오롯이 짊어져야 할, 유일한 주인공으로서 그것도 아시안 배우로서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할, 배우로서의 나에게는 너무나도 귀중하고 소중한 도전이.

*

숨 막힐 것만 같은 긴장감으로 인해 고요해진 홀이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적게는 수천억 많게는 수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의 머릿속에는 ‘경쟁사는 얼마를 써낼까’와 같은 생각이 자리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아...”

그래서일까, 입찰서류를 제출한 사내들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벤치에 앉아 전화기를 들고 있는 사람도 모두 찝찝하고 착잡한 심정을 숨길 수가 없었을 테니까.

“그래, 지금 막 입찰서류 제출했어. 다들 지금 회의실에 모여 있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설회사, 현진건설의 상무 김수태도 그런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허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지난 수년간 이번 경매입찰의 대상인 한남동 부지와 관련된 사업을 위해 쏟아 부었던 땀과 열정 그리고 야망이 결국 먼지처럼 사라져버렸으니까.

“우리 팀 해산식은 내일로 하고 오늘은 그럼 다들 일찍 퇴근해. 아니야, 아니야. 나도 회사 들러서 보고하고 바로 퇴근할 테니까. 이 부장도 먼저 들어가 봐. 그래 내일 보자구.”

그는 이번 사업을 또다시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는 기회라 여겼다. 고도제한과 용도제한, 건폐율, 용적률과 같은 복잡한 법적 규제를 해제하기 위해 고생했던 수년간의 결실이 한남동 외인아파트 부지 철거 결정과 함께 나타났을 땐 이를 확신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확신은 지금에 와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회사의 특별지시까지 내려졌을 때부터 그가 맡았던 사업은 이미 좌초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뭐, 오늘은 그 좌초된 배에 종지부를 찍은 것과 다름없었고 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담배 한 개비와 싸구려 자판기 커피로 씁쓸한 마음을 달래던 그에게 낯익은 얼굴의 사내가 다가온 것은.

“얼마 적어냈습니까?”

꽤나 자연스럽게 그의 옆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는 사내는 그 또한 익히 잘 알고 있는 이였다. 당초 예정대로 일이 흘러갔다면 이렇게나 자연스레 마주할 수 없는 얼굴일 정도로, 그는 자신이 속해있는 현진건설의 라이벌 회사라 할 수 있는 사성물산의 이진후 상무였으니까.

“알아봤자, 뭐합니까. 어차피 낙찰자는 따로 있을 텐데.”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김수태 그도 경쟁사 상무를 꺼려할 수가 없었다. 경쟁 상태에서야 가장 큰 적인지라 접촉을 피했을 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입찰자가 결정된 지금 상황 상 그는 동병상련, 즉 자신의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할, 본인도 똑같은 심정일 사람이었으니까.

“그래도 궁금하지 않습니까. 우리끼리라도 알려줍시다. 그래봤자 최대 2천억 상한선에서는 못 벗어났겠지만.”

어쨌든 그런 사내의 말에 말없이 수긍한 김수태가 또다시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그들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져갔다.

“위에서 지시 내려왔을 때 우리 팀 아주 난리 났습니다. 기껏 해외유명 설계회사에서 수십억씩 써가면서 설계 받아놓고 입찰 참가하려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흘러버렸으니까요. 뭐, 회사 입장에서는 고작 수십억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쪽도 알다시피 그게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팀원들 입장에선.”

각자의 회사에서 비슷한 직급의 담당자로서 서로의 심정을 지금 이 순간 가장 잘 알 것이고 이로 인한 마음의 씁쓸함을 풀기위한 대화 상대자로 이보다 어울릴 만한 사람은 또 없을 것이기에 김수태는 그 순간 이진후로부터 일종의 친밀감까지 느끼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그런 감정을 이진후 또한 김수태로부터 느끼고 있음은 당연했고 말이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기껏 고도제한이니 용도제한이니 풀려고 그 난리를 쳤는데 쩝... 뭐, 이제와 다시 생각해보니, 갑자기 모든 규제가 그것도 너무 쉽게 풀린 게 이상하긴 했습니다. 수년간 꼼짝 않던 이들이 척척 일을 진행시키는 꼴이라니...”

“뭐, 어쨌든 내일 모레 낙찰자가 발표되고 한동안은 일이 손에 안 잡힐 것 같군요.”

“하아...”

하지만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만 뿜어내는 두 사내는 알지 못했다.

인생사 새옹지마.

세상만사에는 변화가 많아 어느 것이 화가 되고, 어느 것이 복이 될지 예측하기 어려워 재앙도 슬퍼할 게 못되고 복도 기뻐할 것이 아니라는 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처럼 그들을 허탈하게, 좌절하게 만들었던 사안이 마냥 그렇게 흘러가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을.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성실히 연재하겠습니다.

[코멘트퀴즈]

지혁이 두바이 5왕자의 부탁으로, 두바이 몰 분수쇼에 어울리는 곡을 만들어주었는데요. 이 곡의 제목은?

[코멘트 퀴즈 선착순 정답자]

(1등 : 라이몬드님 3점 /// 2등 : vcnpav님 2.5점 /// 3등 : 사랑그사람님 2점 /// 4등 : Rinian님 1.5점 /// 5등 : aksu2123님 1점 /// 6등 : 햇볕님 0.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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