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296화 (296/502)

00296  2017  =========================================================================

#296

[탁! 파박! 탁!]

[꾸준하시군요.]

이마와 볼을 지나 턱 끝으로 땀이 한 방울, 한 방울 흘러내릴 때쯤 들려오는 존의 목소리에 시간이 꽤나 흘렀음을 알게 되었다. 간단히 30분 정도 몸을 풀 생각에 수련용 목각에 절권도의 수기를 연마하고 있었는데 1시간 뒤쯤 만나기로 했던 존이 모습을 보였으니까.

[뭐... 배울 때는 죽을 맛이었는데, 목적이 사라져버리니까 취미가 돼버리더라고요.]

미국에 있는 동안은 아무래도 존이 조 관리사님의 역할을 대신하는 지라, 얼굴을 꽤나 빈번히 마주하게 되었다. 별다른 연예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집안의 거의 모든 대소사를 담당하고 있는 존이기에 집의 주인인 나와는 꽤나 밀접한 관계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굉장히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브루스 리가 생각날 정도로.]

[그 발끝에도 못 미쳐요. 그냥 기초 중에 기초인데 있어 보이는 거에요.]

그렇게 존이 건네준 수건으로 땀을 대충 닦은 뒤, 근처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간단히 몸을 풀려고 했던 본디 의도와 달리 꽤나 격렬하게 움직였는지라 기분 좋은 무력감이 그 순간 나를 감싸 돌기 시작했으니까.

[최근 들어 한국인으로 보이는 기자들이 저택 주변을 서성거리는 게 포착됐다더군요. 마이클이. 심지어 일부는 무단으로 담벼락을 넘으려다가 다치기까지 했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집안과 관련된 보고를 받으려 했던 오늘의 약속이 그 상태에서 이어지게 되었다. 운동을 하고 씻은 후 존을 만나려했던 당초 계획이 변경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상태에서 얘기를 나누지 못할 정도로 그 보고라는 게 대단한 주제를 담고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담장 높이가 5m는 될 텐데, 그걸 넘으려 했다고요? 하, 참...]

[아무래도 꽤나 다친 듯해 마이클이 911을 불러주겠다고 했지만, 그쪽에서 아무래도 관련된 처벌을 두려워한 나머지 동료로 보이는 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황급히 도망쳤답니다. 물론 그 후로 저택을 서성거리는 한국 기자들에게 물어보니, 죽을 정도로 다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물론 그 보고라는 것을 통해 대단한 얘기를 듣지는 않을지 언정, 이런 황당한 얘기를 들을 줄은 몰랐지만.

[아무래도 경비 인력을 조금 늘리는 게 낫겠다는 마이클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CCTV와 담장 그리고 출입 초소 덕에 문제가 없었지만, 이번 사태처럼 담벼락을 넘는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담벼락도 지금보다 더 빈번하게 둘러보아야 할진데, 지금 인력으로는 조금 무리라는 게...]

아주 가지 가지하는 것 같다. 어떻게 된 게, 5m나 되는 담벼락을 허락도 받지 않고 넘을 생각을 했는지, 이런 행동은 할리우드 파파라치들 또한 하지 않는 무모한 행동이었기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경고 팻말 같은 게 그쪽에는 없었나요?]

[아닙니다. 거의 10m간격마다 미스터 강의 지시대로 한국어, 영어로 주거침입에 대한 대응들을 적시해놓았습니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한국처럼 주거침입죄가 솜방망이 취급을 당하지 않는, 심하면 무단으로 주거침입을 한 이를 사살해도 무죄를 받을 수 있는 미국이니까.

물론 이러한 주거침입죄는 해당 주와 시의 치안력을 고려하여 세부 규정에 있어 차이를 두고는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저택이 있는 비버리힐스 같은 상류층 밀집 지역 같은 경우 대부분 주거침입죄를 강력히 처벌한다는 게 문제였지만.

어쨌든 이런 모든 점들을 모르지 않았기에, 담을 넘으려했다던 ‘놈’의 무모함에 이가 갈렸다.

[경비인력을 4명 정도 더 늘려서 기존 4명과 교대로 담장 경비를 서도록 조치해주세요. 초소에 새롭게 추가될 인원들 필요 물품 같은 것도 준비해주시고요. 만약 4명 추가도 부족하다면 2명까지는 더 늘려도 된다고 마이클에게 전해주세요. 물론 새롭게 고용할 인력들은 1차적으로 마이클이 선발하고 최종 선발을 제가 하는 식으로 할 거에요.]

[알겠습니다. 오늘 이 보고가 끝난 후 곧바로 마이클에게 일러두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일어나면, 법에서 허용한 한도 내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라 하세요. 제가 한국인이든 동양인이든 그런 것 상관없이 정문을 통해서 용건을 말하지 않는 이들 가운데 함부로 저택의 담을 넘으려 하거나, 수상한 행동을 하는 이들 전부 가리지 않고요.]

막말로 마이클이 이 집의 주인이 나라는 것과 본인이 재미교포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그 ‘놈’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내 집은 한순간에 살인이 이루어진 곳이 될 뻔 했으니까.

