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298화 (298/502)

00298  2017  =========================================================================

#298

“그게 무슨 소리야? 뭘 제안했다고?”

지난 2주 동안 정말이지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동생들과 해수욕도 하고 라스베가스를 비롯해 LA 곳곳을 쏘다니며 맛있는 것도 먹고 하는 등 유쾌한 추억들을 꽤나 많이 남길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가족들이 한국으로 떠나야할 때가 다가오자 아쉬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방금 전 들려온 태현 형의 말에 의아함을 품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 측이 가지고 있는 아레나 지분 중 일부를 매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지속적으로 보내왔어. 그런데 알아보니까, 우리 쪽에만 그 제안이라는 걸 보낸 게 아니야.”

“그래, 낌새가 조금 이상해서 동혁 형이랑 민재한테도 물어보니까, 자기들도 그런 제안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더라. 그것도 우리한테 제안을 건넨 곳과 똑같은 곳에서.”

어째서 삼촌이 갑작스레 미국행을 결정했는지, 그 이유를 한국으로 떠나기 바로 전날 밤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봤자, 그 이유가 해소되자마자 또 다른 의구심이 그 자리를 곧바로 차지하게 됐지만.

“거절 안했어? 거절하면 되잖아. 당장 투자 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단호하게 거절하면,”

“거절은 했어. 했는데, 계속 제안을 하고 있어. 그것도 끈질기게.”

이해가 안 갔다. 아레나 사업 자체가 애당초 투자 금을 모두 확보한 상태에서 진행된 사업이기도 하거니와, 아레나를 완공하는 데 있어 새로운 투자 금이 필요한 것도 아닐 진데,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까.

“그리고 조 관리사님한테도 이런 제안이 왔다고 하더라. 그것도 여러 번.”

“뭐?”

“아무래도 너 최근 일도 있고 해서 따로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서 지금까지 관리사님 차원에서 거절해 오셨던 것 같은데, 그쪽에서 워낙 끈질기니까. 그래서 너한테도 조만간 따로 보고하려했다더라.”

설상가상으로 아레나 사업의 87.5% 지분을 가지고 있는 내게조차 이런 제안이 왔다는, 그것도 한번이 아닌 수차례나 왔다는 사실까지 듣고 나자 좀처럼 불쾌감을 숨기기가 힘들어졌다.

좋은 뜻으로, 선의로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주변의 날 파리들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이들 때문에 그 뜻을 접어야만 했던 나인지라, 지금의 경우가 의미하는 바를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또다시 내게 뻗쳐오는 더러운 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디서 자꾸 이런 제안을 보내는 건데?”

“드림재단이야.”

“드림재단? 거기가 뭐하는 덴데?”

“생긴 지는 얼마 안됐어. 작년 12월 달에 설립되었으니까. 그리고 정관상 설립 목적은 문화사업 육성이야. 뭐, 아직 뚜렷한 활동은 없는 것 같지만.”

그런데 막상 그 더러운 손의 정체를 들었는데도 좀처럼 의아함을 해소시킬 수가 없었다. 일단 더러운 손길을 뻗친 이가 사람이 아닌, 재단이라는 점과 더불어 그 재단의 이름 자체가 꽤나 낯설었다는 점에서 좀처럼 지분 매입의 의도를 헤아리기가 어려웠으니까.

“문화 사업을 육성하려고 이런 일을 벌이는 거란 말이야?”

“정관상 설립 목적대로라면 그런 의도로 볼 수 있겠지. 하지만 뭔가 수상쩍은 게 많아. 그것도 심상치 않을 정도로 복잡한.”

“수상쩍은 것?”

“일단 재단 출연금의 원천 자체가... 국내 대기업들이야. 그것도 내로라할 정도로 큰. 그런데 재단 이사들을 보면 해당 대기업들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야. 애당초 나랑 매형이 이 제안을 수상쩍게 생각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야.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질 않으니까.”

대화를 계속하면 할수록 생각이 절로 복잡해졌다. 어떻게 된 게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으면 들을수록 무엇 하나 정리되는 것 없이 또 다른 미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단 한 가지는 확실해져갔다. 해당 재단의 행위로 인해 나의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

“게다가 너무나도 집요하게 제안을 해대는 걸로 봤을 때, 꽤나 간절한 것 같긴 한데, 그에 비해 지분에 대한 대가는 형편없어.”

“얼마를 제시했는데?”

“일단 계속해서 거절을 하고 있는데 계약서를 자꾸만 보내오는 것도 우습지만. 어쨌든 그 대가라는 게 있지... 프리미엄이 아예 없어.”