*

[그나저나 아까 드라이브하다가 느낀 건데, 주변이 꽤나 시끄럽던데... 무슨 일 있나요?]

이제는 하다못해 담벼락까지 넘으려 했다는 점에서 조금 흥분해버렸는지라, 화제를 과감히 바꿔버렸다. 이에 대한 추가적인 지시를 한 만큼, 더 이상 이런 불쾌한 사안과 관련된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생각 없이 화제를 돌리기 위해 내뱉었던 말에 존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제 생각입니다만, 여유가 되시면 해당 부지를 구매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해변에서 맛있는 로브스터 요리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주변이 꽤나 시끄러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잠깐이나마 궁금증이 돋긴 했었다. 그 궁금증이 해소되자마자, 갑작스럽게 부지 매입을 권유받을 줄은 몰랐지만.

[그동안 교류가 없으셔서 모르시겠지만 해당 부지는 회계법인 가문으로 이 근방에서는 꽤나 유명세를 떨치던 고든 가문의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고든 가문이 감사를 맡았던 대기업에서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실이 갈만한 수천억대의 분식회계가 발견되었는데, 불행하게도 고든 가문이 분식회계의 감사에 대한 부주의로......]

솔직히 그동안 미국에서 오래 있지 않아 주변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내 옆집이, 정확히 말하자면 ‘옆집들’이 유명 회계 법인을 운영하는 이들이었다는 점에서 조금 놀라긴 했다.

제 아무리 회계사가 고소득 직종이라 할지라도 이곳이 비버리힐스인 이상, 웬만큼 벌어서는 이곳에서 살지 못 할진데, 한 채도 아니고 다섯 채나 매입해서 형제들이 모두 함께 살고 있었다는 점에 얼핏 이해가 잘되질 않았으니까. 뭐, 이 근방에서 꽤나 유명한 회계 법인이 그들 가문의 소유이자 일터였다는 말을 듣자마자 수긍이 가긴 했지만.

[해당 부지의 위치가 미스터 강의 저택을 둘러싼 형태이고 이는 다르게 말하면,]

[쉽게 팔리진 않겠네요. 부지 자체도 꽤나 큰데 아무래도 제 집이 산타모니카 해변 쪽 전경을 막고 있어서 구매자들이 꺼려할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 점까지 고려된 시가가 형성될 것이기에 미스터 강보다 이 부지에 적합한 인물을 없을 겁니다. 물론 미스터 강 입장에서도 꽤나 저가로, 잘만하면 2분지 1의 가격으로 상당한 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실보다는 득이 많을 거라 자신합니다.]

어쨌든 예상치 못한 부지매입제안에 조금 당황하긴 했는데, 존의 얘기를 듣다보니, 나도 어느새 흥미가 돋기 시작했다. 부지 자체가 매우 크다는 점 그리고 나의 집이 비버리힐스에서 꽤나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해변 경치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 때문에 구입자가 선뜻 나타나지 않아 매매가가 상당히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 등을 고려해봤을 때 존의 제안은 꽤나 합리적인 투자로 느껴졌으니까.

뭐, 한국 내에서 꽤나 큰 집을 마련해보려던 계획이 전면 수정된 것이 이런 생각에 있어 큰 영향을 미쳤음은 당연했고 말이다.

그런데 꽤나 흥미가 돋은 나머지 한 가지를 간과하고 말았다.

[다만, 미스터 강의 저택을 둘러싼 형태이고 아무래도 다섯 개의 저택이 합쳐진 부지인지라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데요?]

지금 존이 말하고 있는 부지는 고든이라는 사람의 집이 있었던 장소가 아닌, 고든이라는 성씨를 쓰는 ‘가문’의 ‘집들’이 몰려있었던 장소라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볍게 생각해버렸으니까.

[그것이 정확한 면적은 알지 못하지만 대략 만 팔천 평가량 되는 것으로,]

[콜록 콜록]

[뭐, 뭐라고요?]

아니, 한국에 있는 사람도 그렇고 미국에 있는 사람도 그렇고 무슨 평수만 물어보면 죄다 만 팔천 평이야? 나, 원 참.

*

[경비인력을 4명에서 6명까지 추가로 고용하겠다는 계획은 잠시만 미뤄두고요. 부지 매입이 확정되면 그때 가서 경비인력을 최대 10명까지 더 고용하도록 하죠. 마이클에게도 그렇게 알려주시고요.]

[예, 알겠습니다.]

[향후 부지매입이 확정되면 세부적인 내용은 그때 가서 따로 알려드릴 테니까, 일단 지금은 부지매입 관련해서 신경 좀 써주세요.]

만 팔천 평이라는, 내가 한국에서 매입해보려고 추진했고 지금도 그 목적과 중요성만 달라졌을 뿐이지 여전히 매입 하려고 준비 중인 부지와 대동소이한 면적이라는 점에서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결국 매입을 추진하기로 결정해버렸다.

[우와 진짜?]

[왜 그렇게 좋아해? 아니 놀라워하는 건데 내가 착각한 건가?]