“뭐? 그럼...”

“원가. 투자원금 그대로를 원하고 있어.”

하다못해 지분 매입을 위한 대가로 상당액의 프리미엄을 얹힌 금액이 아닌 투자원금을 제시했다는 대목에서는 그만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제 아무리 이런 부분에 있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나일지라도, 상대방의 제안이 얼마나 어이없는지를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이 행위는 마치,

“완전 날강도네. 지금 우리랑 장난하자는 거야, 뭐야?”

기껏 힘들게 계획을 세우고 일을 지금까지 진행시켜온 우리를 기만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일단 관리사님이 관련 인맥 통해서 여러모로 알아보고 계셔. 그리고 나도 이번에 미국 온 게, 미국에서 일할 때 인맥 이용해서 혹시나 알아볼 만한 게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야. 아무래도 금융, 증권, 컨설팅 업체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라는 게 굉장하니까. 어쨌든 관련 정보가 있으면 나한테 연락주기로 했으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

“그래, 처남 말대로 이번 일은 우리 쪽에서 한번 알아볼 테니까, 걱정 말고 너는 네 할 일 하고 있어.”

“뭔 소리야. 어떻게 그래. 나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한번 알아봐야지. 그래도 명실상부 내가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데.”

“지혁아. 동혁 형도 그렇게 민재도 알아본다 했으니까, 네가 나설 필요까진 없어. 정 필요하면 따로 말할 테니까, 그때까진 신경 쓰지 말고 있어. 괜히 네가 행동하면 상대 쪽이 또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하아.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것이 바로 이를 뜻함일까.

LA에 와서 계속 좋은 일들만 가득했는데 가족들이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이다지도 속을 뒤집어 놓는 일을 알게 되었는지라 허탈하기까지 했다. 나이를 먹어 가면 갈수록, 내가 가진 것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지키고 싶은 게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가 봐야하는 세상은 변해갔고 좀처럼 적응하기 힘든 것이 되어만 갔으니까.

*

전날 밤에 꽤나 복잡한 얘기를 나누었고 또한 가족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날인지라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오빠! 바다 또 가! 바다!”

“나도, 나도!”

“희망이도! 바다! 바다!”

이내 오늘이 헤어져야 하는 날임을, 한국으로 가야하는 날임을 알지 못하는 동생들의 바다 타령에 마음이 더욱 울적해졌음은 당연했고 말이다.

‘어째서 한국에서는 이렇게 지낼 수 없을까.’, ‘괜히 가수가 되었나.’라는 생각이 일순간 떠올랐지만 이내 흘려버렸다. 지금 와서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생각에 얼마 남지 않은 가족들과의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에요. 이렇게 꼬박꼬박 한국음식을 챙겨 먹을 수 있으니까요. 마음이 확 놓이네요.”

“클라라가 음식을 아주 잘해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한테 요리를 배워서 그런지 요즘엔 직접 김치를 담그기까지 하더라고요. 뭐, 저는 작은 엄마 음식이 훨씬 좋지만.”

그래도 작은 엄마와 동생들을 보자니, 아쉬움 속에서 든든함이 느껴지긴 했다.

“어머. 지혁 씨도 참...”

“정말이에요. 그리고... 그래서 정말 감사해요. 작은 엄마가 삼촌 옆에 있지 않았다고 해서 삼촌이 대충 먹을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작은 엄마랑 결혼하고 나서 삼촌이 많이 행복해보이거든요. 웃음도 많아지고요.”

작은 엄마와 동생들 그리고 형과 누나가 삼촌의 곁에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미국에서 따로 지내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기에, 그럴 엄두조차 못 냈을 것이기에 적잖이 안도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너, 너는 무슨 그런 얘기를! 그리고 나는 원래부터 잘 먹고 잘 웃었,”

“오빠.”

“어, 어? 그게 그러니까, 내 말은 지혜 너랑 결혼하고 나서 안 좋아졌다는 게 아니라...”

“조용히 하고 밥 먹어요. 밥 식으니까.”

“그, 그래.”

다만 작은 엄마에게 찍소리도 못하는 삼촌의 모습들을 볼 때면 등골이 서늘해졌는지라, 조금은 불안하긴 했지만.