[둘 다야. 둘 다! 대박!]

전의 나라면 꽤나 고민을 해보고 선택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일단, 그 부지를 매입함에 따라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이가 나뿐이라는 점도 있거니와 시가보다 훨씬 싸게 보다 자유로운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은 지금의 내게 매우 큰 이점으로 다가왔으니까.

[나도 섬 사려던 거 그냥 포기하고 더 큰 집으로 이사 가려 했거든. 근데 너도 나랑 똑같네? 뭐, 이사는 아니지만 집이 훨씬 넓어질 테니까. 그나저나 만 팔천 평? 그러면 기존 집 부지까지 합치면 2만평? 우와! 진짜 대단해! 내가 알기로 여기 비버리힐스에서 제일 큰 집이 7천 평? 그 정도라고 들었는데 그것보다 두 배? 아니, 거의 세배가까이 더 크네?]

[아서라, 집 규모는 아마 지금이랑 비슷할 거야. 매입할 부지는 전부 정원으로 꾸밀 거니까. 아! 헬기 이착륙 할 수 있게 작게나마 헬기장을 만들긴 할 건데, 뭐 그래도 대부분 정원일 테니까.]

그런데 정작 나보다 테일러 녀석이 이 소식에 열광하는 것 같아 떨떠름하긴 했다. 벌서부터 새로 매입할 부지는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며 호들갑을 떨어대는 녀석의 모습에서 녀석의 속셈이 너무나도 훤히 들여다보였으니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테일러 정도는 언제든 우리 집에 와도 환영할 마음이 기꺼이 존재했으니까.

그리고,

[그럼 밖에서 할 수 있는 곳이 많겠네? 호오. 이거 엄청 기대되는 걸?]

절로 침을 삼키게 하는 녀석의 묘한 눈빛과 목소리가 나를 긴장시킴과 동시에 설레게 만들었으니까.

*

[강지혁 사태의 진실]

‘강지혁 사태의 진실’이라는 게시 글이 인터넷에 등장했을 때 대중들은 이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안 그래도 강지혁 사태 때문에 온, 오프라인이 뜨거웠는지라, 하루에도 이런 제목을 달고 대중들을 낚시하는 글들이 수십, 수백 개를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게시 글의 내용을 확인한 소수 사람들의 경악이 입소문을 타고 퍼짐에 따라, 일개 낚시글로 여겨졌던 이 글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강지혁 사태의 종지부를 찍는 성지 글이 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건 당일 영상파일과 더불어 음성 파일까지 첨부된 이 게시 글은 그야말로 강지혁 사태의 정황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구성되어 있었으니까.

[알게 뭐야. 일단 찍어. 대박. 가서 사인해 달라하자.]

[저기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시면 안될까요? 야 거기서 그만 찍고 얼른 와! 같이 사진 찍게!]

그렇게 강지혁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사진을 찍고 있던 이들의 선 조치, 후 보고 형식의 태도와 더불어,

[와... 인기 좀 있다고 유세 졸라 떠네. 사인 한 번, 사진 한 장 찍어주는 게 얼마나 오래 걸린다고 저렇게 뻐겨? 나 참 더러워서.]

[맞아. 사인 한번 해주는 게 뭐 힘들다고 저리 비싼 척이야? 초심 잃었네.]

지금껏 공개되지 않았던, 이번 사태의 피해자로 여겨졌던 이들의 발언과 태도 그리고,

[그쪽 분한테만 사인을 해줘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사인 한 번, 사진 한 장 찍어주는 게 그쪽 말처럼 오래 걸리지는 않겠죠. 하지만 그게 백 명이라면요. 그게 천 명이라면요. 그러면 그 말 책임지실 수 있습니까?]

[경기 한번 보기위해서 사인을 두세 시간 동안 해야 되고 거리를 한번 거닐기 위해서 두세 시간 동안 사진요청을 받아야한다면 제가 멀쩡히 살겠습니까? 이런 것들 생각은 해보셨습니까? 생각해보지도 않으셨으면서 초심을 잃었냐느니 비싼 척 한다느니 말하는 거 우습다고 생각하진 않으십니까?]

당초 욕설로서 팬들을 윽박질렀다던 언론의 발표가 무색할 정도의, 물론 격양된 감정을 표현하느라 목소리가 커졌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존댓말을 끊지 않았던 강지혁의 발언까지.

이번 사태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을 본 대중들 중 일부는 불안감을 느끼며 안절부절하였고 또 다른 일부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논란이 되어 온, 오프라인 상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피해자로 여겨졌던 이들의 신상명세까지 자세히 다룬 게시 글의 친절함에 보답하려는 듯한 행동들이 그리고 그동안 강지혁을 근거도 없이 비난했던 이들에 대한 공개적인 성토가 줄을 잇듯 터져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 작품 후기 ============================

혈랑시윤님 후원쿠폰 3 장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성실히 연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요즘들어 자꾸 늘어진다는 지적을 해주셨는데, 더 나아지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코멘트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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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퀴즈 선착순 정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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