어쨌든 식사는 제법 순조롭게 이어졌다. 이제는 수저질이 제법 익숙한 것인지, 스스로 죽을 떠먹는 동생들을 보며 대견함의 웃음을 보내기도 하고 작은 엄마가 건네준 반찬에 밥을 먹는 삼촌의 모습에서 닭살이 돋기도 하다 보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한국에 자주 와요. 맛있는 거 많이 해줄게요. 아니면 반찬 같은 거 보내줄까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오빠나, 태현이 통해서 말해요. 바로 보내줄 테... 우웩.”

혼자 있는 내가 걱정돼서일까. 경비원들도 있고 집사도 있는, 심지어 언제든 한국음식을 만들어줄 도우미까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걱정 어린 말을 건네던 작은 엄마가 순간적으로 헛구역질을 하자, 모두의 시선이 작은 엄마 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나또한 밥숟가락을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되었고 말이다.

[콜록콜록]

[우웨엑]

“지혜야 갑자기 왜 그래?”

“누나 왜 그래?”

“언니!”

갑작스러운 헛구역질이 좀처럼 멈추질 않는 듯, 의자에서 그대로 땅바닥으로 주저앉아 인상을 찌푸리는 작은 엄마로 인해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엄마에게로 다가갔다.

“지혜야, 왜 그래. 어? 몸이 아파?”

“오빠... 우웨엑.”

“어, 왜. 왜 그러는데? 어? 뭐가 잘못된 거야. 병원 가자. 얼른.”

생각이상으로 상황은 좋지 못했다. 삼촌이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들이밀자마자 작은 엄마의 헛구역질이 더욱 심해졌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그런 작은 엄마의 헛구역질과 가족들의 걱정 속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나로 하여금 걱정 어린 마음대신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자, 작은 엄마... 혹시?”

인생사 새옹지마. 그렇게 전날 밤 내게 꽤나 깊게 다가왔던 말이 다시금 내 뇌리에서 존재감을 뽐내기 시작했다.

*

[오빠...]

[지혜야 얼른 가자. 오빠한테 업혀. 얼른.]

[오빠...]

[얼른 업히라니까, 지혜야. 안되겠다.]

[떨어,,,]

[응?]

[떨어져요...]

[뭐?]

[냄새나... 우웨엑!]

삼촌에게서 나는 냄새 때문에 고통스러운 건지, 연신 삼촌을 피하는 작은 엄마로 인해 삼촌이 조금 상처를 받은 것 같았지만, 어쨌든 꽤나 심하게 헛구역질을 하는 작은 엄마를 가만히 놔둘 수 없어 근처의 병원으로 급하게 작은 엄마를 모시고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사실이 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었다.

“뭐, 뭐? 지, 지금 뭐라고?”

“7주차래. 축하해요. 매형.”

“삼촌 아직 안 죽었네? 난 이제 이럴 능력 삼촌한테는 아무래도...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삼촌에게서 나는 냄새 때문인지 작은 엄마와 동행하지 못한 삼촌이기에 얼굴에는 한가득 걱정이 담겨져 있었다. 그것도 이내 다가온 좋은 소식 덕에 잠시나마 사라져 버렸지만.

“근데 매형... 이거 큰일 났는데요?”

“뭐, 뭐? 뭔데, 지혜한테 무슨 일 있는 건데! 혹시 아기한테 이상 있는 거야?”

“그게...”

“뭔데! 지, 지혜한테 무슨 일 생긴 거야? 그런 거야? 말 좀 해봐!”

어쨌든 순간의 장난 끼로 삼촌을 놀리는 것도 이 정도면 됐겠다 싶어 사실을 털어놓아버렸다. 혹시라도 산모와 아기에게 큰 일이 일어난 줄 아는 삼촌의 얼굴이 또다시 보다 강력한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차기 시작했으니까.

“무슨 일이냐니까!”

“돈 많이 벌어야겠다. 삼촌. 그것도 아주 많이.”

“지혜한테 무슨... 뭐? 뭐라고?”

“축하해요. 매형. 연달아 홈런 날리셨네요. 그것도 쓰리런으로.”

그나저나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귀여운 여동생들 3명을 한 번에 만든 것도 대단할진데, 삼촌은 또다시 그 대단한일을 해내고야 말았으니까.

“세쌍둥이래요. 오빠...”

“뭐, 뭐? 지혜야 그게 정말이야?”

“네, 오빠...”

아주 그동안의 썰렁했던 집안 분위기를 확 바꾸려고 작정했는지, 이제는 명실상부 대가족이라 칭할 만한 가족을 만들어버린 삼촌이 자랑스럽긴 했다. 아니, 이러다 무슨 홍보대사라도 하는 거 아냐? 국가출산정책에 이바지한, 뭐 이런 걸로?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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